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의 고백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살인 조서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송소민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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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사람들은 '살인'이란 행위를 왜 행하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목숨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빼앗아버리는 그 행위는 고대에부터 있어왔지만, 동시에 금기시되어왔다. 누군가를 강제로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누군가의 가족을 해체시켜버리는 그 끔직한 행위가 비단 한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고 여러사람으로 번져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때때로 등장하는 연쇄살인범, 대량 살육자들에 경악한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때마다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잔악하고 끔찍스런 범죄에 공포와 역겨움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왜 저 사람은 그런 끔찍한 일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겉으로는 우리의 이웃과 다를바 없는 저 평범한 사람이 왜 저런 악마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모두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마르크 베네케의 [연쇄살인범의 고백]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졌던 호기심도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한 호기심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게한 동기이자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 우리는 연쇄살인자들의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기대하게된다. 무려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서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범죄의학자가 들려주는 조서이야기]라는 부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여러명(세상에는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살인자들이 존재해왔고,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의 살인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정신병력, 생존을 위해,혹은 변태적인 성욕 때문에-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만 한다. 그리고 연쇄살인자들의 그 끔직한 범죄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줄 그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사'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데 더욱 주력한다.

 

마르크 베네케는 실제 범죄과학수사관으로 여러 사건수사에 참여했던 이력을 가진 작가답게 그가 가진 현장경험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자료와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이 책에 언급되는 사건들은 불과 몇 년전에 일어났던 사건부터 백년전에 일어났던 사건까지 시공을넘나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살인마들의 수와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흔적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남는다는 것에 놀라고, 그들이 저지른 그 잔혹한 범죄수법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그 사체를 훼손하기까지 한 살인마가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나와 같은 행성안에서 살고 있다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은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하다. 그리고 살인자가 연쇄살인자들의 초상으로 돈을 버는 뻔뻔스러운 상술을 부리는며 돈을 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면수심의 범죄와 그 끔직함에 경악을 하던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범죄는 이미 끝이났고 법에 따른 처벌에 따라 그들은 죄값을 치뤘거나 치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인자에게 '완전범죄'란 없다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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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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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든다. 전쟁은 그가 가진 폭력성과 광기 그 자체로도 무섭지만, 지나간 후에도 모든 것을 황폐하고 무력화시키고 오랫동안 존재하기 때문에 더 무섭다.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위, 최악의 범죄라고도 한다.

 

내가 숨을 쉬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내편과 네편으로 서로 갈라서서 서로를 '적'으로 지칭하고, 누가 '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가, 누가 더 많은 '적군'을 죽이는가에만 골몰한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만 특히나 선량하고 가진 것없는 이에게 더욱 그러하다. 전쟁이 일어나도 눈치빠르고 약삭빠른 이들은 배를 불리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가난하고 선량한 힘없는 사람들은 전쟁의 포탄에 목숨을 잃을까 떨면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생존법을 터득해나간다. 스티븐 겔러웨이의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90년대 사라예보에서 일어났던 3년간의 전쟁에서 약한 목숨을 이어갔던 무명의 인들에 대한 소설이다. 비록 3년의 시간을 한 달정도로 축약하긴 하였지만, 그가 보여주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과 목적도 모른 전쟁에 목숨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긴 평범한 사람들의 끔찍하고도 슬픈 모습은 실제보다 더 가슴아팠다.

 

가족을 위해 물을 긷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당당히 문을 나서지만, 문이 닫히면 그 문 앞에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가장과 아내와 아들을 무사히 탈출시키고 혼자 전쟁통에 남아 위태로운 목숨을 이어가는 가장. 이 두 가장의 모습은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고통과 공포가 얼마나 극심한지, 그리고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지를 보여준다. 전과 같으면 얼마걸리지 않았을 거리를, 포탄과 전쟁의 파편으로 돌아돌아 가야하는 그들의 여정에서 우리는 전쟁이 만들어낸 말도 되지 않는 모습들을 본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건널목에서는 모르는 누군가를 모르모트로 삼아 저격수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목숨을 담보잡혀야 하는 비정한 상황. 전쟁은 모든 것을 그렇듯 비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은 촉망받던 사격선수를 비정한 저격수로 만들었다.

 

겔러웨이는 물 뜨러가는 아버지 '케난'과 베이커리로 출근하는 '드라간',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저격수 '애로'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예보 전쟁터의 모습을 전한다. 그가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로 전해지는 전쟁의 참상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180도 바꾸어버린 전쟁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그는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을 먹기위해 걸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의 운명을, 육십이 넘어서 전쟁터로 끌려갈 뻔 했던 사람의 운명을, 누군가를 죽여야 했던 그 운명을 어떤 누가 이보다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케난'은  괴팍한 이웃의 물병을 챙겨서 죽음에 다를지도 모를 걸음을 재촉한다. 가끔은 그 괴팍한 이웃이 성가시고 그녀의 이유없는 팍팍함이 짐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가 전쟁 직전에 그녀와 했던 약속을 포기하지 않는다. 손잡이 없는 물병을 양팔에 끼고 그는 묵묵히 걸어 집으로 간다. '드라간'은 베이커리로 가는 길목에서 전쟁 전 부인과 절친했던 '에미나'를 만난다. 그리고 전쟁과 자신을 둘러싼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에게 말문을 닫아버렸던 그는 짧은 만남으로 '누군가'와 말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냉정한 여사수 '애로'는 무고하게 죽은 22인의 죽음을 추도하며 22일간 '아다지오'를 연주하겠다고 결심한 첼리스트를 지킨다. 빵을 사러 갔다가 떨어진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은 22인과 그들을 추모하며 포탄이 떨어져도 자신을 노리는 저격수가 있어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첼리스트를 보면서  그녀 안에 미묘한 감정- 그녀답지 않은 감정-이 생겨나고, 그녀는 죽음 앞에서 저격수 '애로'가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착하고 사랑스러운 딸 '알리사'로 당당히 맞선다.

이 책은 다루는 공간적 배경이 전쟁터이니만큼 우울하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전쟁의 참상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가지는 것은 그 전쟁통 안에서도 꿈과 희망, 그리고 자신의 확고한 의지가 살아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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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 산문집
이지상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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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란 참 쉽지 않다. 나는 여행을 다니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그저 '꿈만 꾸는 몽상가'이다. 나에게는 여행을 떠날 결단력이 없다. 하지만 여행을 동경한다. 때문에 여행에세이에 탐닉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지상이라는 이 여행작가, 나는 왠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지만 꽤나 이 쪽에서는 유명한 사람인듯 하다. 사실 자신이 의도했던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던, 그도 저도 아니어도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행과 관련된 글을 쓰고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 사람은 이 쪽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은 이지상이라는 여행작가가 쓴 여행과 관련한 산문집이다.

 

처음 이 책을 구매할 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여행에세이려니 싶었다. 워낙에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지라 이 책을 구매할 때에는 어느 나라에 관한 에세이인지도 보지않고 그냥 덥석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책장 구석에 얌전히 모셔두기만 했었다. 그리고 몇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읽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 책이 여행에세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래도 뭐.. 좋았다. 과연 '여행작가'가 쓴 여행에 관한 글은 어떤 느낌이고 어떤 울림이 있을까? 궁금했다.

 

작가는 여행의 시작과 여행의 끝, 말 그대로 여행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여행이란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여행'이란 단어와 행위에 매력을 느끼는지, 그리고 왜 '여행'을 꿈꾸면서 쉬이 행동으로 옮기는지 못하는지, 작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떠남을 결심하고나서 전혀 어색하고 다른 공기로 가득한 그 곳의 그 길위에서 과연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생각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배 여행자' 로서 자신의 경험을 약간씩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공간안에서의 소중한 만남, 하지만 일부러 연을 만들려고 하지않는 자유로운 만남도 추억한다.

그리고 '떠남과 동시에 예정되어 있었던' 돌아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껏 자유로움을 느끼며, 어쩌면 자유로움에 지칠때쯤 되돌아와 마주해야 할 현실의 답답함. 작가는 그런 '돌아옴'의 두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마주해야할 현실의 장벽-경제적인 문제, 직장, 그리고 나이등 잡다하지만 절대로 만만히 무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의 조언으로 현실로 다가오는 압박감에 꾸렸던 여행가방을 푸르는 심약한 여행자 지망생이 있을지도 모른다(일견 나와 닮아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이 땅을 떠났다 돌아옴을 반복했던 작가에게도 첫 '떠남'과 '돌아옴'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어코 결단을 내리고 떠났고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고 생각을 하고 방랑을 하고 돌아왔을때 그는 스스로가 떠나기 전과 많이 달라져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비록 떠나기 전의 현실은 돌아온 뒤에도 변하지 않았지만, 돌아온 자신은 떠나기 전 보다 많이 성장하였으니 용기를 내어보라고 살며시 유혹한다.

 

작가는 여행을 '삶'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때문에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의 영어부제도 'Life is a Journey'이다.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것을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이기에 '여행'이 현실에 정체되어있는 누군가의 '삶'에 어떠한 계기가 되길 바라는 듯도 하다. 때문에 작가는 단순히 여행을 '여행'이 아닌 '삶'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그 '계기'나 '변화의 포인트'를 놓치지 말라고 권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여러번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유일무이한 기회. '여행'. 작가에게는 그 기회에 대한 '매력'이 여행으로 먹고사는 '밥벌이의 지겨움'보다도 훨씬 큰 듯하다. 때문에 그는 마지막 장을 '돌아옴'이 아니라 '다시 떠나며'라고 정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 그대로, 오늘도 '다시 떠나는'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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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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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탓일까? 아니면 과거의 탓일까? 일본과 한국은 서로 싫어하는 만큼이나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의료환경면에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현직 의사인 작가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을 보면,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리고 그가 현재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일본 의료계의 모습이 참 많이도 한국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을 보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의료계 현실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 하나 만은 아닐 것이다. 출산을 위한 산부인과는 찾기 힘들어지고, 지방 소도시에서는 임신과 동시에 출산을 할 수 있는 다른 지방의 산부인과를 찾아 도경계를 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매스컴을 통해 자주 대중에게 알려졌다.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은 그런 배경에서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네자키 리에, 지방 의대를 졸업하고 일류의대 의국에 입성한 그녀를 사람들은 '얼음마녀'라고 부른다. 그 별명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지방 의대 출신이 일본 의료계를 이끌어가는 일류의대에 입성했다는 그녀의 이력으로 보아 조금은 짐작이 간다.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느다란 유리관을 난자에 주입하여 순식간에 수정을 이루어내는 치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왠지 얼음마녀라는 별명이 그녀와 어울리는 듯 느껴진다. 하지만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사건 후 모두가 떠나 곧 쓰러져버릴 것 같은 [마리아 클리닉]에 매주 정기적으로 진료를 나가고, 개인에게 쏟아지는 공권력의 횡포에 맞서 위생성에 항의서한을 써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 꽤나 의리가 있는데.. 싶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윗선에 탐탁지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했고, 그녀는 현재 [마리아 클리닉]을 찾는 최후 5인의 임부가 출산을 마치는 날까지만  [마리아 클리닉]의 진료를 계속하겠다고 설득한다.

5인의 임부가 무사히 출산하기만을 기다리던 어느날 데이카의대 산부인과 로 리에가 대리모출산과 연류되어 있다는 익명의 고발서가 날아든다. 정말 리에가 자신의 주특기를 이용해 대리모라는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을 한 것일까?
 
 
 
처음에는 작가의 이름만 보고 당연히 [추리소설]이겠거니 싶었다. 때문에 책을 읽어갈수록 좀 당황스러웠다. 무슨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야 할텐데 남은 페이지가 점점 줄어감에도 전혀 사건은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결말로 다가갈 수록 이 책에 대한 나의 예감은 허둥지둥 널을 뛰었다. 임부들의 출산에 이르러 마리아 원장의 행동을 보면서 '이거 뭐.. 그린 마일이야?'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참으로 '낚였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있어 절대 '기분나쁜 낚시'가 아니었던 것은 바로 이 책이 꽤나 도발적이었고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였기 때문이었다.

리에의 행동에서 무심히 스쳐지나갔던 부분들이 결말부에 이르러 꽤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음을 알게되었을 때 나는 기요카와 교수만큼이나 놀랐다. 그리고 그녀의 무모해보이지만 용기있는 행동과 결단력있는 추진력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다. 모든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맡아볼 수 있는, 거대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그녀는 흡사 아마존의 여전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 낸 [마리아 불임 클리닉]이란 성벽이 외부의 거센 압력에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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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플 라이프
기타가와 에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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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쿄코의 이야기 

17살이 되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13/43의 확율 속에 내 생사가 걸려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웃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이라도 걸 수 있는 엄마, 아빠, 오빠 가 있었다. 때문에 항상 행복했다. 고타츠에 다리를 넣고 앉아 귤을 까먹는 것도, "잔돈 삼백만엔.."따위의 뒤떨어진 유머감각을 구사하는 오빠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너무나 소중했다. 이미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남들은 그냥 무심히 보내버리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죽음이 한발자국씩 더 가까이 왔을때, 세상은 마지막 선물을 보내주었다. 너무나 눈이 부셔서, 내 인생마저도 반짝거리게 만들어주는 그 사람, 슈지. 이미 남들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처지이기에 처음엔 그를 피해도 봤고, 또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마지막에서야 보내준 하늘을 원망도 했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그로 인해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지상 100cm 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남자, 슈지의 이야기

대대로 의사의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나, 가업을 이어야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동생이 명문의대에 진학하던 그 날에도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결국 집안의 중압감으로부터 도망치듯 떨어져나와 미용사의 길을 걸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아오야마 [핫 립]의 톱 스타일리스트가 되었지만 언제나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했고, 때문에 미용실 안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느날 도로 한복판에서 운명같은 그녀를 만났다. 장애가 있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언제나 웃을줄 아는, 그런 그녀와 투닥거리며 어느새 사랑에 빠졌다. 비록 언제나 함께할 수는 없는 운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용감히 그녀와의 사랑에 뛰어들었다. 꿈이 있다면 해변에 미용실을 내고, 마당에는 개를 기르며, 가끔씩 여자 아이돌의 사진을 쥐고 미용실을 찾을 여자아이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물론 쿄코와 함께. 하지만 예정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운명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기타가와 에리코의 [뷰티플 라이프]는 소설보다는 드라마로 더 유명하다. 기무라 타쿠야가 슈지로 분해 멋지게 연기해낸 그 작품. 사실 나도 드라마로 [뷰티플 라이프]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슈지와 쿄코의 마지막 이별장면이 너무나 가슴에 남아있던 어느날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보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드라마도 내 마음대로 스킵하며 보는 탓에 내가 보고서도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책을 읽으니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이부분에서 쿄코는 어떤 마음이었구나, 슈지는 이때 어떤 상황이었구나.. 하는 사실들을 깨달으면서 왠지 내가 슈지의 [핫립] 동료, 쿄코의 친한친구 사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뻔한 새드엔딩의 사랑이야기였지만 이 책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던 건, 슈지와 쿄코의 천천히 안으로 젖어드는 사랑때문이었던 것 같다. 장애와 죽음을 각오하고 시작된 그들의 사랑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코 타오르는 불처럼 열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일로 사랑이 시작되었던 걸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정도로 평범하고 느렸고 평화로왔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부분에 신선함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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