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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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소세키의 '그 후'를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전기 3부작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최근 '도련님'을 다시 읽고 나서야 오래전 구입만 하고 읽어내지 못한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가 보였다. '도련님'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전기3부작을 읽어 볼 기회가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란히 세 편을 읽는 것은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조금은 건조하게 느껴진 '산시로'를 읽고 나서도 '문'까지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갖게 했다.만약 3부작이란 점을 염두해 두지 않고 오로지 '산시로' 만 읽었다면 문까지 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문'만 골라 읽었다면 소스케에 대한 감정이 또 달랐을 것도 같고. 이어진 듯 다른 느낌이 갖는 매력을 느낄수 있었다. <산시로>와 <그 후>에서 인간이 얼마나 열등한 존재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면, <문>에서는 그럼에도 열등한 인간이란 점을 감내하려는 인물이 보여 애닮게 느껴졌다. 가난하지만 부부애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는 소스케와 오요네에게는 어떤 불안이 있어 힘든 것일까.... 따라 가다 어느 순간 뒤통수를 얹어 맞은 듯한 기분이...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죄라고 불리워질 만한 부분이 있었다. 문제는 부부 역시 그런 상황에 대해 애써 항변하기 보다 오히려 숙명처럼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다. 가난도 ,그들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원죄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으로 원죄가 씻겨 나갈수 있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안이 한계치에 달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소스케는 참선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 종교를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정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252~253쪽

 

열등한 존재이면서도, 열등하지 않은 인간인척 하는 이들 보다는 소스케가 인간적인물은 아닐까 생각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주인공 남자가 어떻게든 문을 열고 나가거나, 끝내버리는 결말일텐데.. 소세키의 <문>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인간적인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머리로는 운명 앞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하지만..현실에서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은 얼마나 많은가? 핑계 같은 이유들이라 할 지라도 '강상중과 함께 읽는...'에서 지금은 '문'이 가장 좋다고 느껴진 이유에, 내 역시 좋아요를 눌렀다. 비교하며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감히 그럴 깜냥도 되지 않을테고..) 그런데 '문'이 제일 좋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 탓인 것 같다.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에는 저마다 사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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