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임상 사례 - 일상적 진료를 위한 테크닉
브루스 핑크 지음, 김종주 옮김 / 하나의학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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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보다 무의식 


       브루스 핑크는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 자체가 일종의 ‘저항’이 걸렸다고 보았다. 정신분석의 저항인 ‘방어기제’를 해석하는 것에 몰두한 점 자체가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이다. “부정과 전치, 정동의 분리, 타협형성, 생략, 전환, 자기에게로 향한 반감, 반동형성, 정동의 억제, 투사, 취소 등” 이러한 방어전략을 해석하다 무의식에 다다르는 프로이트의 목표를 잊어버린 것이다. 알 수 없는 증상에 대해 이러한 ‘해석’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일종의 향락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꿈해몽을 찾아보듯이, 분석상황에서 방어전략에 네이밍을 붙인 다는 것 자체가 쾌락의 측면이 있다. 증상에 이름을 붙이듯 말이다. 라깡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향락은 주지 않는다. 주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방어기제에 대한 얕은 지식마저 분석실에서는 중요한 취급을 못 받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정신분석가라면 이러한 이론에 대해 알아가고, 흡수하고,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편견이 되지 않도록 투쟁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의 믿음

      무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저자는 1장과 2장에 걸쳐 어떻게 무의식이 고안되고, 그것과 조우에 이르는 테크닉에 대해 언급한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소망이 무의식적인 것이 되어 우리의 마음에 격리된 것으로 보았다. 격리된 그 기억은 다른 기억과 연합하여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간단한 테크닉은 모든 상황을 분석수행자와 검토하고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다. “촉발원인”을 추적하여 기원을 찾고 증상을 구조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억압된 생각과 소망,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린 거기에 접근할 수 없다. 의식적인 것은 무의식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꿈, 실착, 재담 등’ 과 같은 오류에 의해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무의식은 ‘내부의 이방인’과 같은 것이므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토이지만, 정신분석을 통해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곳은 믿지 못하면 영영 가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무의식을 컴퓨터에서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비유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것은 점진적으로 우리를 감염시키고 망쳐놓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안나 O. 라는 꽃

      안나 O.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하게된 중요한 첫번째 사례이다. 이미 무의식의 개념이 있었지만, 프로이트는 안나O의 사례로 무의식을 발명한 것과 다름없다. 종종 도라와 안나가 헷갈리기도 했는데, 모두 병약한 아버지와 관련된 히스테리 신경증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안나의 증상은 다양하고도 기괴하였다. 그녀의 증상 중에 하나인 신경성 기침은 그녀의 분열된 두 마음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좋은 자기와 춤추러 나가고 싶은 나쁜 자기와의 갈등속에서 이웃집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를 가리는 기침이 터진다. 저자는 안나의 증상은 “분열 속의 궁여지책”이며, “증상은 곤경속에서 자신을 구출”한다고 말한다. 또한 갈등에 대한 “타협”이라고도 말한다. 나아가 라깡은 증상은 향락(주이상스)이라고 까지 말하는데, 증상이 상실한 것을 보상해 준다는 측면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다. 안나의 증상의 기원은 마지막날 상기되었다. 딸의 도리를 다하려는 그녀의 노력, 욕망의 포기가 궁극적으로 증상의 원인이다. 대타자가 강요한 ‘좋은 딸의 이미지’ 때문에 그녀는 병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자신을 속이면서 하다가 병이 든다. 신체적인 병이 오던지, 정신적인 병이 오던지, 우리의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억압된 것은 어떻게 돌아오는가? 우리는 억압하고 그것을 격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갖은 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마비, 거식증, 구토 등등 그것을 신체화 증상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이런 신체 증상이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강하게 부정”할지도 모른다. 정신분석에서 이러한 부정은 무의식이 멀리있지 않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무의식은 의식의 정반대이다  

   일반적으로 정신분석은 매뉴얼이 없고, 테크닉이 없이 분석수행자 개별성에 입각한 실천이라고 말한다. 테크닉이 없는 것이 테크닉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의식에 이르기 위해 저자는 분석가들이 알아야 할 몇 가지 방어기제를 무의식에 접근하는 테크닉으로서 설명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테크닉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테크닉들을 장착하고 일상생활에서 타자들의 말을 들으면 많은 경우 곧이 곧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오류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단정짓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프로이트는 ‘중요한 사건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등록되고 기록’ 된 것으로 여겼고, 이를 밝혀내기까지는 ‘수많은 연상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분석가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분석수행자 자신이 ‘부정’하거나 ‘부인’하거나, 혹은 ‘과도히 열심히 시도하는 것들’ 등 이다. 정신분석에서는 “하찮음”을 보호하는 테크닉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의식은 무의식에 대해 무지하므로, 분석수행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중요한 것은 하찮은 것이 되고, 하찮은 것은 귀하게 되는 역전이다. 이러한 역전은 의미의 사슬을 끊는다. 무의식의 참여를 위해 분석가는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 모를 언어로 분석수행자의 언어를 끌고간다. 특히나 부정적인 단언을 주목한다. 저자는 “아니오”를 제거해 보라고 말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기도 하다. 
 무의식적 생각을 변장시키는 것은 “투사”이다. 텍스트 속에 사례는 한마디로 말해서 “바람핀 놈이 의심한다”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본다. 만약 ‘의처증, 혹은 의부증은 바람피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는 것인가?’ 혹시 무의식적 진실이 의식에 투사된 것은 아닌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타자인가? 내 자신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예요”라는 말을 많이 하다. 또한 해석할 수 없는 꿈은 “개꿈”이라고 말한다. 의식적으로는 유치하고, 사소한 것들은 분석상황에서 포착해야할 무의식의 조각이다. 이 말이 나오면 일단 주목해보자. 한편, 무의식의 의식의 정반대라는 말은 우리의 ‘증오’를 걱정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포 함된다. 억압된 모든 소망이 반드시 두려움, 걱정, 불안의 형태로 변장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소망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처럼 전치된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석 수행자의 모든 말을 반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언제나 ‘번역’하기 까다로운 일종의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정동의 블루스

      브루스 핑크는 강박증자는 사고와 정동이 분리되어 있다고 말한다. 개인 분석과정에서 사건은 기억나지만 거기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와 슬픔은 적중하지 못하고 항상 엉뚱한 자리에서 터졌다. 히스테리자는 기억을 억압하고 정동이 자유롭게 ‘미친듯이’ 떠다니다고 말한다. 지인 중 하나는 뭘 물어보면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큰 기침 소리, 터져나오는 짧은 혼잣말 등의 증상을 가지고 있다. 강박증과 히스테리 둘 다 정동은 억압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정동을 ‘무의식으로 가는 티켓’이 된다고 말한다. ‘카타르시스’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이르는 열쇠로 삼자는 것이다. 나 자신의 고고학자 그리하여 이 모든 테크닉을 이용하여 우리 유물을 발굴해야 한다. 나 자신의 고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증상의 기원 뒤에는 대타자의 대타자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는 일련의 우연이 존재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증상의 기원을 추적하여 그 기원에 다다르면 증상이 소멸되는가? 저자는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말치료를 통해 증상이 해석된다면 그것이 해소된다고 보는 관점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교육분석을 마쳤지만, 증상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근본환상이 무너지고, 역사는 다시 씌어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 제자리인 듯 불안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 양상은 조금 달라져 있긴 하다. 적어도 이제 그것이 스스로가 만든 주이상스의 지옥임을 알아볼 수 있기에, 증상과의 동거가 가능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 날카로운 기표들도 손에 없고, 이제 더 이상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 무의식이 문을 닫은 것만 같지만, 용암은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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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1-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로운 이웃님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댓글 남겨야할 거 같아서 ㅋㅋㅋㅋ 저는 프로이트를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방어기제’를 해석하는 것에 몰두한 점이 향락을 발생시킨다 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아요.
그 많은 분석, 해석, 개념화 자체가 서구(철학)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그 자장안에서는 프로이트도 자유롭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라벨링해서 분류에 가둬버리는 거… 명쾌하긴 하지만 언제나… 갑갑하잖아요…?!..혼자 도가도비상도 외챠보고갑니다..!

바람의_피부 2024-11-10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렇게 긴 댓글은 처음입니다. ㅎㅎ 프로이트는 그 이름들을 발명했다는 점에서 주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만약 알 수 없는 증상으로 고통받다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작은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쾌락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라깡에 관심을 가지신거 같아 몹시 반갑고, 정성들인 포스트도 잘 읽었습니다~

공쟝쟝 2024-12-11 17:55   좋아요 0 | URL
그 작은 안도감...을 쾌락이라고 표현하시네요!
저는 ‘말‘에 관심이 많아요. ...... 사람들이 다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
라캉은 작년부터 입문서 등등 열심히 두리번대고 있는데 점점 정신분석에 호기심이 폭발해서요....
바람의 피부님과 이웃하면서 글을 더듬더듬 읽어보고 싶습니다.

바람의_피부 2024-12-1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네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진 분이 계셔서 반갑습니다. 이미 공쟝쟝님께서는 ˝의미가 없다는 의미˝를 알고 계시니, 정신분석의 핵심을 꿰뚫고 계신 듯 보이네요^^ 티스토리에서도 정신분석관련 블로그(studiountold)를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있으시면 놀러오세요. 그리고 ‘말‘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저도 ‘무의식의 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사사키 아타루 읽고 계신던데,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느리게 즐겁게 함께 읽어나가 보아요

공쟝쟝 2024-12-19 20:10   좋아요 0 | URL
좋아요, 느리게 즐겁게 함께 읽어나가보아요!
정신분석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냥 받아봐야겠다 싶어졌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냥은 아니겟지요? ㅋㅋㅋ) 블로그 즐겨찾기 해두겠습니다! 또 만나요~

바람의_피부 2024-12-1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네 꼭 받아보세요. 인생의 변화가 찾아온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