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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ㅣ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작가 지망생인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의 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법학 전공이지만 문학을 하고 싶은 가르시아가 창작 교실에 갔다가, 수업에 난입한 내장 사실주의자들인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를 만나는 것으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1부, 멕시코에서 길을 잃은 멕시코인들(1975)/ 2부, 야만스러운 탐정들91976~1996)/ 3부, 소노라의 사막들 (1976) 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부에서는 소제목 그대로, 내장 사실주의파에 속한 시인들의 삶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2부에서는 1부 마지막에 멕시코시티를 떠난 벨라노와 리마에 대해 (그들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들을 인터뷰 식으로 엮으면서, 그들 여정의 주 목적이었던 내장 사실주의파의 창시자인 세사레아 티나헤로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줄기를 이룬다. 3부는 1부에 바로 이어지는, 마데로, 벨라노, 리마가 도피의 원인이 되었던 성매매 여성 루페와 함께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는 여행이 마데로의 일기 형식으로 서술되며, 충격적인 결말이- 2부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알게되는 - 밝혀진다.
내장사실주의라니..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네이밍인가. 이름 그대로에서 받은 인상은, 겉모습은 어쨋든 한겹 벗겨보면(으으) 뼈대나 내부 장기가 다 똑같은 인간 군상을 (권력자나 지식인이나 거리의 하층민이나) 그대로 보여주자는 의미구나 했는데, 볼라뇨(소설 속 주인공 아르투로 벨라노의 분신)와 산티아고 파파스키아(울리세스 리마의 분신)가 주도한 전위주의 그룹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 현실주의 )의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저항과 파괴라는 전위주의 특유의 정신은 공유하되 밑바닥 생활이나 거리의 언어 등을 날 것 그대로 시에 담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들은 옥타비오 파스의 형이상학적 시와 파블로 네루다의 사회 비판적 시를 넘어서고자 했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보들레르, 랭보, 비트세대, 온다 문학에 이르는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몸짓만을 되풀이 했다. 이런 모습은 두 주인공 벨라노와 리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옮긴이의 말)
남미에 대해선 무지하고, 지금도 빈곤과 마약과 파쇼, 그래서 공산주의가 팽배할 수 밖에 없는 곳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지식인들은 절망감, 패배감에 그저 살거나, 그들이 질시했던 사람들처럼 욕심을 부리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놓고 스러진다. 소설 속에서 여기저기 펼쳐지는 역사적 사건들(멕시코 뿐 아니라 남미 여러나라의 쿠데타, 틀라텔롤코 학살 등)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들을 담담하게 구술한다. 사회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뿐 아니라 문인들도 마찬가지. 소설 곳곳에 놓여진 염세적 야만성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멀리 남미 뿐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도. 사는 게 여기나 거기나 다 똑같다. 과거는 그렇다치더라도 다가올 미래에 희망은 볼 수 있는지.
우리는 홀로 있고 길을 잃었기 때문이오.p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