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감정에 기반한 무의식적 이성을 사용한다
'가부장 아버지 도덕'의 스토리와 헛점, 그리고 민주적 아버지

weekly님 올린 글은 미리 보았습니다. 성향의 차이를 지적하더군요.(합리적인 절차를 밟아나가는 일처리에 상대적으로 편안해 하는 성향과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성향의 차이) 정진석후보와 안희정후보가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비해 박근혜대통령과 친분을 통해서라도 복철사업을 관철 해내겠다는 비교에 대한 분석이 인상깊었습니다.

 

님이 말하신 위계를 중시한다는 말을 권위,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엄격함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말씀하시니 폴리티컬 마인드가 생각이 나더군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중심과 감정에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민주적인 아버지가 얼마든지 아이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키운다. 왜 민주적이어야 좋은가라고 논쟁하지 않고 그 바탕으로 키우면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고 또래들과 더 열린마음으로 일들을 잘해결해나간다. 민주적인 가장으로서도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가정보다 느리지만 멋진 가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주장하고 말하고, 그것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위계와 합리성을 답답하게 여기는 성향에서 보면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 권력과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보수세력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그림들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 역치를 넘어서기 힘든 것은 아닌가 싶네요.


야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조금이라도 잘 하길 바란다면. 레이코프의 논지를 쫓아가 안전에 선방도 날리지 못하면서 ... ...위계질서나 권위를 존중하고 직접적인 해결 성향을 갖는 분들을 안고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임계점도 넘지 않고 좀더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향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마립간님 세월호 03 에 덧붙임)

 

 

유권자는 감정에 기반한 무의식적 이성을 사용한다
'가부장 아버지 도덕'의 스토리와 헛점, 그리고 민주적 아버지

 

 

뱀발.

 

1. 왜 진보는, 여기에 보수세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지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거나 돌려세우려는 노력은 없었을까? 당신들이 미워서, 새누리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나빠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목소리 또한 안전과 공공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좀더 풍부한 안전과 안보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좀더 다 같이 함께 살자고 노년 복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안심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언론매체의 사보타지는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니 논외로 하고, 진보나 야성이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안심시키지 못하기에 옳고 그름을 떠나 심리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안전, 복지, 공공성을 회복하는 우리 길이 더 위험이 적고 같이 나누기에 바른 길이라고, 다소 불편해도 설득하고 가겠다고 안심을 시키지 못했을까? 시시비비로만 사실을 가릴려고 했지? 정서적 공감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서적 접점을 남겨두는 여유는 늘 없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면에서 야당은 있기나 했던 것인가? 겉모습만 달랐지 속이나 하는 행태는 늘 같았던 것은 아닌가? 진심은 팽겨쳐버리고 똑 같이 권력에 눈 먼 이들이 야합하고 몰려들고 구별해내지도 못하는 악습을 버리지 못해, 정치라면 진절머리 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위계에 익숙하고, 합리적인 일처리에 익숙하지 않는 성향을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문화적 결함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수직적이 경향이나 합리적인 논쟁과 결과에 승복하기에 서툰 집단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그렇기에 위계와 서열로 일을 풀어가는 행태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을 풀어감으로써 놓치는 것들을 살펴야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일을 급하게 풀어가기에 인연을 동원하고 혈연, 학연을 끊임없이 만들려고 하는 관성이 붙어있는 것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문화적인 코드가 다르고 이것이 지지집단을 구하지 못해 반사적인 행동양식이라고 판단하면 어떨까? 꼬치꼬치 캐묻고 합리적이 이성만 따지고, 일을 해서 성과도 별반없는 집단이 아니라 문화적인 코드가 달라도 감싸고 포용하고 그 장점을 견인할 수 있는 집단은 세상에 좀더 다른 관점도 있고, 해결책도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면에서 여기 진보는 오히려 미국 보수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여기 보수는 현실 속에 지지집단이 없어 스톡홀롬 신드롬처럼 ' 국민은 미개하고 윗사람을 모시지 못하고 다 알 수도 없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처럼 시류와 다른 속내를 표현하지 못해 오히려 범죄자같은 집단을 두둔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집단이 없고, 삶의 경험도 마땅치 않고, 대안도 느껴본 적이 없어 그래도 카리스마 넘친다는 착각에, 또 다시 그 양아치같은 인물들이 지역을 살려준다고 하기에 또 한표를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어루만지며 선택지를 두는, 투표에서 보수적인 표를 행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균질화시키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심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일까? 때론 부자, 모녀 지간에 지지자의 색깔이 다르고 물과 기름같은 그 사이를 좁힐 수 있는 대안세력이 존재할 수 있을까?

 

2. 전에 남겨둔 흔적을 다시보고 페친과 문자를 주고 받고 마립간님에게 다시 답신을 받아본다. 이땅의 보수는 수구에 가까워 미국의 보수와 비교할 수 없다. 이기적 수구주의의 그들이 분리해내는 것은 수구와 나머지를 모두 좌빨종북으로 몰아버리는 것으로 말한다.  또다른 분은 우리 진보가 오히려 미국보수에 가까우며 보수대 양아치로 구분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말하더군요. 이땅에서는 어쩌다 보수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시더군요. 야당은 있지도 않고 맡겨서도 안된다고, 운이 좋아서 되었다고 하더라도 할 역할을 거름이어야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라고 지적해주시더군요.

 

3. 지난 주말부터 아이쿱, 생협 책을 읽었습니다. 논쟁과 이견의 여지는 많지만 다음으로 미룹니다.  경영대표 신성식샘의 현장보고서였죠. 사업과 운동의 병행을 요구하고 고민하고 현실에 녹여내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흔적을 엿보았습니다. 운동과 활동, 사업 그리고 달나라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밑그림과 실천의 강도가 남달라 보이더군요. 믿고 맡길 10대 20대 정치가가 미리 준비하고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절대 기대지도 말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문득 그런 느낌이 스며들었습니다. 인권도 권리도 민주주의도 몸에 밴 세대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치가 예술인 이유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몸의 문제, 일상의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제도가 바뀌면 조금은 어른들도 바뀌겠지만, 그 보다도 세상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익힌 청춘들이 전공에 연연해하지 말고 두루두루 제도와 일상에서 가치와 힘을 축적해나가는 방향을 하루빨리 깨쳐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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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어리석고, 탐욕스럽고, 사악하기까지 한가
    from 木筆 2014-06-09 13:53 
    1.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이 달라질 수 있을까? 판에 박힌 선거후기가 아니라 좀더 다른 질문을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10개, 100개, 1000개의 질문? 당연하고 누구나 예상하는 질문이 아니라 입장을 바꾸어서 느껴볼 질문은 없는 것일까? 그 가운데 제대로 키울, 제도로 만들 질문을 구해낼 수 있다면 어떨까? 2. [강준만의 이론으로 보는 세상]에서 두 컬럼을 새겨보게 된다. " 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에게 해가 되는가"가 하나이
 
 
마립간 2014-05-2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저의 말을 보태자면 ; 진보의 가치관인 수평적 관계는 모든 일을 타협하고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 에너지 소모가 많은 (그래서 안정감을 주지 못하죠) 반면 보수의 가치관인 수직적 관계는 명령과 복종이라는 행동으로 귀결되어 갈등 조정의 에너지 소모가 적습니다. (그래서 안정감을 주지요.)

제가 판단하는 진보의 잘못은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정책이라도 옳은 것을 추구하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교육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인기 있는 성장, 안정 등의 표방으로 진보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며, 성장, 안정이 중요하다면 정권을 (수구가 아닌) 보수에게 넘겨야죠.

여기에 또 다른 논란은 이상과 현실을 어떤 비율로 적용하느냐겠죠.

마립간 2014-05-21 15:02   좋아요 0 | URL
안전을 위해 재난, 구난 훈련을 하면 구성원들에게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주죠. 오히려 사고가 생길 때 생기더라도 평소에 무시하고 사는 것이 더 안정감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4-05-2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 님의 글을 읽고 왔는데, 문재인의 증세 논란은 옳은 말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의 의견은 이상주의자인 냄새가 나는군요. 그럼에 불구하고 저의 의견을 견지하겠습니다. 저는 이상주의자니까요.

여울마당 님의 '가부장 아버지 ...'를 읽었습니다. 이 글에 대한 저의 의견은 '공공', '공익"이란 가치관에 무감각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순자처럼 교육을 중요시합니다. (저는 저에 대해 성악설에 기반을 한 보수주의자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울 2014-05-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의견을 견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구하는 것이 다양성에다가 지리멸렬해도 꾸준히 가자 티격태격하더라도 그게 낫다' 여서 문화적인 코드가 많이 다릅니다. 옳은 것을 추구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바탕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 새겨듣겠습니다. 다양성은 자신의 주장과 주의를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살릴 때 풍부해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마립간님의 주의를 존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