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판단은 좀 다르다.

  어찌되었건 가족은 가족이다.

  미경이 제법 분노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말은 저렇게 했어도 앞으로 행동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본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섭섭한 일 앞에서 말랑하게 배반될 것 같으면 가족이란 이름이 그렇게 따뜻하고 그렇게 징그럽진 않을 것이다.

  웬만한 일에 감정을 드러내는 여자는 아니지만 감정이 행동의 변화까지 가져오려면 또 시간이 필요한 법. 그리고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전쟁이아닌가? 미경의 성격으론 어림도 없고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몰랐던 미경의 심중을 알고 좀 놀라고 그래서 조심하자고 결의했을 지도 모르고, 미경은 속으로 너무 심했나, 하고 반성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웬만한 다툼도 해빙기 얼음 풀리듯 풀리는 것이 형제자매 다툼이 아닌가.

  그러나 수자는 미경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접수했다. 그리고 배가 부르다 해도 기어이 밥을 한 술 더 보태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수자식 의리가 이미 발동해버렸다. 그래서 학교의 명예를 걸고 웅변대회에 나온 사명감에 불타는 아이의 웅변이 시작되었다.

 

  <미경이 네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더한 일도 있었다. 우리 삼촌 알지?>

  그렇다.

  우리는 수자의 그 삼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직접 보고 겪어서가 아닌 수자의 분노한 입을 통해서. 수자가 흥분해서 침을 튀기는 상당 부분이 그 삼촌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장가를 들기 전까지 무던히도 부모 속을 끓였던, 물론 지금은 상대가 아내로 바뀌었지만. 수자 말대로 하면 지금은 바람둥이, 장가들기 전에는 불량배였던 그 삼촌이 심심찮게 수자의 화를 머리끝까지 올려놓았다. 바람둥이 오빠가 누이동생 닦달은 더 한다고, 자기의 과거를 모르는 순진한 아내에게나 통할 으름장을 수자에게도 놓는 모양이었다.

 

  삼촌은 수자보다 두 살 위다.

  삼촌의 행패를 낱낱이 보며 자란 수자에게 삼촌은 이름뿐인 삼촌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나. 그런 삼촌에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던 수자는 거부, 혹은 경외의 대상. 문제만 일으키는 자신과 칭찬만 듣는 수자에 대한 친척들의 비교가 어찌 달달하기만 했겠는가.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던 삼촌이 장가를 들어 첫 애를 낳을 때까지도 삼촌은 수자를 간섭하는 일은 고사하고 거리를 두고 말도 잘 붙이지 않았다. 그런 삼촌이 아버지가 되고 주변의 인정을 제법 받으면서 수자에게 어른 노릇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록 삼촌이지만, 수자와 나이가 비슷해 알게 모르게 비교 당하며 자격지심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수자가 못한 결혼을 했다는 자만심이, 그동안 기죽어 못했던 삼촌 노릇을 하게 만든 것 같았다.

  삼촌의 일탈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삼촌을 고등학교 졸업시킬 때까지 이사를 세 번이나 해야 했고 학교를 일곱 번이나 옮겼다. 그래서 삼촌은 입학한 중학교 고등학교와 졸업한 학교가 모두 다르다. 욱하는 주먹 때문에 물어준 치료비만 해도 수자 말대로라면 서른 평 아파트 한 채 값은 될 거라고 했다.

  그래도 겨우 들어간 대학에 다니면서부터는 삼촌도 숨구멍이 트였는지, 대학의 자유로움이 그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그럭저럭 학교도 잘 다니고 주먹질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 삼촌이 했던 일 중에 가장 신통한 일이 착하고 예쁜 여자를 후려 결혼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연줄로 취직한, 비록 육 개월밖에 버티지 못 했지만, 서울 생활에서 삼촌이 얻은 수확이 있다면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본인으로 봐서는 너무나 불행하고 삼촌 집안으로 봐서는 너무나 다행이고 과분하고 고마운 여자, 수자의 숙모. 직장을 걷어치우고 의논도 없이 내려온 소행에 집안이 또 한 번 들썩였지만 숙모의 출현으로 삼촌의 경솔함은 재빨리 묻혀버릴 수 있었다. 숙모는 그만큼 참하고 나무랄 데 없는 여자였다.

 

  사실 육 개월도 길었다.

  삼촌이 취직이 됐답시고 순순히 서울로 올라간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으니까. 며칠이나 갈까가 몇 달이나 갔으니, 겉으로만 한숨이었지 큰 실망도 없었다.

삼촌은 고향으로 내려와 별 하는 일 없이 할아버지 소유의 건물 임대료나 관리하면서 제법 건전한 가장 흉내를 내고 살았다. 순진한 아내를 평소에 닦아놓은 여자 후리는 솜씨로, 선물 공세로 감동을 시키고, 한편으론 불량배 시절에 닦아놓은 박력?으로 기를 죽여 집안을 평정했다.

  수자 말에 의하면 여전히 걸쳐놓고 지내는 여자가 있다 했다. 그건 숙모만 모르지 집안에서는 다 아는 일이라고. 자기는 숙모만 보면, 저렇게 예쁘고 싹싹하고,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어떻게 저런 망나니에게 걸렸을까 싶어 화가 난다고 했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아들 둘을 키우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향에서, 만날 친구도 없이 집에 갇혀있다시피 살아가는 숙모. 어떤 때는 산적에게 납치당해 정절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조선시대의 양반집 아씨같은 느낌까지 든다고 했다.

  어쨌든 집안에서는 그런 숙모가 고마웠다.

  삼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믿고, 행실과는 반대로 권위 세우기 좋아하는 삼촌의 권위를 백 퍼센트 살려주었다. 서른이 되도록 아무도 어른 대접을 해주지 않았던 삼촌을 깎듯이 남편대접을 하고 받들어주는 숙모의 존재는 삼촌을 크게 변화시켰다. 남자로, 남편으로 권위가 선 삼촌은 집안에서 안면수습을 하며 목불인견의 모습을 지웠다. 부모에게 막말을 하며 달려들던 건 옛날 말이고 조카들에게도 점잖을 부리며 어른 노릇을 했다.

  마치 일을 저지르는 게 자신의 사명인 듯 그것을 즐기던 삼촌이, 드디어 윤리의 채찍을 휘두르는 어른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삼촌의 채찍은 자주 방향과 시간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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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미경의 캐릭터가 더 더러났으며 좋을 것 같고, 삼촌의 인물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소박한 문체여서 갈등과 긴장이 부족한 것 같네요.
아뭏든 다음의 얘기가 기대가 됩니다. 좋은 꿈 꾸세요. ^^

한여름소나기 2016-02-13 14:19   좋아요 0 | URL
새겨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