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형에게 커피를 배웠다.

  우리 집은 차를 즐기는 집이 아니었다. 음료로는 물 외에 거의 마시는 게 없었다. 차는커녕 마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커피는 찻집에 가게 되면 형식적으로, 자리 값으로나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커피를 맛으로, 광분하며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소형을 보고야 실감을 했다. 소형은 텔레비전에서 커피 마시는 장면이 나오거나, ‘커피란 단어만 들려도 밤 2시건 3 시건 상관없이 벌떡 일어나 커피를 뽑으러 갔다.

 

  소형은 잠자코 커피만 마셨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공기도 주변도 고요했다. 하지만 소형의 눈은 그렇지 못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눈빛이 흔들리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복잡한 생각에 눈꺼풀에 가늘게 경련이 일었다.

  <오늘밤부터...., , 병원에서 자야 돼.>

  그렇구나. 어머니가 결국 병원에 가신 것이다.

  <입원?>

  <.>

  <얼마나 오래? 매일 밤 네가 가야 돼?>

  <그렇게 됐어. 아마 그래야 될 것 같애.>

  소형은 어느 새 다 마셔버린 빈 잔을 들고 일어났다. 다시 넘치게 채운 잔을 들고 와 의자에 앉으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나도 늙겠지만, 생로병사가 다 고()라더니…….>

  난 소형을 바라보지 못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며 앉지도 못하더라. 앉지를 못하니까 물론 일어나 걷지도 못하고. 내가 혼자 들 수가 없으니까 당장 화장실 문제가 엄청난 숙제더라고. 소변은 기저귀 사용도 해봤지만 아직 대변은 그렇게 해 본적이 없었거든.>

  <나를 부르지. 바로 곁에 사는 사람 그럴 때 좀 쓰지..... 너 참 못됐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밥이나 먹으러 뛰어오고.>

 <널 불러 무슨 도움이 된다고. 네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너 우리 엄마 알잖아.>

  ‘그래도 그렇지.’ 라는 말을 속으로만 했다.

  내 마음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지라는 말은,

  너에게 도움이 되거나 말거나 내가 네 친구라는,

  그리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내가 즐길 수 있게 해달라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아침에 화장실 가려고 등 밑에 손을 넣고 일으키려는데 비명을 질러. 도로 눕히라고.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다며. 식은땀을 흘리고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러니 화장실엘 갈 수가 없어. 그 때까진 아침마다 화장실엘 앉혀만 주면 용변을 혼자 봤거든.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으니 화장실은 고사하고 정말 난감하더라. 하루 종일 누워 계셔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 날은 1교시 강의가 있는 날이었어. 용변을 어쩌나 걱정은 됐지만 혼자 어쩔 수가 없더라. 학교는 가야 되고. 할 수 없이 오빠에게 전화를 했지. 오빠가 알았다고, 곧 와보겠다고. 난 안심하고 학교에 갔어.>

  소형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잠시 쉬었다.

  입가가 굳어지고 있었다.

  눈물을 참는 걸까.

  격해지는 감정을 다스리는 중일까.

 

  <오후 세 시쯤 집에 왔나? 세상에, 문을 여는 순간, 기도 안 차. 냄새가……. 나 정말, 똥오줌 받아내야 되는 부모 모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무슨 불만을 해도, 어떤 욕을 해도, 모시고 사는 것만으로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뒷걸음질을 치더라.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도망가고 싶더라고.

  들어가니까, 엄만 내가 들어오는 소릴 듣고 억지로 일어나 앉기는 했는데 침대를 짚은 팔이 덜덜 떨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누운 채 용변은 봤고 엄마도 그런 일이 처음이니까 멀쩡한 정신에 오죽 기막혔겠어. 딸이 들어오는데 그냥 누워있기도 가시 방석이었는지 겨우 몸을 일으키긴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던지 내가 등 뒤를 받치려고 손을 넣는데 그대로 내 손을 깔고 누워버리시더라. 그리곤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막 우시대. 처음엔 소리 죽여 우시더니, 나중엔 통곡을 해. 속도 상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이 엄마가 생각해도 한심했겠지. 나도 같이 한참을 울었어. 그 씩씩하고 활달하던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됐나 싶고,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탁자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던 소형이 고개를 들었다.

  난 소형의 눈을 맞받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잔을 들어 커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마신 커피가 바로 눈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커피 더 없니?>

  소형의 눈길을 피하며 아직 커피가 남아있는 잔을 들고 황급히 일어났다.

  <왜 그래? 많이 마시지도 못하면서.>

  나는 대답을 못하고 찰랑찰랑 하도록 잔을 채웠다.

  정말 다 먹지도 못할 애꿎은 커피를.

  그리고 몰래 심호흡을 했다.

  눈물과 한숨을 동시에 삼키며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화장실 가서 거울이나 좀 봐라. 네가 입원해야 할 얼굴이다.>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열심히 들었을 뿐인데.

  <편안하게 들어. 당해서 못 당할 일 없다고, 당하고 보니까 별 것도 아니더라 뭐.>

  나는 왜 들어주는 것도 편안한 얼굴로 못 들어주나 싶어 얼굴이 확 달았다. 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대신에 소형의 목소리는 다시 씩씩해졌다.

  <오빠 원망은 원망이고, 일단 급한 게 뒤처리잖아. 어떡하나 엄두가 안 나더니만 해보자하고 마음을 먹고 덤비니까 일머리가 돌아가더라. 고무장갑부터 끼고 엄말 옆으로 굴렸지. 속옷은 벗겨서 비닐에 꽁꽁 묶어 버리고, 양동이에 물 받아놓고 수건 빨아가며 계속 닦았지. 엄마 이리저리 굴려서 시트 빼내고. 한참 하다 보니까 냄새도 익었는지 괜찮아지더라.>

  <너 정말 장하다.>

  <닥치면 너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 건 힘만 되면 할 수 있어.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가 문제지.>

  <어떤 마음?>

  <그래, 어떤 마음...., 엄마는 나 키우면서 그런 일 수백, 수천 번 했을 거잖아.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했을까. 한 번이라도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그런데 나는 겨우 처음 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계속 내가 해야 되나……. 하여튼 부모는 완전히 손해 보는 장사야. 거동 불편해지면 그저 손발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되고.

  내가 닦아주는 내내 엄마는 눈을 안 떠. 못 뜨시는 거지. 미안해서. 우습잖아. 왜 미안해해야 해? 사실은 아주 당연한 거 아냐? 바보같이……. 자식 키워 뭐하니? 나부터 말이야.>

  <오빠는? 연락 없었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도 한 통 못해 보는 건지, 뒤처리 끝날 때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어. 내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처지잖아. 놀구 먹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닌데. 그대로 두면 다음 날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오빠 목소리 들으면 아무래도 내가 화를 낼 것 같아서, 엄마 때문에 집에서는 안 되겠고 쓰레기봉투 사러 간다 하고 나왔지. 퇴근 시간 전이어서 바로 회사로 전화를 했어. 근데 오빠 반응이…….

  정말 야속하더라.

  ‘, 네 새언니가 시간 내서 가본다고 했는데, 안 갔니?’ 였어.

  앞으로 어떡하나, 하루가 길고 머리는 안 돌아가고, 가슴은 뛰는데,

  태연한 목소리더라고.

  나도 이해는 해. 안 보면 잊어버리지. 엄마 모시기 전에 나도 아마 그렇게 살았을 거야. 볼 때는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하지만, 집에 오면 또 잊어버리고 살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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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 2016-01-1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