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
최형준 지음 / 부크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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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낸 이야기들 속에서 헤엄치다 누군가의 고스란한 일상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소설들 사이 마주치는 에세이와는 또 다른 느낌.

그래서 잠시 낯선 이의 나날들을 몰래 들여다본 기분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글로 보는 느낌이랄까?

 

가끔 읽는

남 작가들의 에세이에는 허세가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허세를 감추기 위해 애쓰는 글들이 와닿지 않았는데 처음 만난 최형준 작가의 글은 그냥 그대로의 느낌이 난다.

 

조심스러운 느낌 한 스푼

찌질한 본성 한 스푼

느리게 걷는 이미지 한 스푼

고심하고 누르는 찰칵거림 한 움큼

말랑하게 피워대는 담배 연기 한 움큼

수줍은 속내 한 가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기반성 한 가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두는 본성 한 바가지

 

방랑기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다.

 

분 단위로 적어간 글들에선 열망이

커피숍 방랑기는 괜시리 성실했고

흑백 필름으로 찍어야 하는 이유는 쓰라렸다.

 

감성만으로는 살 수 없고

돈이 없어서 불편하지만 내 스타일을 바꾸고 싶지 않고

나는 나라는 명제 앞에서 불안한 현실들이 눈에 보인다.

 

누구나 그런 방랑기를 거치거나, 거쳤거나, 거칠 예정이다.

최형준 작가의 방랑기가 특별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른 점은 그걸 직시하는 자신의 시선이다.

미화하지 않고 그냥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

 

내 방랑은 늘 스스로와 타협하고, 포장하고, 미화한다.

그런 것이 덜 보이는 글은 담백해서 좋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나아가는 글을 읽으며 나도 나를 돌아본다.

 

누군가의 단상을 읽으며 나의 방랑기를 회상했던 시간.

진지해 보이는 글에서 살짝 삐딱하는 웃음기를 느낀다.

그게 바로 이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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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핸드 - 천재 형사의 뉴욕 마피아 소탕 실화
스테판 탈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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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 범죄자들을 다시 풀어주면 우리는 놈들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괴롭혀서 어떻게든 범죄에서 손 털게 만들 겁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미국은 이탈리아 이민자들로 들썩였다.

그들은 미국의 최하층민으로서 산업화되어가는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몸을 바쳐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건너온 범죄자들은 같은 동포들의 등에 빨대를 꽂았다.

 

아일랜드계가 점거하다시피 한 뉴욕 경찰은 이탈리아 이민자 집단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검은 손]라는 이름으로 갈취, 폭행, 납치, 폭탄 테러를 일삼았던 범죄 집단도 무시했다.

이민자 출신 조지프 페트로시노는 초등학교의 학력을 지녔고 구두닦이를 하며 경찰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이 구두만 닦다 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경찰이 되었다.

뉴욕 시경 최초의 이탈리아계 경찰이 바로 페트로시노였다.

 

그는 변장술에 능했고, 언어에도 능해서 고향말뿐 아니라 이탈리아계 뉴욕 주민들이 사용하는 모든 방언을 알았다.

게다가 사진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로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셜록 홈즈였다.

그는 다부진 몸을 가졌고, 그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 내에서도, 같은 동포들 사이에서도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동료 경찰들은 그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고, 동포들은 그를 변절자로 여겼다.

외로운 페트로시노는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

그는 동포들을 수없이 괴롭히는 검은 손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을 소탕하고자 했다.





조지프 페트로시노라는 인간은 그의 뿌리인 이탈리아의 문화 그리고 미국에서 살아가며 대강 받은 교육이 온전히 빚어낸 산물이었다.

 

미국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산업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에 대거 이민을 왔고, 같은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신과 무정부주의 탓에 검은 손의 세력을 두려움에 떠는 자신들이 키워갔다는 사실 앞에서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런 그들의 고통을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아마 그들이 차별하지 않고 페트로시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검은 손이 세력을 키워 마피아의 전신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천재적인 형사는 끝없이 싸웠다.

자신을 배신자라 여기는 동포들을 위해서..

위장술로 잠입수사를 해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로 검은 손을 소탕했다. 그래서 적도 많이 만들어놨다.

그런 그를 홀로 이탈리아로 보낸 빙엄 청장은 비밀리에 일을 진행한다고 하고서는 스스로 정보를 누설했다.

그리고 페트로시노는 그렇게 자신의 조국에서 암살 당했다.

 

"그는 공감 능력 풍부한 친구이자 노래하고 이야기를 풀고 남을 흉내 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줄도 아는 쾌활한 사람이었다."

 

 

척박한 경찰 환경 내에서 그는 실적을 쌓아 올리고 자신과 함께 할 이탈리아계 형사들을 뽑아 '신비의 6인조'라는 별명을 가졌다.

평생을 검은 손 일당을 잡는데 헌신한 그는 거의 50이 다 된 나이에 결혼을 해서 딸을 얻는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얻은 페트로시노는 그제야 두려움이 생긴다. 그는 두려울 거 없는 무적이었지만 이제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이탈리아인 이민자 거주지에서 페트로시노가 사랑받은 비결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선에 이탈리아계 공무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페트로시노는 형제이자 방패였다. 그는 유죄라고 판단한 자는 지구 끝가지라도 쫓아가 붙잡았고 무죄라고 믿은 자는 풀려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주었다.

 

 

이탈리아 갱은 마피아로 연결되는데 이 무시무시한 이들의 전신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페트로시노의 노력과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범죄자는 끝까지 쫓고, 억울한 사람은 그 억울함을 풀어주려 했던 페트로시노.

그는 이탈리아인들의 방패가 되고자 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그의 장례행렬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대략 25만 명의 시민이 맨해튼 거리거리를 꽉 메우고서 페트로시노가 떠나는 길을 예우하려고 기다렸다.) 그만큼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웅으로 자리했다.

그가 있었기에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 덕에 범죄자들을 잡을 수 있었다.

 

사진으로 본 페트로시노의 모습에서 나폴레옹의 모습이 보인다.

작지만 다부진 모습으로 범죄와 맞섰던 형사.

두려움이 없었던 그는 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논픽션 작가의 페트로시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떤 범죄 소설 보다 흥미로왔다.

그게 바로 실화였기 때문이다.

페트로시노에 대한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오래된 영화들이라 찾아보기 힘들 거 같다.

 

세상을 바꾸는데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할 거 같지만 사실은 단 한 사람의 옳은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페트로시노가 살아있을 때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그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페트로시노가 빙엄 대신 우즈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한 거 같아서 계속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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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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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쌍년이 누군지 말해주세요. 쌍년을 맡은 그 여배우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 쌍년이 진짜 누구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여기 있는지를요. 그러면 시작할 수 있어요."

 

 

팔콘만은 40여 년 가까이 장수하는 드라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드라마지만 이제 예전의 인기를 잃고 점점 대중의 관심이 떠나고 있다.

이즈음 방송국도 새 주인을 맞아 팔콘만이 예전의 인기를 되찾아 오기를 바란다.

제작진들은 회의 끝에 새로운 인물을 팔콘만에 투입시키기로 결정한다.

 

새로 투입할 팔콘만의 인기를 되찾아 올 쌍년.

모든 인물들의 과거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의 쌍년.

그들은 그 최고의 쌍년을 위해 크리스마스 라이브 쇼를 계획한다.

쌍년 역에 어울리는 6명의 배우들의 오디션을 라이브 쇼로 개최하고 진정한 승자는 대중이 던진 표로 결정된다.

과연 팔콘만 역사상 최고의 쌍년이 될 배우는 누구일까?

 

흥미진진한 방송국 뒷얘기와 40여 년간 지속된 드라마의 인기를 회복하려는 제작진들의 두뇌싸움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이야기 <무자비한 여자들>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처럼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이야기를 고급 지게 만들지 못하고 B급 감성으로 전락시켰다.

 

거의 비슷한 문장으로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모습이 싸구려 배역처럼 보이고

섹스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이 안되는지 등장인물들 머릿속엔 늘 만나는 사람들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그쪽 계통 사람들 머릿속엔 섹스라는 단어가 탑재되어 있는 걸까?

그만큼 스트레스가 팽배한 직업군이긴 하지만 물불 안 가리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멋진 여성들은 함께 뭉치지 않아서 남자들이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말처럼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권력승계는 늘 남성들의 차지였다.

그러나 <무자비한 여자들>에서는 그 남성 권력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꽤 실력 있고 매력적인 여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섹스에 목말라 있었다.

그녀들의 의기투합으로 드라마도 성공시키고, 남자들의 권력승계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나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 그런 문장인지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흐름을 깨고, 여성들의 캐릭터 설명이 천편일률적이다.

2019년 베스트셀러 1위를 찍은 책다운 품위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다.

 

<무자비한 여자들>에서는 최고의 쌍년을 찾는 게 목적이지만 독자인 나는 최고의 쌍놈을 찾았다.

바로 제이크!!!

이름만 봐도 혈압이 오르네!!!

야비하고, 냉혈한이고, 최고 등급 재수탱이 제이크!

그러나 제이크를 능가하는 방송국 소유주 매들린이 최상위라는 사실은 뭔가 좀 후련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의 반전은 이게 끝이 아니다.

독자들도 생각지 못한 최고의 무자비한 여자가 있었다.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아서 더 충격적인 여자!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흐름을 방해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삶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

결정적인 순간에 이타적일 수 없다는 사실.

그 생존에 대한 본능.

아마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이 세계야말로 가장 본능이 판치는 세계가 아닐까?

 

40여 년간 제작되는 드라마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결코 드라마가 아닌 실제일 것이다...

 

원초적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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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5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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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는 증권 조작, 명예살인, 유전자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레오는 이걸 현대전의 한 형태로 묘사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발상이야."

"무기가 된 거짓말?"

"혼돈과 혼란을 유발하는 수단으로서의 거짓말. 폭력의 대체물로서의 거짓말."

 

 

밀레니엄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는 감옥에 갇힌 리스베트로부터 시작한다.

전작에서 살해당한 프란스 발데르 교수의 아들을 무사히 빼내고 안전하게 지킨 결과로 그녀는 보답 대신 징역형을 살게 됐다.

그것도 스웨덴에서 가장 안전한 여성 감옥으로.

리스베트의 안전을 고려해 그렇게 고르고 골라 간 감옥은 베니토라는 범죄자에게 장악된 상태였고, 간수들마저 베니토를 거스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리스베트는 파리아라는 방글라데시 소녀가 베니토에게 폭행 당하는 걸 목격한다.

매일 이루어지는 그 폭력에 리스베트는 파리아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매 이야기마다 리스베트의 과거가 하나씩 풀려나는데 이번에는 리스베트의 온몸에 새겨진 용 문신이 왜 새겨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리고 이 편에서 리스베트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는다...

 

집시 여인들 중 재능이 출중한 여자들이 낳은 쌍둥이들을 환경이 다른 곳으로 따로 입양시켜서 환경이 인간의 지능과 성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비밀 유전자 연구가 행해지고, 리스베트도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중심에서 그들의 마수에 걸려 입양을 가게 될 상황에 처한다. 6살 밖에 안된 리스베트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친다. 그 이유로 입양은 무산됐지만 리스베트가 나중에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분리되어 입양된 쌍둥이들 중 한 명인 레오는 금융권에서 알아주는 재력가의 아들로 자란다.

청각과민증에 예술적 감각이 출중했지만 그의 재능은 무시되고 금융인으로 길러진다.

모든 걸 다 가진 그는 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정말 그가 생각한 대로 그는 자신의 반쪽을 만나게 된다.

자신들을 실험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맹세하는 레오와 댄.

그들의 복수는 안전하게 이루어질까?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지갑이 더 두툼해졌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핑 돌 일이죠. 증시 폭락을 야기한 자들이 하락세에 미리 주식을 사놓고서 과연 얼마나 벌었을지 상상해 보세요. 그 정도 돈을 취하려면 은행 수천 곳은 털어야 할 겁니다."

 





요즘은 모두 앱으로 은행일을 처리한다.

통장은 사라진지 오래고, 모두 디지털 안에서 숫자에 의해 자신의 재산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투자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디지털 세상이 한순간에 먹통이 된다면? 아무런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은행 거래의 자료가 사라진다면?

이 이야기의 마지막엔 증시 폭락과 함께 확인할 수 없는 유언비어들이 뉴스처럼 퍼져간다.

그런 세상에서 진짜를 구별할 수 있을까? 디지털 숫자로만 표시되었던 내 재산은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이 혼돈의 세상은 좀 더 편리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

누군가의 터치 한 번에...

 

이슬람의 명예살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파리아의 이야기는 여자를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종교적 신념에 물든 사람들의 위험함을 보여준다. 이런 미친 짓이 아직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음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종교와 정치와 마약에 중독되면 답이 없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주요 캐릭터들의 무게감이 줄어서 뭔가 허전하지만 현실의 문제들을 소설로 만들어 낸 라게르크란츠의 노력에는 감사한다.

리스베트의 과거의 조각들을 하나씩 벗겨내는 수고로움에도 감사한다.

그러나 무게감이 사라진 가벼운 캐릭터들의 모습은 여전히 대하기가 괴롭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를 멈출 수 없다.

 

리스베트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이제 리스베트와 미카엘은 감정의 찌꺼기가 사라지고 온전히 동료의식만 남은 거 같다.

국가 기관들이 '비밀'이라는 이름하에 자행했던 수많은 연구와 조작과 죽음의 은폐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기에 <밀레니엄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많은 익숙한 이야기가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밀레니엄 시리즈>.

이제 한 권을 남겨두고 있다.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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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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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어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사실이 된다, 이 말이지.

 

 

김희선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참 다양한 꿈을 꾼 느낌이다.

땅속 어딘가에 시간을 거스르는 통로가 있을 거 같고, 지금은 사라져서 만나기 어렵지만 어딘가의 골목에 자리한 시계방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되고, 평소에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태엽'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련함과 동시에 특별한 기능이 각인된다.

내가 느끼는 이 현실이 어쩜 우리가 서로를 위해 꾸는 꿈일 수도 있겠고, 내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켜면 세상이 달라져 있을 것만 같고, 유리 가가린의 꿈이 계속되기를 빌어보는 건 살고자 하는 욕심 때문인 거 같고, 의식을 업로드해서 영원히 산다는 건 여전히 반대하고 싶고, 모든 힘든 일들을 자동인형으로 대체해가는 지금의 시스템이 계속된다면 우린 모두 우편배달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꿈같기도 하고

악몽일 수도 있고

현실도피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또렷하게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잊고 사는 과거가 미래와 섞여 여전히 똑같지만 좀 더 세련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자동인형으로 대체된 공장에서 청춘을 시들게 했던 언니들은 지금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되어 있을 터였고

독일에서 깊은 갱도에 묻혀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광부들의 존재도 잊힌 기억이었다.

그런 과거들이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 담겨 있었다.

 

나는 당신이 꾸는 꿈이고 당신들은 또 내가 꾸는 꿈이며 우리는 그렇게 무한히 뒤엉켜 서로를 꿈꾸며 영원히 깨어나지 말아야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꿈의 귀환 중

 

과거의 이야기에서 미래를 길어올린 SF 소설은 잊으면 안 되는 사실들을 미래로 데려왔다.

마치 꿈처럼, 악몽처럼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 낸다.

그 안에서 소리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에 대한 추모의 글 같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네. 진실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누가 믿거나 믿지 않는다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아니, 무엇보다도 자넨 결국 알게 될 걸세. 가장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에 말이야."

 - 가깝게 우리는

 

 

눈 가리고 아웅 했던 과거의 일들을 미래 시제로 이야기한 김희선 작가의 <빛과 영원의 시계방>

어쩜 우리 모두는 빛과 영원의 시계방 안에서 매일 태엽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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