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은 별로 말이 없다.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도록 가족에 대해선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도 묻기 전에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답도 짧고 덤은 없다. 우린 보통 하나만 물어도 그 다음은 줄기에 달려 나오는 감자처럼 계속이지만 미경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성한 미경의 총체는 그런 단편적인 것들을 모으고 그 틈새는 상상력과 추리력으로 메운 것들이다.

  알고 지낸 처음 몇 년 동안은 긴가민가했다.

  친한 것 같다가도 이게 친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닌가 싶다가도 미경의 너무나 스스럼없는 태도에 긴가하기를 여러 번. 그러는 동안 혼기가 찬 주변 동료들이 결혼으로 훨훨 날아갔는데, 이 친구들만 약속한 것처럼 요동이 없었다. 우리에겐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독신을 선포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포기한 자들이란 걸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자세히 알아갈수록 비슷한 성향이 꽤 많았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이렇다 할 연애 경험이 없었다는 것.

  결혼식장에만 갔다 오면 예식장이 무슨 장날도 아니고, 복잡하고 정신없고, 결혼식 싫어서라도 절대 결혼 못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 한 번도 부러워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더 환장하게 들어맞는 점은 맞선보기를 결혼보다 더 싫어했다는 점    연애도 못한 주제에 선보기가 그렇게 끔찍하니 결혼은 달나라 일일 수밖에.

  휴일에 아이들 앞장 세워 유원지 가는 모습을 봐도

  ‘어머 좋겠다’, ‘행복한 모습이다가 아닌,

  ‘저 남자도 피곤하겠다.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서로 확인하고는 너도 그랬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지애를 느꼈다.

  미경은 말은 없지만 우리가 그런 화제로 떠들면 소리 없이 웃는 걸로 동의를 표했다. 한마디로 생각의 방향이 같다는 것.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비록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표현은 않지만 확고부동한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된 것 같았다.

 

  그런 미경이 수자의 화살을 맞은 후 자세를 고쳐 앉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평소대로라면 왜 갑자기 나보고 그래.’ 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긴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고 더 이상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수자가 뽑은 감자 덩굴에 두 번째의 감자가 뽑혀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서……. 근데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미경의 이 한 마디에 셋은 마치 좌우향우 명령을 받은 군인처럼 일시에 그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동고동락의 긴 세월동안 자진 사례란 것이 없었던 마마님 아니신가. 미경의 그 다음 말은 나올 듯 하면서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음식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굶주린 아이들처럼 미경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성은 쉽게 무너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초조한 몇 초가 지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재촉하지는 않았다. 겨우 물가로 밀려오려던 공이 괜한 물장구에 밀려 도로 멀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참을성이 마침내 효과를 발휘했다.

 

  <지난 일요일이 아빠 생일이었거든.>

  미경은 아직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고 있다.

  젖 냄새가 날 것 같은 작고 여린 입술에서 뱉어지는 아빠라는 말 외엔 징그럽다고 여기는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흔을 바라보는 미경의 아빠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유달리 친하게, 보통은 어머니에게 받는 느낌과 보살핌을 아버지로부터 받은 여자애들이 대개 아빠라는 호칭을 나이 들도록 달고 사는 것 같았다. 맏딸로 태어나 유독 아빠의 기대와 사랑을 많이 받았다던 미경의 입에서 나오는 아빠소리에는 여섯 살짜리 소녀의 깜찍함과 귀여움이 아직도 배어있었다.

  <그 날이 사실 생일은 아닌데, 평일에는 모이기가 힘드니까 내가 그 날 모이자고 했어.>

  미경은 얼음이 다 녹은 멀건 커피를 한 모금 마셨고, 수자는 덩달아 냉수를 들이켰다.

  <과천 사는 첫째 동생만 못 오고, 나머진 제부와 애들 다 데리고 왔더라. 저녁 먹고 엄마 아빠는 조카들 데리고 거실에서 놀고, 나는 동생들하고 제부들이랑 차나 한 잔 하자며 안방에 있었어.>

  미경의 말은 자꾸 끊겼다.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드디어 수자가 끼어들었다.

  <, 궁금해 돌아가시겠다. 좀 빨리빨리 진행해라.>

  수자 옆에 앉았던 소형이 수자의 허벅지를 찔렀다. 수자가 입을 벌려 아, 소리를 내려다 소형을 쳐다보더니 도로 입을 다물었다. 미경은 아무 소리도 들은 바 없다는 듯 같은 목소리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엄마 아빠 이야기도 나오고, 노인 문제도 나오고........ 무슨 얘기 끝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딸만 둔 부모는 누가 모셔야 하나 그런 이야기 중이었지 싶어. 막내 제부가 이러는 거야. ‘장인 장모님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나중에 더 나이 드시면 처형하고 사시면 되잖아요. 처형도 혼자니까 외롭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들 생각하기가 쉽지.>

  소형이 눈길을 탁자에 떨어뜨리며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는 건 알겠는데, 당시엔 참 기분 묘하더라. 마치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 같이..... 내가 그런 생각은 꿈에도 안하고 있었나봐. 나 이젠 진짜 같이 생활하긴 싫거든. 지금도 같이 살진 않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많이 매이는 편이잖아.>

  <알고는 있네.>

  이건 수자의 대꾸.

  <비록 늦더라도 혼자만의 집으로 가는 자유라는 게 있거든. 물론 가면 또 나름 할 일도 많지만 그건 좀 미뤄두면 되고. 내가 주인이다, 내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숨통이 트이지. 이젠 아무리 밤중이라도 내 집에 와서 자야 편해.

  살아보니까, 갈수록 엄마 아빠 집에 손님이 많아져. 처음엔 동생들 결혼만 하면 일이 줄어드나 했거든. 근데 애 낳으러 오지, 산바라지 해야 되지, 아예 조카들을 맡기기도 하고. 걔들 보러 오는 손님들도 있어. 산바라지 하는 동안엔 제부들 저녁마다 오고. 저녁 먹고 갈 때도 많고. 늦게까지 일이 끝나질 않아. 엄마한테 있으면. 집이라도 따로 있어서 밤엔 돌아오니까 그렇지, 아님 내가 미쳤을 거야. 고달픈 건 둘째 치고 뭐랄까……. 그걸 사생활이라고 해야 되나?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고 해야 되나. 알면 안 될 특별한 사생활이랄 것도 없지만.......

  하여튼 계속 식구들 틈에 그렇게 있으면 내가 없는 것 같애. 가끔 내가 뭘 하고 있나 싶고. 어쨌든 거기엔 내 물품이 없잖아. 집에선 잠깐 틈나면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일기장도 들추고 할 수 있는데. 하다못해 친구들에게 전화할 일도 있고. 집에서도 전화는 할 수 있지만 식구들 틈에선 왠지 어수선해서 그럴 마음도 안 나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일은 끝이 없구나.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정말 몰랐거든. 세월이 지나면 내 역할이 줄어들 줄 알았지. 근데 아니야. 명절엔 손님이 더 많아져. 사위도 손님이고, 오는 사람들은 다 손님이지. 명절날 집에 있어보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돼. 지금도 명절 손님은 내 차진데, 아예 생활을 같이 하라니. 24시간 어떻게 벌을 서고 있어?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야. 일하기 싫은 거 하고는 달라. 난 가만히 앉아있는 것 보단 움직이는 걸 더 좋아하니까. 너희들도 알잖아. 나한테 제일 심한 고문이 가만히 누워지내라 하는 거라고.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집 떠나기 전에 그런 생각 한 적 있거든.

  일일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싶지 않은 때가 오잖아. 빨래하는 일 까지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그런 시기.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바로 그런 시기가 온때였지. 그리고 그 때는 마땅히 부모 집을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실행에 옮겼고.

  물론 지금 난 너무 집에 매이다 보니까 그저 밤에만 어른이 되는 거지만...... 그래도 같이 살면 그것마저도 없어지잖아.

  부모하고 같이 지내면 내 의지는 쓸모가 없어. 하루 종일 명령만 듣다 보면 무기력해지는 기분이라고. 친구 만나고 싶은 날, 엄마는 동생들 불러 저녁 먹는 계획 세워놓고, 여행 계획 세워놓았어도 조카들 와 있으면 빠져 나오기 미안하고. 엄만 물론 당신이 즐거우니까 나도 즐거울 거라 생각하겠지. 식구들이니까 나도 싫은 건 아니지. 하지만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

  하여튼 아무리 나이 먹어도 싱글부부가족의 계획에 언제든 끼워 넣을 수 있는 스페어타이어쯤으로 취급되는 기분이 들더라구.>

 

  스페어타이어라.

  오직 쓰는 사람에게만 편리한 존재. 조용히 달려 있다가 필요할 때 아무 소리 없이 몸을 던지니까. 문제가 없을 땐 한 번도 생각나지 않는 존재. 아무런 염려도 사랑도 필요 없는 존재. 미경이가 그런 존재라고? 아니 우리가? 너무 비참한 비유 아닌가?

  <그 때 내가 조용히 넘어가면 다들 그렇게 믿어버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려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어.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 문제만은 그럴 수 없었지. 은근히 부아도 치밀고. 그래서 내가 정색을 하고 한 소리 했어.>

  나는 미경의 다소 힘이 들어간 한 소리 했어.’라는 말을 내심 비웃었다.

  뭘 대단한 소릴 했을라고.

  지금까지 질질 끌려 다니며 한 걸 보면 모르냐?

  할 수 있으면 해주고 말자! 좋은게 좋다! 이것이 삶의 구호 아니었냐고.

  그렇게 소리 없이 외치며 한 소리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 소리는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대단한 소리였다.

  상상력과 추리력으로 메꾼 미경의 총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태까지 미경의 화난 얼굴은커녕 고조된 목소리 한 번 들은 적이 없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줄 알았던 미경의 마음에도 드러내놓지 않은, 혼자 삭였던 생각들이 엄청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6-02-0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제는 소설도 재미를 붙이려고 해요.
연재소설, 기대하고 죽~ 읽어보겠습니다. 건필하세요.

한여름소나기 2016-02-10 17: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