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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남자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진짜 어처구니를 상실한 사내다. 누가 아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등짝을 치면 "아~ 실수하셨네요. 미안해 하실것 없구요. 등짝이나 이리 대세요.", 이러면 될것이지 왜 그냥 보내냐구. 이런 흔해 빠진 경험에서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한 그가 뭔들 되는 일이 있겠는가.
구두끈 풀어져 계단에서 구르기, 일찌감치 똥의 위치 확보하고도 똥밟기는 그래도 양반이다. 왜냐? 나도 흔하게 저지르는 일이기에 웃지는 못해도 넘어갈 수는 있다. 그런데 남의 집 잘못 들어가 대신 남편으로 살아주기, 생면부지 친구랍시고 찾아온 분에게 잠자리 내어주고 동거하기는 조금 지나치다. 정도의 차이를 불문하고 갖가지 실수를 남발하는, 이 허술한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것에 기분이 나쁠것까지는 없는데, 그의 사고성에는 딴지를 걸어야겠다.
너무나 분주한 인생사에서 정신을 놓는 일은 내게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개선을 모색하지 않는다는건 아니지만 계획한대로 이뤄지는게 세상사가 아니다보니 그럭저럭 중요한 사안들에 밀려 때론 알면서도 스스로 실수에 발을 담그기도 한다. 그중에서 비슷한 사람으로 오인받아 "저..혹시 저 기억 안나세요?", 라고 물을때면 쌍방향 회로가 작동하지 않아 난감할때를 빼고는 혼자만의 과실치상(예를 들어 구두끈 풀려 계단에서 구르는거)에 그칠 수 있다.
문제는 쌍방향, 누군가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다는것은 현대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개성이 몰락하고 의술에 힘입어 비스무레한 외형이 넘쳐나는것도 한 몫한다.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남자>는 바로 개성이 함몰된 사회의 지극히 평범한 구성원이다. 구성원, 바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받고 싶지 않은 우편물을 전해오는 우편부를 피하기 위해 기껏 "죽은 척"이나 하려는, 스무살 젊은이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혈관 나이인데 내가 느끼기로 내 혈관 나이는 적어도 이백 살은 되고" 라고 말하는 체념형 인간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젊은 피는 끓고 있다고 생각하고 도전정신이 꿈틀대야 정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젊은 피가 끓을 수는 없다, 고 그는 항변한다. 맞는 말이다. 이 남자 말대로라면 그것만이 유일한 그의 개성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인생을 도망다니는데 다 써버리며 정당하게 대들줄도 모르고, 휩쓸림에 당연한듯 몸을 내어주는 그가 조금이라도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역자의 말처럼 "허물어져 가는 인간"의 전형만을 남긴것이 씁쓸하다.
함몰된 개성을 펴고, 세상앞에 조금은 더 당당한 젊은이의 모습을 소설밖에서는 찾을 수 있을까. 녹록하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드물게라도 만나고싶다. 존재의 이유를 품은 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