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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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고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것이 개인의 선택에 의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가 만든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우리가 휘둘리고 있고, 우리 몸을 고치고 바꿔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건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름다움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문화와 인종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랐었다. 풍만한 몸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거나, 목을 늘리는게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급속한 세계화와 통일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만을 '아름다움'이라고 인식시켰다. 예전엔 흉하고 불쌍하게만 여겨졌던 비쩍 마른 몸이 이제는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몸이 되었다. 그러자 곧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못하는 패배자요, 날씬한 몸매를 지닌 사람은 자기를 잘 가꾸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전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리게 됐다. 대한민국의 소녀도, 유럽과 아프리카의 소녀도 동경하고 닮고 싶은 몸이 한가지로 통일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편하게 누워있는 자체가 마치 내 몸에 죄를 짓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회에서 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한다는건 정말 어렵다. 이쯤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몸을 만들기 위해 성형수술과 각종 미용상품, 다이어트 제품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과연 개인의 선택으로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여성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몸을 바꿔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내 몸의 결함은 바로 잡을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가 심어준 이미지일지 모른다. 거기에 상업적인 이해관계가 접목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회는 개인에게 많은 책임을 던져주며 자신의 몸에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낙오자라며 비난한다.  

 

내 선택이 아니라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불쾌감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자가 아니라 주체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을 파헤쳐가면서 저자의 말에 타당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이어트 회사들이 95%라는 높은 재발률에 의지해 고도 성장하고, 화장품 광고속 모델은 점점 더 어려지며 노화는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주입시켜 매출을 올리고, 전쟁 부상자들을 위해 발전한 성형이 이제는 미용성형으로 번창하며 고속 성장을 하는 걸 보면서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사랑받아야 할게 아니라 고치고 바꾸고 변형시켜야 할 문제투성이라 여기게 됐다. 이렇게 몸을 외적으로만 판단하는 환경 속에서 만족보다는 실망이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맛볼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몸에 대한 문제를 바로 자기 자신이라 여기며, 내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예인들의 성형 고백이 '솔직함'으로 보여지는 현실 속에서, 살빼는 과정이 개그의 소재가 되는 걸 보면서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만 쫒는 이 기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자신을 꾸미는게 나쁜게 아니라 선택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않고 외모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 현상이 우려 된다. 거식증과 폭식증에 걸리거나 자신의 몸을 절단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는 대신,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면밀하게 조사하고 새로운 인식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저항하고 건강한 몸을 되찾는 것이 우리의 몸을 제대로 보고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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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론다 번 지음, 김우열 옮김 / 살림Biz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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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간절한 믿음이 있다면 원하는 걸 얻을수 있다는 시크릿의 비밀은 '오프라 윈프리 쇼'의 영향 때문인지 전세계적으로 흥행을 올렸고,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랫동안 있었다. 일명 '끌어당김의 법칙'을 소개하는데 우리가 생각한 것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논리였다.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그들로부터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긍정의 힘 이라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가, 행복해지고 싶은가,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은가, 건강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모든것을 이루어줄 비밀을 실천해 봐라. 그 비밀이란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당신의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당신이 끌어당기는 것을 일컫는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든 바로 그것이 나에게로 끌여오게 된다.

 

이 책과 비슷한 걸로 이지성씨의 '꿈꾸는 다락방'이 있다. 그 또한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꿈이 결국 내 삶을 만들어간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고보면 긍정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력한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공감됐던 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게 있으면 평소 생활을 하다가도 그것만 주로 눈에 들어온다는 거였다. 끌어당김의 법칙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내가 간절히 원한다면 그 기운이 나에게로 모아지고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안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게 긍정의 힘 이라고 한정짓기에는 무리수가 있어 보이지만, 긍정의 힘이 주는 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보다야 훨씬 나를 좋게 만들어 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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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 박원순의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박원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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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민도 아닌데 서울시장 투표 결과를 볼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상식이 통하는 서울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는데, 박원순 서울 시장이 그 일을 잘 해내주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행정을 지켜볼 것이다. 이 책은 박원순 시장의 살아온 흔적을 통해 그의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청년들에게 전해주는 직업의 의미와 방향등을 알수 있게 해준다.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 선택보단 당장의 생활을 위해 직업을 택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과 준비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제시해 주는데, 그가 청춘들에게 해주는 조언은 면접을 보러 가지 말고 직접 창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수많은 종류의 일이 있는데 그 길을 개척하라는 말이었다. 비록 처음은 힘들고 두려울 테지만, 아무도 안 간 곳이기 때문에 자기 것으로 만들 확률이 크다는 점을 든다. 박원순씨자 전해주는 직업의 세계는 이처럼 안정되고 남들이 다 간 곳이 아니라, 그 틈새 시장을 노리고 돌연변이 직업이라 부를만큼 생소한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더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큰데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 낼수 있다는 면에서 다른 직업들과 다르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직업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나 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바꿀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세상을 바꾼다 라. 나의 직업이 이런 뜻깊은 일을 만들어낸다면 보람도 더 커지게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토익이나 학력 같은 스펙 대신 오로지 꿈과 열정만으로 해 나갈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꼭 청춘이 아니더라도 도전해 볼만한 직업들이다. 실패하면 어떻고, 돈 좀 덜 벌면 어떠랴. 세상을 바꾸는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벌수 있는데 말이다. 일을 생계수단만이라 생각하거나,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면 남는 건 스트레스와 공허함 뿐이다. 그걸 채워주기 위해 쇼핑을 하거나 다른 오락거리를 찾지만 만약 내가 하는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면 일하는 시간이 더 이상 지옥같진 않을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밍기적 거리지도 않을 테고, 사라진 열정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가슴이 뛰게 하는 일을 찾는다면, 나도 세상도 바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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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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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상점이 겨우겨우 연명하고, 역사 깊은 헌책방은 거의 찾아볼수 없는 우리나라 사정을 고려해 볼때 유럽에 책마을 이라는게 있고 그 수도 꽤 많다는 것에 일단 놀라게 됐다. 유럽에서도 출간된 바 없는 최초의 책마을 순례기 라는데 그래서 더 뜻깊은 책이다. 저자는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영국과 아일랜드 등 유럽의 24곳 책마을을 탐방했는데 각자 특징이 뚜렷하면서도 책을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이 있어, 좀 어려운 글 이었지만 정독하면서 읽게 됐다.

 

그런데 책마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단순히 책이 좋아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그 이면엔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와 책시장의 붕괴와 같은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는데, 농촌을 살리고 거대출판사와 자본에 사라져가는 책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긴 것이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고, 농촌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들은 비싼 임대료와 유통비 등 도심에선 버티기가 힘들었고 그 대안으로 농촌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이 맞물리면서 책마을을 탄생시켰는데 성공적인 출발을 보이면서 그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됐다. 출판인들과 작가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책 축제도 열며 활기를 불어넣으니 농촌도 살고 책도 새로운 주인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도 도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축제를 기획하고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는데, 책마을처럼 독특한 곳이 조성되면 좋을 것 같다. 위의 사진처럼 마을의 입구에 어린왕자 책을 크게 만들어 놓아두는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펼친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책마을을 탐방하며 다양한 책도 만나고 그 곳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책과 유통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런 소소한 재미 말고도 뜻밖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다국적 인터넷 서점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던,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 조선을 탐사하며 기록했던《조선에서》를 찾게 되는데 이런 의외의 수확은 책탐방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발견하게 된다거나, 보고싶었던 책을 헐값에 구입하다 보면 자꾸만 발품을 팔고 싶어진다. 어디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질테니 말이다.

 

 

위 사진은 전세계 책마을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라는데 여기에 대한민국이 끼게 되는 날이 올까? 이 이정표가 있는 로렌의 퐁트누아 라 주트는 농사짓는 사람, 책 파는 사람, 종이 만드는 사람이 어울리는 곳으로 농촌생활을 보존하면서 책마을을 성공적으로 만든 곳이다. 본래 이 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배려하면서도 새로운 문화 공간과 마을의 이미지를 재탄생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만약 책마을로서의 기능만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짰다면 주민들과 불화도 생겼을 테고, 잘 정착하지 못했을 것 같다. 너무 무리하게 책마을 착공을 서두르지도 않고 조화를 이루는 그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농촌에 책마을을 조성할 때는 농민이 경작생활을 그대로 지속하면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서점을 정착시키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다. 전통적 생활 방식을 보존하면서 서점과의 공존을 꾀하는 것이 상당히 감동적 이었는데, 만약 우리나라 같았다면 외부에서 숙박업소같은걸 짓고 관광객 유치를 하기 위한 투자자들이 몰리며 농민의 일터를 망가뜨리고 부작용만 낳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나라를 너무 헐뜯는것 같기도 하지만, 주민을 우선시하고 숙박업소 같은 투자를 자제하며 보호하려고 한 행정방법이 솔직히 감동적 이었다. 주민을 우선시 해야 하는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게 이권 앞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게 사실이니 말이다. 

 

 

작고 예쁜 서점들이 참 많았던 것도 책마을을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안에 빼곡히 들어있는 책들을 보면서 요즘 나오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허술한 내용을 포장하는 책들을 떠올려 본다. 양장 이다 해서 비싼 책값을 매기고(무거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가 불가능한), 책의 내용보다 디자인에 더 초점을 두고, 잘못된 과잉 홍보로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을 둘러보니 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책은 소유하는게 아니라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말이다. 흥정하는 재미와 여러권 구입할때 한권주는 인심이 있는 곳. 책방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가도 아무 말 안 하는 곳. 옛날 책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는 곳. 그런 서점을 가고 싶다. 유럽의 책마을에선 그런 서점을 많이 만나 볼수 있을것 같다.

 

저자는 책마을을 순방하면서 만난 수많은 책들을 보며 열악하고 한심한 우리나라의 책시장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을 한다. 200년 전의 영어 소설을 읽으면서는 영어가 거의 변한게 없어 외국인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말은 100년, 50년전의 소설도 술술 읽히지 않을만큼 어지럽게 변화한 것에 대한 개탄도 있고 정작 번역되어야 할 책들이 소외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전한다. 책의 내용에 가치를 두기 보단,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진짜 좋은 책을 만나기 힘든 국내 시장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에 책마을이 생긴다해도 오래가지 못할것 같단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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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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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가지가 바로 올레 길 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즐길 수 있고, 걷기 열풍을 만들어낸 올레길은 제주도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최근 제주도가 7대 자연경관으로 뽑혔다며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서, 그런 뻘짓에 아까운 세금을 쓰고 국민들을 선동하는 걸 보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 소식이 9시 톱뉴스로 나오며 드디어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는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숨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제주도는 그런걸 안해도 충분히 아름답고 예쁜 곳이라는 걸 왜 모를까 싶었다. 그것도 공신력 조차 없고 듣도 보도 못한 단체인데다 선정 과정도 껄끄러운 점이 많은데 말이다. 차라리 홍보할 돈으로 최근에 망가지고 있다는 올레길 보수나 해주고, 공공시설을 확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제주도를 사랑하고 인정받는 길이다.

 

그렇게 정부가 나서서 하는 헛짓을 보다가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씨가 이룬 업적을 보니 눈이 부시고, 이게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떻게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실천이 이런 결과를 얻어냈는지 신통방통한데 무엇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면서 올레길을 하나씩 만드는 그 자세가 아름다웠다. 사명감과 제주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대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런 서명숙씨의 계획을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올레길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길을 만든다고 하면 기계장비로 땅을 파고 고르고 콘크리트로 내서 빨리 만드는 걸 떠올리지만, 서명숙씨는 오로지 두 발로 디딜수 있는 길을 원했다. 시멘트 길이 아닌 흙을 밟을수 있는 길, 풍경과 잘 어울리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바로 그 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했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일이니 난관도 많고,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의 동의를 받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길이 아닌 곳을 개척하려니 튼튼한 두 다리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나 서명숙씨와 동료들이 흘린 땀은 배반하지 않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의 합류를 이끌어내고 마음을 움직이며 멋진 올레길이 하나 둘 탄생하게 됐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고 오로지 제주도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서명숙씨.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올레길은 전국에 올레꾼을 양산해 냈고, 제주도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줬다.올레길은 도시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놀멍 쉬멍 걸으멍, 주위를 둘러보고 느끼고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 길을 걸어가는 순간만이라도 답답하고 피곤한 일상을 잊게 해준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왜 중간에 멈춰서 쉬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는 그 곳. 이런 올레길을 사랑하게 된 올레꾼들은 제주도 뿐 아니라 자연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모두가 한 사람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됐다는 걸 생각한다면, 또 다른 곳에서도 올레길과 같은 일상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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