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주문 신부
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벌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비극적인 사건이 기억났다. 아직 소녀의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여성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평생을 살아왔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베트남을 등지고 한국으로 건너온 그녀. 아마도 베트남에 두고 온 가족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두려움에 떨리던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줌의 재가 되어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한국으로 건너올 때에는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한국을 떠나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담긴 유골함을 소중이 끌어안은 건 긴 세월의 고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주름으로 내려앉은 깡마른 체구의 어머니였다.

  한국에서 제 짝을 찾지 못한 남성이 신붓감을 찾아 중개업체에 적잖은 대금을 치루고 비행기에 오르고, 적게는 열댓 명, 많게는 쉰 명 정도의 동남아 여성이 한국인 남자와 선을 본다. 그렇게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순간에 상대방을 평가하고 입맛에 맞는 여성과 단시간에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대충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국제결혼의 모습은 이러하다. 아버지뻘의 남자의 손을 잡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신부들은 한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혼생활과 더불어 고향과는 다른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앞서 언급한 어느 베트남 신부의 비극적인 결혼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을 결코 쉽지 않다. 같은 말, 같은 국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이혼을 하네 마네 할 정도로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결혼인데, 하물며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어떠할까?

  고단했을 결혼생활에 비극적 종지부를 찍은 그 베트남 신부가 바람이 불면 산산이 흩어질 재가 되어 다시 고향땅을 밟은 후, 한동안 한국과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들의 딸을, 자신들의 누이를 마치 물건처럼 대우하며 함부로 대했던 불특정의 한국인에 대한 증오가 한국인 전체에 대한 증오로 타올랐다. Ugly Korean...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정말로 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잊고 있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외국으로 떠났던 과거가 있었다.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지만, 종종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지인과 결혼한 동양여인이 영주권을 위해 위장결혼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거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편주문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해외에서 신부를 수입해오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오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미국으로 수입되는 여성은 아시아나 러시아 같은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이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한국도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마크 칼레스니코의 <우편주문 신부>는 바로 그런 우리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이라는 선전문구와 사진 한 장만으로 신부를 선택한, 오타쿠적인 취미와 취미의 연장선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39살의 캐나다 남자 ‘몬티’와 그 남자에게 선택되어 캐나다로 건너온 한국 여자 ‘경’. 단지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 젖어 순종적이며 신비한 동양여성과 결혼을 꿈 꾼 ‘몬티’와 다만 변화를 원해서 국제결혼을 선택한 ‘경’의 결혼생활이 조용하고 순탄할 리 만무했다. 
 

  결혼 초기,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심스러워하던 때에는 좀 덜했지만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 사이에 쌓이는 것은 사랑이나 정이 아닌 반목과 갈등뿐이었다. 멋대로 자기가 정해놓은 이미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고, 그 이미지에 그린 듯이 맞춰지지 않는 상대에게 실망하고 빈정거린다.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은 그렇게 무거운 짐으로 상대방의 온몸에 들러붙어 온 마음을 땅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위태롭게 이어져가던 결혼생활은 서로의 감정이 극에 달해 폭발해버리는 그 시기를 맞이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급기야 육탄전까지 벌인다. 그동안 감춰온 본심을 드러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결국은 언젠가는 터져야 했던 일이었다. 서로에 대해 바닥까지 드러냈을 때,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그 후로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 그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우편주문 신부>에서의 결혼생활은 로맨틱 코미디나 순정만화에서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넘쳐나지 않았다. 오히려 하드코어 적이었다. 바로 말하자면 현실적이었다고 할까? <우편주문 신부>는 국제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래픽 노블 이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만을 약간 수정한다면, 그냥 결혼에 관한 그래픽 노블 이었다. 그냥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없이 결혼을 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은 국제결혼도 결혼이다. 사랑과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성급히 이루어진 결혼은 갈등과 반목을 낳는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많은 동남아 처녀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농촌지역에 가면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친근한 나라 뿐 아니라 발음도 하기 힘든, 전에는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그런 나라에서 시집 온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녀들도 경중은 다르지만 <우편주문 신부>의 ‘경’처럼 많은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국제결혼’한 부부라고 따로 떼어놓고 보기 보다는 그냥 이웃의 부부로 봐주는 시선이 필요할 듯하다. 왜 어른들이 그러시지 않는가,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똑같다고. 국제결혼도 결국은 결혼이고, 외국인 신부도 그냥 신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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