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에는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못했던것같다. 그저 옛날이야기의 하나로 <박씨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못생긴 여자가 시집와 구박받다가 술수를 부려 미인으로 변모하여 다시 사랑받고, 인정받고 잘 살았다는..정도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던 고전의 허와 실을 확인해 보고싶었다. 다 늦은 나이에 그딴게 무슨 소용이겠냐고 하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더불어 좋은 책을 권해줄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어 먼저 읽게되었다.
<박씨전>역시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고전과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17세기 후반정도의 글로 추정한다. 이 글에서 박씨가 흉한 몰골로 이시백에게 시집와 여자로서의 수모와 집안의 따돌림으로 외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녀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시아버지 이득춘과 시비 계화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며, 종국에는 흉허물을 벗고, 남편과 집안의 사랑을 되찾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박씨전>의 전말이다.
그럼 내가 몰랐던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박씨는 사실 박처사라는 신선의 딸이다. 그녀의 기백은 맹호와도 같으며, 태도는 달빛에 비친 매화마냥 엄숙하고,,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단다.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생긴 난리.. 병자호란의 찬탈속에서도 청나라 대장의 목을 취하고, 인질로 잡혀가는 왕비를 구출해 낸다. 와중에도 가문을 지켜내고 왕(효종)의 인정까지 받는다는....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이시백과 팔십장수하며 잘 살았단다.
여기서 내가 몰랐던, 이제 알게된 사실은 그녀가 잔다르크처럼 우리나라에 흔치 않았던 여성영웅 이라는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랑에 눈물짓는 부류가 아닌 애국열사, 진정한 heroine은 딱히 많지 않다. 적장을 부등켜안고 동반자살(?)한 논개, 독립만세의 어린꽃 유관순열사..정도라고나 할까..그런데 박씨부인은 그 정도가 아니다. 비록 소설이긴 하나 전쟁터까지 참전하며 신출귀몰하게 적군을 물리치고, 승전의 쾌거를 맛본 진정한 여걸이다. 효종이 피난을 가고 병자호란의 패배와 고통을, 소설속 박씨의 활약에 의한 승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현실적 패배를 허구에서 만회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결국 이 소설은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대가 만들어 낸 것이다. 남존여비사상이 극에 달했던 조선시대였으니, 당시 양반들에게는 적잖게 불편한 소설이었을게다..
특히 이책은 다른 고전과 약간의 다른 편집이 눈길을 끈다..시대적 풍습이나 역사적 배경, 생활상들을 켜켜이 담고 있다. <미인되기는 힘들어>에서는 중국의 전족, 서양여성의 코르셋, 납중독도 불사하는 과거 여인들의 미인되기 프로젝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시대적 수난이 가져다준 여인들의 또 다른 형벌 <환향녀의 슬픔> 에서는 병자호란으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에 돌아왔다하여 지어진 ’환향녀’란 이름으로 치욕의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던 여인들의 처지를 설명하고있다.
남자가 아니어도 좋다고 말하는 당당한 여인 박씨..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