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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평점 :
무척이나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인 80년대 후반에는 시가 많은 인기를 얻을 때였다.
그때는 시도 열심히 읽고 외우고 따라 적으며 시에 빠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에 들어서서 바쁘게 살다 보니 시와 멀어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시를 읽게 되었다.
시집 한 권이 통째로 내 얘기인것 같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훌쩍 건너뛰어 세월이 한 참 흐르는 동안 시는 거의 읽지 않았다.
감성에 빠질만한 여유도 없었다. 시라는 짧은 글을 읽으려면 마음에 사랑이나 감성이 가득차야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시집은 어머니 학교이다.
나도 어머니가 되었고 아니 아직은 엄마라고 해야겠지만, 나의 엄마도 시집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나이 가까이에 있고 보니 시집을 대하는 느낌이 좀 특별한 것 같다.
그리고 시어는 충청도 특유의 느긋한 사투리로 되어 있어서 정말 시인의 어머니가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갈 수록 마음이 아픈 단어가 되고 있기에 시집 어머니 학교를 읽고 나서도 이 느낌을 어떻게 적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냥 넋을 놓고 있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시인의 어머니지만 강단있고, 사리분별 확실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이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발견하게 된다.
시인이 이 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적은 것이라 했다.
시를 읽어보면 정말 어머니가 시인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이 보인다.
시집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어머니는 풀이 잠잘 때 잡 뽑힌다고 한다. 비오거나 안개 낀 날에도 그렇고, 햇볕에 쨍쨍하는 날에 풀을 뽑으면 그대로 말라 버리는데, 비오거나 흐린날에는 그대로 누워있는 걸 보면서 자신도 풀처럼 저렇게 잠들듯이 가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중3 빨갱이라는 시가 있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전교조 활동으로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을 배웅했다는 죄목으로 빨갱이가 됐다고 한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식대신 무릎끓고 잘못을 빌고 있을때 우리 어머니는 또 멋진 한 방을 날리신다.
학교 교육은 최종적으로 교장 선생님이 책임지는 거 아니냐?
잘못은 교장 선생님이 해놓고 왜 겁주고 윽박지르냐?
내가 교육청하고 신문사에 죄 따져 볼거다. p63
삐딱구두라는 시를 보면 외박도 안하던 남편이 삐딱구두에 양산 쓴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 이야기가 적혀있다.
어머니는 집안 전답에 시어머니 두분, 자식들 까지 모두 줄터이니 삐딱구두와 양산은 자신에게 달라고 해서 그 여자가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멋진 어머니의 한 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