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늘구멍으로 걸어간 낙타
구자명 지음 / 우리글 / 2009년 12월
평점 :
오랜만에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구자명이란 이름은 낯설었지만 구상 시인의 딸이란 것을 알게 되어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구상시인의 시비가 대구근교인 칠곡에도 있고 그 분이 대구에서도 활동을 하였던 분으로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작가는 이 책 속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세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 종교에 관한 이야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등
돌아가신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아버지에게 마지막까지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었다던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었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을 줄 알았다고 하면서도…….
어릴 적 아버지에게 볼기짝 맞은 것이 계속 응어리졌었다고 말하는 작가.
나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내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자상한분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도 서먹했던 사이가 나이가 들고 결혼해서 떨어져 살다보니 더 멀어진 것 같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현모열전] 이라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열된 교육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풍자해 놓았다.
맹자어미상을 받은 사람은 기부금을 내어 자식이 학교를 빨리 졸업할 수 있게하고,세도가의 집안과의 결혼을 시켰고,
석봉어미상을 받은 사람은 유복자인 아이가 영재로 키우기 위해 삯바느질을 하다가 교육비가 모자라 술청 접대부가 되어 아이의 교육을 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자식이 일류대학만 가면 뭐든지 다하는 요즘부모들은 뜨끔할 것이다.
책에도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자극적인 양념과 조미료로 버무린 것도 있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찌릿한 것들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참 더디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자극적인 맛이 없는 책이었으니까…….
이미 나의 뇌와 눈은 자극적인 양념 맛에 빠져있어서 담백한 맛의 책을 맛보기엔 진한 책맛의 인이 베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맛은 질리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한번 본 소설책은 다시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 없기 마련이다.
작가는 각종매체의 음란한 글을 보면 몸이 욱신거린다고 한다. 그때 고전을 읽으며 울렁거리는 마음 정리 한다고 하는데,
내게는 이 책이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