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 설 성수기 파업을 지지하라 — 일부 지역 롯데·한진·로젠 택배도 작업중단 예고
https://wspaper.org/m/27218

국토부의 발표 내용에는 요금 인상분을 노동자 처우 개선에 사용해야 한다는 점과 과로사를 유발시키는 내용이 담긴 부속합의서를 폐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이 두 사안은 분류 인력 충원 못지않게, 노동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파업의 핵심 요구들인데도 말이다.

정부의 발표는 사실상 CJ대한통운 사측의 사회적 합의 위반과 조건 개악 시도를 승인·방조하는 셈이다. 전국택배노조는 국토부의 발표 내용이 “CJ대한통운 파업 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한 줄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택배노조는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1월 18일부터 2000명 규모의 차량 상경 투쟁을 벌이고, 14일부터는 단식농성을 1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량이 늘어난 롯데·한진·로젠택배 노동자들이 예고한 파업을 실행한다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도 사회적 합의 이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투쟁에 나서고 있다.

투쟁이 더욱 확대된다면 정부·여당과 이재명 후보 측을 정치적으로 압박할 수 있고, 사측의 양보를 받아 내기 수월할 것이다.

최근 노동자연대 울산지회 소속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택배 파업 연대차 현장을 방문했는데, 파업 노동자들이 “정말 큰 힘이 됐다. 고맙다”며 환대했다. 진보당 당원들도 파업 중인 택배 터미널 여러 곳을 지지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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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마르크스주의자 인터뷰: 홍콩 항쟁과 그 이후
https://wspaper.org/m/27200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면서 중국 본토에 비해 더 허용되던 홍콩의 권리와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 인민과 중국 인민은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됐다. 홍콩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은 중국의 당-국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중요한 일부다. 우리는 만국의 인민, 특히 중국 본토의 인민을 동맹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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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융뱌오(朱永彪) 란저우대 정치·국제관계학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에 "시 주석의 메시지는 카자흐스탄에 대한 의미 있는 지지 표시"라며 "중국은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기 위해 옛 소련권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지만, 경제 분야 등의 지원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국제관계 전문가도 "CSTO의 직접 지원과 달리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해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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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군대를 파견할 경우, 러시아가 좋아할 리가 없겠지.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도 표면상으로는 중국 주도 성향을 가리려고 공용어가 중국어와 러시아어다(지난 해에는 이란이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했다). 또한, 현재 기구 공식의장국도 친러국가 타지키스탄 대통령 라흐몬(91년 소련 해체 이후에 일어난 타지키스탄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성향의 이슬람부흥당과 옛 공산당 간의 내전인 타지키스탄 내전에서 이슬람부흥당을 사실상 제압하고, 지금까지도 대통령이다. 2021년 러시아 모스크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열병식에서는 푸틴 대통령 옆에 서 있었다.)이다. 카자흐스탄 외에도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인구가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소련 해체 이전부터 실세였던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가 죽어서 대통령 임기를 마쳤기 때문에 제2대 대통령 사브카드 미르지요예프가 통치.)에서도 물가인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일대일로의 성공과 타이완 해협에서의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뒷마당인 중앙아시아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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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연료비 급등이 촉발한 시위가 억압적인 정권을 뒤흔들다


https://wspaper.org/article/27201


카자흐스탄 보안 부대들이 항쟁을 진압하는 동안 러시아 공수부대가 카자흐스탄에 투입됐다.

토카예프는 “도적떼 2만 명”이 알마티를 습격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공수부대를 비롯한 병력이 수송기 75대를 타고 “쉼 없이”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이 이번 소요를 촉발했다. LPG는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에서 자동차 연료로 널리 쓰인다.
[카자흐스탄 서부] 망기스타우주(州)의 주도(州都) 악타우에서는 대부분의 자동차에 LPG 탱크가 장착돼 있다. 이 지역에서는 LPG가 휘발유보다 훨씬 저렴했다.
LPG 가격이 급등하자 1월 2일과 3일에 [망기스타우주에 위치한] 석유 생산 도시 자나오젠의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망기스타우주 주지사이자 전직 에너지부 장관인 누를란 노가예프는 가격 인상을 재검토하겠다고 시위대에 약속했다.
하지만 노가예프의 양보는 때늦은 것이었다. 분노가 카자흐스탄 전국 곳곳의 광장 시위로 번졌다. 이 분노는 기름값 급등뿐 아니라 카자흐스탄이 운영되는 방식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1월 4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뿐 아니라 카라간다·타라즈 등 여러 주요 도시에서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텡기즈 유전(油田)의 석유 시추 노동자들이 시위에 연대해 파업을 벌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시위대는 “노인네는 물러가라” 하고 외치고 있다. “노인네”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가리키는 것으로, 올해 81세인 나자르바예프는 30년 집권 끝에 2019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민족의 지도자’라는 뜻인 “엘바시”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1월 5일 카자흐스탄 남부 도시 탈디코르간에서는 시위대가 나자르바예프 동상을 끌어내렸다. 이 동상은 나자르바예프를 기리려고 2016년에 세워진 것이었다.
나자르바예프는 시위가 시작된 이후 종적을 감췄는데, 보도에 따르면 “치료”를 위해 해외로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며칠 사이 전용기 10여 대가 이미 카자흐스탄을 떠났는데, 대부분은 유럽이나 두바이로 향했다.
1월 6일에 러시아 군대가 [시위대가 점거한] 공항을 탈환하려고 착륙했을 때, 시위대가 이틀 연속으로 보안군과 충돌하는 중이었다. 카자흐스탄 군대가 시위대에 발포하자, 병력 수송용 장갑차들이 중앙 광장으로 밀고 들어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웃한 카자흐스탄이 안정되기를 바란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정권 안정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무력을 동원할 태세임이 명백하다. 서방 역시 카자흐스탄의 안정을 바라는데, 이는 석유 수익 때문이다. 영국 지배계급은 이 지역 올리가르히*와 독재자들의 환심을 사려 여러 해 동안 애써 왔다.
이번 항쟁은 연료 가격 급등에 대한 항의 시위에서 악랄하고 억압적인 정부를 뒤흔드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항쟁을 계기로 제국주의적 침략이 촉발됐다. 사회주의자들은 저항을 지지하고 러시아의 침략에 반대해야 한다.
서방 제국주의자들: 카자흐스탄 독재자들의 친구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카자흐스탄은 국토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넓지만 인구는 1900만 명에 불과하다.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 지역 국가들 중 석유 확인매장량이 가장 많아, 하루 원유 생산량이 약 110만 배럴에 이른다. 엑슨모빌과 셰브론은 시위가 분출한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의 유전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셰브론이 주도하는 한 컨소시엄은, 텡기즈 유전의 생산량을 늘리는 계획에 약 400억 달러[50조 원]를 썼다. 바로 그곳의 노동자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2007년에 나자르바예프의 사위 티무르 쿨리바예프는 앤드루 왕자의 가족한테서 애스컷에 있는 저택을 300만 파운드나 웃돈을 주고 1500만 파운드[약 250억 원]에 구입했다. 다른 입찰자는 없었다.
2011년에 영국 전 총리 토니 블레어는, [자나오젠] 석유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는 것에 관해 나자르바예프에게 조언한 바 있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노동자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최근 기사 작위를 받은 블레어는 당시에 조언의 대가로 [나자르바예프에게] 500만 파운드[약 80억 원]를 요구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7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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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2-01-09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에 다 동의하는거는 아니지만 솔직히 저 카자흐스탄 시위 지지하고 있고, 아직 배우는 자세로 좋아요 누릅니다.
 

👉 [독자편지] 유가 상승의 고통과 민주화 염원으로 일어난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https://wspaper.org/m/27197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과 러시아와 인접한 산유국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1월 2일, 서민이 사용하는 LPG 가스요금 인상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2011년 튀니지, 이집트에서 시작된 혁명도 생필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였던 것을 기억하라.). 그래서 수도 누르술탄과 최대도시이자 경제중심지 알마티로까지 번졌다. 특히 경제중심지이자 카자흐스탄의 전 수도였던 알마티(트로츠키의 유배지였다.)에서는 시위대가 시 정부 청사와 대통령궁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이에 카자흐스탄 제2대 대통령인 토카예프는 이 시위를 “외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규정했다. 그는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가 주도하던 내각 총사퇴라는 회유책을 썼으나, 시위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토카예프는 러시아와 옛 소련에서 독립한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벨라루스가 가입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동시에 이 시위에 참가한 카자흐스탄 민중들은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다른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정치인들과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관료 출신으로 소련 해체 이전부터 카자흐스탄을 지배했다. 그는 최대의 반대파였던 수도의 알마티 시장을 죽이고, 수도를 아스타나로 옮겼다. 이는 알마티를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 이전에 카자흐인보다 많이 거주했던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의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에 일어난 알카에다와 같은 이슬람주의의 부상을 견제했다.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시키고,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반대’를 목표로 설립한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했다.
한편, 경제발전을 위해 석유개발에 나서면서 한국(이명박 전 대통령하고도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과 미국 등 서방 기업을 유치하고, 이득을 자신의 가족, 측근들과 나눠 가졌다. 동시에 2021년 1월 28일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의 석유 독립노조 탄압을 보도할 정도로 독립노조 결성 등 노동운동을 억압했다. 그리고 2005년에 이웃 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혁명이 자국에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중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2019년에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임하고, 총리였던 토카예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수도 이름을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바꾸고, 국가안보회의와 “의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이래 계속되는 세계경제위기는 유가 상승에 의존하던 카자흐스탄 경제에 타격을 줬다. 그리고 2020년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19로 인해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대교역국 중국 신장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와 국경을 통제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까지 확진되는 등 피해가 컸다. 이러한 점에서 카자흐스탄 민중들이 “노인(나자르바예프)은 물러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나토의 동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여 명의 군대를 배치시킨 러시아 정부는 토카예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자흐스탄에 러시아군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 군대를 파견했다. 토카예프 정부가 반정부 운동에 굴복할 경우, 우크라이나처럼 서방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록 중국이 부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나자르바예프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열병식 때 푸틴의 옆자리에 서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 친하다.
또한, 미국과 타이완 해협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중국 역시 카자흐스탄 반정부운동에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중국의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이하 신장)의 위구르인과 카자흐인은 청 말 이래,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 1960년대 중소분쟁으로 국경이 봉쇄될 때까지 서로 교류했기 때문이다. 특히 카자흐인들은 신장에서 위구르인 다음으로 많고, 알마티에 가까운 일리 지역에 자치주까지 설치될 정도로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국은 중소 대립 동안 닫혔던 국경을 개방하면서, 러시아가 철수한 이후 카자흐스탄 등 여러 중앙아시아에 생긴 경제적, 정치적 공백을 메웠다. 경제적으로는 신장을 통해서 생필품 수출 등의 경제 교류를 확대했다. 동시에 옛 청 시절에 러시아에 빼앗겼다가 현재 카자흐스탄의 영토가 된 지역들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 대가로 나자르바예프는 자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독립운동과 중국 기업의 진출로 생긴 카자흐스탄 민중의 반중 정서를 억압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했다.
시진핑이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학에서 발표한 것이기도 한 일대일로 계획이 성공하려면 카자흐스탄 정부의 협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카자흐스탄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 중국 외교부는 1월 6일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논평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행보는 카자흐스탄 민중들에게 중국이 신장처럼 자국을 식민지로 만들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도 카자흐스탄에서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와 집단안보조약기구의 카자흐스탄 파병에 대해 “합법성이 의심되고, 파병군대에 의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주시하겠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이는 위선이다. 왜냐하면, 미국 역시 카자흐스탄 석유 개발로 이득을 얻었고, 중국과 러시아가 약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테러리즘 반대”를 명목으로 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의 긴장이 약화되길 원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카자흐스탄 민중들의 반정부시위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독자의 편지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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