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 우발성을 강조했던 중국의 유물론자
왕충은 한나라시절의 학자로 동중서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동중서는 춘추번로 ‘왕도통상’ 저작에서 왕은 하늘 아래에서 땅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무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꿈꾸었던 왕으로 동중서의 논리의 위험성을 파악하여 동중서의 주장은 후세에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왕충은 종교적 사유에서 가장 먼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기우제라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동물세계에 문명이 없는 것은 동물은 문명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동물세계에는 종교가 필요없다. 동물세계에서는 기우제가 없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인간 뿐이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하늘이 인간의 정성을 받아들여서 비가올때까지 정성을 쏟는 것이다. 인간은 제물을 바쳐서 비가 오면 우리의 정성이 통했다고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안감으로 그냥 비를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우제는 종교적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 기독교정신도 기도를 통해서 성사가 되면 나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하고, 성사가 되지 않을 때는 나의 정성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실체가 있다고 믿는 그 논리 안에서는 그 바깥의 것은 받아들여질 수 가 없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 사유를 강력히 거부했던 왕충은 사건은 우발적인 마주침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노력여하, 원인과 결과로서 그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걸어가면서 교차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영영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고, 마주칠 수도 있는 법이다.
세계를 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우발성(contingency) 와 필연성(neccessity)일 것이다. 왕충은 당연 우발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유학자들은 하늘과 땅이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낳았다고 하지만, 이 말은 허황된 것이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기를 합할 때, 인간은 우발적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주친다(遇)는 것은 능력을 미리 닦아 두는 것도 아니고, 유세할 내용을 미리 갖추아 두는 것도 아니지만 군주의 마음에 우연히 맞게 되기 때문에 마주친다고 한 것이다. 만약 군주의 마음을 헤아려 유세할 내용을 조절하여 존귀한 지위를 얻었다면, 이것은 잰다라고 하진 마주친다고 하지는 않는다. ”  왕충은 마주친다는 것이 미리계획하여 만나는 것이 아니며 미리 계획된 것에 의하여 마주치는 것은 잰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세상일이라는 것이 모두 우연히 발생하고 마주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왕충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갈때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인 것 같다. 어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노력이 내재된 채로 갈 것이지만, 그 길을 걸어가면 서 만나게 되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안고 걸어가야만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선한 길을 가라는 것이 왕충의 충고이다. 이 충고는 반대로 원인에도 우리가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결과에 따른 무수한 원인을 추적하고 아니면 인연과 운명을 강조하면 결과를 껴안지 못한다. 원인, 운명보다는 앞서는 것이 우연한 교란현상이 아닐까. 어차피 세상은 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냥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왕충에 충고이다. 
 

眞人事 大川命이란 말도 있다. 최선은 다하고 그에 따른 결과는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나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자신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찌질한 내 모습, 나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는 것은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왕충의 사상은 흡사 공사상하고 비슷한 모습을 띤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공사상은 세상일의 결과와 원인에 집착하는 우리에게 왕충이 우발성의 철학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유하게 만든다. 공사상이 어떤 측면으로는 더 넓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방법 중에 하나, 우발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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