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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지음, 이평래 옮김 / 소나무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의 중앙유라시아(오늘날 유럽러시아에 가까운 우랄산맥에서 중앙유라시아와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티베트자치구, 내몽골자지구와 몽골국, 러시아 부랴트공화국에 이르는 지역.)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적은 책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룬 역사책이다. 내가 기대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역사정보는 워낙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기에 정말 적지만, 티무르제국 이후에 거의 모르던 러시아혁명 전후부터 지금까지의 중앙아시아공화국들의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신장위구르족들의 민족의식 형성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범이슬람주의와 범투르크주의 사상이 대부분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입되고, 중앙아시아 주민들은 중국과 러시아(옛 소련)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이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러시아혁명과 소련의 민족정책이 중앙아시아 민족에게 준 영향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최근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이미 알고있지만, 신장의 14개 민족주의가 다르다는 내용은 조금 특이했다. 위구르족이 독립한다 해도 이것이 또다른 갈등을 나을 수 있다는 암시이다.)
분리주의를 말살하는 최선의 정책은 신장의 한족 인구를 증가시키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한당 두 제국이 시도하고 청조도 실현하지 못한 동투르키스탄의 내지화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일리의 신위안 현의 경우 1950년대 말에 200명도 채 되지 않았던 한족이 1990년대 초에는 5만 명을 훨씬 웃돌고 있다. 현재 공식적인 인구 통계를 보면 위구르족이 한족보다 많지만, 생산건설병단의 인구 가운데는 숨겨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실제 한족 인구는 이미 위구르족을 추월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신장의 한족인구와 관련한 또 하나의 문제는 젊고 우수한 인재들이 변방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신장 남부 오아시스의 경우 위구르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한족 인구는 소수이고 새로이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등록되어 있는 한족은, 예컨대 [신장 북부의 중심지이자 자치구의 수도이며 한족들이 다수인] 우룸치 등지로 전출을 희망한다고 해도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 P465
예컨데 신장 각지에는 언어와 관습이 위구르화한 키르기스, 똑같이 위구르화한 몽골, 집안에서도 카자흐어를 사용하는 몽골족이 존재한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소수 민족 여자와 결혼하고 처가 사회에 소속된 한족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 개인에 대해 특정 민족의 적을 부여함에 따라 (중략) 근대 국가 이전에 자연적으로 진행되던 민족의 융합과 변화 과정은 민족적이라는 근대 제도에 떠밀려 멈춰버렸다. 이른바 신장위구르자치구에는 13개(한족을 합하면 14개) 민족주의가 존재할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좀더 작은‘ 소수민족 입장에서 보면 한족 민족주의는 물론, 위구르족 민족주의도 모두 자기 민족을 억누르는 족쇄로 보일 수 있다.
겨우 1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민족‘이 좀더 보편적인 ‘인류‘ 안에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세기 말기가 되면서 민족은 전에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이 문제를 깊이 통찰하기 위한 중요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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