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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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한 건이 또 기사화되어 인터넷에 올랐다. 여자 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하여 결국은 숨지게 만든 범인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는. 슬프긴 하지만 뭐 하나 특별할 것은 없는 뉴스다. 치정이 얽힌 폭력과 살인,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다루어진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이 뉴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던 피고와 피해자의 나이였다. 만으로 15살, 아마도 정식 교육과정을 밟고 있었다면 중학교 3학년 또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나이. 이렇게도 어린 아이들이 자기의 친구를 때려서 결국은 숨지게 만들고 그 시신을 유기한 것이다. 휴우.. 슬프고 무섭게도 이렇게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연령은 점차 어려지고 있다. 강도, 성폭행, 살인 등, 아이들이 저질렀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고,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정말 무서워!”라는 말을 정말 많이도 듣고 많이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범죄자들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러시아도 10대 네오나치주의자들이 유색인종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된지 오래고, 영국도 10대 청소년들의 과격한 언사와 폭력적인 행동으로 말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 일본도 이른바 ‘소년범’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989년 십대남학생들이 길 가던 여학생을 납치해 고문하다 결국 사망하자 시신을 드럼통에 유기하고 콘크리트를 채워 은폐하려했던 이른바 ‘콘크리트 살인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해졌고, 그 이후로도 꽤 많은 ‘소년범’들이 언론에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추리소설을 보면 이런 ‘소년범’에 관한 작품들이 꽤나 많은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등 한국에 번역된 ‘소년범’소재의 작품들도 다수다.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또한 그런 ‘소년범’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3명의 중학생들에게 아내 쇼코를 잃은 뒤 갓난쟁이였던 마나미와 함께 하루하루 치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야마에게 어느 날 쇼코의 사건을 담당했던 사에구사 형사가 찾아온다. 3년 6개월, 갓난쟁이 딸과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히야마의 상처를 다시 건들인 것은 바로, 히야마의 아내를 살해했던 삼인조 중 한 명인 소년B의 살해사건이었다. 하필이면 히야마의 카페 근처 공원에서 처참하게 살인을 당한 탓에 자연히 경찰들은 히야마를 용의선상에 올린 것이다.

  쇼코를 처참히 살해한 사람은 13세의 중학생, 고로 아직 갱생의 여지가 있기에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때문에 법에 저촉이 되는 행위를 해도 범행을 저질렀다 할 수 없다. 따라서 촉법소년으로 불러 보호 수속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소년법이다. 때문에 히마야는 쇼코를 죽인 범인의 이름도, 사건의 내용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히마야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취재하러 온 언론들에게 ‘그들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면, 나라도 그들을 벌하겠다’는 원망을 토해내는 것 뿐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1년 반 뒤, 소년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히야마는 범인들의 이름과 사건 내용을 열람할 수 있었다. 그것도 소년범들의 인권을 위해 비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 채 말이다.

 

  이토록 원통한 사건이 또 있을까? 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을 겨우 잡았는데, 아직 어려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갈 여지가 있기에 사람을 죽인 것을 안 죽인 것으로 해준단다. 대신에 한 몇 년 시설에 들어가 보호관찰만 받으면 된단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가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철저히 무시된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일이 생기자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다. 뭔가 뒤바뀐 기분.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의 인권은 기꺼이 무시되어도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14세 미만의 연소자라면... 말이다. 이렇게나 말이 안 되는 법이 또 있을까? 히야마가 느꼈을 황당함과 황망함, 그리고 원통함을 조금은 같이 느끼며 공분하게 된다.

 

“천사의 나이프”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의 강력범죄가 뉴스로 보도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천사의 나이프”내용위로 겹쳐진다. 서두에 언급한 사건의 피고들은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잔악무도하게 뺏어가고 겨우 5년에서 10년만 형을 살면 된다니……. 전혀 상관없는 나도 이렇게 어이없는데 피해자의 가족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할까?

 

  아무튼 언론에 대고 그렇게 원망을 터뜨린 히야마는 사와구치 형사의 방문을 계기로 삼인조가 정말 갱생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에 나서게 된다. 소년B가 보호처분을 받았던 수용시설을 방문하고, 그에게 반감을 가지는 시설의 관리자와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소년 B의 여자친구가 히야마를 찾아오고, 소년 B가 사망하기 전 하고자 했다던 ‘진정한 속죄’란 무엇이었는지, 왜 소년 B가 살해당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서게 된다. 그러던 중 다른 소년 A 또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소년 C 또한 죽을 뻔한 위기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과연 누가 이렇게 소년범들을 해치고 있는 것일까? 그 누구는 정말 히야마를 대신해 쇼코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계속해서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소년범들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살인사건의 제 1용의자가 그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것도 범인이 아니라 추적자, 형사, 탐정의 입장에서 말이다. 누가 소년범들을 해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소년범과 피해자,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소년범을 헤치는 범인의 사정과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히게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거나 너무 조여지지 않도록 적절히 조율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이야기와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 독자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천사의 나이프”에서 삼인조 소년범들의 변호인은 “이미 반성을 하고 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라고 언론에 말한다. 현실의 한국, 한 법정에서도 소년 범죄자들의 변호인은 “우발적인 사건이었으며, 아이들은 이미 반성하고 있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인 점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다지? 뭐, 현실의 그 아이들이 어떤 갱생의 길을 걸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년 B처럼 진정한 사죄를 하고 싶어하며,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지. 아니면 소년 A처럼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가게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이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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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1984]와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오웰. 사회를 보는 남다른 시각과 날카로운 풍자로 유명한 작가 조지오웰이 평생을 작가 이외에 저널리스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당시 사회와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었고, [1984]를 보면서 왠지모를 기시감과 함께 그의 선견지명, 그리고 후 세대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경고를 함께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에세이를 모아 엮어낸 책이라니~! 더군다나 그 중 대다수가 국내에 초역된 작품이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래야 가지 않을 수 없다.   

  

 2.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 

 나는 글을 잘쓰는 재주를 타고 난 사람에 대한 왠지 모를 질투감을 가지고 있다. 살리에르도 못 될 사람이지만,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글 재주를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모차르트를 질투해 그야말로 활활 타올랐던 살리에르의 마음이 왠지 이해가 간다. 

 "산티아고 가는 길"의 저자, 세스 노터봄 또한 그런 질투감을 불러 일으키는 재주 많은 작가다. 소설과 시  뿐 아니라 샹송 작사와 번역에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작가가 수차례 스페인을 방문하면서 본 여러 광경들과 느낌 가상들을 엮어낸 책은 그래서 더 기대가 간다. 

  

 3. 우근철의 "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 

청춘은 아름답다고 한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보다 길기에, 몇 번이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기회가 그만큼 많이 남아 있기에 청춘은 백만금보다도 부러운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이 시대의 청춘은 그렇지 않다. 꿈을 꾸기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때문에 도전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말이 되었다.  

그런 청춘들에게 저자는 꽤나 좋은 멘토가 되어 줄 듯 하다. 꿈을 꾸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되고 싶어하는 내게 신선한 충격과 교훈이 되어주지 않을까? 

 4. 윤대녕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이다. 작가의 소설은 많이 읽지 못했지만, 그가 얼마나 감칠맛나는 글을 쓰는지 알게 해준 작품이 바로 <어머니의 수저>이다. 

작가가 <어머니의 수저>이후 실로 오랫만에 세상에 내놓은 에세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느낌을 올곶이 전달받을 수 있을만한 작품이기를 기대한다. 

 

 5. 김호경의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추억은 90년대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에게 있어. 1980년대는 추억과 낭만의 시기이다. 가끔 tv를 통해 접할 수 있는 80년대는 현재, 그리고 나의 90년대와는 다른 어설픔과 따뜻함, 그리고 낭만이 존재한다. 

 1960년에 태어난 작가가 가장 행복하게 보낸 1980년대를 추억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르는 나이가 된 작가가 추억하는 생생한 80년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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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주문 신부
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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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비극적인 사건이 기억났다. 아직 소녀의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여성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평생을 살아왔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베트남을 등지고 한국으로 건너온 그녀. 아마도 베트남에 두고 온 가족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두려움에 떨리던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줌의 재가 되어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한국으로 건너올 때에는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한국을 떠나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담긴 유골함을 소중이 끌어안은 건 긴 세월의 고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주름으로 내려앉은 깡마른 체구의 어머니였다.

  한국에서 제 짝을 찾지 못한 남성이 신붓감을 찾아 중개업체에 적잖은 대금을 치루고 비행기에 오르고, 적게는 열댓 명, 많게는 쉰 명 정도의 동남아 여성이 한국인 남자와 선을 본다. 그렇게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순간에 상대방을 평가하고 입맛에 맞는 여성과 단시간에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대충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국제결혼의 모습은 이러하다. 아버지뻘의 남자의 손을 잡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신부들은 한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혼생활과 더불어 고향과는 다른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앞서 언급한 어느 베트남 신부의 비극적인 결혼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을 결코 쉽지 않다. 같은 말, 같은 국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이혼을 하네 마네 할 정도로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결혼인데, 하물며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어떠할까?

  고단했을 결혼생활에 비극적 종지부를 찍은 그 베트남 신부가 바람이 불면 산산이 흩어질 재가 되어 다시 고향땅을 밟은 후, 한동안 한국과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들의 딸을, 자신들의 누이를 마치 물건처럼 대우하며 함부로 대했던 불특정의 한국인에 대한 증오가 한국인 전체에 대한 증오로 타올랐다. Ugly Korean...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정말로 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잊고 있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외국으로 떠났던 과거가 있었다.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지만, 종종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지인과 결혼한 동양여인이 영주권을 위해 위장결혼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거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편주문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해외에서 신부를 수입해오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오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미국으로 수입되는 여성은 아시아나 러시아 같은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이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한국도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마크 칼레스니코의 <우편주문 신부>는 바로 그런 우리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이라는 선전문구와 사진 한 장만으로 신부를 선택한, 오타쿠적인 취미와 취미의 연장선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39살의 캐나다 남자 ‘몬티’와 그 남자에게 선택되어 캐나다로 건너온 한국 여자 ‘경’. 단지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 젖어 순종적이며 신비한 동양여성과 결혼을 꿈 꾼 ‘몬티’와 다만 변화를 원해서 국제결혼을 선택한 ‘경’의 결혼생활이 조용하고 순탄할 리 만무했다. 
 

  결혼 초기,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심스러워하던 때에는 좀 덜했지만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 사이에 쌓이는 것은 사랑이나 정이 아닌 반목과 갈등뿐이었다. 멋대로 자기가 정해놓은 이미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고, 그 이미지에 그린 듯이 맞춰지지 않는 상대에게 실망하고 빈정거린다.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은 그렇게 무거운 짐으로 상대방의 온몸에 들러붙어 온 마음을 땅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위태롭게 이어져가던 결혼생활은 서로의 감정이 극에 달해 폭발해버리는 그 시기를 맞이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급기야 육탄전까지 벌인다. 그동안 감춰온 본심을 드러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결국은 언젠가는 터져야 했던 일이었다. 서로에 대해 바닥까지 드러냈을 때,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그 후로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 그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우편주문 신부>에서의 결혼생활은 로맨틱 코미디나 순정만화에서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넘쳐나지 않았다. 오히려 하드코어 적이었다. 바로 말하자면 현실적이었다고 할까? <우편주문 신부>는 국제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래픽 노블 이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만을 약간 수정한다면, 그냥 결혼에 관한 그래픽 노블 이었다. 그냥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없이 결혼을 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은 국제결혼도 결혼이다. 사랑과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성급히 이루어진 결혼은 갈등과 반목을 낳는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많은 동남아 처녀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농촌지역에 가면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친근한 나라 뿐 아니라 발음도 하기 힘든, 전에는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그런 나라에서 시집 온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녀들도 경중은 다르지만 <우편주문 신부>의 ‘경’처럼 많은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국제결혼’한 부부라고 따로 떼어놓고 보기 보다는 그냥 이웃의 부부로 봐주는 시선이 필요할 듯하다. 왜 어른들이 그러시지 않는가,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똑같다고. 국제결혼도 결국은 결혼이고, 외국인 신부도 그냥 신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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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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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몇 해전 이 여인의 작품이 앞다투어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되는 제목도 그녀를 연상시키는 영화까지 제작이 되었다. 노생거 사원/ 맨스필드 파크/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그녀가 생전에 세상에 내보낸 작품들은 시간이 흘렀어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국가와 시대를 바꿔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세상에 선보여지고 있다. 그 덕에 나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오만과 편견이 어떤 이야기인지, 미스트 다아시가 얼마나 매력넘치는 차도남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더더욱이나 그녀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았었다. 제인 오스틴이 엮어낸 이야기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면 영국에서 제작된 동명의 tv 드라마를 찾아보면 되고, 드라마가 너무 길다 싶으면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를 찾아보면 되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클릭 한번에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그녀의 소설은 내 집 tv 브라운관에, 컴퓨터 모니터 창에서 형형색색의 동영상으로 되살아났다. 그렇게 내게는 제인 오스틴은 작가라기 보다는 원소스 멀티유즈, 뛰어난 스토리텔러 로만 인식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읽게된 그녀의 작품은 <설득>이었다. 우연찮게도 내가 처음 접하는 그녀의 작품은 그녀가 세상에 이별을 고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 아마도 감성적으로나 글쓰는 방법이랑까 표현력이랄까... 무수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니까 여러모로 원숙한 작품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설득>은 그녀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위는 있으나 경제적 여건이 그를 따라주지 못하는 한 가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변하는 현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준남작'이라는 작위에 연연해하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철없는 엘리엇 경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27살 노처녀 둘째딸 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버지와 언니에게 가려져 조용히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가는데에 익숙한 앤과 십여년 전 그녀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던 웬트워스대령의 재회는 이 소설의 주된 갈등요소로 작용한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옛사랑을 길거리에서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이별 당시보다 예뻐지고 멋있어져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앤은 비극적이게도 예전보다 나이들고, 초라해졌으며, 집안 마저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다. 그를 거절했던 과거탓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그에게 열렬히 애정을 갈구하는 좀더 어리고 예쁘며 사랑이 넘쳐나는 여자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는 없다. 오호 통제라.... 이건 이별 후의 여자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몇가지 상황 중 하나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그러한 여성의 감성을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적절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옛날 이야기여서 어쩌면 고루하고 따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남녀상열지사라는 소재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어서였는지 제인오스틴의 표현력이 뛰어나서 였는지,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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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 3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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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만이다. 7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퇴마록>의 그가 <바이퍼케이션>을 들고 돌아왔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모네 책장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퇴마록>은 판타지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허무랭랑한 설정과 허술한 플롯, 인터넷에 아마추어가 연재한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이었다. 하지만 국내편, 세계편, 말세편, 혼세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는 긴 밤, 졸음을 확 날려버릴만큼 흡입력이 있는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소설이었다.




  그리고 <바이퍼케이션>. 이 <바이퍼케이션>은 내가 그 이후 처음으로 읽은 이우혁의 작품이다. <치우천왕기>, <왜란종결자> 등.. <퇴마록>이후에도 작가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7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장편소설 <바이퍼케이션>이 나에게 왔다.




  <바이퍼케이션>은 그 외양만을 보면, 잔혹한 살인행각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살인마와 그를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의 이야기이다. 또한 사건해결의 중심축으로 등장하는 에이들의 존재는 그러한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쁜 놈과 그 나쁜 놈을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는 정의의 히어로에 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바이퍼케이션>은 비단 그에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외피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빌려와 근사하게 덧발라냈다.




  헤라클레스와 12과업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의 미국 어느 도시로 옮겨와 연쇄살인과 흡혈행위, 그리고 원인불명의 사고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사내가 미치광이 전기톱 살인자가 되고, 여성들을 납치에 흡혈하고 끝내 죽음으로 이끄는 ‘뱀파이어’사건을 모방하여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는 평범한 남자.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유산, 그리고 이어 다리마저 못쓰게 된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미망인. 이렇게 각기 상관없이 보이는 사건과 인물들이 FBI의 프로파일러 에이들(왠지 Criminal minds의 닥터 리드를 떠올리게 한다.)과 베테랑 형사 가르시아의 활약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단단히 묶여진다.




  오랜만에 이렇게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약간의 검색을 해보니 간만의 이우혁의 작품에 나처럼 열광하는 사람도 있었고, 결말이 개운치 않다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개운치 못한 결말 덕에 왠지 뒷 이야기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는 은근한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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