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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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떠나려 하다니, 분명 실수하는 거예요."




옥시아나가 어딜까?

책을 읽기 전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책에 대한 자료만 많지 옥시아나가 어딘지에 관해서는 이 책을 홍보하는 기사에서 한 문장으로 언급될 뿐이다.

아프카니스탄 북경 국경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강 주변 지역을 옥시아나라고 한다.

유럽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그에게 다이앤이 한 말은 그를 울적하게 했지만 그의 여행기를 읽는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곳에 대한 기록이었기에 즐거웠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역사책에서 잠깐 언급된 것 외에는 거의 알지 못하고, 이후에도 여러 분쟁으로 그저 골치 아픈 곳, 내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편협한 세계사는 유럽과 미국만을 다루고 있었기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짧은 앎은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곳을 1930년대에 여행하고 여행기를 낸 로버트 바이런.


"책을 쓰십니까?" 세관원이 과세할 음란물 작가를 찾아내려 추궁하듯 물었다. 나는 바이런 경이 아니니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고 그에게 대답했다.



바이런이라는 이름만 듣고 흔히들 떠올린 그 바이런 경을 생각했었는데 그 시대에도 바이런 경과 혼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ㅎㅎ







예술은 정치적 안정, 적어도 시민의 안정 없이는 번성할 수 없다.


건축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로버트 바이런의 여행기는 소설처럼 읽힌다.

여행기라기 보다 일기 형식을 빌려 쓴 로드무비 같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상황 때문에 여행길이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성격이 참 무난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쓴 글이라서 자신에 대해 엄격한(?) 검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인내심 강한 여행자이고 날카롭지만 세련된 비평가이자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잘 설명할 줄 아는 필력의 소유자였다.

여행지마다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면 베테랑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여왕인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여성은 이슬람 연대기에서는 보기 드물다.

나는 그의 여행지에서 만났던 많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헤라트 여행기에 나온 고하르 샤드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역사학자답게 바이런은 고하르 샤드의 행적을 이야기해 준다.

80이 넘도록 살면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이루지 못한 고하르 샤드의 이야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여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음을 말해주는 거 같아서 신선했다.

10개월에 걸친 긴 여행길은 다사다난했지만 그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36세였던 그는 서아프리카로 가던 중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요절했다.

유해는 찾지 못했다.

어쩜 그는 우리가 갈 수 없는 바닷속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서아프리카에 대해서 어떤 여행기를 남겼을지 궁금하다.

아프리카 역시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곳들 중 하나이기에 바이런이 본 아프리카의 모습이 어땠을지 아쉽기만 하다.

제법 두께를 자랑하는 여행기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나였지만, 그래서 더 신선했다.

알지 못하고,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 지역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나의 관념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여행기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바이런이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잘 읽히는 거 같다.

매일매일의 기록이 그의 성실함을 말해주니 이 여행기는 믿고 읽어도 되는 여행기다.

여행을 다녀와서 기억에 의존해 쓴 글이 아니라 그날 그날 보고, 듣고, 느낀 것의 기록이기에 1933~1934년 동안 로버트 바이런이 걸어갔던 그 길에 대한 생생한 날것의 기록이다.

나는 그 점이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가장 빛나게 하는 요소인 거 같다.

두께에 겁먹지 마시길.

익히 아는 세상이 아닌 잘 몰랐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

영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서 쓴 여행기로 점수를 팍팍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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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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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분야에도 책임져야 할 죄들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에 영감을 주고 찰스 다윈이 제자로 자처한 사람은 윌리엄 댐피어다.

그는 탁월한 기록가였지만 해적질을 일삼으며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것들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그는 <새로운 세계 일주 항해> 여행기를 썼다. 박식하고 세심한 동시에 머리털을 곤두서게 하는 요소까지 갖춘 그의 글은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해적질은 용서받지 못했다.

그의 글 솜씨로 최초로 토네이도에 대해 묘사했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과학을 더 나은 인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여겼던 흰개미집 연구자 헨리 스미스먼은 그로 인해 노예 무역을 이용했다.

유럽의 박물학자들은 노예 무역을 활용해 낯선 나라로 채집을 가거나 노예 무역상들에게 채집을 부탁했다. 노예 무역선은 노예만 들여온 게 아니었다. 그 나라에만 있는 특정한 것들을 채집해서 본국의 박물학자들에게 넘겼다.

그로 인해 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폰 린네가 <자연의 체계>라는 책을 쓸 수 있었다.

과학이 신사가 될 수 있는 확실한 길이었기에 헨리 스미스먼 같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이 모두 공정한 연구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저체온증의 치료를 위해 참고할 자료가 나치의 생체실험이라면?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이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했던 전기 실험으로 개 44마리, 송아지 6마리, 말 2마리를 죽였다면?

군인들 사이에 만연한 성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험자에게 매독균을 주사한 공중보건국 존 커틀러는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개인을 위해, 아니면 국가를 위해?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아기의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시종의 배를 갈랐을까?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백질 절단술이라는 수술법을 발명한 모니스가 정신병원 환자들을 상대로 벌인 뇌를 휘젖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샘 킨은 과학과 의학계에서 벌어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읽고 있는 내 눈이 의심스러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라니 두렵다.

그들은 왜 그런 일들을 했을까?

우리는 이제껏 그러한 희생과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로 인해 발견된 것들을 은연중에 미화 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불과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맞았던 백신 주사는 정말 안전한 걸까?

우리 모두가 미래인들을 위한 마루타가 되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담긴 끔찍한 사실들은 누군가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

그 누군가는 무지한 대중일 수도 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연구원일 수도 있고,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이뤄졌던 은근한 압력일 수도 있다.

최근에 '삼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 그 이야기에서 한 과학자의 욕망이 외계인을 지구로 불러들인다.

그 과학자 역시 한순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뒤에 올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외계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에 언급된 과학과 의학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물에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방식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 일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과학의 잔혹사>를 읽고 나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력한 제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인과 묵인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쉬웠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하지만 지금 어딘가에서도 남모르게자행되고 있을 '어떤 욕망'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 잔혹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거리를 준다.

과학과 의학에서 윤리를 더 강화해야 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문제 제기를 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가 마지막에 던진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과거 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과학의 어두운 역사를 말해서인지 과학 스릴러를 한 편을 읽은 기분이다.

지어낸 이야기 보다 현실의 이야기가 더 잔혹하다는 걸 한 번 더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 <과학 잔혹사>

샘 킨의 다른 저서들도 덩달아 궁금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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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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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비아누는 소몰이꾼이었고, 아무도 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다. 그는 짐승처럼 나타나 짐승처럼 둥지를 틀고 뿌리를 내렸다. 그곳에 안착한 것이다. 파비아누는 주변의 키라, 만다카루, 시키시키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모든 것보다 더 강했다. 그는 카칭가 관목과 바라우나 옻나무만큼 강했다. 파비아누와 비토리아 어멈, 두 아이, 그리고 강아지 발레이아는 그 땅에 붙어살고 있었다.

몸속의 물이 다 말라 버린 것 같은 버석버석한 느낌으로 시작한 <메마른 삶>

가뭄을 피해 정처 없이 길을 떠났던 파비아누 가족은 아사 직전 강아지 발레이아가 잡아 온 기니피그로 연명한다.

그리고 사람도 가축도 떠난 농장에 자리를 잡는다.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가족들의 기쁨도 잠시 가뭄을 해갈시켜 줄 폭풍우가 몰아치고 농장 주인이 돌아왔다.

그들 가족에겐 또다시 주인이 생겼다.





그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조급해질 때마다 말을 더듬었고, 어린아이처럼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며 팔꿈치를 긁곤 했다.

배운 거 없는 파비아누는 도시에서 노란 군복을 입은 군인의 꼬임에 빠져 노름에서 가진 돈을 탕진한다.

비토리아 어멈에게 그 상황을 설명할 거짓말을 지어내다가 그를 쫓아 나온 군인과 시비가 붙고 감옥에 갇힌다.

도시는 그에게 어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마스 날엔 옷을 갖춰 입고 도시로 향한다.

1년에 한 번 그가 가족들과 미사에 참여하는 시간이다.

낯선 농장에서의 삶이 익숙해질 무렵 또 한차례 조짐이 보인다.

그들이 도망쳐 왔던 가뭄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그들의 터전을 향해 다가온다.

파비아누는 가족을 데리고 주인 몰래 도망친다.

또다시 죽음의 문턱 앞에 서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자라고, 자기와는 다르게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것이다.

그와 비토리아 어멈은 편안히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의 가족은 더 이상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지닌 채 그들은 가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뭄을 피해 남쪽을 향하는 그들의 앞길에 어떤 일들이 남아 있을까?

이젠 그들을 위해 기니피그를 잡아 올 강아지 발레리아도 없는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런 대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 땅 한 뙈기도 없지만 그저 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맘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정녕 없는 걸까?

무지하다고 속여 먹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뿐인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의 맘.

그저 편하게 자고 싶지만 불편한 침대 하나가 고작인 삶.

예전 주인 집 침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비토리아 어멈의 욕망.

바에서 술 한 잔의 낙을 앗아간 노름과 감옥.

도시에서든

농장에서든

파비아누에겐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발레리아와의 추억만 있을 뿐.

이젠 그 추억마저도 고통의 기억으로 덮어 씌워져서 슬픔으로 남았다.

브라질 작가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대표작 <메마른 삶>을 읽으며 인간의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이란 '희망'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일어나는 브라질의 기후.

기후 난민이라는 말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언제든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 '희망'이라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아이들을 앞 날이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으로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마음으로

그들은 길을 떠난다..

앞으로 이 지구에서 벌어질 일들일지도 모른다..

먹이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의 삶이 곧 인간의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먼 인류의 조상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했듯이

우리에게도 가뭄과 식량난은 앞으로 곧 닥칠 재앙이다.

그래서 이 파비아누 가족의 이동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이 뿌리내릴 땅에 도착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희망' 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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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조언 - 철학자가 들려주는 내 인생의 해답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안창우 옮김 / 온스토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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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들이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춰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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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조언 - 철학자가 들려주는 내 인생의 해답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안창우 옮김 / 온스토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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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급부상한 쇼펜하우어.

그의 철학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찰떡같은 말을 들려준다.

얼마 전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읽으며 그가 요즘 트렌드로 앞서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오른쪽 페이지에 짧은 문장과 그 문장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담겼다.

그리고 왼쪽 페이지에는 읽는 사람의 생각을 쓰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책에 줄을 긋는 것도, 표시를 하는 것도, 메모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기에

몇 꼭지를 뽑아서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



<다수의 의견이 늘 정의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의 의견은 진리가 될 때가 있다.

다수와 반대되는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기 싶다.

하지만 가끔은 그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무지를 반증할 때가 있다.

가끔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

다수가 한 사람을 몰아가는.

그게 아니다 싶어도 다수에 편승하는 순간.

내가 언제든 그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체...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라>

인생의 고민 절반 이상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에 생긴다. 그걸 신경 쓰지 않으면 인생의 고민 절반이 사라진다는 이 명석한 정의가 묵은 쳇증을 내려가게 한다.

시선 한 끗 차이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정작 내 시선은 둘 곳 몰라 방황하는 영혼... 은 되지 말자!



<행복은 재물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사소함에서 얻는 기쁨에 담겨 있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많이 가질수록 허탈하고, 허무하고, 더 갖고 싶을 뿐.

행복은 내가 가진 것에 있지 않고

항상 내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다.

꺼내 보기만 하면 될 것이지만... 그거 꺼내는데 한 생애를 다 보내고 말지~




<새로운 지식이 과거의 지식보다 옳은 건 아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복습하고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다.

무조건 새로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자.

어차피 그것도 옛것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다..





<지성을 필요 이상 드러내지 마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겸손하다는 뜻이다.

정말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부를 말하지 않는다.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은 조용히 입다물고 살지..

고로 나는 애송이~~~ 야~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눈과 지성을 키워라>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갖춰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안목을 갖춘다는 건 짧은 시간에 배워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령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도 책의 가치를 알아야 보물 같은 책을 찾을 수 있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책이어도 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이라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책들이 있다.

책에 관심 없는 사람 눈엔 보이지도 않고, 코앞에 놓여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선에 비추어 사람을 사귀면 거짓 인연으로 인생만 너덜너덜해진다.

내 인생의 보물은 타인의 눈으로 찾을 수 없다.






<겉멋이 든 문체는 지양하라>

글을 읽을 때 꼭 내 맘을 들킨 거 같은 글이 있다.

꼭 내 맘에 들어왔다 간 사람처럼 내 감정을 표현하는 글이 있다.

그런 글들은 멋스럽지 않다.

읽긴 읽었는데 뭔 소린지 모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있어 보이는데 막상 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글.

겉멋은 나만 모를 뿐 다른 사람들은 다 안다.




<진짜를 가장한 가짜에 속지 마라>

아! 쇼펜하우어는 시간 여행자였나? 아님 그 시대도 가짜가 판을 쳤나?

요즘 가짜가 진짜를 능가하는 기술 때문에 무엇이 진짜인지 당최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일관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진짜를 알아보는 눈과 지성을 키워야 한다.

정치, 종교, 언론, 가진 자들의 가짜에 속지 말자!






<타인의 행동을 단정하거나 비판하지 마라>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의 지침을 잘 새겨야겠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무조건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잘 하던 짓인데... 이젠 조심하고 있지만 그래도 또 조심하자!



<고독의 시간을 즐겨라>

그래서 요즘 혼밥족이 늘어가는 건가?

밥 씹으면서 고독도 같이 씹어야 진정한 자아성찰이 이루어지는 걸까?




<교재는 상대의 인품, 절교는 상대의 가치에 따라 결정하라>

인간관계 정리할 때 명심하면 좋은 말.

그러나 그 가치를 어떤 것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듯.

좋은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면 좋은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자신의 문체로 글씨를 써라>

남의 것을 베끼는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도 했다.

어쩜 이것은 인간사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도돌이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은 자신만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

문체도 마찬가지.

문체는 흉내 낸다고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모방을 창작으로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문체인 거 같다...

왼쪽 빈 페이지에 적어 두면 계속 책을 펼칠 때마다 다른 생각들을 첨가할 수 있겠지만 악필인 내 글씨가 맘에 안 드는 관계로 그리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

투명 메모지라도 사서 써 붙여놔야겠다.

한 꼭지씩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책이다.

더불어 책 읽기 버거워 하는 사람에게 책과 친해지라고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짧은 문장들이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춰내게 만든다.

바야흐로 21세기에 최적화된 철학자 쇼펜하우어.

그의 말들은 지금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말들인 거 같다.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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