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의 윤리 - 칸트와 라캉 슬로베니아 학파 총서 4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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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의 ‘칸트를 사드와 더불어‘에 걸려있는 근본적인 내기는 또 다른 훨씬 더 섬뜩한 칸트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칸트와 관련하여 라캉은 관념들의 역사에서 칸트의 윤리적 혁명은 무의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발견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쾌락원칙의 너머‘의 차원을 윤곽지은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 P7

주체의 ‘탈중심성은‘은 기원적이며 구성적이다. ‘나‘는 바로 그 처음부터 ‘내 자신 바깥에‘있으며 외적 구성성분들의 브리콜라주이다.... 식물이랑 땅에 묻힌 뿌리라는 가장 속에서 내장을 몸체 외부에 가지고 있는 동물이라고 헤겔이 주장하는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이 헤겔적 정식화는 또한 - 그리고 특히- 인간 동물의 자기바깥에 있는, 인간동물의 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상징계에도 적용된다. 내 존재의 정신적 실체, 내가 나의정신적 자양분을 이끌어내는 뿌리는 내 자신 바깝에 있으며, 탈중심화된 상징적 질서에 묻혀있다. - P9

동료 철학자로서 실재적 존경의 유일한 표시는 질투어린 증오감이다. - 어떻게 해서 그 저자가 말하는 바를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말인가? - P15

철학적 윤리에 대한 ‘프로이트적 타격‘으느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철학이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더 정확히는 칸트가 정언명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초자아에 다름 아니다. - P17

라캉적 타격 : 철학이 윤리의 이름으로 제공해야 하는 최선의 것은, 사드의 유명한 저술의 제목을 말바꿈해 본다면, 일종의 ‘규방 속의 실천철학‘이다.
... 라캉은 칸트에게 윤리의 실재적 중핵- 적실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초자아의 논리로 환원될 수없는 핵심-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부여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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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이사하는 꿈을 꾸었다.

방이 한 5개 정도 되었다.

안방에 들어가니 퀸침대가 두개가 놓여있었다.

 

도대체 이사꿈은 왜 이렇게 많이 꾸는 것일까.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사는

존재의집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으로 생각이 든다.

 

어릴적 30번이상 이사를 다녔다.

이제는 이사가 귀찮다.

하지만 계속해서 집을 알아본다.

언제든 떠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

 

내년에는 실제로 이사가야 겠다. 지금 집이 좋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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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바디우의 영상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카메라가 그의 귀를 클로즈업한다.

빛나는 보석이 귀의 구멍에 들어가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어떤 남자의 귀에 보석귀걸이가 몇개나 걸쳐져 있다.

여자의 귀걸이 처럼 화려하다.

클로즈업 된 그의 귀를 바라보다.

그러다가 빨간 후드를 입은 남자가 그를 덮치고 모니터도 떨어지고 만다.

나는 걱정이 되서 밖으로 뛰어나간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비를 맞으며 그의 집앞에 복도에 올라가려는 순간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생각이 난다.

이제 조용한 것을 보니 어떻게 해결이 되었나?

나는 뒤를 돌아 다시 비를 막고 집으로 돌아온다.

 

 

                                                                                                                                                                    

말하는 귀와 듣는 입.

환상이 귀를 막는다.

보석으로 막힌, 화려함은 검은 구멍을 은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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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레오그라피(coreography)에 대해 알게되었다. 아이린 슬기 안무영상을 보다가 너무 놀라워서, 다른 것들도 찾아보니 그 춤의 장르가 아닌 안무를 뜻하는 단어였다. 앰비규어스의 안무영상도 즐겨보고 있다. 박자와 디테일한 움직임들.

춤을 잘 추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루브보다  락킹, 텃킹 같은 움직임들이 멋있다.

 

이 책은 저자가 썼듯이 '안무와 철학의 대화'이다. 아직 책의 도입부인데 읽기가 만만치 않다.

책의 부제는 '퍼포먼스와 움직임의 정치학' 이며,

저자는 안드레 레페기 미국 공연예술학 교수라고 한다.

안무에 대해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지 이것을 대해 뭔가 더 깊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투적이지 않은 이 문장들은 시간을 내어 천천히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아직 책의 도입부, 2번 읽었는데 줄을 긋느라 진도가 안나간다.

버릴 문장이 없는 책을 만나면 두근 거린다.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싶은 책이 내 기준 좋은 책이다.

새로운 춤의 세계와 정치학, 철학을 저자가 어떻게 엮어낼까. 기대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은  리뷰 전에 쓰는 글인데, 책에 대한 기대감같은 것도 가끔은 읽기 전에 쓰고 싶을 때가 많다.

 

 

멈췄다, 이어지기, 이것을 트렌드라 부르든 경련이라 부르든 딸꾹질하는 듯한 시퀀스가 안무에서 점점점 늘어나고 있는 점은 무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늘날 안무된 움직임을 딸꾹질로 여기는 것은 비평적인 불안감을 조성한다. 운동미학적 더듬거림의 분출때문에 춤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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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꿈은 이사를 갔다. 이사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지금 사는 집보다 깨끗하고 넓었다. 창문에는 파란 커튼이 달려있다. 파란커튼은 동그라미로 잘려있다. 잘려진 동그라미로 본 것은 옆집의 거실이였고, 옆집에는 김동률이 살고 있었다. 김동률과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들 3명 정도가 식사 준비를 하고 TV를 보고 있었다.

훔쳐보는 나는 원래 전에 살던 사람이 그 집을 훔쳐보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나는 훔쳐보면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하여 전에 살던 사람이 파란커튼에 구멍을 뚫었다고 무의식의 논리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김동률은 좀 뜬금없다. 그의 팬이기는 하지만

김동률의 은폐한 제 3자가 있을 수도 있고

파란커튼의 구멍

무의식의 균열과 닮아 있기도 하고,

 

그냥 꿈해몽으로는 이사는 좋다.

 

무의식은 사유하고 있기는 하나, 그 사유가 의식의 사유보다 정교하지 않으며, 여기서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 되어 있다의 무의식일 것이다. 무의식의 사유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의식적 꿈인듯도 싶다.

이사라는 반복적 테마는 정신분석을 시작하기 전에도 가끔 꾸었던 꿈이다.

 이사는 큰 변화다새로운 변화를 꿈을 꾸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존재의 집을 바꾼다는 것.

집만 바꾼다고 사람이 바뀔까?

때로는 집만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기도 한다.

이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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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0-10-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보고도 ‘두근‘ 했네요ㅋ김동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어서일수도?^^*

바람의_피부 2020-10-1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