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은 역시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말했듯이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현실주의적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전통적 사유와 만날 수 있을까.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제1회 대안담론 포럼 (2010년 6월 11일)
제2세션 발제문 요약
발제자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자유주의를 한국의 정치 현실로 가져오는 문제
: 정치적 실천의 관점에서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에 기여할 수 있나?


들어가며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자유주의의 위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이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건설을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은 데 반해, 자유주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이 자유주의의 중심 가치를 포괄하는 동안에도 자유주의가 정치이념으로서 중심적인 위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過負荷)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주의적 계기를 가져왔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과정에서 독재권력을 타도하는 정치적 목표를 넘어, 인간의 자유와 평등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가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 그러한가?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정치투쟁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원리들은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로 획득되기 이전에 이미 헌법 조문을 통해 법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법의 실제가 아닌 형식만을 본다면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 국가였고 자유주의 국가였다. 따라서 실제 현실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1) 보편적 인권 사상, 2)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세 가지 문제영역에서 자유주의를 검토해보도록 하자.

1) 보편적인 인권 사상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 조문으로 존재했던 정치적 자유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권리에 대해 법의 실제적 효능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본권은 민주주의 실천에 의존적인 유동성을 보여왔다. 서구에서 자유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시민 개개인과 사회 전체의 규범이자 가치로서 널리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체제나 정권의 성격을 넘어서는 효능을 갖는다. 현재 한국의 보수정부 하에서 민주주의 실천이 위축되면서 시민적 기본권이 곧바로 위협되는 현상들은 이와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 정부에 대한 반대를 차단하고 약화시킬 목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법적 조치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시행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사례 가운데 최근의 한 사례를 살펴보자. "불심검문개정안"(5월 27일 국회행정안전위 통과,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중)이 그것이다. 경찰이 범죄가 의심되는 누구에게나 불심검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한 것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법안이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놀라운 것은 이 문제가 국회 안팎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다른 비판과 문제제기 없이 어떻게 국회 상임위를 통과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이다. 냉전시기 권위주의 하에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헌법 위에 있었던 법이다. 탈냉전과 민주화는 헌법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보안법의 지위를 헌법에 종속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은 서구의 왕정이나 귀족정 시기와 같이 여전히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제한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시민사회에서도 이러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다.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와 의사가 개개 시민의 자유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는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간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프레시안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과 다수 지배의 원리를 통해 집합적 결정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곧 법으로 구현된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에 대해 평등하게 인신, 양심과 종교, 안전, 재산소유 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며 이러한 권리는 법적, 형식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불평등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현실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비해 진보적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기반을 갖지 않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법적, 절차적 측면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을 구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질적 측면에서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 방법으로 국가 공(강)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개인자유의 침해는 그 대상이 기존의 지배적 권력에 대한 비판자들이거나 사회적 소수자들 혹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파들이 보수파들에 비해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구현하는데 더 열성적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를 수호함에 있어 자유주의 가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개인의 권리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나 합의 또는 특정집단 내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행동양식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권이 우선한다는 관념과 문화, 사회적 가치가 자리 잡을 때 실현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진보파들이 얼마나 이러한 가치와 관점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2)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중앙집중화에 대응하는 자율적 결사체와 지방으로의 권력분산

60년대 미국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위계적으로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정점을 향하여, 공간적으로 서울로의 집중을 결과하는 "소용돌이의 정치"로 특징지은 바 있다. 이후 이 현상은 더욱 강화되어왔다. 6,70년대의 국가주도 산업화는 산업과 경제엘리트의 구조를 집중화시켰다.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는 이 구조를 완화시키지 못하고 더욱 강화시켜, 서울하고도 강남, 경제엘리트 중에서도 소수의 재벌, 문화·교육에 있어서도 소수의 대학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초집중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토크빌의 이론을 빌어 말한다면, 분단국가의 건설과 이념갈등의 과정에서 기존의 중간집단들은 해체된 반면 사회변화와 발전에 따른 사회의 자율적 중간집단이 발전하지 못한 결과이다. 과거 일정하게 유지되었던 지방적 자원들과 자율성들은 국가건설, 전쟁, 산업화 등의 격변적 사회변화로 해체되었다. 산업화가 동반한 생산자집단과 사회적 약자의 조직들, 기존 사회질서에 이견을 말하는 지적, 문화적 비주류엘리트가 자율적 조직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은 허용되지 않았다. 가치와 이념의 다원화, 사회경제적, 교육문화적 자원의 다원화가 허용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의 지배적 가치, 이념, 정점을 향해 치닫는 일원적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흥미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지역주의, 지역감정은 지역에 대한 충성, 지역의 자율성과 그에 바탕한 발전을 위한 지역의 열정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지역 지지기반을 배경으로 한 정치엘리트들이 중앙의 권력과 자원을 어떻게 획득하거나 분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중앙을 향한 지역간 경쟁은 지역분권화, 권력과 사회경제적, 문화적 자원의 지방분산을 가져올 수 없다. 서울로의 중앙집중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엘리트들의 정점을 향한 수렴현상이 만들어낸 공간적 특성이다. 

 

 

 

 



몽테스큐나 토크빌의 이론은 봉건적 지방분권으로부터 중앙집중화한 절대주의체제로의 이행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귀족적 권력의 자율성이 해체되면서 중앙집중화를 가져오는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토크빌이 자율적 중간집단을 말할 때, 그것은 지방의 자율성과 근대화에 의한 기능적 분화에 의한 자율적 집단 모두를 포괄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봉건적 지방분권의 경험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국가건설과 산업화이후에도 지방분권화의 경험을 갖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국 현실에서 지역적, 공간적 분권화를 곧바로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를 갖기 어렵다. 이점에서 중앙집중을 완화하는 기능적, 계층적 수준의 자율적 집단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자율적 집단의 발전이 집중화한 중앙권력을 그리하여 지역적으로 집중화된 서울중심 권력을 완화하는 가져오게 될 때, 그것이 지방분권화의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앙집중화와 서울집중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의 주요 영역과 수준에서 이익, 가치, 열정을 달리하는 사회집단들이 자율적으로 결사체를 형성하여 사회관계와 가치의 구조를 다원화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자율적 결사체를 조직, 형성하고 민주주의의 제도 안에서 이들이 자기의사를 대표하는 것을 가로막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동심원적 엘리트구조를 다변화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의미한다.

토크빌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그로 인한 국가집행부권력의 강화를 제한하고 한 사회가 자유로운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편으로 사회적 가치, 풍습, 행동양식을 특징짓는 문화(moeur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이를 시현하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행부권력의 강화는 단지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양식과 깊이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처음부터 민족공동체의 제도화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내재적으로 정당한 것이고, 국가목표를 성취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정치공동체인 것이다. 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도, 이를 최대의 효율성을 통해 집행하는 것도 이 목표달성을 위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자원을 동원하는 것도 국가이고, 국가의 집행부이고, 대통령이다. 이것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국가 권력의 작동방식에서 잠재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갖도록 하는 측면이다. 일이 되게 하는 것도 국가의 행정기구와 그것과의 연계이고,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도 국가를 향한 국가중심성이 특징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과 조건에서 개개시민들이 권위주의적, 온정주의적(paternalism)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행동양식은 압도적으로 국가와 개개시민들이 대면하는 영역에서 형성되고 발전한다. 여기서 자율적 결사체, 그것의 가장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이 왜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가치를 습득하는데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가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토크빌이 민주주의에서 결사체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결사체(곧 정당)의 역할에 주목했던 까닭은 그것이 다른 자발적 결사체의 활동을 자극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당은 정치를 경험하고 그 효능을 스스로 터득하는 정치교육의 場이다. 자율적, 자유주의적 인간은 이 장, 이러한 공적 공간에서 발생한다. 좁게는 대통령, 넓게는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좌와 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수용하고, 얼마나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 문제에 대한 고려를 회피하는 태도는 개혁의 열정이 강한 진보파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3)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자유주의

한국의 민주화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에 대항했던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특징된다. 운동이 수반했던 엄청난 열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은 특정의 민주주의관을 발전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구질서가 존중하지 않았던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그러했다. 민주주의를 추동했던 중심적인 사회세력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의 기반 없는 민주주의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이념적으로 주도했던 민중주의는 민주주의와 (혁명적/급진적) 민족주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대의제민주주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이상주의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적인 공동체는 진보적이고 올바른 이론과 그 기획에 의해 일거에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진보적 엘리트들 사이에서 정서적 급진주의 또는 급진적 정서주의를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다.

철학에서 정서주의(emotivism)는 어떤 실재성/현실성을 서술하지 않고 또한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를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진술은 단지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정서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서주의가 추상적 이념과 과도한 열정으로 덮씌워지면서 급진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이러한 급진주의가 수반하는 정치관은 현실에 천착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정치적 실천은 현실로부터 괴리되는 경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향이 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천이나 과정과 쉽게 접합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가 자유주의의 냉정한 현실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 있다. 자유주의의 정신적 원천은 신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개인 생활의 중심에 놓는 신교, 특히 칼비니즘으로부터 왔다.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 하든 수용하려 하든 신의 명령에 복무한다는 격렬한 열정을 냉정한 열정으로 그 성격을 전환시킨 힘이다. 그것은 어떻게 격렬한 도덕적 감성이 현실을 냉엄하게 다룰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은 로크의 "정부에 대한 두 개의 논설"이나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열정은 이러한 냉정한 현실주의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 또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여 실제로는 자유주의로부터 일탈한 사례들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진보적 운동이 변혁이론을 중심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지자체선거 이후 한 진보적 지식인 서클은 변혁적 민주주의관을 어떻게 대중과 결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부르조아적 반자본주의, 지역생태주의, 제3세계민족주의, 글로벌케인즈주의, 사회운동노조주의, 사회주의"등 급진적 또는 진보적 이념을 광범하게 포괄하는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제시하였다(경향, 6/5일자). "한국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이러한 이념과 운동이 한국 사회의 진보 전체를 말하거나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혁이론과 운동전략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민주주의관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운동전략과 방향이 한국 사회의 일반대중, 소외계층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렇게 추상화된 이념은 전혀 현실에 기초하거나 현실을 대면하고 있지 못하다. 고도로 추상화된 급진이론은 진보적 엘리트의 지적 프로그램일 수는 있어도 대중의 삶의 조건을 실제로 다루는 문제를 둘러싼 관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그것이 대중과 결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지체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들이 대의제민주주의 그 자체가 갖는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의제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들과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이 대의제민주주의가 상정하는 이상적 기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조차 크게 제한되고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변혁적 운동론에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내용에서도 반자본주의적 생산체제 혹은 사회주의가 이념적 준거로서 진지하게 고려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신자유주의 혹은 총체적으로 오늘의 경제조건을 이상주의적으로 바꾸고자하는 변혁적 모토나 이론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회계층에 예외 없이 그러나 차등적으로 몰아닥친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의 충격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 다음으로 경제와 시장에서 개혁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이고, 그로부터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를 발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정치를 통해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깊이 사고하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변혁적 사고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권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가 미약하다는데 있다. 자유주의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실천이성은, 인과관계를 통해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 현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한 겸허함과 권력의 사용을 수반하는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성의 한 유형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조건, 정치문화에서 자유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민주주의가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상념되는 이상과 목표가 과도하게 높게 설정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전화시켜, 현실 문제의 복합적 구조 속으로 침투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예술을 창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자유주의를 논의하는 데 있어 다음의 세 가지 맥락이 중요하다. 첫째,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갈등이 심하고 좌우이념대립이 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둘째, 보다 중요하게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윤리적 가치의 이념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고려이다. 셋째, 정치적 이념은 비전, 가치, 정책방향을 통해, 여러 사회세력들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발표자는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주의는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본 발표자의 관점에서 위의 문제영역 모두에서 자유주의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를 논의하는데 있어 본 발표자는 자유주의만이 중요한 이념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하는 정치이념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이념으로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어떤 이유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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