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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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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을 재수록하여 출간한 책. 여전히 소설처럼 실린 작품도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지만, 이 책에는 [삶을 쓰다]에 기고한 여러 종류의 글도 함께 실려있다. 짧은 단편 소설 같은 글도 있고. 사회 전반, 정치 전반, 세계 변화에 대한 단상도 실려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 되고, 이후 방문하게 된 동구권 사회에 대한 시선은, 작자 자신 노동자계층에서 자라왔고 살아왔던 지역의 낙후성과 비교해서 (유년기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매우 따듯하다. 그래서 “나와 같은 부류의 한풀이를 위해 글을 쓰겠다”라고 스무 살에 메모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글들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그 글을 썼을 때가, 나와 비슷한 나이여서일까. (연보를 찾아보니, 어머니는 비슷하고, 작자는 많이 젊다만) 부친 사망 후 홀로 된 어머니를 이따금 찾아보면서 느낀 여러가지 감회에서 미래의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서로 나눠야 할 수많은 이야기를 앞에 두고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숨가쁘게 헐떡거렸다. 실내는 어둡고 살짝 냄새가 난다. …노인 사는 집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 이제는 다들 문을 여는 법이 없거든. (p36)’ 이란 문장을 읽는 순간, 일어서서 창문을 열었다. 사는 모습, 사고방식은 달라도 이래서 아니 에르노가 위대한 작가구나 싶다. 지나치게 섹스에 탐닉하는구나 싶었는데, 어머니의 입원 (치매) 후, 어찌할 바를 몰라 망연해하던 작가의 나름의 치유책이었구나 싶고. 왓에버.


장기적으로, 문학은 독자의 상상력에 스며들어 독자가 모르고 있던 현실에 눈뜨게 하거나 늘 같은 각도에서 바라보던 것을 다르게 보도록 이끌 수 있다. 독자가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하게(우선은 스스로에게 하게) 해줄 수 있다. 문학은 초기 단계, 그러니까 내밀한 독서의 단계에서는 느리게 말없이 진행되는 혁명이다. (문학과 정치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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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을 위하여 - 나의 안녕, 너의 안녕, 우리의 안녕을 위한 영화와 책 읽기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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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녕을위하여 #이승연 #초록비책공방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면서, 저자는 영화가 할 수 있는 기능에 주목하고, 더 나아가 영화에 어울리는 책을 추천한다. 지난 날의 고통과 작별하고 내일의 평안을 도모하고자, ‘ 안녕peace 을 위해 안녕good bye이 필요하고, 우리가 다시 얼굴을 마주보며 반갑게 안녕 hello, 인사 나누게 되기를 (p9)’를 바라며, 책 제목을 “안녕을 위하여”라고 지었다고.
그런데 지난 주말, 이태원 참사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의미의 안녕을 이루기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

이 책은, 1부 준비하지 못한 이별을 위로하다, 2부 무너진 일상을 돌아보다, 3부 새로운 인생을 논하다, 4부 다시 사랑을 키우다로 나눠 총 스무 편의 영화와 책을 소개한다. 나도 영화께나 보는 사람이라, 소개된 영화 중 꽤 많은 영화를 봤다. 그런데 나는 단지 좋구나, 재미있구나, 마음에 와 닿는구나 하고 본 영화를 나도 ‘좋아하는’ 책과 연계하여 이렇게 분석해 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첫 조합이 인상깊에 봤던 영화 ‘프란츠’와 프리드 레모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 세계2차 대전 당시, 독일군 프란츠를 사살한 프랑스군 아드리앵이 종전 후 용서를 구하기 위해 독일로 찾아왔다가 프란츠의 가족에게는 차마 말을 못하고 프란츠가 파리 유학때 만났다는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프란츠의 약혼녀 안나는 그의 거짓말을 지켜주기로 한다. 이 영화에서 과연 진실이 그대로 밝혀지는게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거짓말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억’을 조작하기 때문이다.(p29)”라며 우리가 하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 안나의 거짓말이 ‘살아남은 자’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이 아픔을 치료해 줄 치료제라는 것을 말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으나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리드 레모에게도 그런 치료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프란츠의 약혼녀 안나는 아드리엥을 찾아 프랑스로 왔다가 미술관에서 마네의 그림 ‘자살’을 보며, 그 그림에서 삶에의 의지를 찾는다. “나로 하여금 살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어요.”

나란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지. 살아오면서 여러 참사를 보아왔다. 다행이(라는 말이 얼마나 참담한지) 나를 빗겨갔고 (물론 직접 겪은 사적인 힘든 과정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그나마 평온한 나의 삶에 감사한다.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핑계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두번째 조합인 영화 ‘오베라는 남자’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줄리언 반스는 아내를 잃고, 아내를 기억하기 위해,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원했을 모습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공감이 되므로 나는 ‘핑계’라고 단언하진 않는다.

이어지는 여러 조합은 보지 않았던 영화, 읽지 않았던 책이라도, 추측하고 상상하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의 ‘안녕’을 위해 어때야하는지 곰곰히 읽어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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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빌랭 #이재룡 옮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니에르노 #annieernaux 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한 작품은 외국인 연하 기혼남과의 불륜과 이별 후의 아픔을 그림 #단순한열정 이었다. 대학 입학 후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가 숨겨 읽던 이 소설을 필립 빌랭은 전문을 외우다시피 하며 읽다가 아니 에르노에게 편지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만나고 연인이 된다. 33년의 나이차. 그들은 5년 간 연인 사이로 있었고, 현대 문학 전공이던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아니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소설(소설일까? 자전적 에세이같은데.)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A.E.로 등장한다.

‘단순한 열정’이 언급될 때면 바로, 이 책이 화제에 오른다. 이어서 읽어보라는 조언을 받고, 충실히 그 조언에 따랐다. 소설을 읽다보면 받는 첫 느낌은, 오,,글을 잘 쓰는데? 이고 두번째는 아니 에르노가 쓴 글 아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문체며 흐름이며 풍기는 느낌은 유사하다. 나중에 그런 말이 나온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A.E.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그녀처럼 말하고 그녀가 내게 가르쳐준 식으로 완곡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놀랐다. 나는 그녀를 통해, 그녀의 육체와 습관, 그녀의 몸짓,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빨아들였던 그녀의 존재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p105)”

결국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그림자가 된 듯 하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책은 ‘단순한 열정’의 남자 버전이고, 1999년에 발표된 두번째 작품은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의 자리’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다’를 빼닮았다고 한다.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추종자이며 거장 아니 에르노를 의도적으로 답습하는 삶(적어도 문학적으로는)을 살고 있다. 이 책은 2001년 출간된 책으로, 이후의 필립 빌랭이 어떤 문학적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처음의 평가가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검색해 보니 여전히 남자 에르노란 별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은,,슬픔이다. 과연 필립은 아니를 사랑했을까? 유난히 수줍고 말이 없던 외로운 소년은 어머니의 대타를 찾은 것일까? 현실에서 어머니를 아버지와 분리해서 독점할 수 없었듯이, 소년은 연인에게서 계속 연인의 전 애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질투하고 괴로워한다. 누군지 궁금해하다가, 아니의 지갑 속에서 내내 함께 한 A(아니의 전애인,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의 사랑은 끝난다. 필립은 자신이 A의 대타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이었다. (과연?)

사랑에 대해 일반적인 잣대를 댈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첫 만남도 놀람의 연속이다. 어쩌면 이 또한, 세상의 잣대에 익숙해진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성별이 바뀌었다면..어쩌면 이만큼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 수도. 그런데 아니 에르노는 왜..이렇듯 결말이 예상되는 사랑에 자꾸 빠지는 것일까? (물론 자신의 스승과 결혼하여 해로하는 마크롱 대통령도 있지만.) 어쩌면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초월적인 존재여서인지도.

나도, ‘단순한 열정’과 ‘포옹’을 연이어서 읽기를 추천한다.

그녀는 “우리 커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직 좋은 시간”만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를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 나는 사랑이란 거리두기가 아니라 어떤 구속이라고, 존재와 욕망과 관심의 전폭적 공유를 함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A.E.는 이 “사치”라는 것을 다른 남자와 함께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록 이런 삶의 방식이 우리 이별의 원인이 될지라도 우리 역사의 순간순간을 느끼고 싶었다.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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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 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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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윌북 출판사의 신간 제임스 체셔, 올리버 우버티 공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은 #세상을읽는데이터지리학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있다. 글자 그대로, 일반 지도책이 땅이며 산이며 길이며, 눈에 보이는, 우리가 네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찾을 수 있는 지도라면, 이 책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해진 각종 데이터들을 도형으로 또는 지도에 얹어 한 눈에 그 현상을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예들 들면, 비행기 운항 노선 및 횟수. 하늘을 난 길을 우리는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길의 누적된 데이터를 보면, 나라, 지역 별로 어느 노선이 운항이 많이 되었고, 그로 인해 인류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비행기로 인한 탄소 배출이 어느정도이고 등등을 알 수 있다. 이는 탄소 배출로 인한 온난화 현상, 기후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우리가 마주하는 것 ) 데이터를 소재로 우리를 분석한다. 예전에는 일일이 오랜 기간 대면하여 발로 얻은 정보를 요즘은 휴대폰이라는 편리한 기구 사용의 흔적으로 보다 쉽게 데이터를 얻는다. 이 와중에 개인의 정보 노출이라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점이 노출되고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할 지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휴대폰을 기반으로 한 정보 습득은, 유사시 (지진 등 자연재해 발생시) 인공위성과 협력하여 보다 빠른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각 세목마다 흥미로운 정보를 가득 담고 있어서 읽는 내내 지도 속에 빠져 들어가는 듯 했다. 모든 내용들이 유익해서 어느 하나 후다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뽑아본다.

우리 인류는 아프리가 지역에서 전세계로 이동했다. 최근 유전학자들이 고대인의 DNA를 분석하여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인류 이동의 경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순수 민족이란 개념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태고적부터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는 끝없는 혼합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도 국경을 초월해 움직인다.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은 일자리와 시장, 학교와 의료 서비스를 좇아 도시로 이주하고 있다.그런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까움의 기준은 거리가 아니고 시간이었다. 고소득 국민은 91퍼센트가 도시까지 1시간 이내의 거리에 거주하는 반면, 저소득 국가의 국민은 51퍼센트만이 그러한 곳에 산다 (p93). 이는 앞에서 말한 서비스에 접근하는데 격차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즉, 도시와 얼마나 가까운지가 복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내가 여성이라서 그런지, 성차별에 대한 항목은 특히 와닿았다. 남녀 일일 평균 유무급 노동량을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평등한 나라는 스웨덴인데, 스웨덴에서조차 여성이 무급 노동(요리, 청소, 육아, 노인 돌봄 등)을 더 많이 담당했다. 우리나라는 (이 책에서 한국은 좋던 나쁘던 여러 항목에서 언급된다- 우리나라 만세!) 상대적으로 여성 무급 노동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나, 남성이 무급 노동시간이 거의 없는 관계로 불평등 국가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이는, 코로나 시국이 다른 나라에서는 출생률증가로 이어졌는데, 한국, 일본은 그렇지 않음과 연결된다. 이 항목에서 웃기는 것은, 남자가 더 많이 하는 무급 노동은 집수리가 유일하다는.ㅎㅎㅎㅎ

우리의 데이터는 우리의 것이다. 기업이나 정치인이 (정보는 즉 권력!) 그걸 감독하게 하면 안된다. 데이터의 신뢰성은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p196) 즉, 우리 스스로가 데이터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해도 없이는 항해할 수 없지만, 달랑 해도만 가지고 항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키와 키잡이도 필요하다.(p189) “라고 말한 존 K.라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기쁨도 누리며, 영감을 얻고 행동하길 바란다. 추천! 또 추천!!

최근, 왓차에서 AI 인공지능에 기반한 감시체계를 다룬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 를 재미있게 머리 아파하며 시청했다. 이 책을 보는 내내 그 드라마 생각이 났다. 정보 습득에 있어서 넘사벽인 인공지능. 인간은 어떻게 이를 현명하게 다룰 것인가. (물론 AI를 이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편찬은 훨씬 쉬워지겠지..ㅎㅎ)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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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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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파기 두번째.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내 손에 들어오는 순서..ㅎㅎㅎ)
외국인 연하기혼남과의 불륜 경험을 적나라하게 썼다하여 화제가 된 소설. 읽기 전에는 엄청 야해서,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로맨스 소설도 많이 읽었고,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야했던 소설은 ‘그녀 아델’이다.) 이건 뭐..그 순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9 “ 라고 시작하는 소설. 나는 이 문장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본다 . 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남이 이어지고, 헤어지고, 망각이 찾아왔을 때 우리에게는 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했던 추억때문에 그 과거가 소중하다.
짧은 소설(?)을 읽으며, 읽는 내내, 공연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과연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인지 고개를 갸웃대다가, 그게 뭐가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불어가 서투르고, 나는 그 사람의 모국어를 못하는데.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여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냥 소설의 제목 그대로 simple 하게 끌렸던 것인데. 그 끌림은 그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불러온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서투른 프랑스어 발음에서 야기된 야성일 수도 있고. 사랑이 길어졌다면 오히려 지저분하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관계였을 수도 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끝이 예상되는 관계여서 더 애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결혼을 이야기할 때, 연애 감정은 몇 년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다음은 ‘정’으로 사는 거지 뭐…하는. 그래도 수십 년 함께 하는 동안, 그래도 그런 감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때 그 사람은 눈부셨고, 싱긋 웃을 때 하얗게 반짝이는 치아에도 마음이 흔들렸는데, 지금 늙어가는 그의 모습은 애잔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 반대는? 수다스러운 펑퍼짐한 중년 아줌마가 된 아내에게서 그는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나 있으려나? 아주 비관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추억은 남아있고 버들가지 같던 허리 사이즈도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자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일종의 대리 만족도 하고. 추리물을 읽을 때 범인에게도 자주 이입된다. 뭐 어때? 나만의 책읽기 습관인걸, 그래서 책읽기가 더 재미있는 걸. 다음엔 아니 에르노의 어떤 책을 읽게 되려나? 궁금.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간결한 문체로 은근 사람을 휘젔는다.)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p27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p72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p73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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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2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튜울립 님 구판으로 읽으셨네요
마지막 발췌문장 저도 좋아해요 ^^

튜울립 2022-10-22 16:14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 신청해서( 아니 에르노 책 다 대출중이랍니다!) 되는대로 읽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