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끝 / 송곳

 

끝이 뾰족한 송곳. 종이를 뚫거나 구멍을 팔 때 쓰는 물건이다. 송곳의 기능은 날카로운 끝에
있다. 그래서 '송곳' 하면 날카로움이 먼저 떠오른다. 과연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인가?
송곳은 날카로운 끝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날카로운 끝'은 송곳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
고 나머지 부분은 조금도 날카롭지 않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날카롭지 않은 부분들은 내 몸의 지극히 작은 부분인 '날카
로운 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이 날카로운 끝 한 점에 수렴(收
斂)될진대,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니겠지."
"아무렴, 끝이 뭉툭한 송곳은 더이상 송곳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자네의 '뾰족한 끝'은 무엇인가?"
"……?"
"그것 아니면 자네가 자네일 수 없는 그것은 무엇인가?"
"……"
"참고 삼아 말해 주지. 바울로라는 사람은 일찍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네."

송곳의 날카로운 끝에 가슴이 찔려 나는 지금 아무 말 못하겠다. 다만, 바라건대 나 또한 바울
로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 그리하여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나
또한 곧 사랑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

(이현주 씀 / 물과 나눈 이야기 / 이레) 중에서

      ***

나의 송곳을 무엇이라 부를까? 사랑, 정의, 행복....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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