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희망에는 분명 생명력이 있다. 
스스로 싹을 틔울 자리를 찾아가는 건 물론이고 영양분의 공급원을 고르는 일에도 탁월하다. 뿌리는 얼마나 깊은지 왠만큼 뿌리를 내렸다싶으면 아무리 흔들어도 끄떡없다. 그래서 ’희망’이란, 때론 ’기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곤 한다. 작은 씨앗같은 희망이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선단체에서 활동하는 리더나 개인 구호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대개, 우연한 기회에 그같은 일을 시작하곤 한다. 난, 앞에서도 말한 희망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스스로 자신을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 줄 사람을 ’희망’은 용케도 알고 그 마음에 싹을 틔운다. 그레그 모텐슨 또한 자신을 선택한 희망의 씨앗을 거부할 수 없었다. 히말라야 자락, 코르페란 작은 마을에 희망의 뿌리를 내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작은 것이 끝까지 작을 것이라는, 아니 커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궂이 생각하려하지 않던 것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느리지만 충분히 거대해질 수 있다. 


히말라야 코르페에 지어진 작은 학교,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 
혹은 생각을 결코 현실에 옮겨놓을 수 없다고 여겼던 이 일을 완성한 사람이 모텐슨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긴했지만 그는 우리들중 누군가처럼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돈 많은 부자도, 사회에 영향력있는 인물도,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일을 해 낼 수 있었을까. 모텐슨의 말이 답을 해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무용지물로 여겨지는 1센트짜리 동전으로 그 일을 해낸 겁니다. 하지만 그 1센트가 산을 움직일수도 있거든요." 라고,  하지만 나는, 그의 평범함과 무모함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대함의 바탕은 늘 이것이니, 곧 가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란 말처럼. 단지 그레그 모텐슨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진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레그 모텐슨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처음부터 누구나 선뜻 응한것은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모텐슨에게 선뜻 수표를 써주는 장 회르니같은 사람들은 뭘까?  그레그 모텐슨의 무엇이 그를 믿게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둠속에서도 맡아지는 향기로운 냄새같은 것이다. 모텐슨의 향기에 매료당한 사람, 아름다운 동행에 기꺼이 동참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타라 비숍. 모텐슨에게도 아껴두었던 ’용기’란 말을, 나는 아낌없이 그녀에게 주고싶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아름다운 동반자,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의 감동이 <세 잔의 차>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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