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과 불교
권오민 지음 / 민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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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로 우뚝선 불교는 부모 없이 하늘에 뚝 떨어진 고아가 아니다. 불교는 인도라는 지리적 환경과 당대 사회정치문화적 영향 가운데서 기본에 전통에 대한 반 전통의 입장에서 하나의 빛으로 흘러나온 것이다.그 둘은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인식을 공유 했으며, 윤회와 업사상이 강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그 안의 내용과 사용 되는 맥락은 다를지라도 불교는 당시 인도의 철학과 종교가 낳은 것이란건 분명하다.

반전통의 기치 내건 붓다의 주장은 무엇이었던가? 세계는 경험된 것이며 자아란 그 같은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가설적 존재라는 것이다. 붓다의 열반 이후 표준을 잡기 위하여 체계적인 교법을 정리하기 시작한 아비달마 중 유력한 일파인 설일체유부는 아공법유릉 주장하였고, 대승의 양측 중 하나인 중관학파는 더 밀고 나가 아공법공까지 주장하였다.

“깨끗함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 더러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끗함을 근거로 더러움이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더러움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후 불교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고 깨달음을 얻어여하는지에 대해 당대 사회문화적 환경과 길항을 맺으며 만개해갔다 이 책은 그 과정에 생겨난 다양한 불교들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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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불교학과 - 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정상교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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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전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 때는 다소 관심이 떨어진 상태기는 하였으나 출간된 불서를 한, 두권씩 구입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말에 있었던 1차 도서 대정리 과정에서 살아남기도 하였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 아쉽게도 재미있을랑 말랑 이라는 허무한 결과가...

 

 책은 물론 저자의 불교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부터 중간에 도쿄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불교학을 하게 되는 과정과, 출가한 사촌형님의 이야기, 그리고 중간에 불교와 관련된 오해에 대한 이야기와 간간히 등장하는 학술사적인 부분까지 언급한다. 이렇게 되면 이게 어떤 성격의 책인가 긴가민가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별 다섯개가 있다가 두개까지 줄어버렸다.

 

 그래도, 저자의 이런저런 수기들이 재미 나기는 했다. 조금 더 책에 대한 컨셉을 명확히 했더라면 더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둘 다 이거나 했을텐데 싶다. 그래도 이런 형태라서 그런지 결다리 정도는 얻을 것도 있었고. 

 

 특히, 대승불교에 대한 기원의 이야기. 아직 정확한 정설은 없다지만 그에 대한 학설사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첫번째 가설은 재가자-불탑신앙에서 비롯하였다는 것으로,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의 히라카와 아키라 교수가 1968년경에 주장 했다. 내용의 요지는  재가자들이 당시 출가자들이 재가자들과 떨어진 사원에서 번쇄한 이론에만 집착되었으며, 재가자 가운데서도 출가자를 능가하는 수행능력과 지식을 갖춘 이들이 등장하자 붓다의 사리를 보관한 불탑이라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대승'운동을 전개했고 '경전'을 창작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해 나감으로서 대승불교와 그들만의 경전이 탄생했다는 것 이었다. 

 

  이 후 70년대를 지나 그레고리 쇼펜이라는 학자가 고고학적인 고찰을 통하여 첫 번째 가설이 맞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 초기 대승 불교 문헌에 '대승'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고도 수세기가 흐른 기원후 5~6세기가 되어서야 고대 인도의 비문에서 그 단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첫번째 가설과는 반대로 대승불교라는 조직이 대 중으로 부터 폭넓은 지지가 미약했다고 보여주는 근거라 하였다. 거기다 구법을 위하여 서역으로 도달했던 여행기에서 소수의 대승이  소승과 같이 한 사원에서 기거했다는 기록을 보면 재가자가 기원론은 조금 정설에서는 멀어지는게 맞는 듯 하다.

 

 그리고, 불교의 동진에 중요한 역할이 된 것은 중앙아시아의 나라와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포인트로 삼을만 했다. 알고 있었던 것의 바른 교정이나 다른 측면을 아는 것도 큰 깨달음이나 실용적인 변화를 주는게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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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에 의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세계이든 세계의 실상은 공-가-중이므로 이 같이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다. '공'을 떠나 '가'와 '중'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와 '중' 또한 그러하다. 앞서 말하였듯이 3제는 하나의 실상을 세가지 마음에 이미 세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차별의 현실은 본질적으로 공으로서 무차별[不二, 즉 中]이지만, 이 삼자는 혼연의 일체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완정한 이상적 형태로 여긴다. 이 때 일심동체란 어떠한 경지의 세계를 말함인가?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는 각기 독린된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갖는 것인가?..... 즉 남편과 아내가 본질적으로 둘이 아님[空]은 영원한 진실이지만 그것은 현실의 차별[假]을 떠나 수립되는 진실이 아니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함은 아마도 둘이 아니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둘이 아닌 상태[中]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말을 능숙하게 타는 이를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는 어떤 자인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은 말을 부리는 자이며, 말은 이에 따라 달리는 동물이라는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空觀]. 그렇다고 이것이 말타기를 그만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고 말과 하나가 되었을 때 바야흐로 기수와 말은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말은 바르게 달리고기 수는 교모하게 몬다[假觀]. 이때 주객분별을 버렸으므로 말과 기수는 둘이 아니지만 각기 서로의 활동을 다하기 때문에 둘이다[空假相卽의 中觀] (p.360)



 아비달마논사들의 입장은 자아는 없으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구성요소[法]는 실재한다는 아공법유를, 대승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다만 가설적 상태일뿐이라는 아공법공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차이를 종합하려는 것이  천태 지의대사였다. 위의 인용한 것은 지금 읽고 있는 11장 천태의 내용이다.


 누군가는 대승이 부파불교(아비달마)가 오염시킨 불교를 다시 근본불교로 되둘렸다고 판단하며 초기경전으로 대승경전을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보겠지만 언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아비달마가 그냥 설명만 듣는 것으로도 너무 복잡하다는 건 알지만 대승의 중관과 유식도 그에 못지 않다. 양극단을 배제하는 것이[不二] 곧 중[中]라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 또한 극단이 아닌가 싶기도. 


무아,윤희,업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했던 초기불교의 소박함이 더 좋으며, 대승이 내놓은 이야기 보다는 아비달마가 전반적으로 맞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견해가 생겼다.  단순히 입문서를 보고 생긴 견해이므로 언제라도 수정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지만. 


쉬는 주말이라 어제까지 '2부 인도불교'편까지만 읽고 챙겨둔 다른 소설책을 잠사 읽으려고 했는데 계속 잡힌다. 11장만 마무리 하고 보고 싶은 소설을 집었다가 다음주에 이 책은 일독을 마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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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도 빠르게 읽는 편도 아니고(그렇다고 곱씹어 읽는 스타일도 아니다.) 책 자체도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 거의 책의 1/2정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비달마를 다루는 장까지 다 읽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부파불교'를 소승이라 폄하 하던)대승의 입장에서 아비달마를 보게 되어 아무래도 크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였다. 


책의 저자가 아비달마불교를 연구하기도 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쓰여 졌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토록 그들의 이론이 번잡한 듯 해버렸는지에 대한 배경은 이해가 되었다. 성문승인 그들은 스승의 부재로 인하여 그동안 스승이 설하였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설법이라 하여 그동안 스승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교설을 다르게 남겼으니 스승이

살아계실 적에는 부동의 표준이 되어 물어볼수나 있었지만 열반이 든 이후로는 그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야 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스승도 오로지 법과 자신에 의지하라 하지 않았던가. 


근데 좀 복잡하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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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권오민 교수의 <인도철학과 불교>를 읽고 있다. 저자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본 책은 입문서격의 서적이다. 물론 총서 자체가 입문을 위한 책들이니 더 말할 것은 없겠다.  다만 여전히 한자로 번역된 불교용어를 쓰고 있기에 완전히 처음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정도는 양호한 것이 예를 들어 <유식학입문>이라는 책은 한자로 번역된 불교용어가 한 페이지를 가득채우고 있으니 한글세대에게는 엄청 버거울 것이다(그래서 아직 못 읽었다.그 이유 뿐만은 아니나...).


한형조 교수의 말처럼 이제 불교도 산속에서 벗어나 속세의 민중에게로 더 다가올때가 되었다. 다른 것보다도 한자로 범벅이 되어 있는 불교의 언어를 다시 한글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입문의 상황에 있는 (한글세대에 속하는)본인의 입장에서 투덜 거려 본 것이다.

책은 제목과 같이 인도철학과의 불교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쓴 것이다.  인도철학과 불교는 인도라는 지리환경적 공간과 그에 기반한 사유 속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전통과 反전통의 관계이긴 하나 공유된 것들도 많다.  삶이란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이 그런 기본적 인식이다. 그에 대한 벗어남에 대한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아주 어렵지는 않으나 쉽지는 않아서 100여페이지를 읽고 있다.  현재는 <우파니샤드>를 다루는데, 살짝 지겹다. 존재에서 존재가 나올 수 있지 비존재에서 어떻게 존재가 나오냐는 물음은 여전히 물음표다. <우파니샤드>에서 나오는 한 구절은 마치 진화생물학에서 하나의 생명이 어떻게 무수한 생명으로 나뉘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연상시켰다.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도 어서 읽고 싶은데.  이럴때면 시간이 아쉽다.

 

 

 

 

 

 

 

 

 

 

 어제 막 주문한 <대지도론> 세트를 받았다. 어제 밤에 잠들기 전 1권을 잠시 열어보았다. 익히 알았던 것처럼 반야부의 <대품반야경>에 대한 나가르주나 보살의 주석서이다.  생각보다는 재미있다.  문답식으로 되어 있어 틈틈히 읽어도 상관은 없겠다. 한 30분이나 1시간 정도?  매일 이러다 보면 1년 동안은 읽으려나.  

 

 시작은 부처님이 마하반야밀다경을 설하시게 된 연유에 대한 답을 하는데, 뭐 부처님에 대한 깨달음에 의문을 가진자가 있어서,  삿된/거짓된 깨달음으로 이끄는 자가 있어서 뭐 블라블라... 이어지고, 중간에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와 일곱 걸음을 걸은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선언한 것에 대한 변명? 정당화하는 답을 내놓고 있다. 뭐 요약하자면 이미 태어날때부터 깨달은 사람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근기가 모자란 사람이 '저 분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거고 나같은 범부 어렵겠구나'라는 마음에 지레짐작으로 깨달음에 대한 정진을 포기할까봐 일반 대중처럼 성장과정을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 신학에서  악이 존재하는것에 대한 독특한 변명 내지 정당화 설명을 들었던 것이 순간 생각이 났다(아마 지의 정원이란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이전에 읽은 <불교의 탄생>에서는  이와 같은 설화를 실제로 부처님이 깨닫고 난 이후 처음 설법하려는 과정에서 했던 선언인데 전승되어 오면서 이런 형태가된 거라고 주장했던 것을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이런 변명, 정당화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기는 해도 종국에는 내 관심사는 크게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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