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책 한 권이 화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 대학강의를 묶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정의를 정의(定義)하고자 재담가들이 모였다. 금태섭·김용철·우석훈이 바로 그 주인공.
 

 


<프레시안>과 김영사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한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간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간담회에서 이들은 500여 명의 청중을 상대로 3시간 동안 걸쭉한 입담을 풀었다.

'이기는 게 정의'라는 말이 쉽게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다 한 번씩 '피'를 봤던 혹은 그런 세대의 정의를 대변했던 이들 3명이 말하는 정의. 그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며 나섰다.


▲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정의란 무엇인가> 간담회의 주인공. 왼쪽부터 김용철 변호사,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금태섭 변호사,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에서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

김민웅 교수 : 검사 시절에 왜 우석훈 박사를 빨갱이라고 안 잡아가셨어요?
금태섭 변호사 : 아니 그게……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세 시간 동안 분위기는 이랬다. 우석훈 2.1 소장과 김민웅 교수는 기타도 꺼내 들었다(우 박사는 해금도 배웠단다). 김 교수가 리듬을 넣고, 우 소장이 솔로 연주를 더해 김광석의 '일어나'를 열창했다. 심각한 주제에도 이내 폭소가 터진다. 수다 중에 목이 타니 맥주도 등장했다.

김민웅 교수는 "정의를 쉽게 풀자면 뭐가 옳은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딜레마에 빠졌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 보자"라며 대담자를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거운 말들이 오갔을 리 없다. 우석훈 소장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엔 두 가지가 없어요. 정의가 없고 진리가 없어요. 제 생각엔 진리는 쓰레기통에 있는 거 같아요. 기자나 피디가 그런 걸 써오면 데스크가 쓰레기통에 버리니깐. 정의 쪽은……복잡할 게 없죠. 생각해봐서 '이 짓을 하면 지옥 갈 거다' 싶으면 정의롭지 않은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정의의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라고나 할까요.

정의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 해가 1981년이에요. '전또깡'이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외치며 민정당(민주정의당)을 만들었잖아요. 그 당시 모두가 정의를 말했어요. 그 뒤론 한나라당이 정의를 이야기하면 전두환이 말하던 정의로 들려요. 그래서 요샌 '부당'이란 단어로 표현하죠. 집회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면 '부당하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김용철 변호사는 까칠하다. 나름 베스트셀러 저자답게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놓고 "너무 좀 한가한 거 아닌가요"라고 촌평을 날린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정의는 무엇일까?

"제가 느낀 정의는 상당히 비장한 게 들어 있는 거예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 손해 보면 정의가 아니다'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게 정의죠. 그런데 이런 말 잘못하면 빨갱이가 되더라고요. 굳이 좌우를 나눠 좌파가 공동체 평등과 분배를 고려하고 우파가 경쟁 시스템을 지키는 걸 중시한다면, 난 좌파 할래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게 지성인, 교양인이고 더 폼 나는 거 아닌가요."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금태섭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점잖다. 그는 "이 책이 잘 팔리는 건 정의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너무 바빠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새벽까지 해도 숙제가 밀려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대학교에 가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기다리고 있고, 직장에 들어가면 승자독식 구조에서 살아남아야 하죠. 옳고 그름을 논의할 여유가 없어요.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 정부에서 정답을 주고 따르라고 하죠. 잘못되고 엉뚱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항상 옳은 것만 말할 수는 없는데. 틀린 이야기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왼쪽'의 우석훈부터 '오른쪽'의 김용철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청중들이 정의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려 이곳을 찾았을 리 없다. 한국의 '진짜 권력'에 덤벼들었던 김 변호사,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권력' 검찰에서 사고를 쳤던 금 변호사, '88만 세대의 대부' 우 소장이다.

화려한 경력답게 각각이 지닌 정의감의 '색깔'도 다르다. "나는 센 빨갱이"라는 우석훈 소장, "빨갱이란 소리 듣기 싫어 빨간색 넥타이도 안 맨다"는 김용철 변호사, 그 사이에서 서글서글한 금태섭 변호사. 자리 배치도 '맨 왼쪽'의 우 소장부터 금 변호사, '오른편'의 김 변호사 순이다.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여기선 맛보기만 풀자.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가 잘 안 됐다는 거 몰랐어요. 트위터에서 '광고가 안 된다더라'는 '광고'가 6만 명에게 전달됐다고 하기에 트위터를 만들어봤죠. 몇 번 글을 써봤는데 그날 밤에 누가 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번개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차도 끊겼는데, 재워주기도 뭐하고……." (김용철)

"4대강 환경영향평가 같은 걸 보면 불법은 별로 없어요. 정부와 여당이 법을 바꾸니깐. 그래서 법에 대한 이야긴 잘 안 해요. 대신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에 맞춰서 보면 이명박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가 없죠. 제가 어디 가서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헌법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에요. 적을 이롭게 하는 등 운운하기 전에 헌법에 있는 거니깐." (우석훈)

"화학적 거세는 법리적 문제를 떠나 굉장히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니 '무슨 화학적 거세냐, 그냥 실명을 시키자'는 말이 있더군요. 정말로 눈이 멀면 거의 100퍼센트 재범을 막을 수 있잖아요. 화학적 거세는 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추진하면서 눈을 멀게 하자면 양심에 걸려 머뭇거리죠. 우리 사회에서 자유 의지를 떼어내면서까지 처벌한 적이 없어요." (금태섭)

심심한 이야기라고? 우석훈이라면 '88만 원 세대'를, 김용철이라면 '이건희'를, 금태섭이라면 '검찰 수사' 이상을 말해야 하는 게 '정의' 아니냐고? 맛보기라고 하지 않았나. 5일부터 이들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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