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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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리석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명분없는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그 자신은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그만큼 양국의 피해는 커져만 가고 죄없는 사람들만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건 과거의 잘못된 점을 교훈삼아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 그들에겐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이나 현재의 이라크 전쟁이나 어쩜 이리도 닮은 점이 많은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십자군 정쟁에 대해선 대략적인 이야기만 알았지 자세한건 파고들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그림이 곁들여졌기 때문인지 술술 읽혔고, 자칫 무거워질수 있는 부분은 조금 썰렁한(?) 유머로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그래서 재밌게 읽을수 있었는데 현재의 국제정세와 비교해주기 때문에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것도 같다. 그저 옛날 옛적에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걸 깨닫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국민을 선동하는 언론, 명분없는 전쟁, 약탈과 참혹한 전쟁의 피해상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현재 세계의 공공의 적은 아마도 이슬람교 가 아닐까 싶다. 특히 9.11 테러로 과격한 이미지가 부각되고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는데 알고보면 그들의 종교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칼이냐, 코란이냐" 라는 말이 대표적인 이미지인데 이것 또한 오해로, 아랍인들은 처음엔 다른 민족을 개종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로마를 비롯한 국가들이 전쟁에 승리하면 끔찍한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그에 비하면 무슬림들은 종교를 강제로 바꾸지도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으니 오히려 하층민들은 이들을 적대감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단다. 그러고보면 한번 만들어진 편견은 천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또 무슬림과 기독교도가 싸우게 된 것도 '신의 평화'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것으로, 전쟁을 즐기는 기사들에게 밖으로 나가 이교도들과 싸우는건 경건한 일이니 자국내에서 농민들을 괴롭히지 말고 이슬람교와 싸워라 라는게 시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사이가 좋았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소위 높으신 분들의 전략으로 싸우게 됐고, 결국 지금까지 앙숙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니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은자 피에르 라는 사람이 나타나 이슬람의 압제에 시달리는 예루살렘 주민들을 해방시키자는 전쟁을 할 것을 주장했고, 교황의 은밀한 계획아래 십자군 원정대가 발촉하게 된다. 이 전쟁에 참여하면 모든 죄가 사면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 이들로 인해 벌어지게 된다. 예루살렘이 어딘지도 모른채 무작정 떠났다고 하니 이들의 무지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반증한다. 그러니 '예루살렘을 구하자'라는 초기의 목적도 잊은 채 약탈과 살인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이들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1천년에 걸친 유대인 탄압 역사의 시작이었고 서유럽의 반유대주의의 효시였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한번 폭력의 맛에 길들인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고 이들이 가는 곳마다 시체들이 늘어나게 됐다. 그에 대한 댓가로 그들 또한 반격을 받게 되고 많은 피해를 입게 됐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다시 칼을 내미는 행태를 보고있자니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그림과 글로만 읽어도 끔찍한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다른 문화를 탄압하는 일이 마치 신의 계시라 믿었던 무지한 사람들이 벌인 잔혹한 전쟁. 이런 끔찍한 전쟁이 다른 형태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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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와 린덴 언제나 함께 - 2009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고테마리 루이 글, 기타미 요코 그림, 김난주 옮김 / 한림출판사 / 2011년 2월
절판


루와 린덴은 서로에게 하나뿐인 가족이예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숲에 놀러가자는 고양이 린덴의 말에 루 는 세계 일주 여행 준비를 해야해서 안된다고 해요. 세계 일주가 다른 나라의 이름이라고 생각한 린덴은 들떠서 신난 린덴의 짐 싸기를 도와줘요. 비가 올지 모르니 파란 우산을 챙겨 넣고 분홍색 잠옷과 슬리퍼, 베개까지 꼼꼼하게 여행 가방을 싸요.

혼자 남겨진 린덴은 루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배웅했어요. 이제 큰 집에 린덴 혼자만 남겨졌으니 참 쓸쓸하고 외롭겠죠?

그런데 린덴은 숲에 동물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도 외롭지 않아 해요. 루가 부엉이가 새겨진 건축물을 보고 있을 때, 린덴은 숲 지킴이 부엉이를 만나서 놀구요. 루가 미술관에서 다람쥐 조각상을 볼 때, 린덴은 바위 놀이터에서 다람쥐 삼 형제와 '나 잡아 봐라'놀이를 해요. 그렇게 놀다보면 하루 해가 금방 저물어요.

루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신기한 볼거리를 즐기고 있네요. 장난감 가게엔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물건들이 가득한데 루가 보고있는건 줄에 매달린 나비,생쥐 장난감 이네요. 이걸 사서 린덴과 함께 놀면 정말 재미있겠죠?

그 시각 린덴은 배추흰나비와 놀고 있어요. 날개만 있으면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다는 말에 린덴은 흥미를 보여요. 날개가 있으면 세계 일주도 할수 있을테고 그러면 루가 있는 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배추흰나비가 참 부럽네요.

바쁜 하루가 지나가고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예요. 이를 닦고 있는 루가 보이는데 어머나! 방바닥과 침대 위에 있는 나비,생쥐 장난감이 눈에 들어오네요. 이건 장난감 가게에서 본 물건인데 린덴을 위해서 샀나봐요. 린덴과 떨어져 있어도 항상 생각하는 루 네요.

캄캄한 밤, 린덴도 늘 하던 대로 이를 닦고, 루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멀리에서 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린덴도 잘 자. 재미난 꿈 꾸고."

다음 날엔 린덴도 루 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요.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곰 아저씨가 나무 열매를 줬는데 신기한 나무 열매를 보물처럼 간직하는 루 를 위해 받기로 했어요. 린덴은 나무 열매를 먹지 않거든요. 그래도 이걸 받고 기뻐할 루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 때 비가 왔어요. 루는 파란 우산을 얼른 꺼내 펼쳤는데 갑자기 린덴 생각이 났어요. 내 꼬리랑 똑같이 생겼다면서 파란 우산을 가지고 가라고 한건 린덴이었거든요.

동물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린덴도 루가 생각났어요. 루 라면 자신을 금방 찾아낼수 있을텐데 하면서 말이죠. 며칠 떨어져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둘의 마음엔 서로의 생각 뿐 이었어요.

드디어 여행이 끝나고 루와 린덴은 만나게 되었어요. 가방을 얼른 내려놓고 모자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가는 루의 모습에서, 하얀 꼬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빨리 뛰어나가는 린덴의 모습에서 그리움이 묻어나오네요. 함께 있을 땐 잘 느끼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루와 린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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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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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온 그날, 모든 것이 송두리째 변했다. 폭설로 휴교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외출을 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행운처럼 얻어진 하루동안의 휴가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몰랐다. 이해심많고 쿨한 부모님과 장난꾸러기 귀여운 남동생 테디와 함께한 외출길에서 미아는 음악을 들으며 여느때처럼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장난과 웃음이 끊이질 않고 평화로웠던 그 순간, 교통사고는 모든 걸 앗아가 버렸다. 사고 후 정신을 차린 미아는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하지만 소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끔찍한 모습들 뿐이었다. 부서진 자동차와 부모님이라 믿기 힘든 시신, 그리고 그 곁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까지. 내가 죽은걸까? 그렇다면 부모님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거지? 이 모든게 꿈은 아닐까?  

곧 이어 도착한 구급차와 헬기를 이용해 자신의 몸이 병원으로 가 수술을 하는걸 지켜보며 미아는 혼란스러워 한다. 깨어나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이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고 지극히 현실이었다. 테디가 다른 병원에 간 걸 알고있지만 죽은 부모님은 미아 곁에 없었다. 펑크족 이었지만 이제는 나비넥타이를 맨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된 아빠와 고민을 털어놓을수 있는 친구이자 터프한 성격의 엄마를 더 이상 볼수없다는 사실이 믿을수 없었고 무척이나 괴로웠다. 난 아직 열 일곱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게다가 힘겹게 사투를 벌이던 테디마저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버티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다. 이젠 사랑하는 가족을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데 내가 깨어나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미아에겐 할머니와 할아버지, 단짝인 킴과 남자친구 애덤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을 찾은 이들을 보면서 미아는 그들과 함께했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린다. 밴드 슈팅스타의 애덤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된게 당황스러웠지만 그 마음이 진심인걸 알게 된 일, 첼리스트 요요마의 공연을 갔던 첫 데이트와 첫 키스, 서툴지만 충실했던 둘의 사랑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많은 팬과 친구를 거느리고 록을 하는 애덤과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첼로를 연주하는 미아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지만 장르를 뛰어넘어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그들을 이어주었다. 그런데 미아가 줄리아드 입학 오디션을 보고 합격이 따 논 당상이었기에 둘의 사이는 위태롭게 됐다. 미아에겐 결코 포기할수 없는 학교였지만 뉴욕에 위치했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불가피 했고, 이것이 둘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소리없는 다툼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다툼은 미아의 사고에 비하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 미아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위치에 섰고, 애덤은 그녀가 깨어나기를 그저 기도하는 수밖엔 없었다. 뉴욕이라는 거리차이는 영원한 이별과 비교하면 충분히 감수할수 있는 거였다. 

열 일곱살 소녀가 선택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상황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젠 아빠의 파이프 담배 냄새도 더는 맡지 못하고, 엄마와 설거지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수도 없다. 그리고 여덞살이 된 테디에게 《해리포터》시리즈를 읽어줄수도 없다. 가족도 없이 혼자인데 깨어나야 하는걸까. 이런 미아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할아버지는 " 괜찮아. 네가 떠나고 싶다고 해도. 다들 네가 남아주길 바라지만. 나는 살면서 이보다 더 간절하게 원한 것은 없었단다. 할아버지는 네가 남아주면 좋겠구나. 하지만 이건 내 바람이고. 네가 다른 걸 바란다 해도 난 이해할 거란다. 네가 떠나고 싶다고 해도, 이해한다고 그냥 말하고 싶었다. 네가 꼭 우릴 떠나야 한다면, 괜찮아. 이제 그만 싸우고 싶다 해도 괜찮아." 라고 조용히 말한다.  

할아버지의 이 말은 미아로 하여금 처음으로 뭔가 응어리진 것이 풀리는 느낌과 처음으로 숨을 쉬게 해주었다. 방금 내게 해준 허락은, 선물처럼 느껴졌다는 미아의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멋진 부모님과의 따뜻한 추억을 되새길 땐 그녀가 부모님을 따라 간다고 해도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네 곁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로는 부모님과 테디를 잃은 상실을 채워줄순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단짝 친구 킴의 흐느낌과 남아주기만 하라며 우는 애덤을 보면서 미아는 처음으로 가족이 없이 사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게 된다. 분명 괴로운 일과 힘든 순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가족처럼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애덤과 킴, 할머니 할아버지와 수많은 이들이 떠나버린 부모님과 테디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따스한 손의 온기를 전해주는 애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며,네가 남아주기만 한다면 다른건 상관없다는 눈물섞인 간절한 고백에 미아는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눈을 뜬다. 힘겹게 내린 미아의 선택이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거라 믿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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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마술 연필 웅진 세계그림책 136
앤서니 브라운.꼬마 작가들 지음, 서애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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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랑을 받고있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가 이번엔 아이들의 서툴지만 친근한 그림과 만나 작업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꼬마곰은 포동포동한 모습이 무척 귀여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거나 기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마곰에겐 무엇이든 그려낼수 있는 마술 연필이 있기 때문이다. 사나운 늑대가 나타나도 마술연필로 쓱싹 그리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무서운 뱀이 기어와도 마술연필로 스카이콩콩을 그려 무사히 길을 갈수 있다. 또 배고픈 사자가 으르렁 거리면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그려 쫒아낸다.

그렇게 숲을 걸어가다 호수에 살고있는 고래와 만나게 된다. 아이들이 그린 고래는 무지개빛으로 참 예쁘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꼬마곰은 얼른 수영복을 그려서 입곤 호수를 무사히 건너간다. 그러다 외톨이 신세라 슬픈 거인을 만나게 되는데 꼬마곰은 거인의 키와 비슷한 사과나무를 그려주었다. 그러자 거인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벌 때문에 꿀을 먹지 못하자 얼른 꽃 몇송이를 그려 벌을 유인하고 그 사이 꿀을 냠냠 맛있게 먹는다. 여행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북극곰 가족을 만나는데,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용을 그려 등에 올라 탄후 북극에 가 구멍난 하늘에 반창고를 그려넣는다. 이제 북극곰 가족은 이사를 가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살수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판다가 사람들 때문에 동물 친구들이 사라진다고 하자 꼬마곰은 살곳을 잃은 동물을을 그리기 시작한다.

많은 동물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꼬마곰. 꼬마곰이 가진 마술연필은 무엇이든 그려낼수 있지만 한번도 나쁘게 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에만 썼기 때문에 꼬마곰은 심성이 착한것 같다. 아마 어른 곰이었다면 다른걸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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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그림 -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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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하기도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트롱프뢰유는 '눈 속임'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 인물이나 사물인줄 알고 깜짝 놀라게 하는 그림을 일컫는다. 미술 자체가 실제를 반영하지만 그 수단이 속임수 일수밖에 없는데, 트롱프뢰유는 미술의 이런 측면을 극대화 했다고 볼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인양 깜빡 속아넘어 가게 만들려면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기대를 갖고 보게 됐는데,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거나 속아넘어가지 않을 법한 그림들이 많았다. 유명한 트롱프뢰유 라도 관객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고,대부분은 실제인지 그림인지 긴가민가 하게 만들다 몇초후에 그림임을 알아차리게 하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그림임을 확신하지만,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어느 부분이 그림이고 실제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재미를 주기 때문에 완벽하진 않아도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법칙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관객이 잘 아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진짜를 알고 있어야 진짜인듯한 그림에 속아넘어가니까 말이다. 그리고 묘사가 용이하고, 묘사 했을 때 그럴 듯하게 보일법한 것을 그리는데 살아있는 걸 진짜처럼 그리는건 어렵기 때문에 주로 정물화가 채택됐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죽은 것과 산것을 한 화면에 담은 사냥물 그림이 그려졌고, 나중엔 '매달린 사냥물'이 많이 나오게 됐다.  

 

  

왼쪽의 그림은 장 바티스트 우드리의 《곤충이 있는 정물》인데, 죽은 새와 나비는 그려진 가짜임이 분명하지만 그림 속에선 어느게 산것이고 죽은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오른쪽 그림은 야코포 데 바르바리의 《자고새와 쇠장갑이 있는 정물》사실상 트롱프뢰유의 시초로 여겨진다. 금속, 깃털의 다른 질감을 통해 대조 효과가 잘 드러나게 하는데 쇠와 나무도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밑에 쪽지가 그려져 있는데, 못과 쪽지는 둘다 표면에 바짝 붙어있어 속이기도 쉽고 그만큼 위협적이다. 종이에 화가의 서명과 제작년도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왼쪽의 야콥 코르넬리스 판 오스차넌의 《자화상》은 그림 안과 밖을 교란하는 트롱프뢰유의 전형적인 예인데, 쪽지가 진짜라면 그림은 가짜일수밖에 없다. 그림 안에 있는 쪽지가 아니라 그림 안팎을 교란하는데 이런 쪽지를 '카르텔리노'라고 한다. 쪽지가 실제에 가깝게 그려졌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이 그려진 사실이 두드러지게 된다. 오른쪽 그림은 코르넬리스 헤이스브레흐츠의 《바니타스 정물화가 걸려 있는 아틀리에 벽》이다. 제목의 바니타스는 갈구하는 물질적 욕망과 호화로움과 쾌락은 언젠가 모두 쇠락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니타스 주제가 실린 작품은 그동안 많이 봐왔는데 이 작가의 그림이 트롱프뢰유에 속해있다는게 신기했다. 그동안 다른 책에서 트롱프뢰유 라는걸 보지 못했는데, 내가 알던 그림이 눈속임 그림이라는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그림 위에 파리가 그려진 것이었다. 어느 화가의 《화가와 그의 아내》에선 식탁에 앉은 아내의 흰 천 위에, 그릇 옆에 파리가 그려져있다. 아마 사람들은 이 그림을 처음 봤을때 그림 위에 파리가 앉은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파리 그림은 15세기 초부터 널리 그려졌는데 종교화에도 그려지게 된다. 그리기 쉬우면서도 실제처럼 느끼게 해 관객을 잠깐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트롱프뢰유는 재미가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그림은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오른쪽의 아돌프 장 프랑수아 달마뉴의 《자화상》처럼 프레임을 타 넘는 그림은 입체적으로 보이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기 용이하고, 화려하고 다채로워 효과가 좋고, 주변에서 쉬이 보고 접할수 있는걸 소재로 찾고 있는데 편지꽂이와 함께 선반이 이 조건을 충족시켰다. 다양한 질감을 표현할수 있고, 바니타스를 넣을수 있으며, 트롱프뢰유의 소재로 쓰인 모든것을 그릴수도 있는데 케네스 데이비스의 《책장》과 앙리 카디우의 《부엌의 선반》은 현대인들이 좋아할 트롱프뢰유로, 사진 같은 그림이다.  

1960년대의 하이퍼리얼리즘은 트롱프뢰유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고 그린 하이퍼리얼리즘은 속이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속임수가 드러내도록 하는데 반해, 트롱프뢰유는 속임수가 얼른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그림으로 다른 성격을 띈다.  '실제인 양 속이는 그림이 아니라 '실제에 매우 가깝게 그린' 그림이 하이퍼리얼리즘 인데, 개인적으론 이쪽에 많은 흥미가 생긴다. 트롱프뢰유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됐는데, 뱅크시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건물 벽화를 통해 열린 공간으로 나오고 있다.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변화를 통해 화가와 관객간의 속고 속이는 재미있는 유희가 앞으로도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 이런 속임은 유쾌함을 안겨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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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랑 2012-07-2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완전 재밋었어용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