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걸까.

  초점이 도대체 어딜 향해 있는 걸까.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지적들을 두고 섬세하다고 칭찬한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 자세히도 보셨네, 하고.

자세히 본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눈에 뜨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전력질주하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면, 더구나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면 볼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해도 그 상황에 그런 말이 정상적인 감정의 표현인가.

  적어도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에다 도저히 섬세라는 말을 붙여줄 수가 없다. 정말 섬세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표현이 상황과 상대 기분에도 맞을까,고려하며 표현할 것이라 생각한다. 보이는 대로, 내 감정대로 말하는 건,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상대가 처한 현실과 심리까지 꿰뚫는 눈치가 없다. 눈치 없는 어른을 섬세로 포장해야 하겠는가 말이지.

  내 주장이 맞다면, 수자는 결코 섬세한 편이 못 된다.

  분명히 상대도 인정하고 있는 상대의 약점을, 그것도 예의를 갖춰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생긴 일을, 상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짚고 넘어가는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창밖을 향하고 있는, 나의 냉정해진 얼굴을 눈치 챘는지 수자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창 쪽으로 돌렸던 얼굴을 다시 커피잔으로 옮겼다. 분위기가 어색해져 있었다. 소형을 위로한답시고 끌고 나와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형이 병실을 오래 비워둘 수도 없는데, 이렇게 편치 못한 시간을 보내게 하고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떤 말로 이 어색함을 깨뜨려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난 수자처럼 감정을 빨리 털어버리는 재주가 없다.

  죄 없는 커피 잔만 뱅뱅 돌렸다.

  거의 그대로 남아 있던 커피가 위태롭게 출렁거렸다.

  <단비, 너 커피 더 마실 거 아니지?>

  소형이가 우리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깼다.

  잘못한 일로 기죽어 있던 아이가 말붙여주는 어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난 기회가 지나갈세라 얼른 대답했다.

  <, 너 더 마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잔을 들어 소형에게 내밀고 있었다.

  소형에게 커피잔을 이미 내밀었을 때야 좀 더 마시고 싶은데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커피 한 모금 때문에 한 입으로 두 말 하랴. 더구나 그다지 간절한 것도 아니고. 아직도 커피 한 잔을 온전히 마셔본 적도 없는 내가 말이다.

  커피에 있어선 나와 소형은 정 반대다. 소형은 커피 남아 있는 꼴을 두 눈뜨고 못 보는 반면, 나는 남은 커피를 한 점 거리낌도 없이 버릴 수 있다.

  잔을 들어 소형의 혀로 핥은 듯 깨끗한 잔에 나의 아깝지 않은 커피를 남김없이 부었다.

  <단비 너 참 웃겨.>

  자기 잔으로 부어지는 커피를 보며 소형이 말했다.

  <뭐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길 거면서 꼭 네 몫 시키는 거 말이야.>

  <조금은 먹고 싶거든. 많이 먹는 사람 입만 입인가? 그리고 좀 얻어먹고 싶어도 이 중에 남기는 사람이 있어야지.>

  <듣고 보니 미안하네. 남겨줄 사람이 없었다 이거지? 하긴..... 그러고 보니 내가 늘 2인분이었다. 그지? 말하자면 넌 대식가인 나의 희생양?>

  <소형이 너만 그러냐. 불쌍한 애 피 빤 사람 여기도 한 명 더 있다.>

  겨울에도 얼음 찾는 수자가 얼음만 남은 유리잔을 흔들며 웃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시원한 음료를 시킬 경우 그건 또 수자 차지였다.

  <그건 농담이고. 찻집이야 어차피 자리 값이잖아. 자리 값은 해야지.>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있던 소형이 피곤한 눈자위에 주름이 잡히도록 활짝 웃었다. 웃으면 분위기가 참 달라진다. 뼈도 없이 순한 인상이 된다. ‘나쁜 것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듯한, 위험해보일 정도로 착한 얼굴이 된다. 웃지 않을 때도 딱딱한 인상은 아니다. 그런데 웃으면 완전히 또 다른 얼굴이다. 소형의 웃는 얼굴을 보며 어쩌면 저 인상이 소형의 본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울고 웃을 때 바탕이 드러나는 지도 모른다고.

  <농담이라도 어째 좀 걸린다.>

  <?>

  <먹지도 않을 걸 왜 시키냐고, 하기만 했지, 남겨 준다고 한 적은 없네?>

  <남길 자신은 있고?>

  <절대 없지. 농담이라도 그 말은 못하겠다.>

 <그럼 걸리지도 말아야지. 마음에도 없구만.>

 <항복!>

 소형이 두 손을 들며 웃었다.

 <미경이 너는 뭐 할 말 없어? 넌 단비 꺼 탐낸 적 없단 말이지?>

  수자가 듣기만 하면서 웃고 있는 미경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화살을 맞은 미경이 화살이 너무 작아 간지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흐트러지지도 않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왜 갑자기 나보고 그래?>

하면서 대답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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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07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미경도 결코 결혼에 관련된 영혼 없는 관심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내색을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이에선 예외다. 말 없는 미경이도 대놓고 투덜거린다. 특히 명절 후유증은 제법 과격하기까지 하다. 어느 집보다 손님이 많은 집이라서 더한지도 모르겠다.

  모든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나이든 남녀에게 제일 흔하게 던지는 말이 결혼해야지?’ 아니던가. 무슨 큰 의무나 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미경은 명절이면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들을까? 8남매 맏이인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모시고 있어 외가 손님까지 굉장한 집이니까.

 

   창문턱에 기대어 있던 소형이 내 눈치를 보았다. 수자도 나를 돌아보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놓고 신경질을 부릴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 하더라도, 그녀들이 내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유쾌한 일이 못 되었다. 내 발끈함의 이유를, 그래서 달아오른 내 얼굴을 소형 어머니가 못 보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병문안을 와서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나의 신경질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표정관리도 할 정도로, 나도 사회를 살아가는데 숙달된 어른이다.

 

  냉커피에 꽂혀있는 빨대를 소리 나게 빨며 수자가 깔깔 웃었다.

  <단비 너 아까 얼굴 볼만하더라. 시집 소리 나오니까 정말 자동이대? 빨개졌다 또 금방 제 색깔로 돌아오고. , 카멜레온 저리 가라더라.>

  나는 수자의 말에 대꾸는커녕 들리지도 않는 양 눈을 내리깔고 커피를 한 모금 빨았다. 그리곤 입에 담은 커피를 천천히 삼키며 눈길을 찻집 창 밖으로 돌려버렸다.

  ‘그런 건 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나? 아무리 알 거 모를 거 다 아는 친한 사이지만, 친구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 굳이 또 들출 건 뭐냐구!’

  내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듯이 감정의 반응도 다르다. 감정적으로 유난히 싫어하는 어떤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난 이런 표현들에 감정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내 얼굴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자르며 어머, 너도 이제 눈 밑에 주름 많네.’ 식의 지적. 그런 지적이 왜 그런 때,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튀어나와야 하는가 말이다. 말이 잘린 것도 맥이 빠지는 일이지만 그 상황에 그런 지적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지. 내 얼굴에 쏟아지던 집중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집중이었단 말인가. 내 이야기가 아닌 자기 생각, 아님 엉뚱한 상상에 빠져 있었단 말이 아닌가. 그런 불쾌한 경험이 또 있을까.

   전력 질주하는 단거리 선수의 슬로우 모션을 보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어머, 저 선수 얼굴 봐라. 볼 살이 출렁출렁한다.’ 식의 감동. 그런 힘차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고 어쩌면 그렇게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달리고 있는 선수에게 잔뜩 몰입해 있던, 들뜬 내 감정이 같이 수모를 당하는 기분까지 든다.

   몹시 화가 나 흥분해 있는 사람을 보고 쟤 좀 봐라, 입술이 벌벌 떨린다.’ 식의 지적. 설사 당사자가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례가 될 것 같지 않은가. 내 기분이 아니라고 조롱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아닌가. 때로는 못 본 척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가 말이다.

  나는 왜 그런 지적들에, 내가 당한 것같이 화가 날까.

  그런 일엔 당사자가 나이건, 남이건 상관없이 감정이 상한다.

 

  수자가 종종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이야기 주제를 흐리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친구라서 애써 넘어가기도 하지만 친구라서 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 소형과 미경은?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 상황에 내가 분통을 터뜨릴 때마다 둘은 웃기만 한다. 그 웃음의 의미를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 화를 낸 나에게 공감한다는 웃음인지, 과민한 내 반응에 대한 웃음인지, 둘 다 그럴 수도 있다는 웃음인지.

  어떤 의미의 웃음이건 친구 사이에서 그들이 취할 방도는 웃음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문제라 생각한다. 이성적으론. 그래서 반성도 해보고 노력도 해보지만 부딪칠 때마다 증세는 여전하다. 면역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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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글방 분식점 가서 국수 먹자.>

  수자가 드디어 묵직한 엉덩이를 소파에서 떼며 기지개를 켰다. 생각 없이 앉아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엉덩이 모양으로 눌렸던 소파 표면이 힘들여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숙제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구만.>

  나는 바지가 달라붙은 수자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날씨는 텁텁하고 시간도 늦었는데 냉국수가 딱 맞을 것 같았다.

  <미경이 넌 어때? 우리 동네 냉국수 괜찮은데.>

  식탁에 손가락으로 맴을 그리며 앉아 있던 미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지.>

 

  소형의 어머니는 상상했던 것보단 괜찮아 보였다.

  우리가 갔을 땐 방금 세수를 했다면서 침대에 걸터앉아 계셨다. 골격이 크고 피부가 희며 잘 생긴 소형의 어머니는, 겉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큰 병을 몸에 실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침대 밑 간이침대에 앉아있는 소형이 더 병자 같아 보였다. 화장이 다 지워진 얼굴에 회색 실내복 차림이어서 더 그래 보이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우리를 알아보시고 손짓을 하셨다.

  아직도 고운 피부에 부드럽게 퍼머가 된 짧은 머리를 잘 빗어 넘긴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소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잠시 어머니를 가렸다. 언뜻 가려졌다 다시 보이는 소형 어머니가 한 순간 소형처럼 보였다. 여태 소형이 한 번도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딸은 늙으면 엄마를 닮는다더니, 난 잠시 우리의 나이를 곱씹으며 소형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제 꾸미지 않으면 추레할 수도 있는 나이구나.

  우리가 그런 나이구나.

  마냥 누구의 딸만으로도 예쁜 나이는 아니구나.

  그런 처량한 생각이 얼굴에 나타났는가.

  내 눈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소형이 필요 이상으로 씩씩하게 우릴 보고 앉으라고 수선을 떨었다. 나는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표정을 고치며 침대로 다가갔다.

  <어머니, 좀 괜찮으세요.>

  무릎 위에 무겁게 얹혀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야 뭐, 나일롱 환자지. 겉으로 보면 말짱하고.>

  내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얼른 돌려지지가 않았다. 얼굴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몸을 움직여 좀 돌아앉고 싶은데도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마치 말하는 마네킹 같았다. 표정이 딱딱했다. 비로소 병이 심각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은 꽤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향했다. 어머니의 동작은 물속이나 우주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느릿했다.

  <바쁜 사람들이 늙은이 하나 아프다고 이렇게 찾아들 와? 쓸데없는 수고들을 하는구만.>

  <그럼 도로 갈까요? 우리 가고 나서 우시지나 마세요. 맛있는 빵도 도로 가져 갈 거예요.>

  수자가 너스레를 떨며 들고 온 빵 봉지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어깨에 멘 가방 끈을 잡은 채 서 있던 미경이 그제야 내 옆쪽으로 오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미경의 너무나 공손한 인사에, 나는 인사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어머니. 빨리 나으셔야지요.>

  <아유 얌전하기도 해라. 우째 저리 참한데, 남자들이 다 눈이 삐었지. 왜 결혼을 안 하고.>

  <엄마, 쓸데없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슈. 그건 나한테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우.>

  소형이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소형이가 어머니의 말을 자르거나 말거나 미경은 변함없는 같은 말투로 대답을 했다.

  <글쎄 말이에요 어머니, 저 좋은데 시집 좀 보내주세요.>

  미경이는 정말 속도 좋다. 나는 자격지심이라 해도 할 수 없지만, ‘시집자도 듣기 싫다. 친지들 중에도 내 앞에서 시집 이야기 꺼냈다가 나의 다정한 미소?에서 제외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데, 물론 난 한 번도 시집가라는 소리가 듣기 좋았던 적은 없었지만. 잊어버리지도 않고 그 소릴 왜 하는지. 사람들은 그게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삼척동자도 진짜 사랑과 인사치레는 구분한다. 그러니 그 말에 내가 콧방귀나 뀔 수밖에. 그건 나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뿐이다. 관심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랑이 아니라 관심 정도만 있어도 상대가 특히 싫어하는 건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사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다는 말이다. 관심이 없으면 차라리 무심할 일이지 누구 좋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하시는지. 설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도 마음을 얻기를 바라는 건 아닐 테고. 아님 내가 진심과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기를 바라시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미워서 일부러 하는 소리 아니겠는가. 미운 놈에게 상처 주는 건 고소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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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해 산다고 해서 미경이 집안의 대소사에서 제외되는 법은 없다.

  제외는커녕 일꾼도 그런 상일꾼이 있을까.

  일 년에 일곱 번 있는 제사, 그리고 명절에 미경은 전을 부치러 반드시 집에 갔다. 동생들이 결혼을 하고부터는 명절 음식의 규모는 나날이 커졌다. 어머니의 사위 사랑이 대단했고, 미경의 어머니는 사위에 대한 사랑을 주로 음식으로 표현하셨다. 어머니의 한에 차게 음식을 장만하자면 미경의 명절 연휴는 몽땅 부엌에서 끝나야했다.

  명절 전날은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밤중에 별장으로 잠시 후퇴했다가 명절날 아침엔 아들 없는 집 아들 노릇까지 겸해 차례를 지내러 갔다. 그 다음 날은 동생들과 제부들이 오는 날이므로 또 빠질 수 없다. 동생들도 제부들도, 혼자 사는 미경을 딸린 식구 없는 홀가분한 존재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에 미경의 접대를 아주 편안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집안 제사에 결혼한 동생들이 못 올 이유는 많아도, 미경은 절대 못 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자식이 아플 일도 없고, 시댁의 관혼상제도, 남편의 출장이나 불화의 핑계도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건 그건 이기적내지는 인정머리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버린다.

  과천 사는, 맞벌이를 하는 첫째 동생은 연년생으로 낳은 조카를 낳자마자 줄줄이 친정에 맡겼다. 얼마 전 큰애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 비로소 과천으로 데리고 갔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조카들을 올려 보내고 미경이 한편으로 좀 서운했지만 사실 얼마나 홀가분해졌는지 모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친정에 맡겼는데 따로 사는 주제에 웃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속 모르는 소리다.

  그동안 미경에겐 일요일이 없었다.

  일요일마다 조카들을 봐주러 집에 갔다. 토요일부터 불려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토요일 퇴근 시간만 되면 거의 틀림없이 어머니의 구조 요청 전화가 왔다.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서 억지로 시간을 빼지 않으면 반휴일도 찾아먹기 힘들었다. 물론 찾아 먹은 휴식 시간도 그늘 없이 달콤할 수가 없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가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인가. 그걸 잘 알고 있는 그녀에게 단맛이 제대로 느껴질 리가 없다.

  선생 노릇도 노동량으로 치면 중노동에 든다는데.

  혼자 사는 여자의 선생 노릇을 적당한 놀이정도로나 여기는지.

  ‘일요일엔 쉬고 싶다를 독신자가 외치면 사치가 되는지.

  엄마의 요청 전화가 없어도 그녀 성품에 자주 갔을 것이 분명했다.

  미경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조카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며칠을 못 넘겼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자식 이야기 하고 있는 줄 알 정도로 조카들에게 눈이 멀어 있다. 수자는 미경이 조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에 광채가 난다고, 그런 정열로 연애를 했으면 결혼을 해도 열 두 번은 했겠다고 놀렸다.

  문제는 동생들도, 제부들도, 어머니도, 미경이가 생계를 꾸려가는 생활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기 위해서도 돈은 벌어야 하고, 밥도 해 먹어야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그들이 미경의 생활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미경은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처럼 바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바쁜 생활의 주 무대는 본가다. 별장은 틈이 주어지는 대로 돌볼 뿐이다. 별장엔 섭섭해하는 사람도, 변명을 대야 할 사람도 없가 때문에.

 

  혼자 사는 자유로운 여자인 미경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차지하기도 어렵다. 

  한창 조카들이 클 때, 조카들에게 필요한 기저귀며 우유, 하여튼 부피와 무게 나가는 물건들 심부름은 미경이 도맡아 놓고 해야 했기 때문에 평일에도 한두 번 장을 봐줘야 했다. 아무리 조카들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 되면 조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홀가분해 했던 걸 두고, ‘인정머리 없는걸로만 단정해버리는 건 좀 가혹하지 않는가.

  혼자 살아도 세금은 내야하고, 사회생활을 하니까 경조사에 부조 나갈 일도 많다. 돈 드는 일에 빠지지 않고 어른 노릇 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왜 혼자 사는데 돈 쓸 일이 뭐 있냐며 지각없는 생각을 지각없이 계속 해대는지 모르겠다.

  동생들이 돈 벌어 자식 키우는 대신, 미경은 손자들 맡아 키우는 부모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는데도 그들은 친정 부모의 은혜를 입은 거지 미경의 수고는 간 곳도 없었다. 생활비가 많이 들면 어머니는 미경에게는 스스럼없이 요구해도 동생들이나 제부들에게 받는 건 아주 미안해했다. 알게 모르게 친정에 젖어 들어간 돈이 상당한 걸로 우린 짐작만 하고 있다. 사치도,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는 미경이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 외에 저축이 한 푼도 없는 걸로 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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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경은 우리 중 가장 먼저 독립했다.

  딸만 넷인 집안의 맏이인, 독립심 강한 미경이를, 미경이 아버지는 아들처럼 믿고 든든해하셨다. 그 강한 독립심이 결혼이 아닌 정말 독립을 원했을 때, 자주 독립 좋아하시던 미경이 아버지도, 당시엔 독립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으실 만큼 충격을 받으셨다.

  그렇게 집안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말리다 지친 어머니한테는 독하다는 말을 들으며 당당히 독립한, 그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는 독립할 당시만 유효했다.

 

  독립을 하고 난 직후,

  미경은 거의 매일 퇴근길에 집에 들렀다. 식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냈다. 말하자면 재롱둥이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이다. 자식이 떨어져나갔다는 허전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당분간만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차츰 횟수를 줄이지는 희망으로만 남았고 갈수록 일은 벌어지기만 했다.

  그것도 보상심리라고 해야 할까.

  미경은 불효했다는 죄책감이 깔려 있고 어머니는 딸을 아무리 자주 봐도 만족되지 않는 서운함이 깔려 있었다. 같이 살지 않는다는 서운함. 미경은 그런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매일 본가로 출근하고 어머닌 그래도 밤에는 집으로 가버리는 딸이 서운했다. 그 서운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휴일엔 같이 장을 보러 가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것들은 고정 행사가 되었다. 미경이 딸로서 하던 투정과 거부가 점점 사라지는 대신 어머니의 투정과 거부가 늘어났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서서히 그렇게 변해갔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은 미경이 독립하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잠들어 있는 시간을 뺀다면.

 

   미경은 활동적인 여자였다.

  평일에도 퇴근 후엔 친구, 동료들과 잘 어울렸고 휴일이면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 바람을 쏘여야 했다. 방학 땐 물론 우리와 여행도 많이 했다. 하지만 독립 후 그 시간들은 거의 집과 함께’ ‘어머니와 함께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얻어먹는 밥에 늘 허기를 느끼듯 어머니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미경은 미경대로 바쁘고 어머닌 어머니대로 섭섭함이 기본으로 깔려있었다.

  늘 보는 사람들끼리는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얼마나 주름이 늘었는지, 얼마나 체중이 변했는지는 시간을 좀 건너뛰어야 확실히 보인다. 미경과 가족은 늘 함께였고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어머니와 장보러 가는 게 고정 일거리가 되었고, 돈 버는 딸이니까 계산도 자연스럽게 미경이가 했다. 어머닌 미경이 독립한 후에야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어 있다는 걸 제대로 인식한 것 같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제대로 인식한 건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정신적 독립도 자주 독립도 아닌 경제적 독립만.

  가족들은 미경의 지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지출의 용도는 점점 다양해지고 커졌다.

  주중에 들를 때마다 사들고 가는 푸짐한 간식거리.

  월급 때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생활비와 용돈.

  간식은 주로 아직도 입이 달아 남아나는 것이 없는 동생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러고도 어머니껜 따로 생활비를, 동생들에겐 용돈을 챙겼다. 물론 강요한 사람은 없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흘러갔고 미경이는 돈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자식이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 하면 할 말은 없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의 의무가 따로 있는 거라면 말이다.

  그동안,

  동생들은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자식을 키웠다.

  그리고 미경에겐 아직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칸이 없다.

  어머니로부터 독하다는 말을 들으며, 동생들로부터는 종종 인정 없다는 말을 들으며, 제부들로부터는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품게 하며, 미경은 정작 利己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나아지지 않는 형편이 바로 그 증거다.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여자가 도대체 돈을 어디에 다 쓰는지 동생들이 차례로 집을 사는 동안 미경의 집은 아직도 처음 독립할 때 융자받아 얻은 원룸이다. 해마다 집세를 올려주면서도 제집을 갖지 못하고 있는 걸 식구들은 알까. 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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