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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뉴스 한 건이 또 기사화되어 인터넷에 올랐다. 여자 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하여 결국은 숨지게 만든 범인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는. 슬프긴 하지만 뭐 하나 특별할 것은 없는 뉴스다. 치정이 얽힌 폭력과 살인,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다루어진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이 뉴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던 피고와 피해자의 나이였다. 만으로 15살, 아마도 정식 교육과정을 밟고 있었다면 중학교 3학년 또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나이. 이렇게도 어린 아이들이 자기의 친구를 때려서 결국은 숨지게 만들고 그 시신을 유기한 것이다. 휴우.. 슬프고 무섭게도 이렇게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연령은 점차 어려지고 있다. 강도, 성폭행, 살인 등, 아이들이 저질렀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고,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정말 무서워!”라는 말을 정말 많이도 듣고 많이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범죄자들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러시아도 10대 네오나치주의자들이 유색인종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된지 오래고, 영국도 10대 청소년들의 과격한 언사와 폭력적인 행동으로 말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 일본도 이른바 ‘소년범’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989년 십대남학생들이 길 가던 여학생을 납치해 고문하다 결국 사망하자 시신을 드럼통에 유기하고 콘크리트를 채워 은폐하려했던 이른바 ‘콘크리트 살인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해졌고, 그 이후로도 꽤 많은 ‘소년범’들이 언론에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추리소설을 보면 이런 ‘소년범’에 관한 작품들이 꽤나 많은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등 한국에 번역된 ‘소년범’소재의 작품들도 다수다.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또한 그런 ‘소년범’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3명의 중학생들에게 아내 쇼코를 잃은 뒤 갓난쟁이였던 마나미와 함께 하루하루 치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야마에게 어느 날 쇼코의 사건을 담당했던 사에구사 형사가 찾아온다. 3년 6개월, 갓난쟁이 딸과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히야마의 상처를 다시 건들인 것은 바로, 히야마의 아내를 살해했던 삼인조 중 한 명인 소년B의 살해사건이었다. 하필이면 히야마의 카페 근처 공원에서 처참하게 살인을 당한 탓에 자연히 경찰들은 히야마를 용의선상에 올린 것이다.
쇼코를 처참히 살해한 사람은 13세의 중학생, 고로 아직 갱생의 여지가 있기에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때문에 법에 저촉이 되는 행위를 해도 범행을 저질렀다 할 수 없다. 따라서 촉법소년으로 불러 보호 수속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소년법이다. 때문에 히마야는 쇼코를 죽인 범인의 이름도, 사건의 내용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히마야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취재하러 온 언론들에게 ‘그들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면, 나라도 그들을 벌하겠다’는 원망을 토해내는 것 뿐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1년 반 뒤, 소년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히야마는 범인들의 이름과 사건 내용을 열람할 수 있었다. 그것도 소년범들의 인권을 위해 비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 채 말이다.
이토록 원통한 사건이 또 있을까? 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을 겨우 잡았는데, 아직 어려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갈 여지가 있기에 사람을 죽인 것을 안 죽인 것으로 해준단다. 대신에 한 몇 년 시설에 들어가 보호관찰만 받으면 된단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가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철저히 무시된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일이 생기자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다. 뭔가 뒤바뀐 기분.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의 인권은 기꺼이 무시되어도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14세 미만의 연소자라면... 말이다. 이렇게나 말이 안 되는 법이 또 있을까? 히야마가 느꼈을 황당함과 황망함, 그리고 원통함을 조금은 같이 느끼며 공분하게 된다.
“천사의 나이프”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의 강력범죄가 뉴스로 보도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천사의 나이프”내용위로 겹쳐진다. 서두에 언급한 사건의 피고들은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잔악무도하게 뺏어가고 겨우 5년에서 10년만 형을 살면 된다니……. 전혀 상관없는 나도 이렇게 어이없는데 피해자의 가족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할까?
아무튼 언론에 대고 그렇게 원망을 터뜨린 히야마는 사와구치 형사의 방문을 계기로 삼인조가 정말 갱생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에 나서게 된다. 소년B가 보호처분을 받았던 수용시설을 방문하고, 그에게 반감을 가지는 시설의 관리자와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소년 B의 여자친구가 히야마를 찾아오고, 소년 B가 사망하기 전 하고자 했다던 ‘진정한 속죄’란 무엇이었는지, 왜 소년 B가 살해당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서게 된다. 그러던 중 다른 소년 A 또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소년 C 또한 죽을 뻔한 위기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과연 누가 이렇게 소년범들을 해치고 있는 것일까? 그 누구는 정말 히야마를 대신해 쇼코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계속해서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소년범들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살인사건의 제 1용의자가 그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것도 범인이 아니라 추적자, 형사, 탐정의 입장에서 말이다. 누가 소년범들을 해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소년범과 피해자,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소년범을 헤치는 범인의 사정과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히게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거나 너무 조여지지 않도록 적절히 조율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이야기와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 독자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천사의 나이프”에서 삼인조 소년범들의 변호인은 “이미 반성을 하고 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라고 언론에 말한다. 현실의 한국, 한 법정에서도 소년 범죄자들의 변호인은 “우발적인 사건이었으며, 아이들은 이미 반성하고 있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인 점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지? 뭐, 현실의 그 아이들이 어떤 갱생의 길을 걸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년 B처럼 진정한 사죄를 하고 싶어하며,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지. 아니면 소년 A처럼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가게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이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