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과 정약용 - 개정판 다큐동화로 만나는 한국 근현대사 1
이정범 지음, 이용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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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1762년(영조38년)에 태어나 1836년 (헌종 2년)에 돌아가셨다.

실학자이면서 천주학을 받아들였고 긴 세월을 유배생활로 보내야 했지만, 500권을 책을 남기셨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을 설계 하기도 하였다.

수원 화성을 건축할 당시 돌을 나르는데 사용하였던, 거중기, 녹로를 만들어 공사기간을 10년 예상 하였던 것을 3년이 안되어 완공 될 수 있게 하였다.



영,정조 시대의 이야기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극적 사건 때문에 드라마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어 그 시대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진 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뒤주 속에 가둬서 죽여야만 했던 정치적 상황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낮추고 많은 위협속에서도 왕의 자리에 올라 영조의 뒤를 이어 탕평책을 펼치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었다.



정약용의 생애를 돌아보니 파란만장이라는 단어가 딱 맞아 떨어지는 듯한다.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14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해야했고 해배가 되었지만 정약용을 시기하는 인물의 농간으로 4년동안이나 풀려나지 못해 형님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긴 유배생활 덕분에 우리는 정약용의 엄청난 책을 선물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책으로 1표2서라고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흠흠심서가 그것이다.

특히 목민심서의 목민의 뜻은 목동이 양떼를 다루듯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지금도 많은 귀감이 되는 책이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약용 형제와 천주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시기에 천주교를 접하게 된 형제와 일가친척들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뿌리가 되기도 하였다.

정약종은 천주교 4대 박해의 하나인 신유 박해에 목숨을 잃었고, 정약용과 약전 형제도 그 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수원화성과 정약용에서는 수원이 세계 최초의 계획도시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화성이 건설 될 당시 만든 화성성역의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가능하게 해준 기록유산이기도 하다.

화성성역의괘 덕분에 화성이 변란이나 사건으로 유실되는 경우에도 언제나 복원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성의 아름다운 모양과 합리적인 설계는 지금봐도 감탄이 절로 난다.

이 책의 주인공 정약용을 통해 조선 후기 정치상황과 백성들의 생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형벌인 유배에 대해서도 잘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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