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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한탄하기에 앞서 의식주에 걱정 없고 신체 건강하며 누구하고의 경쟁에서도 늘 이기는 그런 삶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인생의 쓴 맛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은 오르막이 있으면 언젠가 내리막이 있는게 거의 진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고난기...절망적인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거기서 부러져 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성공의 순간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동시에 절망적인 시기가 내내 계속될리도 없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혈기왕성한 나머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울분과 진로와 이성에 대한 고민으로 끝 모를 심연 속에 빠져들던 1991년 여름 이맘 때...무턱대고 찾아간 한강 고수부지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을 같이 바라봐준 친구가 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위로도 타는 갈증 같은 속마음을 토로하지도 않았다. 그저 소주 한병 서로 번갈아 나눠 마시며 같은 곳을 바라보다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학생회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20여년이 훌쩍 더 지난 지금도 그 녀석과는 그때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서로 낯붉히며 얘기할 유치한 이유였지만 그당시엔 그 누구보다도 더 절망스러웠던 때. 그렇다. 우린 늘 절망과 맞서야 할 용기와 함께 절망을 수용하고 견뎌내야 할 인고의 시간도 필요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
<절망독서>는 이처럼 어렵고 힘들며 절망으로 앞이 캄캄하기만 한 때를 견뎌내는데 필요한 친구와 같은 책을 소개한다. 저자는 13년간의 절망 체험을 바탕으로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절망과 힘겨운 동거를 하고 있는 이들은 물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절망을 감내하는데 필요한 예방주사를 맞는 차원에서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간에 모든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소원을 내비친다.
이 책은 요즘 소위 ‘힐링’을 전면에 내세워 모든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이겨내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와 그 방향을 달리한다.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본인도 결코 원하지 않았던 불행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는 이들에게 스스로에게서 모든 길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망망대해에 빠진 사람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자는 대신에 절망을 함께할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소개해 준다. 그 옛날 같이 한강고수부지를 함께 해 준 친구를 책이나 영화, 드라마로 대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도 투병중이지만 또다른 친구는 직장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스트레스 끝에 공황장애를 얻어 오랜 기간 치료중에 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지하철도 못 타고 혼자 있지도 못하는 그 녀석에게 어느 날 찾아간 병원의 담당의사는 ‘차라리 울어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불의의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1주기에 같이 찾아가 정말 목놓아 울어 버리더라. 그렇다. 슬픈 상태에서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코미디 프로를 본다고 기분이 나아지면 절망스러운 상황일까? 아닐 것이다.
담담하면서 자칫 무미건조함 마저 느껴지는 책이지만 공감을 위한 여백과 호흡을 함께 하려는 느낌이 저자의 경험에 힘입어 상당한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절망을 이겨내기 보다 함께 하는 동안 만큼은 무너지지 말자. 이 책은 우리에게 공감은 물론 절망의 퇴치를 위한 공생의 기간을 단축시켜주는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