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곧이어 천여 명에 가까운 여인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쉬자 않고 달려오느라 머리가 헝클어지고 산발이 된 여자들은 해질 대로 해진 누더기 사이로 굶주림으로 죽어갈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느라 지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품에 안고 있던 어린 자식을 초상과 복수의 깃발인양 번쩍 추켜들고 흔들어댔다. (93)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101)

그의 입에 쑤셔넣은 흙은 그가 내주기를 거절했던 빵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빵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그에게도 전혀 득 될 게 없었던 것이다. (122)

그는 지금까지 자기 마음속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째서 갱들을 가로지르며 광란의 질주를 벌인 이튿날 그토록 역겨움이 느껴졌는지를 자문해 보았다. 하지만 차마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례로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에게 혐오감만을 안겨주었다. 동료들을 지배하는 천박한 탐욕과 상스러운 본능,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처절한 빈곤의 냄새, 그는어둠이 안겨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탄광촌으로 되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부심과 끊임없이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마음이 서서히 떠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부르주아의 정신을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었다. (137-138)

에티엔은 자신들의 불행이 저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의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144)

"그렇게 길게 얘기할 필요 없소이다." 참다못한 마외가 불쑥 퉁명스럽게 말했다. "백 마디 말보다 우리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가져와보란 말입니다." (162)

부자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여야 하다니,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197)

그는 그녀와 결혼해 깔끔하고 아담한 집에서 함께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빵만 먹고 살아도 충반할 터였다. 빵이 한 쪽 밖에 없다면 그건 그녀 몫으로 내줄 것이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사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265)

한 남자의 마음 속에 여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끝난 것이다. (268)

공포와 싸우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잠들어 있던 믿음이 다시 깨어났다. 그들은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이것은 대지가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대지의 동맥을 잘라냈기에 대지가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320)

"오, 맙소사! 꿈이 아니었어! ... 다시 시작되고 있어, 맙소사!"
또다시 악몽을 떠올린 카트린은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327)

"그럼 어쩌겠나?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따르는 수밖에... 다들 탄광에서 차례로 죽어간 것처럼 그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되겠지." (359)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그들을 벌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총을 쏘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주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될 터였다. (360-361)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서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369)

여전히, 땅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3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갱은 한입에 이삼십 명의 사람들을 집어삼킨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단번에 꿀꺽 삼키는지 목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1권. 46~47)

삼십여 분간, 갱도는 그런 식으로 채탄부들이 내리는 적치장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들을 집어삼켰다.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로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 (1권, 48)

탐욕스러운 갱은 하루치 식량인 7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을 집어삼켰다. 이 시각, 그들은 거대한 개미집 같은 이곳에서 고목을 갉아먹는 벌레처럼 대지 곳곳에 온통 구멍을 내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지층에 짓눌린 무거운 정적 속에서도 바위에 귀를 바짝 붙이노라면, 한창 활동중인 인간 곤충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권, 64~65)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어서요." 자샤리가 대답했다. "여기 좀 보세요. 틈이 갈라져 있잖아요." 이러다 진짜로 무너질까봐 겁나요."
하지만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 그럴리가! 무너지다니! 그리고 설사 정말로 무너진다 해도 그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었나.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는 결국 역정을 내면서 아들을 다시 막장으로 돌려보냈다. (1권, 70)

케이지의 작동이 잠시 멈춘 사이 카트린은 그들의 말에게 다가가 마치 친구에게 하듯 말을 건네며 쓰다듬었다. 땅속에서만 십 년을 보낸 하얀색 말은 바타유로 불렸고, 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바타유는 십 년 동안 전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지하의 어두운 갱도를 오가며 늘 똑같은 일을 하고 마구간에서도 늘 똑같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살이 두둑이 찌고 털에 윤기가 흐르며 호인처럼 생긴 바타유는 지상의 불행을 피해 땅속에서 현자 같은 삶을 영위하는 듯 보였다. [...]
이제 나이가 들어, 고양이를 닮은 놈의 눈은 대로 슬픔으로 흐려졌다. 어쩌면 막연한 몽상중에 자신이 태어난 마르시엔 근처의 물방앗간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스카르프 강가에 서 있는 물방앗간은 너른 목초지로 둘러싸여 있었고, 언제나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에서는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다. 거대한 램프 같은 것이었는데, 동물의 기억력으로는 그게 뭔지 정확히 기억해내기가 힘들었다. 녀석은 기운이 빠진 다리로 버티고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며 태양을 기억해내기 위해 헛되이 애를 쓰곤 했다. (1권, 97~98)

바타유는 광부들의 비아냥에거림에도 아랑곳없이 활기를 띠었다. 아마도 새로운 동반자에게서 바깥에서 실려온 좋은 냄새를 맡은 듯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풀숲에서 밴 햇볕의 내음을. 그리고 느닷없이 경쾌한 음악같은, 연민이 깃든 흐느낌이 느겨지는 낭랑한 울음을 터뜨렸다. 한줄기 바람처럼 실려온 아득한 과거의 추억을 반기는 환영 인사이자, 죽어서야 다시 땅위로 올라갈 수 있는 또하나의 죄수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권, 99~100)

이렇게 비참한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고된 노동 끝에 파김치가 된 아직 어린 여자들이 저녁이면 또다시 끝없는 노동과 고통에 시달릴 생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녀들이 항상 굶주림으로 고통받을 생명들로 자신을 채워간다면 이런 악순환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1권, 201)

아니, 이렇게 사는 건 분명 장난이 아니었다. 예전에 도형수들을 벌주기 위해서나 시켰을 법한 일을 짐승처럼 해내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러다 죽는 건 예사였다. 그런데도 저녁 식탁에서 고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삶이라니! 물론 굶어죽지는 않았다. 먹을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허구헌 날 빚에 짓눌려, 마치 빵을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빚쟁이에게 시달리지 않는가 말이다. 일요일이 되면 기진맥진해 잠을 자는 게 고작이었다. 유일한 즐거움이라고는, 술에 진탕 취하거나 마누라한테 아이를 만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맥주는 배를 너무 나오게 하고, 자식새끼는 키워놓으면 부모를 우습게 알았다. 그랬다, 정말 그랬다. 이렇게 사는 건 분명 장난이 아니었다. (1권, 260)

뭐라고! 그럼 우리 같은 노동자들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건가! 이제 머지않아 이 모든 게 달라지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노동자들이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일하던 시절에는 광부들은 탄광 속에서 마치 짐승처럼, 석탄을 캐내는 기계처럼 살아갔다. 언제나 땅속에 머물면서,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로. 그래서 그들을 지배하는 부자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광부들을 마음대로 사고팔며 그들의 살을 뜯어먹고 살 수 있었다. 정작 광부들 자신들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땅속 깊은 곳에서 광부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곡식의 낟알처럼 땅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어느 날 아침, 들판 한가운데서 그 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될 터였다. 그렇다, 인간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정의를 바로잡을 한 무리의 인간들이. (1권, 261~262쪽)

"행복해지기 위해 선한 신과 신의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스스로가 이 땅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 (1권, 264)

늙은 말이 자신의 동료 트롱페트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후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녀석은 갱 안으로 내려오는 트롱페트를 본 그 순간부터 동료에게 엄청난 애정을 느꼈다. 마치 노철학자가 젊은 친구에게 애정 어린 연민을 느끼며, 자신의 체념과 인내심을 나눠줌으로써 친구를 달래주고 싶어하는 듯했다. 갱내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트롱페트는 고개를 숙이고 기계적으로 탄차를 끌었다. 녀석은 어둠 때문에 눈이 멀다시피 한 채 늘 바깥세상의 햇빛을 그리워했다. 바타유는 트롱페트와 마주칠 때마다 머리를 쭉 빼고 흔들며 콧바람을 내면서 위로하듯 동료의 몸을 혀로 어루만져주었다. (1권, 292)

새로운 요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마치 정복당한 도시의 약탈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에게 하듯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억지스러운 유쾌함 뒤에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도로 쪽을 힐끗거리게 하는 은밀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다. 마치 굶어죽기 일보 직전의 사람들이 밖에서 그들의 식탁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듯했다. (1권, 321)

무엇보다 그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느낌, 그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느낌은 그의 자만심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과거에 한낱 기계공이었던 그가, 손이 시커멓고 때묻은 채탄부에 지나지 않은 그가! 이제 한 단계 높은 세상으로 올라선 그는 지적인 만족감과 안락한 삶을 맛봄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부르주아지의 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권, 353)

이러한 극단적인 빈곤함은 사냥군에게 쫓겨 토굴 속에서 그대로 죽기로 결심한 짐승들처럼 그들을 더욱 더 고집스레 버티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누가 먼저 포기하자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모두 끝까지 버티기로 맹세한 터였다. 그들은 그렇게 버틸 것이었다. 무너진 바위 아래 누가 깔려 있을 때도 모두 함께 버텨냈던 것처럼.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1권, 403)

갱은 체념을 배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학교였다. 열두 살 때부터 줄곧 불과 물을 삼켜왔던 그들에게 일주일 정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는 것쯤은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군인 같은 자부심으로 한층 배가되었다. 매일같이 죽음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희생정신을 체득한 광부로서의 자부심이었다. (1권, 403)

하지만 광부들은 이제 더이상 예전처럼 어두운 땅속에서 말없이 바위에 갈려 죽어가는 무지한 짐승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깊고 깊은 막장에서도 군대가 자라나고 있었고, 그 싹이 움터 자라난 수많은 시민들이 언젠가 뜨거운 태양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날 대지를 뚫고 세상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권, 4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절판


고구마 소주에 따뜻한 물을 살짝 섞어서 한잔 쭉 마시면 캬! 아주 끝내주죠. 여름에는 역시 선풍기를 틀어놓고 고구마 소주에 따뜻한 물을 섞어서 한잔 마시고 땀을 쭉 빼는 게 제 맛입니다.-25쪽

가끔 집사람이 출근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사실 너무 이른 시간이잖습니까? 그런 날은 회사로 도시락을 갖다 주는데, 아이들도 같이 와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갖다 준 도시락이 특히 더 맛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들어 있나봐요.-57쪽

원숭이가 먹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다섯 마리가 있으면 먹는 방법도 다섯 가지죠. 오이를 주면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잘 먹는 녀석이 있나 싶으면, 주변의 초록색 부분을 먼저 긁어낸 다음에 속을 잘라 먹고 마지막에 긁어낸 부분을 먹는 녀석도 있어요. 먹는 방법은 성격보다도 '부모의 지위'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아세요?-83쪽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99쪽

지금은 '허걱!'하지만 옛날에는 고기라고 하면 개구리하고 뱀이었지. 모닥불 피워서 꼬챙이에 꽂아서 구워 먹곤 했거든.
어렸을 때 형이 "이걸 먹으면 밤에 이불에 오줌 싸지 않는대."하며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겠소? 나는 왠지 예감이 이상해 "내가 키우던 개구리야?"하고 물었지. 그랬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더군. 그때 정말 많이 울었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밭일을 하고 있는 동안 개구리하고 같이 리어카 짐칸에서 놀면서 지냈거든. 개구리 다리를 볏짚에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가지고 말이지. 배부분을 볼에 붙이면 서늘한 게 기분이 좋더라고. 하지만 먹지 말라고 울었던 건 아주 어렸을 때, 그때뿐이었소. 개구리, 참 맛있었어. -173-174 쪽

뭐든지 챙겨 두게 되더라고. 골동품 가게 같지? 벽에 붙어있는 달려도 말이야. 그거 1993년도 달력이야. 남편이 죽은 해지. 사실 바꾸려고 해도 손도 안 닿고 은행이 주는 달력은 매년 그림이 비슷해서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래서 그냥 저대로 두는 거야.-209쪽

다음에 만날 때는 베이컨을 대접하지. 베이컨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으니까 내가 만들어야겠지? 소금과 허브로 절인 다음 물에서 소금을 빼야 해. "그런 쓸데없는..."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소금빼기가 중요한 작업이지. 그 다음 냉장고에서 건조시킨 후에 훈제를 해. 이 공정이 일주일이나 걸려. 허브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스카보로 페어> 가사에 나오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등을 다 넣고. 그래서 난 이 베이컨을 '스카보로 페어 베이컨'이라고 부르지. 완성되면 그날 저녁은 구워서 맥주 한잔이랑 같이 맛을 봐. 수프에 넣어도 좋고 볶음밥에 넣어도 좋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아. 일주일 걸리니까 미리 예약하는 거 잊지 마.-241쪽

우리 엄마는 보건사여서 먹거리에는 무척이나 엄격하셨어요. 색이 있는 것은 독이라는 신념만큼은 확실했죠. 노란색 단무지, 빨간색 소시지 같은 건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는 거였죠. 그래서 제 도시락은 늘 칙칙하고 촌스러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였는데 말이죠. -2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절판


그때 거기서 나는, 총살되지 않으려면, 교수형을 당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견디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더 이상 나는 무관심에 빠져 허탈해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나는 외모를 사람답게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은 좀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다. 내가 새로이 발견한 정신적 저항력과 내 몸에 걸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누더기와 무슨 관계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묘하게도 그것들은 관계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수용소 생활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주위를 살폈다. 그 결과 어떤 여자든 세수를 할 기회가 있는데도 하지 않거나, 신발 끈 매는 것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생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123쪽

우리들이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우리들의 불꽃같은 눈동자들이었다. -135쪽

잠을 깨는 순간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139쪽

살아남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요행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이 성취해야 하는 일이었다.-219~220쪽

신은 집단 강제수용소를 떠나버렸다. 정말 기적과 같이 보이는 일이지만, 거기에서 일어난 일은 인간의 정신과 의지로 성취한 일이었다. -229쪽

어떤 형태를 취하건 음식물을 나눠 먹는 일은 인간성이 상호 교환하는 한 증거였다. 이것을 통해 생존자들은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자세를 되찾을 수 있었고, 스스로를 인간답게 유지할 수 있었다.-251쪽

사실상 인간의 '불굴의 정신'에 대한 찬양과 피해의식을 인정하는 것은 뿌리가 같은 '사상적 기원', 곧 인간의 굴레는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는 서구문화에 근거한 것이다. 죽음은 지상에서 얻을 수 없었던 완성의 세계로 향한 문이며, 타협에 의해 정복되지 않는 영혼을 입증한다. 매일매일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두 가지가 다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의 생명은 언제나 보다 높은 것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려고 모든 수단을 다한다는 이유 때문에 협박 받고 모멸당하는 그런 인생이다. -287쪽

나는 비탄에 잠기지도 않았으며 기운을 잃지도 않았다. 생명이란 우리의 육체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이 나의 살과 피 속으로 흘러들어 왔어, 그래, 그것은 사실이야! 고결한 예술 활동을 해 왔던 나의 머리가 영혼의 지고한 요구를 알게 되었고, 재인식하게 되었어. 이제 내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심장이 남아 있고, 사랑하며, 고통 받고 갈구하며 기억할 수 있는 살과 피가 남아있는 한, 결국 이게 삶이 아닐까? 보라, 태양이 보인다! -294쪽

생존의 핵심적 의미는 '죽음을 통과하여 살아남는 것'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문학적 은유로 들리지만 생존자에게는 현실이었다. -309쪽

생존행위는 '인간다움' 그 자체에 생물학적 근원을 두고 있는 일정한 활동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3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미 베틀북 사이언스 1
팅 모리스 글, 데시데리오 산치 그림, 권기호 옮김 / 베틀북 / 2006년 4월
품절


잎꾼개미는 커다란 회색 버섯을 길러 먹습니다. 버섯을 기르려면 우선 일개미들이 잎을 모아서 개미집 안에 있는 땅 속의 '정원'으로 가져갑니다. 그러면 작은 정원사 개미가 그 잎을 잘게 씹어 쓰레기나 죽은 개미와 섞어 반죽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이 반죽에 작은 버섯 조각을 심어서 키웁니다. 무리 속의 모든 개미는 이렇게 길러진 버섯을 먹고 살아갑니다. -14 쪽

개미는 잠을 자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조금씩 쉬기는 합니다. -18쪽

수개미는 몇 주밖에 살지 못합니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짝짓기 비행을 할 때까지 암컷 일개미가 먹이를 줍니다. 짝짓기 비행을 마친 뒤에, 수개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병정개미가 문을 열어 주지 않거든요.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수개미는 결국 굶어 죽고 맙니다.-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