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변호사 

 

 

 

 

 

"검사 그만둔 거? 잘린 게 아니라 실망해서 스스로 나왔다"

나는 학창시절보다 검사 초반에 모범적으로 살지 않았나 싶다. 검찰에 몸을 담으며 '기존 논리를 최대한 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5년 정도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언론에 글을 쓰게 됐다.

여러 가지 생각이라고 하니 대단한 거 같지만 별게 아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게임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검찰 이야기다. 검사가 조사받는 사람을 기소하고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벌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정당한지를 놓고 의문이 들었다. 정당하다고 한다면 공정한 바탕 안에서 이런 과정이 진행돼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검사를 하면서 느낀 거는 그렇지 않았다.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쓴 이유다.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1980년대 대학 시절을 겪으면서 검찰 하면 굉장히 나쁜 곳이라고 생각했다.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니 좋은 곳이었다. 친구가 가기에 따라갔다. (웃음) 그 곳에서 사람을 만나보니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그 곳에서, 그 곳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과연 밖에서 검찰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법질서를 지킨다는 검찰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걸까.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10년 동안 검찰에 몸담은 나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은 그 글을 쓴 뒤 잘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나왔다. 그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입장에서는 그 연재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검찰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 글 때문에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리라 생각했다. 평생 시골만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래도 보람 있게 살아갈 거라 생각해서 글을 쓴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글을 쓰지 못하게 됐다. 실망이 커서 스스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들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거 같다. 당시 내 글을 보고 검찰에 계신 어떤 분은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보고를 안 하고 글을 쓴 게 화가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문에 글이 날 때 새벽에 부장검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자기한테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했으면 못 쓰게 했을 테니까. 나중에 부장검사도 똑같이 얘기하더라. (웃음)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라도 잘라 버리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검사를 그만 둔 뒤 생긴 직업 철학은 의뢰인을 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때와는 반대가 됐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의뢰인을 두고 '왜 이런 짓을 했느냐, 당신이 잘못했다" 이런 식으로 검찰이 범죄자를 대하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웃음)

검사를 할 때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돼 보니 그때 내가 알았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의뢰인이 변호사인 내게 자질구레한 일까지 말하는 걸 보면서 검사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는 의뢰인 중심으로 일을 진행한다. 그래서 모든 변호사가 고민하는 게 정말 문제가 있는 의뢰인을 변론해야 할 때다. 새로 변호사가 된 분들을 위해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럼 나는 '손님 중에 우리가 볼 때도 나쁜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있다. 그것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양심상 도저히 변론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사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은 변론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의 직업 윤리다. 나는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도저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 어떤 사람을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잘라 버리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논할 여유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아주 재미있다. 실제 사례를 놓고 이야기를 하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고 다른 의견을 명백히 알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이 책이 팔리는 건 수요가 있다는 거다. 한국 사회는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을까. 난 두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너무 바쁘다. 중·고생의 경우 옳고 그름을 분간해야 하는 나이지만 그런 시간도 없다. 좋은 고등학교입학시키려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은 학원 공부로 밤새도록 공부를 한다. 대학생은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다. 직장에서는 승자독식이다. 옳고 그름을 논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정부는 정답만 주고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점이다. 잘못되고 엉뚱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틀린 이야기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정의에 대해 논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논쟁거리는 늘 존재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 분리, 낙태 등. 하지만 이에 대한 논쟁이 없다. 한번 이야기해보자.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것이 법리적 문제를 떠나 굉장히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화학적 거세를 실시한다는 기사 댓글 중에는 무슨 화학적 거세냐며 '실명'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다. 맞다. 이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진짜다. 그러면 100퍼센트 재범을 막을 수 있다. (웃음) 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효과가 있는지 확인이 안 됐다. 국민들의 분노를 타고 정치인들이 효과 유무도 따지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두순 등 최근 성 범죄자들을 보면 경찰이 가지고 있는 1만2000명의 성범죄자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에 대한 문제는 생각하지도 않으며 화학적 거세를 하자고 한다. 화학적 거세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눈을 멀게 하는 방안은 양심에 걸려서 머뭇거리면서 말이다.

만약 화학적 거세의 효과가 검증된다 하더라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떼어내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소매치기에게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손목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 도입을 한다고 하면 신중히 도입을 해야 한다.

화학적 거세는 약물을 통해 욕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약물을 끊으면 다시 성범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아동성범죄는 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폭력, 지배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성적인 시각만 놓고 보는 것의 부작용이 화학적 거세와 같은 검증 안 된 대책으로 이어졌다.

아까도 말했든 죄를 저지르면 벌을 주는 건 맞지만, 이 사람을 고쳐서, 그 사람 나름의 선택을 하도록 하며 변화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화학적 거세를 위해 약물을 15년까지 투여할 수 있다. 거의 평생 동안 욕구나 기능을 억제시켜서 인공적으로 죄를 안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사회 전체에서의 논의나 토론 없이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가 합의를 이뤘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강조했듯이, 아무리 어떤 사람을 포기하는 것, 버리는 것은 결코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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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책 한 권이 화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 대학강의를 묶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정의를 정의(定義)하고자 재담가들이 모였다. 금태섭·김용철·우석훈이 바로 그 주인공.
 

 


<프레시안>과 김영사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한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간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간담회에서 이들은 500여 명의 청중을 상대로 3시간 동안 걸쭉한 입담을 풀었다.

'이기는 게 정의'라는 말이 쉽게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다 한 번씩 '피'를 봤던 혹은 그런 세대의 정의를 대변했던 이들 3명이 말하는 정의. 그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며 나섰다.


▲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정의란 무엇인가> 간담회의 주인공. 왼쪽부터 김용철 변호사,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금태섭 변호사,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에서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

김민웅 교수 : 검사 시절에 왜 우석훈 박사를 빨갱이라고 안 잡아가셨어요?
금태섭 변호사 : 아니 그게……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세 시간 동안 분위기는 이랬다. 우석훈 2.1 소장과 김민웅 교수는 기타도 꺼내 들었다(우 박사는 해금도 배웠단다). 김 교수가 리듬을 넣고, 우 소장이 솔로 연주를 더해 김광석의 '일어나'를 열창했다. 심각한 주제에도 이내 폭소가 터진다. 수다 중에 목이 타니 맥주도 등장했다.

김민웅 교수는 "정의를 쉽게 풀자면 뭐가 옳은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딜레마에 빠졌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 보자"라며 대담자를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거운 말들이 오갔을 리 없다. 우석훈 소장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엔 두 가지가 없어요. 정의가 없고 진리가 없어요. 제 생각엔 진리는 쓰레기통에 있는 거 같아요. 기자나 피디가 그런 걸 써오면 데스크가 쓰레기통에 버리니깐. 정의 쪽은……복잡할 게 없죠. 생각해봐서 '이 짓을 하면 지옥 갈 거다' 싶으면 정의롭지 않은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정의의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라고나 할까요.

정의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 해가 1981년이에요. '전또깡'이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외치며 민정당(민주정의당)을 만들었잖아요. 그 당시 모두가 정의를 말했어요. 그 뒤론 한나라당이 정의를 이야기하면 전두환이 말하던 정의로 들려요. 그래서 요샌 '부당'이란 단어로 표현하죠. 집회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면 '부당하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김용철 변호사는 까칠하다. 나름 베스트셀러 저자답게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놓고 "너무 좀 한가한 거 아닌가요"라고 촌평을 날린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정의는 무엇일까?

"제가 느낀 정의는 상당히 비장한 게 들어 있는 거예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 손해 보면 정의가 아니다'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게 정의죠. 그런데 이런 말 잘못하면 빨갱이가 되더라고요. 굳이 좌우를 나눠 좌파가 공동체 평등과 분배를 고려하고 우파가 경쟁 시스템을 지키는 걸 중시한다면, 난 좌파 할래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게 지성인, 교양인이고 더 폼 나는 거 아닌가요."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금태섭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점잖다. 그는 "이 책이 잘 팔리는 건 정의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너무 바빠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새벽까지 해도 숙제가 밀려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대학교에 가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기다리고 있고, 직장에 들어가면 승자독식 구조에서 살아남아야 하죠. 옳고 그름을 논의할 여유가 없어요.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 정부에서 정답을 주고 따르라고 하죠. 잘못되고 엉뚱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항상 옳은 것만 말할 수는 없는데. 틀린 이야기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왼쪽'의 우석훈부터 '오른쪽'의 김용철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청중들이 정의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려 이곳을 찾았을 리 없다. 한국의 '진짜 권력'에 덤벼들었던 김 변호사,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권력' 검찰에서 사고를 쳤던 금 변호사, '88만 세대의 대부' 우 소장이다.

화려한 경력답게 각각이 지닌 정의감의 '색깔'도 다르다. "나는 센 빨갱이"라는 우석훈 소장, "빨갱이란 소리 듣기 싫어 빨간색 넥타이도 안 맨다"는 김용철 변호사, 그 사이에서 서글서글한 금태섭 변호사. 자리 배치도 '맨 왼쪽'의 우 소장부터 금 변호사, '오른편'의 김 변호사 순이다.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여기선 맛보기만 풀자.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가 잘 안 됐다는 거 몰랐어요. 트위터에서 '광고가 안 된다더라'는 '광고'가 6만 명에게 전달됐다고 하기에 트위터를 만들어봤죠. 몇 번 글을 써봤는데 그날 밤에 누가 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번개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차도 끊겼는데, 재워주기도 뭐하고……." (김용철)

"4대강 환경영향평가 같은 걸 보면 불법은 별로 없어요. 정부와 여당이 법을 바꾸니깐. 그래서 법에 대한 이야긴 잘 안 해요. 대신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에 맞춰서 보면 이명박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가 없죠. 제가 어디 가서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헌법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에요. 적을 이롭게 하는 등 운운하기 전에 헌법에 있는 거니깐." (우석훈)

"화학적 거세는 법리적 문제를 떠나 굉장히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니 '무슨 화학적 거세냐, 그냥 실명을 시키자'는 말이 있더군요. 정말로 눈이 멀면 거의 100퍼센트 재범을 막을 수 있잖아요. 화학적 거세는 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추진하면서 눈을 멀게 하자면 양심에 걸려 머뭇거리죠. 우리 사회에서 자유 의지를 떼어내면서까지 처벌한 적이 없어요." (금태섭)

심심한 이야기라고? 우석훈이라면 '88만 원 세대'를, 김용철이라면 '이건희'를, 금태섭이라면 '검찰 수사' 이상을 말해야 하는 게 '정의' 아니냐고? 맛보기라고 하지 않았나. 5일부터 이들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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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은 역시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말했듯이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현실주의적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전통적 사유와 만날 수 있을까.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제1회 대안담론 포럼 (2010년 6월 11일)
제2세션 발제문 요약
발제자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유주의를 한국의 정치 현실로 가져오는 문제
: 정치적 실천의 관점에서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에 기여할 수 있나?


들어가며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자유주의의 위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이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건설을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은 데 반해, 자유주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이 자유주의의 중심 가치를 포괄하는 동안에도 자유주의가 정치이념으로서 중심적인 위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過負荷)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주의적 계기를 가져왔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과정에서 독재권력을 타도하는 정치적 목표를 넘어, 인간의 자유와 평등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가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 그러한가?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정치투쟁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원리들은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로 획득되기 이전에 이미 헌법 조문을 통해 법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법의 실제가 아닌 형식만을 본다면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 국가였고 자유주의 국가였다. 따라서 실제 현실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1) 보편적 인권 사상, 2)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세 가지 문제영역에서 자유주의를 검토해보도록 하자.

1) 보편적인 인권 사상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 조문으로 존재했던 정치적 자유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권리에 대해 법의 실제적 효능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본권은 민주주의 실천에 의존적인 유동성을 보여왔다. 서구에서 자유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시민 개개인과 사회 전체의 규범이자 가치로서 널리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체제나 정권의 성격을 넘어서는 효능을 갖는다. 현재 한국의 보수정부 하에서 민주주의 실천이 위축되면서 시민적 기본권이 곧바로 위협되는 현상들은 이와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 정부에 대한 반대를 차단하고 약화시킬 목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법적 조치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시행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사례 가운데 최근의 한 사례를 살펴보자. "불심검문개정안"(5월 27일 국회행정안전위 통과,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중)이 그것이다. 경찰이 범죄가 의심되는 누구에게나 불심검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한 것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법안이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놀라운 것은 이 문제가 국회 안팎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다른 비판과 문제제기 없이 어떻게 국회 상임위를 통과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이다. 냉전시기 권위주의 하에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헌법 위에 있었던 법이다. 탈냉전과 민주화는 헌법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보안법의 지위를 헌법에 종속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은 서구의 왕정이나 귀족정 시기와 같이 여전히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제한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시민사회에서도 이러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다.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와 의사가 개개 시민의 자유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는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간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프레시안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과 다수 지배의 원리를 통해 집합적 결정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곧 법으로 구현된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에 대해 평등하게 인신, 양심과 종교, 안전, 재산소유 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며 이러한 권리는 법적, 형식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불평등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현실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비해 진보적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기반을 갖지 않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법적, 절차적 측면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을 구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질적 측면에서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 방법으로 국가 공(강)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개인자유의 침해는 그 대상이 기존의 지배적 권력에 대한 비판자들이거나 사회적 소수자들 혹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파들이 보수파들에 비해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구현하는데 더 열성적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를 수호함에 있어 자유주의 가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개인의 권리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나 합의 또는 특정집단 내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행동양식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권이 우선한다는 관념과 문화, 사회적 가치가 자리 잡을 때 실현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진보파들이 얼마나 이러한 가치와 관점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2)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중앙집중화에 대응하는 자율적 결사체와 지방으로의 권력분산

60년대 미국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위계적으로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정점을 향하여, 공간적으로 서울로의 집중을 결과하는 "소용돌이의 정치"로 특징지은 바 있다. 이후 이 현상은 더욱 강화되어왔다. 6,70년대의 국가주도 산업화는 산업과 경제엘리트의 구조를 집중화시켰다.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는 이 구조를 완화시키지 못하고 더욱 강화시켜, 서울하고도 강남, 경제엘리트 중에서도 소수의 재벌, 문화·교육에 있어서도 소수의 대학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초집중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토크빌의 이론을 빌어 말한다면, 분단국가의 건설과 이념갈등의 과정에서 기존의 중간집단들은 해체된 반면 사회변화와 발전에 따른 사회의 자율적 중간집단이 발전하지 못한 결과이다. 과거 일정하게 유지되었던 지방적 자원들과 자율성들은 국가건설, 전쟁, 산업화 등의 격변적 사회변화로 해체되었다. 산업화가 동반한 생산자집단과 사회적 약자의 조직들, 기존 사회질서에 이견을 말하는 지적, 문화적 비주류엘리트가 자율적 조직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은 허용되지 않았다. 가치와 이념의 다원화, 사회경제적, 교육문화적 자원의 다원화가 허용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의 지배적 가치, 이념, 정점을 향해 치닫는 일원적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흥미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지역주의, 지역감정은 지역에 대한 충성, 지역의 자율성과 그에 바탕한 발전을 위한 지역의 열정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지역 지지기반을 배경으로 한 정치엘리트들이 중앙의 권력과 자원을 어떻게 획득하거나 분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중앙을 향한 지역간 경쟁은 지역분권화, 권력과 사회경제적, 문화적 자원의 지방분산을 가져올 수 없다. 서울로의 중앙집중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엘리트들의 정점을 향한 수렴현상이 만들어낸 공간적 특성이다. 

 

 

 

 



몽테스큐나 토크빌의 이론은 봉건적 지방분권으로부터 중앙집중화한 절대주의체제로의 이행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귀족적 권력의 자율성이 해체되면서 중앙집중화를 가져오는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토크빌이 자율적 중간집단을 말할 때, 그것은 지방의 자율성과 근대화에 의한 기능적 분화에 의한 자율적 집단 모두를 포괄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봉건적 지방분권의 경험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국가건설과 산업화이후에도 지방분권화의 경험을 갖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국 현실에서 지역적, 공간적 분권화를 곧바로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를 갖기 어렵다. 이점에서 중앙집중을 완화하는 기능적, 계층적 수준의 자율적 집단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자율적 집단의 발전이 집중화한 중앙권력을 그리하여 지역적으로 집중화된 서울중심 권력을 완화하는 가져오게 될 때, 그것이 지방분권화의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앙집중화와 서울집중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의 주요 영역과 수준에서 이익, 가치, 열정을 달리하는 사회집단들이 자율적으로 결사체를 형성하여 사회관계와 가치의 구조를 다원화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자율적 결사체를 조직, 형성하고 민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이들이 자기의사를 대표하는 것을 가로막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동심원적 엘리트구조를 다변화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의미한다.

토크빌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그로 인한 국가집행부권력의 강화를 제한하고 한 사회가 자유로운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편으로 사회적 가치, 풍습, 행동양식을 특징짓는 문화(moeur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이를 시현하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행부권력의 강화는 단지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양식과 깊이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처음부터 민족공동체의 제도화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내재적으로 정당한 것이고, 국가목표를 성취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정치공동체인 것이다. 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도, 이를 최대의 효율성을 통해 집행하는 것도 이 목표달성을 위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자원을 동원하는 것도 국가이고, 국가의 집행부이고, 대통령이다. 이것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국가 권력의 작동방식에서 잠재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갖도록 하는 측면이다. 일이 되게 하는 것도 국가의 행정기구와 그것과의 연계이고,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도 국가를 향한 국가중심성이 특징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과 조건에서 개개시민들이 권위주의적, 온정주의적(paternalism)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행동양식은 압도적으로 국가와 개개시민들이 대면하는 영역에서 형성되고 발전한다. 여기서 자율적 결사체, 그것의 가장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이 왜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가치를 습득하는데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가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토크빌이 민주주의에서 결사체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결사체(곧 정당)의 역할에 주목했던 까닭은 그것이 다른 자발적 결사체의 활동을 자극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당은 정치를 경험하고 그 효능을 스스로 터득하는 정치교육의 場이다. 자율적, 자유주의적 인간은 이 장, 이러한 공적 공간에서 발생한다. 좁게는 대통령, 넓게는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좌와 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수용하고, 얼마나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 문제에 대한 고려를 회피하는 태도는 개혁의 열정이 강한 진보파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자유주의

한국의 민주화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에 대항했던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특징된다. 운동이 수반했던 엄청난 열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은 특정의 민주주의관을 발전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구질서가 존중하지 않았던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그러했다. 민주주의를 추동했던 중심적인 사회세력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의 기반 없는 민주주의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이념적으로 주도했던 민중주의는 민주주의와 (혁명적/급진적) 민족주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대의제민주주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이상주의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적인 공동체는 진보적이고 올바른 이론과 그 기획에 의해 일거에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진보적 엘리트들 사이에서 정서적 급진주의 또는 급진적 정서주의를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다.

철학에서 정서주의(emotivism)는 어떤 실재성/현실성을 서술하지 않고 또한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를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진술은 단지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정서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서주의가 추상적 이념과 과도한 열정으로 덮씌워지면서 급진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이러한 급진주의가 수반하는 정치관은 현실에 천착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정치적 실천은 현실로부터 괴리되는 경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향이 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천이나 과정과 쉽게 접합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가 자유주의의 냉정한 현실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 있다. 자유주의의 정신적 원천은 신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개인 생활의 중심에 놓는 신교, 특히 칼비니즘으로부터 왔다.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 하든 수용하려 하든 신의 명령에 복무한다는 격렬한 열정을 냉정한 열정으로 그 성격을 전환시킨 힘이다. 그것은 어떻게 격렬한 도덕적 감성이 현실을 냉엄하게 다룰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은 로크의 "정부에 대한 두 개의 논설"이나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열정은 이러한 냉정한 현실주의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 또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여 실제로는 자유주의로부터 일탈한 사례들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진보적 운동이 변혁이론을 중심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지자체선거 이후 한 진보적 지식인 서클은 변혁적 민주주의관을 어떻게 대중과 결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부르조아적 반자본주의, 지역생태주의, 제3세계민족주의, 글로벌케인즈주의, 사회운동노조주의, 사회주의"등 급진적 또는 진보적 이념을 광범하게 포괄하는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제시하였다(경향, 6/5일자). "한국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이러한 이념과 운동이 한국 사회의 진보 전체를 말하거나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혁이론과 운동전략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민주주의관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운동전략과 방향이 한국 사회의 일반대중, 소외계층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렇게 추상화된 이념은 전혀 현실에 기초하거나 현실을 대면하고 있지 못하다. 고도로 추상화된 급진이론은 진보적 엘리트의 지적 프로그램일 수는 있어도 대중의 삶의 조건을 실제로 다루는 문제를 둘러싼 관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그것이 대중과 결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지체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들이 대의제민주주의 그 자체가 갖는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의제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들과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이 대의제민주주의가 상정하는 이상적 기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조차 크게 제한되고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변혁적 운동론에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내용에서도 반자본주의적 생산체제 혹은 사회주의가 이념적 준거로서 진지하게 고려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신자유주의 혹은 총체적으로 오늘의 경제조건을 이상주의적으로 바꾸고자하는 변혁적 모토나 이론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회계층에 예외 없이 그러나 차등적으로 몰아닥친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의 충격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 다음으로 경제와 시장에서 개혁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이고, 그로부터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를 발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정치를 통해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깊이 사고하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변혁적 사고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권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가 미약하다는데 있다. 자유주의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실천이성은, 인과관계를 통해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 현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한 겸허함과 권력의 사용을 수반하는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성의 한 유형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조건, 정치문화에서 자유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민주주의가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상념되는 이상과 목표가 과도하게 높게 설정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전화시켜, 현실 문제의 복합적 구조 속으로 침투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예술을 창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자유주의를 논의하는 데 있어 다음의 세 가지 맥락이 중요하다. 첫째,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갈등이 심하고 좌우이념대립이 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둘째, 보다 중요하게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윤리적 가치의 이념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고려이다. 셋째, 정치적 이념은 비전, 가치, 정책방향을 통해, 여러 사회세력들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발표자는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주의는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본 발표자의 관점에서 위의 문제영역 모두에서 자유주의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를 논의하는데 있어 본 발표자는 자유주의만이 중요한 이념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하는 정치이념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이념으로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어떤 이유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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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지형도 - 영국의 신좌파와 문화연구 - 이택광 

 

정치적인 것’에 대한 주목은 비단 프랑스의 이론가들에 국한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영국의 ‘신좌파’도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정치와 구분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주장을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스튜어트 홀은 <뉴레프트리뷰> 50주년 기념호에 실은 회상기에서 영국 신좌파의 탄생 배경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홀은 신좌파의 탄생을 유발한 두 가지 사건을 지목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리쾨르에게 <정치적 역설>을 집필하게 만든 소련의 헝가리 혁명 진압이었고, 두 번째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수에즈 운하 지역을 침공한 일이었다. 두 사건은 각각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와 영연방의 공익성에 대한 희망을 접게 만들었다. 지식인들에게 이 사건들은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전후에 맞이한 경제 붐에 힘입어서 사회의 진보를 낙관했던 지식인들은 헝가리와 수에즈 사건을 계기로 현실사회주의국가와 복지국가 모델 모두에 대한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신좌파는 이런 회의에서 출발한 새로운 영국의 지식인 그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신좌파를 지칭하기 위한 시기구분은 1968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홀은 이때 형성된 신좌파는 1956년 신좌파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상사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홀의 지적은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해서 후자의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은 1956년 이후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영국의 신좌파는 <뉴리즈너>(New Reasoner)와 <대학좌파리뷰>(Universities and Left Review)를 각각 발간하던 세력들이 힘을 합쳐 <뉴레프트리뷰>를 창간하면서 결성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의 신좌파에게 매체 발간이 대단히 중요한 ‘활동’에 속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체를 발간하고, ‘사회주의클럽’을 조직해서 정기적으로 2-300명의 청중을 모아서 강연회를 개최하는 ‘문화적 활동’을 전개했다.

영국의 신좌파를 구성하는 세력 중 하나인 <뉴리즈너>그룹은 산업화 지역인 요크셔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었는데,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저작을 남긴 E. P. 톰슨이 대표적인 참여자였다. <뉴리즈너>그룹의 특징은 인간주의로 대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대학좌파리뷰>그룹은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젊은 학생들로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 신좌파그룹에게 시급했던 것은 현실사회주의와 복지국가 모델을 극복할 수 있는 ‘제 3의 길’이었다. 이 길은 곧 현실사회주의와 현실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영국의 지식인들도 프랑스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해서 전자보다 후자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한 정치적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법인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의 포섭전략이 급속하게 정치사회적인 조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신좌파의 판단이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혁신하고 전통적인 좌파의 관점을 재정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전후에 맞이한 경제적 부흥에 고무 받은 다양한 분석들은 마침내 분배의 문제를 복지국가나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학을 통해 완전히 해결했다는 지표를 던져주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영혁명이나 복지정책의 확대는 협동조합주의(corporatism)라는 공동체적 합의를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결과는 전통적인 계급관계를 침식하고, 노동계급을 부르주아화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보는 그룹과 낡은 것의 귀환으로 보는 그룹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이런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그 배후에 전혀 변하지 않은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아주 단순한 결론이었다. 계급과 계급투쟁은 건재한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것은 반혁명적인 것이라는 관점이 팽배했다. 장구한 영국 노동계급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당연지사이지만, 신좌파는 이런 ‘구좌파’의 의견과 팽팽하게 맞서면서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정립한다. 신좌파의 주장에서 핵심적인 것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라는 것이 모순적이고 정치적으로 결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좌파의 문화연구는 양가적이기 때문에 결정하기 곤란한 어떤 문화적 현상을 통해 정치적인 것을 발굴해내는 작업을 의미했다.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운위되는 정치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외연 확장을 도모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신좌파적인 주장은 ‘사적인 문제’와 ‘공공적인 쟁점’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는 변증법을 전제한다. 결국 신좌파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둘의 접점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좌파의 문화연구는 ‘반이론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글턴처럼 알튀세르주의를 도입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지만 홀이나 앤더슨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좌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그람시였다. 반이론적 입장이라는 것은 특정한 이론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한다기보다, 오히려 현실에 개입해서 정치적인 것의 역동성을 포착한다는 것에 가까웠다. 따라서 신좌파에게 ‘문화’라는 영역은 문화철학이나 인류학에서 다루는 특정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헤게모니의 장이었다. 신좌파는 생산력주의와 경제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정치적인 것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왔던 것이다. 이 가정에서 문화는 정치적인 것이 출몰하고 갈등하는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하겠다.

물론 신좌파 중에서도 문화 분석에 대한 관점은 다양했다. 크게 보아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겉으로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계급구조는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와,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문화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같은 문화적 변동이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견해가 그것이었다. 전자는 훨씬 근본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후자는 다소 수정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문화적 영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그 대응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를 소비주의에 현혹된 것으로 보는 관점은 정치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는 장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차별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홀의 주장처럼 실제로 수정주의처럼 보이는 이 관점이야말로 오히려 급진적인 것일 수가 있다. 새로운 사유재산 개념의 출현, 기업조직과 고용형태의 변화, 역동적인 축적체계와 소비방식이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근본적인 토대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태도라고 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신좌파의 입장 자체가 근원적이고 급진적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임무에 처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루카치가 말했듯이, 시대별로 우리는 숱한 ‘마르크스주의들’을 가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마르크스주의들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신좌파의 소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신은 협소한 개념으로 정치를 규정하는 구좌파적 입장에 반대하면서, 일상생활 도처에 정치적인 것이 편재하고 있다는 새로운 ‘발견’으로 신좌파를 나아가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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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지형도 - 이탈리아적인 차이 - 이택광 

 

현대사상의 지형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한 이탈리아일 것이다. 아감벤과 네그리를 제외하고 유럽의 사상 흐름을 논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로젠조 키에사나 알베르토 토스카노처럼 영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진이론가들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한 이론적 차이를 보이는 이들을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일한 그룹으로 묶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 변별할 수 있는 ‘이탈리아적 차이’를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탈리아는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지적 풍토를 드러내는 국가인 것처럼 보인다. 완강한 가톨릭 보수주의가 지배적인 국가에서 이탈리아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중심과 구별되는 온도차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최근 리-프레스 출판사에서 나온 『이탈리아적인 차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키에사와 토스카노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17년이나 지낸 한 여성의 안락사를 아버지가 결심했을 때 정부와 교회가 나서서 이를 저지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이탈리아는 북유럽과 상당히 다른 지배체제의 ‘권위주의’가 일상화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여성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 수상 베를루스코니는 “이 여성이 아직도 젊고 생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락사를 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국가권력을 ‘예외적’으로 사용해서 한 여성의 생명을 ‘수호’한 것이다. 이에 대해 키에사와 토스카노는 아감벤의 용어인 생명정치의 ‘예외성’이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참으로 외설적으로 구현됐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예외적 상황에서 아감벤의 용어에 묻어 있는 하이데거적인 엄숙함은 내파돼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정작 이탈리아에서 하이데거적 비장미를 간직한 예외적 인간 ‘호모 사케르’는 세속적 차원에서 국가와 교회에 의해 변용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외적 인간’이나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에서 지식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유럽국가와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이탈리아적 특수성이다. 이탈리아에서 이 논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 초반 미래파의 등장부터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다른 유럽국가와 구별할 수밖에 없는 이탈리아적인 것의 차이를 이야기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탈리아적인 특수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서 다양한 논의들이 이탈리아의 사상 흐름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채로운 마르크스주의의 이탈리아 판본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탈리아적 특수성은 기 드보르가 지적했듯이, 폭력과 압제의 이미지로 점철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드보르가 이탈리아를 하나의 ‘실험실’로 파악했다는 사실이다. 관광엽서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belle Italia)와 정반대의 풍경을 드보르는 발견한 셈인데, 이런 실상을 ‘실험실’로 규정함으로써,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게 됐던 것이다.

이런 드보르의 문제의식은 네그리와 『제국』을 함께 집필한 마이클 하트에게도 이어진다. 하트는 탈노동자주의적인 급진이론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이탈리아를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형태’가 출현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로 간주한다. 물론 이런 이탈리아의 특수성은 ‘제국’(empire)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경제적 영역에 대한 탈근대화와 사회문화적 영역에 대한 미국화라는 ‘총체적 국면’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근대적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지연당한 역사적 경험을 보편화하면서 특유의 이론들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이탈리아적 예외주의야말로 이탈리아적 차이를 인준하는 하나의 이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에릭 홉스봄의 지적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탈리아적인 예외주의를 만들어낸 것은 민족주의의 보편화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의 진행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그 독일과 이탈리아를 만들어낸 결정적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론적 탐색이 이탈리아적인 상황에서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적인 차이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네그리다. 그는 이탈리아의 지식계에 영향력을 주고 있는 하이데거주의를 ‘약자의 사고’라고 지칭하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네그리는 약한 사고와 대립적인 관점에서 ‘근육질’을 갖춘 혁명적 주체성의 정치적 존재론을 역설한다. 다소 자의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강한 자의 사고와 약한 자의 사고를 구분하는 네그리의 분류법은 정치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그리고 문화적인 것을 둘러싼 이탈리아의 논쟁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네그리가 촉발한 논의는 이탈리아적인 상황에 영향을 미친 유럽사상에 대한 점검을 요청하게 됐고, 이를 통해 ‘창조적인 차이’로서 이탈리아적인 이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런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탈리아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유럽이론들의 백가쟁명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극단적으로 특이한 편협성과 강력한 보편성이 마르크스주의라는 매트릭스에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생생한 장면들을 이탈리아의 사상지형도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네그리가 마르크스주의를 푸코나 들뢰즈의 이론과 버무려서 내놓는다면, 라보티 같은 반대자는 이런 프랑스산 이론이야말로 ‘약한 자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프랑스산 이론에 대한 비판은 이탈리아적인 이론의 변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하이데거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맥이 닿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네그리는 이런 하이데거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바티모나 아감벤이 하이데거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하이데거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아감벤은 역설적으로 약한 자의 사고에 대한 비판을 비켜가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아감벤은 토종 이탈리아 이론가들에게 비판적인 검토 대상인 프랑스산 이론에 누구보다 경도돼 있는 이론가이고, 하이데거주의는 물론 푸코의 생명정치와 통치성에 대한 이론을 자신의 이론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아감벤은 강자의 사고를 주창하는 네그리와 달리 약자의 사고를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제시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에서 이탈리아의 사상지형도에서 ‘예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네그리의 파리 망명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0년대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반동의 시기였다. 한국에서 광주가 그랬듯이, 권력에 의한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했고, 이에 따라서 ‘약한자의 사고’가 중요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경유해서 보완되고 풍부해진 프랑스산 이론들은 이런 이탈리아적 특수성을 보편화하기 위한 ‘외부적’ 관점을 제공했다. 넓게 본다면, 아감벤도 이런 이탈리아적 조건에서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오늘날 이탈리아의 사상 흐름은 민족적인 특이성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보편성의 구현이라는 ‘이론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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