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랑기
최형준 지음 / 부크럼 / 2023년 3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330/pimg_7368641353803466.png)
꾸며낸 이야기들 속에서 헤엄치다 누군가의 고스란한 일상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소설들 사이 마주치는 에세이와는 또 다른 느낌.
그래서 잠시 낯선 이의 나날들을 몰래 들여다본 기분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글로 보는 느낌이랄까?
가끔 읽는
남 작가들의 에세이에는 허세가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허세를 감추기 위해 애쓰는 글들이 와닿지 않았는데 처음 만난 최형준 작가의 글은 그냥 그대로의 느낌이 난다.
조심스러운 느낌 한 스푼
찌질한 본성 한 스푼
느리게 걷는 이미지 한 스푼
고심하고 누르는 찰칵거림 한 움큼
말랑하게 피워대는 담배 연기 한 움큼
수줍은 속내 한 가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기반성 한 가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두는 본성 한 바가지
방랑기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다.
분 단위로 적어간 글들에선 열망이
커피숍 방랑기는 괜시리 성실했고
흑백 필름으로 찍어야 하는 이유는 쓰라렸다.
감성만으로는 살 수 없고
돈이 없어서 불편하지만 내 스타일을 바꾸고 싶지 않고
나는 나라는 명제 앞에서 불안한 현실들이 눈에 보인다.
누구나 그런 방랑기를 거치거나, 거쳤거나, 거칠 예정이다.
최형준 작가의 방랑기가 특별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른 점은 그걸 직시하는 자신의 시선이다.
미화하지 않고 그냥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
내 방랑은 늘 스스로와 타협하고, 포장하고, 미화한다.
그런 것이 덜 보이는 글은 담백해서 좋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나아가는 글을 읽으며 나도 나를 돌아본다.
누군가의 단상을 읽으며 나의 방랑기를 회상했던 시간.
진지해 보이는 글에서 살짝 삐딱하는 웃음기를 느낀다.
그게 바로 이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