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한 2키로 줄었나보다. 역시나 살과 함께 삶은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살도빼고 삶도 바꾸고 그러고 싶었는데.. 욕망의 규모를 줄인다는 것 자체는 힘든거 같다. 식욕을 줄이면서 탐욕이 늘고 탐욕을 줄이면 또 다른 욕망이 불거져 나오고,, 식욕을 줄인 댓가로 지름신이 붙었다. 이달들어 온갖것을 사들였다. ㅎㅎㅎ 염원하던 것을 사서 좋긴 한데. 이거쩝.. 담달 카드값은 어찌할지. 허허.. 지겹다. 요즘 왜 이렇게 지루하지 하면.. 그건 작년 또 그 제작년에 생각했던 그것이다. 하늘 아래 재밌는게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지루하지 모르겠다. 사람도 지루하고,, 책도 지루하고,  아직 음악은 들 지루한게 다행. 이 무기력이 오래가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 무기력도 언젠가 한번 느꼈던 무기력인거 같고, 이 외로움도 언젠가 느꼈었던 기분같다.. 지루하다. 무료함도 언젠가 느꼈던 무료함이고,, 또 새로움도 언젠가 느꼈던 새로움이야 이러면서 금방 실증을 내겠지.  새로움에 지나치게 많은 뜻을 두고 있는 것일까. 내가 도대체 원하는 새롬이란 뭘까.

불필요한 말들은 없애고 정수만 말하고 거기서 출발했음 좋겠다. 근데 첫술에 배부를수 없지....우리들의 만남이란 정수 가까이 가기도 벅차다.. 아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답답은 하고 미친다.  지금은 아주 사람이 지겨워서.. 나까지도 지겨워지는 지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을 읽고 있다.  

1권은 잘 안읽히더니 2권은 그래도 잘 넘어갔다. 스완의 사랑편이다..작년 읽었을 때 그냥 한마디로 스완이 콩깍지 썼다가 벗었다. 그렇게 정리했었는데,, 지금 보니 장난이 아니다. 너무 사랑해서 감당이 안되서 아주 사라져버리길.. 온갖 망상의 끝을 보여준다. 포기하려고 골백번 맘을 먹지만 또 금방 무너져 버리고 마는 사랑앞에서 바보천치가 되고 마는. 프루스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의 끝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 한계를 넘은 지점에 감동을 받고 카다르를 느끼는 것이겠지.. 누구가 갈수 있는 길에서 조금 더 가는 것.. 어떤 느낌에서 더 나아가는 것... 스완은 스완이 느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도 잘 모르겠지만 마르셀은 다 알지 않는가? 그렇게 다 조각조각 분석하고 나면 그 고통도 잘게 나누다 보면 잘아질까. 너무나도 풍부한 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표현을 위한 표현, 재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계를 넘으려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가장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모습이 전율이 느껴졌다.. 암튼 아직 갈길이 머니 부지런히 읽어야징^^

루시드 폴을 듣고 있다.. 평범한 사람. 걸어가자...  "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지..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때 기억조차 없을때, 두려움에 떨릴때 눈물이 날 부를때, ,.,,, 걸어가자..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   

그대 떠난 그날오후 그대모습 잊을수가 없네. 날 말리다 터져버린 그대울음 초여름의 거리.. 비를 부르던 거리의 슬픔 시간은 다시 지나가고 비는 멈췄네. 서서히 밀려오던 군화소리, 대검소리. 지쳐가던 사람들. 하나둘씩 쓰러져... " 레미제라블"   

아마 5.18을 두고 만든 곡인가 부다. 너무 처연하다..  

이번달은 프루스트에 올인해야겠다. 좀 정독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프루스트가 말한 기억이 물질이라는 말... 기억이 존재하는 것은 물질성을 띤다는 말.. 아아 좀 알것 같다. 과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존재했었고 그것이 기억이라는 물질로 남아있다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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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굶고 있다. 수요일 저녁부터,,, 통짜 굶는 것은 아니다. 효소다이어트 중... 하루에 즙 다섯개랑 함초 조금 가지고 연명하고 있다.. 배는 조금씩 고프긴는 하지만 견딜만하다..  

살도 한 3~4kg빠졌다.. 하루에 한 500g 이상 빠지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는 거의 무리는 없다. 약간 힘없기는 하지만 속은 편안하고 몸도 가벼워서 괜찮다. 먹지 않으면서 계속 식구들한테는 진수성찬으로 식사를 만들어주고 계속 물어본다. 

" 맛있냐? " . " 정말 맛있냐?" ㅡ,.ㅡ 

식구들 먹는 것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근데 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절식을 하지 않았다면 먹었을 어마어마한 음식량을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거 안먹어도 내가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데 너무 많은 음식을 먹고 살아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각의 노예가 되서 말이다.  

이기회에 술하고 담배, 커피까지 끊는 중이다. 이틀째 머리가 좀 아프더니 나름 괜찮다. 약간의 금단증상이 있긴하지만 어떤 것의 금단증상인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잠을 잘 잔다.. 그동안 내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알콜도 중독이라고 생각했는데 괜찮고,, 그동안 내가 의지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큰 것이 아니였구나 생각이 든다. 아직 4일 밖에 안되었으니 방심금물.  

그보다 이제 술이고 머고 다 끝이다. 치과 갔더니 치주염 말기에 해당된다고.. 겁이 더럭 난다. 발치도 해야한다고 하고,,, 하지만 무절제한 생활의 결과다.  

이기회에 내가 꿈꾸던 다른 삶을 살아보는 기회로 삼아야지. 건강한 삶으로....  

오늘만 잘 버티면 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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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인문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대학원을 간다.?아니면 이렇게 인문학강좌들으러 다닌다. ?대학원을 간다면 학위까지 받아서 아예 이것만 하고 싶다는 것이다.이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강의를 계속 듣는 것은 직장과 가정 분리된 삶이 계속되기에 나는 불편하다. 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이 불편함이 정리되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열정이 많은 것은 아니고,,,

기억은 중요하다.  똑같은 행동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기억이 없기 때문인가, 있기 때문인가. 뒤늦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때 나는 망각을 한것인가. 아니면 내 신체의 흔적들이 무의식적인 조종을 한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기억에 문제와 같은 층위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제대로된 질문을 구성한다는 것. 생각을 좀 많이 혹은 정리를 해야한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세계는 동일하지 않다. 비슷할 뿐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 그 세계를 이해하는 또 무수히 많은 세계들이 있다. 그 세계들 사이를 부유할 뿐 그 섬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게 인간일까.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 똑같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냥 비슷할 뿐 이해와 공감. 취향 다만 비슷할 뿐이다. 비슷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사람은 욕심을 낸다. 동일하고 싶어서. 하지만 가당치않다. 그 욕심을 버리면 그나마 분노하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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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시간이면 끝.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안팎으로 족족 죽여라! 중국 유교사상의 완전한 안티 임제스님을 배웠다.  

무위진인  우리를 검열하는 것들을 무화시키고 죽여버려라. 임제스님은 너무나 통렬하게 외친다. 일상의 내모습은 페르소나의 갇혀 답답해 하고 있지만, 그것을 벗어버리는 순간의 자유를 난 대체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오래 노예의 몸의 살다가 그 자유가 두려운 것은 아닌가.  

페르소나를 무조건 벗고 살지는 못한다. 내공이 쌓이면 점점 그 가면의 두께는 얇아지겠지. 내가 더 많이 튀어나오겠지.  일상의 관계 속은 허위의 관계들은  정리하자.  

자기욕망에서 타인의 것을 제거한 나머지의 자기욕망을 발견하기. 그 타자의 욕망도 또 다른 타자의 욕망인 것들. 내 욕망의 끝. 욕망의 들여다 보았을때 너무나 보잘것 없다고 느껴진다.  그 욕망의 덩어리에서 좀더 타인의 것을 제거 하고 나면 내 욕망조차 비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짜 내욕망인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 그동안 시간 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를 부수면서 제작하기. 내 육체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자의식을 버리기전에 자의식이나 똑바로 보는일부터.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 내가 걷는 것이 길이 된다..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걸어갈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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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 우발성을 강조했던 중국의 유물론자
왕충은 한나라시절의 학자로 동중서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동중서는 춘추번로 ‘왕도통상’ 저작에서 왕은 하늘 아래에서 땅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무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꿈꾸었던 왕으로 동중서의 논리의 위험성을 파악하여 동중서의 주장은 후세에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왕충은 종교적 사유에서 가장 먼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기우제라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동물세계에 문명이 없는 것은 동물은 문명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동물세계에는 종교가 필요없다. 동물세계에서는 기우제가 없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인간 뿐이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하늘이 인간의 정성을 받아들여서 비가올때까지 정성을 쏟는 것이다. 인간은 제물을 바쳐서 비가 오면 우리의 정성이 통했다고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안감으로 그냥 비를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우제는 종교적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 기독교정신도 기도를 통해서 성사가 되면 나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하고, 성사가 되지 않을 때는 나의 정성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실체가 있다고 믿는 그 논리 안에서는 그 바깥의 것은 받아들여질 수 가 없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 사유를 강력히 거부했던 왕충은 사건은 우발적인 마주침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노력여하, 원인과 결과로서 그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걸어가면서 교차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영영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고, 마주칠 수도 있는 법이다.
세계를 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우발성(contingency) 와 필연성(neccessity)일 것이다. 왕충은 당연 우발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유학자들은 하늘과 땅이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낳았다고 하지만, 이 말은 허황된 것이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기를 합할 때, 인간은 우발적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주친다(遇)는 것은 능력을 미리 닦아 두는 것도 아니고, 유세할 내용을 미리 갖추아 두는 것도 아니지만 군주의 마음에 우연히 맞게 되기 때문에 마주친다고 한 것이다. 만약 군주의 마음을 헤아려 유세할 내용을 조절하여 존귀한 지위를 얻었다면, 이것은 잰다라고 하진 마주친다고 하지는 않는다. ”  왕충은 마주친다는 것이 미리계획하여 만나는 것이 아니며 미리 계획된 것에 의하여 마주치는 것은 잰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세상일이라는 것이 모두 우연히 발생하고 마주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왕충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갈때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인 것 같다. 어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노력이 내재된 채로 갈 것이지만, 그 길을 걸어가면 서 만나게 되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안고 걸어가야만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선한 길을 가라는 것이 왕충의 충고이다. 이 충고는 반대로 원인에도 우리가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결과에 따른 무수한 원인을 추적하고 아니면 인연과 운명을 강조하면 결과를 껴안지 못한다. 원인, 운명보다는 앞서는 것이 우연한 교란현상이 아닐까. 어차피 세상은 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냥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왕충에 충고이다. 
 

眞人事 大川命이란 말도 있다. 최선은 다하고 그에 따른 결과는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나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자신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찌질한 내 모습, 나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는 것은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왕충의 사상은 흡사 공사상하고 비슷한 모습을 띤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공사상은 세상일의 결과와 원인에 집착하는 우리에게 왕충이 우발성의 철학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유하게 만든다. 공사상이 어떤 측면으로는 더 넓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방법 중에 하나, 우발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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