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해 산다고 해서 미경이 집안의 대소사에서 제외되는 법은 없다.
제외는커녕 일꾼도 그런 상일꾼이 있을까.
일 년에 일곱 번 있는 제사, 그리고 명절에 미경은 전을 부치러 반드시 집에 갔다. 동생들이 결혼을 하고부터는 명절 음식의 규모는 나날이 커졌다. 어머니의 사위 사랑이 대단했고, 미경의 어머니는 사위에 대한 사랑을 주로 음식으로 표현하셨다. 어머니의 한에 차게 음식을 장만하자면 미경의 명절 연휴는 몽땅 부엌에서 끝나야했다.
명절 전날은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밤중에 별장으로 잠시 후퇴했다가 명절날 아침엔 아들 없는 집 아들 노릇까지 겸해 차례를 지내러 갔다. 그 다음 날은 동생들과 제부들이 오는 날이므로 또 빠질 수 없다. 동생들도 제부들도, 혼자 사는 미경을 ‘딸린 식구 없는 홀가분한 존재’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에 미경의 접대를 아주 편안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집안 제사에 결혼한 동생들이 못 올 이유는 많아도, 미경은 절대 못 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자식이 아플 일도 없고, 시댁의 관혼상제도, 남편의 출장이나 불화의 핑계도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건 그건 ‘이기적’ 내지는 ‘인정머리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버린다.
과천 사는, 맞벌이를 하는 첫째 동생은 연년생으로 낳은 조카를 낳자마자 줄줄이 친정에 맡겼다. 얼마 전 큰애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 비로소 과천으로 데리고 갔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조카들을 올려 보내고 미경이 한편으로 좀 서운했지만 사실 얼마나 홀가분해졌는지 모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친정에 맡겼는데 따로 사는 주제에 웃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속 모르는 소리다.
그동안 미경에겐 일요일이 없었다.
일요일마다 조카들을 봐주러 집에 갔다. 토요일부터 불려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토요일 퇴근 시간만 되면 거의 틀림없이 어머니의 구조 요청 전화가 왔다.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서 억지로 시간을 빼지 않으면 반휴일도 찾아먹기 힘들었다. 물론 찾아 먹은 휴식 시간도 그늘 없이 달콤할 수가 없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가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인가. 그걸 잘 알고 있는 그녀에게 단맛이 제대로 느껴질 리가 없다.
선생 노릇도 노동량으로 치면 중노동에 든다는데.
혼자 사는 여자의 선생 노릇을 ‘적당한 놀이’ 정도로나 여기는지.
‘일요일엔 쉬고 싶다’를 독신자가 외치면 사치가 되는지.
엄마의 요청 전화가 없어도 그녀 성품에 자주 갔을 것이 분명했다.
미경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조카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며칠을 못 넘겼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자식 이야기 하고 있는 줄 알 정도로 조카들에게 눈이 멀어 있다. 수자는 미경이 조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에 광채가 난다고, 그런 정열로 연애를 했으면 결혼을 해도 열 두 번은 했겠다고 놀렸다.
문제는 동생들도, 제부들도, 어머니도, 미경이가 생계를 꾸려가는 ‘생활’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기 위해서도 돈은 벌어야 하고, 밥도 해 먹어야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그들이 미경의 ‘생활’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미경은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처럼 바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바쁜 생활의 주 무대는 본가다. 별장은 틈이 주어지는 대로 돌볼 뿐이다. 별장엔 섭섭해하는 사람도, 변명을 대야 할 사람도 없가 때문에.
혼자 사는 자유로운 여자인 미경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차지하기도 어렵다.
한창 조카들이 클 때, 조카들에게 필요한 기저귀며 우유, 하여튼 부피와 무게 나가는 물건들 심부름은 미경이 도맡아 놓고 해야 했기 때문에 평일에도 한두 번 장을 봐줘야 했다. 아무리 조카들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 되면 조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홀가분해 했던 걸 두고, ‘인정머리 없는’걸로만 단정해버리는 건 좀 가혹하지 않는가.
혼자 살아도 세금은 내야하고, 사회생활을 하니까 경조사에 부조 나갈 일도 많다. 돈 드는 일에 빠지지 않고 어른 노릇 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왜 ‘혼자 사는데 돈 쓸 일이 뭐 있냐’며 지각없는 생각을 지각없이 계속 해대는지 모르겠다.
동생들이 돈 벌어 자식 키우는 대신, 미경은 손자들 맡아 키우는 부모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는데도 그들은 친정 부모의 은혜를 입은 거지 미경의 수고는 간 곳도 없었다. 생활비가 많이 들면 어머니는 미경에게는 스스럼없이 요구해도 동생들이나 제부들에게 받는 건 아주 미안해했다. 알게 모르게 친정에 젖어 들어간 돈이 상당한 걸로 우린 짐작만 하고 있다. 사치도,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는 미경이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 외에 저축이 한 푼도 없는 걸로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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