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방 분식점 가서 국수 먹자.>
수자가 드디어 묵직한 엉덩이를 소파에서 떼며 기지개를 켰다. 생각 없이 앉아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엉덩이 모양으로 눌렸던 소파 표면이 힘들여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숙제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구만.>
나는 바지가 달라붙은 수자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날씨는 텁텁하고 시간도 늦었는데 ‘냉국수’가 딱 맞을 것 같았다.
<미경이 넌 어때? 우리 동네 냉국수 괜찮은데.>
식탁에 손가락으로 맴을 그리며 앉아 있던 미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지.>
소형의 어머니는 상상했던 것보단 괜찮아 보였다.
우리가 갔을 땐 방금 세수를 했다면서 침대에 걸터앉아 계셨다. 골격이 크고 피부가 희며 잘 생긴 소형의 어머니는, 겉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큰 병을 몸에 실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침대 밑 간이침대에 앉아있는 소형이 더 병자 같아 보였다. 화장이 다 지워진 얼굴에 회색 실내복 차림이어서 더 그래 보이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우리를 알아보시고 손짓을 하셨다.
아직도 고운 피부에 부드럽게 퍼머가 된 짧은 머리를 잘 빗어 넘긴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소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잠시 어머니를 가렸다. 언뜻 가려졌다 다시 보이는 소형 어머니가 한 순간 소형처럼 보였다. 여태 소형이 한 번도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딸은 늙으면 엄마를 닮는다더니, 난 잠시 우리의 나이를 곱씹으며 소형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제 꾸미지 않으면 추레할 수도 있는 나이구나.
우리가 그런 나이구나.
마냥 누구의 딸만으로도 예쁜 나이는 아니구나.
그런 처량한 생각이 얼굴에 나타났는가.
내 눈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소형이 필요 이상으로 씩씩하게 우릴 보고 앉으라고 수선을 떨었다. 나는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표정을 고치며 침대로 다가갔다.
<어머니, 좀 괜찮으세요.>
무릎 위에 무겁게 얹혀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야 뭐, 나일롱 환자지. 겉으로 보면 말짱하고.>
내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얼른 돌려지지가 않았다. 얼굴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몸을 움직여 좀 돌아앉고 싶은데도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마치 말하는 마네킹 같았다. 표정이 딱딱했다. 비로소 병이 심각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은 꽤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향했다. 어머니의 동작은 물속이나 우주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느릿했다.
<바쁜 사람들이 늙은이 하나 아프다고 이렇게 찾아들 와? 쓸데없는 수고들을 하는구만.>
<그럼 도로 갈까요? 우리 가고 나서 우시지나 마세요. 맛있는 빵도 도로 가져 갈 거예요.>
수자가 너스레를 떨며 들고 온 빵 봉지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어깨에 멘 가방 끈을 잡은 채 서 있던 미경이 그제야 내 옆쪽으로 오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미경의 너무나 공손한 인사에, 나는 인사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어머니. 빨리 나으셔야지요.>
<아유 얌전하기도 해라. 우째 저리 참한데, 남자들이 다 눈이 삐었지. 왜 결혼을 안 하고.>
<엄마, 쓸데없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슈. 그건 나한테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우.>
소형이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소형이가 어머니의 말을 자르거나 말거나 미경은 변함없는 같은 말투로 대답을 했다.
<글쎄 말이에요 어머니, 저 좋은데 시집 좀 보내주세요.>
미경이는 정말 속도 좋다. 나는 자격지심이라 해도 할 수 없지만, ‘시집’의 ‘시’자도 듣기 싫다. 친지들 중에도 내 앞에서 시집 이야기 꺼냈다가 나의 다정한 미소?에서 제외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데, 물론 난 한 번도 시집가라는 소리가 듣기 좋았던 적은 없었지만. 잊어버리지도 않고 그 소릴 왜 하는지. 사람들은 그게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삼척동자도 진짜 사랑과 인사치레는 구분한다. 그러니 그 말에 내가 콧방귀나 뀔 수밖에. 그건 나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뿐이다. 관심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랑이 아니라 관심 정도만 있어도 상대가 특히 싫어하는 건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사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다는 말이다. 관심이 없으면 차라리 무심할 일이지 누구 좋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하시는지. 설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도 마음을 얻기를 바라는 건 아닐 테고. 아님 내가 진심과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기를 바라시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미워서 일부러 하는 소리 아니겠는가. 미운 놈에게 상처 주는 건 고소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