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과는 다른 미명아래 이뤄진 대학살의 참상이 있었던 곳, 1940년부터 1945년 1월까지 나치스에 의해 250~400만에 이르는 유대인이 학살된 곳으로 기록된 아우슈비츠가 그곳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증언과 기록들은 ’죽음’의 실상, 그 자체였다. 아우슈비츠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죽음을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죽어갔다. 나는 이 끔찍한 사실의 증언들을 대하면서 인간 존엄성, 생명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궁극적 혼란에 빠져들었으며, 수용된 자들이 죽어간 곳이기보다 ’죽음’ 자체를 수용하고 있던 곳으로 아우슈비츠를 기억하게 되었다.  

 

여기 또 한 하나의 아우슈비츠 경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저자 빅터 E. 프랭클 박사가 말한 "몸서치쳐지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글로 썼으니까", 라는 단서처럼 참혹했던 수용소 생활의 기록만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지도를 받았으며 정신분석에 몰두해 있었던 그가, 수용소 생활에서 보고 느끼며 경험했던 수많은  고통들이 인간 마음속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에 관해 쓴 이야기이다. 수용소에서의 사례들을 읽어나감에 있어 그가 밝히는 정신적 반응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관찰과 체험의 결과를 모은 방대한 자료에 의해 저자가 도출한 재소자들의 정신적 반응은 3단계로 나눠진다. ’충격’, ’냉담’ 그리고 ’자아감 상실’이 그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드러나는 ’충격’은 인간이 낯선 환경이나 현상에 대해 부딪히는 가장 일반화된 반응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을 발견한 수용자들에게는 지독한 공포를 동반한 상상 이상의 충격임에 틀림없다. 정신적 충격은 순간적이며 비연속적이라는 점에서 다음 단계로 가기 전의 공백을 가진다. 이 공백에서 저자가 보이는 행동들에서 나는 정체가 불분명한, 희망의 꼬뚜리를 잡게 되었다. 계산에 어둡고 약삭빠름같은 건 기대할 수 없으며 곧이 곧대로 하고, 그런가하면 매를 버는 한이 있어도 할 말은 다하는 사람을 통칭, 눈치없는 사람, 이라고 부른다면 빅터 E.프랭클은 눈치없는 사람이다. 이 눈치없는 사람에게서 튀어나온 한 마디 유머, 란다. 사유思惟마저도 잠식된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않겠다는 그의 생각에... 인간이 이토록 강한 존재였던가, 싶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천성대로 행한 정직과 다큐같은 유머가 우연같은 요행으로 이어질수도 있겠지만, 우연이 반복될때는 필연에 갈음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희미했던 ’희망’의 정체가  그것이었을까. 

계속되는 폭행과 동상,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냉담’해지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일종의 정서적 사멸에 도달한다", 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정서적 사멸’이 뜻하는 바가, 이미 죽음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현상은 가슴 아픈 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감정들을 없애려는데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삭제된 감정의 공간과 시간에서 그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음악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여기선 그의 아내)을 향한 대화를 계속하는 감성적 상상력, 그의 놀라운 의지력과 짧은 고백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내 마음이 일렁인다.  

   
  그제야 나는 인간의 시와 인간의 사상과 인간의 신앙이 말하려고 하는 가장 위대한 비밀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벗어나 해방된 사람들은 ’자아감 상실’이라는 단계를 경험한다. 최종적 단계에서 겪게되는 환멸은 몹시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는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데서 빅터 E. 프랭클 박사는 로고데라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고데라피에 대한 구체적 이론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로고데라피를 통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자신의 신경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의도와 행보는, 깊은 감명과 궁극적 혼란에 빠졌던 존재의 본질에 대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란 해답을 던진다. 정신분석학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극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어야 했음에도,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정신적 치료를 위해 숭고한 사명을 완수한 학자로서의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 저작물은 그런 시선으로 읽혀져야 한다. 그리고 배운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적 희망을 놓치 않을 의무가 있으며 그 원천은 사랑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요구되는 부분이며. 그것이 삶의 주인된 자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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