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변호사 

 

 

 

 

 

"검사 그만둔 거? 잘린 게 아니라 실망해서 스스로 나왔다"

나는 학창시절보다 검사 초반에 모범적으로 살지 않았나 싶다. 검찰에 몸을 담으며 '기존 논리를 최대한 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5년 정도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언론에 글을 쓰게 됐다.

여러 가지 생각이라고 하니 대단한 거 같지만 별게 아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게임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검찰 이야기다. 검사가 조사받는 사람을 기소하고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벌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정당한지를 놓고 의문이 들었다. 정당하다고 한다면 공정한 바탕 안에서 이런 과정이 진행돼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검사를 하면서 느낀 거는 그렇지 않았다.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쓴 이유다.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1980년대 대학 시절을 겪으면서 검찰 하면 굉장히 나쁜 곳이라고 생각했다.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니 좋은 곳이었다. 친구가 가기에 따라갔다. (웃음) 그 곳에서 사람을 만나보니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그 곳에서, 그 곳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과연 밖에서 검찰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법질서를 지킨다는 검찰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걸까.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10년 동안 검찰에 몸담은 나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은 그 글을 쓴 뒤 잘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나왔다. 그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입장에서는 그 연재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검찰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 글 때문에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리라 생각했다. 평생 시골만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래도 보람 있게 살아갈 거라 생각해서 글을 쓴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글을 쓰지 못하게 됐다. 실망이 커서 스스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들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거 같다. 당시 내 글을 보고 검찰에 계신 어떤 분은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보고를 안 하고 글을 쓴 게 화가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문에 글이 날 때 새벽에 부장검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자기한테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했으면 못 쓰게 했을 테니까. 나중에 부장검사도 똑같이 얘기하더라. (웃음)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라도 잘라 버리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검사를 그만 둔 뒤 생긴 직업 철학은 의뢰인을 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때와는 반대가 됐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의뢰인을 두고 '왜 이런 짓을 했느냐, 당신이 잘못했다" 이런 식으로 검찰이 범죄자를 대하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웃음)

검사를 할 때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돼 보니 그때 내가 알았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의뢰인이 변호사인 내게 자질구레한 일까지 말하는 걸 보면서 검사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는 의뢰인 중심으로 일을 진행한다. 그래서 모든 변호사가 고민하는 게 정말 문제가 있는 의뢰인을 변론해야 할 때다. 새로 변호사가 된 분들을 위해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럼 나는 '손님 중에 우리가 볼 때도 나쁜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있다. 그것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양심상 도저히 변론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사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은 변론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의 직업 윤리다. 나는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도저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 어떤 사람을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잘라 버리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논할 여유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아주 재미있다. 실제 사례를 놓고 이야기를 하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고 다른 의견을 명백히 알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이 책이 팔리는 건 수요가 있다는 거다. 한국 사회는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을까. 난 두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너무 바쁘다. 중·고생의 경우 옳고 그름을 분간해야 하는 나이지만 그런 시간도 없다. 좋은 고등학교입학시키려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은 학원 공부로 밤새도록 공부를 한다. 대학생은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다. 직장에서는 승자독식이다. 옳고 그름을 논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정부는 정답만 주고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점이다. 잘못되고 엉뚱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틀린 이야기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정의에 대해 논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논쟁거리는 늘 존재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 분리, 낙태 등. 하지만 이에 대한 논쟁이 없다. 한번 이야기해보자.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것이 법리적 문제를 떠나 굉장히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화학적 거세를 실시한다는 기사 댓글 중에는 무슨 화학적 거세냐며 '실명'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다. 맞다. 이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진짜다. 그러면 100퍼센트 재범을 막을 수 있다. (웃음) 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효과가 있는지 확인이 안 됐다. 국민들의 분노를 타고 정치인들이 효과 유무도 따지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두순 등 최근 성 범죄자들을 보면 경찰이 가지고 있는 1만2000명의 성범죄자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에 대한 문제는 생각하지도 않으며 화학적 거세를 하자고 한다. 화학적 거세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눈을 멀게 하는 방안은 양심에 걸려서 머뭇거리면서 말이다.

만약 화학적 거세의 효과가 검증된다 하더라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떼어내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소매치기에게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손목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 도입을 한다고 하면 신중히 도입을 해야 한다.

화학적 거세는 약물을 통해 욕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약물을 끊으면 다시 성범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아동성범죄는 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폭력, 지배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성적인 시각만 놓고 보는 것의 부작용이 화학적 거세와 같은 검증 안 된 대책으로 이어졌다.

아까도 말했든 죄를 저지르면 벌을 주는 건 맞지만, 이 사람을 고쳐서, 그 사람 나름의 선택을 하도록 하며 변화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화학적 거세를 위해 약물을 15년까지 투여할 수 있다. 거의 평생 동안 욕구나 기능을 억제시켜서 인공적으로 죄를 안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사회 전체에서의 논의나 토론 없이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가 합의를 이뤘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강조했듯이, 아무리 어떤 사람을 포기하는 것, 버리는 것은 결코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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