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다녀왔다. 시댁은 대구, 친정은 서울, 내가 사는 여기는 청주여서 결혼 이후 전국구로 움직이고 있다. 아무튼, 이번 대구행은 아버님의 퇴임을 앞두고서.
아버님은 평생 행정공무원으로 지내시다, 이번에 퇴직을 하셨다. 2005년 6월 30일,까지라면서 34년 4개월이라고 아버님은 말씀해주셨다. 최근 6개월간은 그 지역 문화회관관장직으로 계셨다. 나와 그이는 아버님이 퇴임식을 하기를 바랬다. 평생을, 참 성실하게, 그 어떤 이보다 청렴하게 일하신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나아가 아버님의 인생의 또다른 졸업식을 치루는 일이기도 하니까, 충분히 기념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님은 퇴임식을 거절하셨다.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이유,때문. 마지막까지도 아버님의 곧은 성격을 포기하지 않으신 모습도 참 존경스러웠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
아버님의 마지막 출근길을 배웅하고, 마지막 퇴근길을 맞이하기 위해 대구에 내려갔다. 자식된 도리로 퇴임식을 하시라고 강경하게 말씀드리지 못한 것도 죄송한데, 식사 대접도 못하고 말았다. 벌써 토종닭 두 마리를 맛나게 고아놓으셨던 것. 어머님 말씀으로는, 나가서 먹자고 했는데, 아버님이 애들 오는데 해 멕이자고, 부러 토종닭(고기는 무척 질기다)을 사다, 나는 임산부인 관계로 다시 따로 두 마리를 고아 놓으셨던 것이다. 나야 철없어서 맛있게 먹었지만, 어쩐지 참 죄송스러워서 내내 마음이 그랬다. 그래도 아버님은 부러 내려와주어서 고맙다고, 그 얘기를 자꾸 건네신다.
저녁을 먹고서, 아버님은 그이와 약주를 드셨다. 다른 친척분들에게도 연락도 안 하시고, 정말 말 그대로 조촐하게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시기로 하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조금 좋은 지갑과, 그 지갑에 조촐한 용돈을 넣어드린 것. 그리고 아버님의 퇴임을 축하하고, 아버님의 건재하심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적은 편지. 아버님은 선물을 열어보시고, 편지를 꼼꼼히 다 읽으시고는 더 활짝 웃으신다. 고맙다는 말씀을 너무 많이 하셔서 오히려 더 송구스럽기만 했던.
잠자리에 들려고 거실을 치우고 하는데, 아버님이 나를 불러 옆에 앉히신다. 그리고는 손을 꼭 잡으시면서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 해주신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아버님의 손. 평생 책상 앞에 앉아 계셨을 손인데, 생각보다 투박하고 거친. 아버님의 고된 일생이, 아버님의 강직한 일생의 흔적처럼 느껴져서 나는 괜히 울먹였다. 아버님이 두루두루 해 주신 말씀들. 우리의 건강한 일상과 더불어 우리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시는 말씀, 그리고 잊지 않고 또 말씀해주신 그 고마움의 표현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다음 날, 아버님의 마지막 출근 양복과 와이셔츠를 다리는 어머님 앞에서 그이가 농담처럼 '이제 엄마도 퇴직이네-' 라고 말해서 식구들은 웃었지만 어쩐지 아련하기만 했다. 퇴임식 대신 조촐하게 관내행사로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님의 양 손에는 큼지막한 꽃다발과 선물들, 그리고 대통령 이름이 적힌 표창장과 훈장이 들어 있었다. 아버님 평생의 수고가 그 훈장 하나로 증명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식구들은 모두 둘러앉아 그걸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아버님에게 그동안 정말 애쓰셨다고, 아버님이 그동안 건재해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의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배웅하는 어머님께 나는 차마 아버님에게는 드리지 못한 속내를 보이고 말았다. 아버님이 쓸쓸하실까봐 걱정이 된다는. 그러자 어머님도 눈물 그렁거리시면서 나도 이렇게 쓸쓸하고 속이 그런데 본인이 더 하시겠지, 하신다. 그런 내색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 분의 마음이 조금은 그러하시겠지. 시끌거렸던 아들내외 가고나면, 큰 집에 두 분 남게 되시면 마음 더 스산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이 쉽지 않기도 했던.
이제 아버님의 일상은 예전보다는 조금 더 느슨하고 예전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지실 것이다. 7월 말에는 어머님과 함께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신다고도 하시고, 이래저래 살짝 보여주시는 아버님의 계획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걸어오셨을 아버님. 이제 아버님의 노년이, 이제 다른 의미로, 다른 무게로, 다른 모습으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보이신 몸소 실천하신 삶의 겸허함에 대해서, 삶에 대한 진지함에 대해서, 삶에 대한 성실과 삶에 대한 노력에 대해서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