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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가지가 바로 올레 길 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즐길 수 있고, 걷기 열풍을 만들어낸 올레길은 제주도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최근 제주도가 7대 자연경관으로 뽑혔다며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서, 그런 뻘짓에 아까운 세금을 쓰고 국민들을 선동하는 걸 보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 소식이 9시 톱뉴스로 나오며 드디어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는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숨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제주도는 그런걸 안해도 충분히 아름답고 예쁜 곳이라는 걸 왜 모를까 싶었다. 그것도 공신력 조차 없고 듣도 보도 못한 단체인데다 선정 과정도 껄끄러운 점이 많은데 말이다. 차라리 홍보할 돈으로 최근에 망가지고 있다는 올레길 보수나 해주고, 공공시설을 확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제주도를 사랑하고 인정받는 길이다.
그렇게 정부가 나서서 하는 헛짓을 보다가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씨가 이룬 업적을 보니 눈이 부시고, 이게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떻게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실천이 이런 결과를 얻어냈는지 신통방통한데 무엇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면서 올레길을 하나씩 만드는 그 자세가 아름다웠다. 사명감과 제주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대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런 서명숙씨의 계획을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올레길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길을 만든다고 하면 기계장비로 땅을 파고 고르고 콘크리트로 내서 빨리 만드는 걸 떠올리지만, 서명숙씨는 오로지 두 발로 디딜수 있는 길을 원했다. 시멘트 길이 아닌 흙을 밟을수 있는 길, 풍경과 잘 어울리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바로 그 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했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일이니 난관도 많고,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의 동의를 받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길이 아닌 곳을 개척하려니 튼튼한 두 다리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나 서명숙씨와 동료들이 흘린 땀은 배반하지 않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의 합류를 이끌어내고 마음을 움직이며 멋진 올레길이 하나 둘 탄생하게 됐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고 오로지 제주도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서명숙씨.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올레길은 전국에 올레꾼을 양산해 냈고, 제주도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줬다.올레길은 도시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놀멍 쉬멍 걸으멍, 주위를 둘러보고 느끼고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 길을 걸어가는 순간만이라도 답답하고 피곤한 일상을 잊게 해준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왜 중간에 멈춰서 쉬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는 그 곳. 이런 올레길을 사랑하게 된 올레꾼들은 제주도 뿐 아니라 자연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모두가 한 사람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됐다는 걸 생각한다면, 또 다른 곳에서도 올레길과 같은 일상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