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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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그 누구도 두 번 죽지 않는다. 누구도 이미 죽은 사람을 또 죽일 수는 없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살인자를 찾고 있었지만 모두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부분, 즉 빠져 있는 부분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채워졌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클라우디아 피녜이로가 또 한 번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패닉에 빠지게 할 거 같다.

 

설마설마... 아니겠지... 하며 읽다가 분노와 동시에 슬픔을 느꼈다.

그저 희생양으로만 보였던 인물의 또 다른 모습을 대하면서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 30년 전 토막 난 시체로 불에 태워진 채 발견된 동생 아나의 사건 이후 신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 리아는 집을 나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 자신에게 두 명의 이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마테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세 통의 편지를 가지고 리아 이모를 만나러 간다.

 

* 아나가 자신의 무릎에서 죽은 그날.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르셀라. 새로 생기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그날의 기억만큼은 마르셀라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 맏이인 카르멘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마테오가 사라지자 그를 되찾기 위해 30년 동안 연락 한 번 한 적 없는 리아를 찾아간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상냥하고 순진하고 착했던 아나. 그러나 카르멘의 기억 속 아나는 늘 그녀를 시기하고 그녀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카르멘 따라쟁이었을 뿐이다.

 

* 귀염둥이 셋째 딸을 잃고 죽기 직전까지 아나의 죽음을 파헤쳤던 알프레도. 그는 진실을 알고 더 괴로웠다. 그래도 그 진실을 묻어 둘 수 없어 편지를 쓴다. 그가 마지막 남긴 편지 속에 무슨 진실이 들어 있을까?

 

 

여러 명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아나 살인사건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나에 대한 느낌까지도 반전되어 버리는 이야기 앞에서 세상사를 한 번에 배워버린 기분이다.

 

종교가 '고해성사'라는 이름으로 죄를 사해주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그럼에도 그것이 모든 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견고한 성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가 곧 모든 걸 없던 일로 해준다는 그 믿음.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죄를 뉘우침 없이 없던 걸로 만든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더 여자들의 모든 것을 옥죄어 온 게 가부장제의 부당함이다.

 

죽이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죽이는 것보다 더한 짓을 하고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세상을 종교적 잣대로만 판단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모든 결정을 내렸던 거다.

 

그래서

그것이

더 끔찍한 느낌으로 남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리던 사람들이

성경으로 하나님을 공부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헤아릴 줄 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종교의 자유는 가족 간에도 존재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건 종교를 믿는 게 아니다.

자식에게도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되지.

종교가 없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해서도 안 되지.

 

신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사해 달라는 이기심은 무법과도 같은 것.

 

내가 비종교인이라 그럴까?

고해성사로 자신의 죄를 덜어버리는 그 행위가 참 이중적으로 느껴졌다.

 

여기 등장하는 여자들 모두 신을 죽였다.

신의 이름으로 행한 행동으로 신을 욕되게 함으로써.

신조차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걸 보는 순간 그들의 마음에서 삭제 시켰다.

 

전작 <엘레나는 알고 있다>에서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특별했는데 이 이야기 역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결론으로 독자를 자유롭게 만든다.

모든 건 남겨진 이들의 몫.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도 그들의 몫.

 

용서는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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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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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렇게 근사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끔찍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페일 블루 아이>는 영화로 처음 만났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을 때 가장 난해한 점은 영화 속 이미지가 투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스로 상상하지 못하고 배경이나 인물의 특징이 영화 속 이미지로 바로 떠오른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들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영화 속 이미지들로 인해 소설의 묘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은퇴한 랜도 경위에게 어느 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생도 한 명이 그를 데리러 온다.

사관학교에 도착한 랜도 경위는 밤사이 그곳에서 자살한 생도가 있었고 누군가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장은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 했고, 랜도는 사특한 집단이 사관학교 안에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운 가죽 모자 밖으로 검은 머리 두 가닥이 삐져나와 눈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적갈색이 섞인 회색 눈은 얼굴에 비해 너무 컸다. 치아는 그와 반대로, 야만족 족장이 거는 목걸이에서 볼 수 있음 직하게 작고 정교했다.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른 그에게 잘 어울리는 섬세한 치아였다. 전체적으로 가냘픈 그의 체형 중에 이마만 예외라 모자라도 가려지지 않았다. 핏기 없이 큼지막한 이마가 아나콘다의 목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 먹이처럼 모자 밖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등장하는 장면의 묘사는 아주 신랄하다.

나이는 들었으나 신입생인 사관생도 '포'는 랜도에게 접근해 이렇게 말한다

 

"범인은 시인입니다."

 

 

 

목매단 시체에서 사라진 심장

거세당한 시체에서 사라진 심장

 

600페이지가 넘는 깨알 같은 글씨가 촘촘하게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19세기 음산한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는 신생이라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다.

그런 와중에 살인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주변 농가의 동물들도 장기가 도려내지는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누군가 사악한 주술을 부리는 것 같다.

 

랜도는 사관생도들을 관찰하기 위해 '포'를 스파이로 삼는다.

 

"생도로 생도를 잡는 작전이로군요."

 

 

예리한 포.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랜도.

두 사람의 캐미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잘 어울린다.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는 이들 앞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범인은 왜? 어째서? 심장을 도려내는 걸까? 그걸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사탄 숭배 의식이라도 치르려는 걸까?

 

이 이야기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최초의 살인이 벌어진 교정에서 은근슬쩍 사라진 진실...

예리함이 넘치는 '포'는 그 사실을 알아낼까?

 

역사소설에 활력을 불어 넣는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접하는 모든 미스터리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에드거 앨런 포를 직접 출연시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탁월한 <루이스 베이어드>는 두꺼운 벽돌책의 무게를 덜어내 주는 필력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디테일한 심리를 책을 통해 느끼며 묘한 스릴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 이야기의 압권은

'포'가 발견해낸 추리에 있다.

그가 랜도 앞에서 자신의 추리를 펼치는 장면의 짜릿함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다.

절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 이야기에 쓰여야 한다.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는 랜도 씨가...."

"어떤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 같습니다."

"누굴요?"

 

 

과연 랜도가 보호하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 번 맞혀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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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인문학적인 미술사 - 단숨에 읽히는 시대별 교양 미술 수업
이준형 지음 / 날리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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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처럼 서양미술사에 담긴 수많은 인과관계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각각의 미술사조 및 작품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 작가의 말

 

인간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왜 그렸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저 질문에 대해 추측해 본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하는 습성이 있고, 문자가 없었던 시절엔 가장 비슷하게 기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으로 남겼다.

 

<세상 인문학적인 미술사>에는 미술의 시작부터 지금 동시대의 미술까지를 다뤘습니다.

 

 

미술에 대한 책들이 다양하게 나와있어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한두 권쯤은 미술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웬만한 시대별 미술사들을 대표하는 이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중세미술, 바로크양식, 로코코미술, 낭만주의, 현대미술 등등 그러나 읽고 나면 다 사라지고 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은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미술이 유행했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과 시대상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딱딱하고 알아듣기 힘들어서 일반인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사에 대해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책입니다.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시대의 역사, 문화, 철학, 문학, 과학, 종교까지를 다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그 시대의 모든 것들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 명료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미술에 '미'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술이 어떤 것인지를 대강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보다는 미술 초보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책입니다.

 

저는 최근 들어 전시회를 자주 찾아다니며 그림을 느끼고 있는 중인데 사실 보는 것을 선호하지 그 그림의 가치와 시대적인 위상 같은 건 보고도 거의 잊어버리고 맙니다.

아예 기초가 없기 때문에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고, 그림들을 봐도 장황하기만 할 뿐 정리가 되지 않았어요.

 

<세상 인문학적인 미술사>는 미술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들에게 미술사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입니다.

그래서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만 하느라 글자만 가득한 책이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다양한 작품들의 사진이 함께 담겨 있기에 문자의 바다에서 헤매시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통해서나 미디어를 통해서 언젠가 한 번은 봤을 그림들과 조각, 건물 등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습니다.

 

미술사를 시대별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책이랍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잘 몰라서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던 분들

미술과 인문학적 교양을 같이 쌓고 싶으신 분들

그림이나 미술사조에 대해 알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책입니다.

 

잘 구성된 미술 교과서라고 생각하시면 이 책을 좀 더 잘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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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의 후회 수집
미키 브래머 지음, 김영옥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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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했다.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클로버의 후회 수집>은 따뜻함이 몰려오는 소설이었다.

 

내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건 스무 살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앞에서 지켜보던 순간 나는 죽음이 그렇게 손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고 있었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머리와 턱을 두 손으로 감싸며 큰 아버지가 하신 말

"어머니, 눈 감으세요. 어머니, 입 다무세요."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큰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셨다..."

그 말을 시작으로 어른들의 곡소리가 울렸다.

 

병원에 계시다 큰집으로 모셔져 그곳에서 임종을 맞으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마주친 첫 죽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고, 순간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거라는 착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죽음이 <클로버의 후회 수집>을 읽으며 되살아 났다.

 

클로버는 36살 임종 도우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이 홀로 죽지 않도록 그 곁을 지킨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말들을 적어둔다.

 

<후회>, <조언>, <고백>으로 분류된 세 권의 노트는 클로버가 그들의 말은 담아 놓은 기록이었다.

 

 

나는 항상 약속을 지켰다.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나날을 지킨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들이 의지할 데가 나밖에 없다면 더더욱.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슨 말을 남길까?

이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누군가의 마지막 말을 기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말의 기록이 아닐까?

 

한파가 몰아치는 이 겨울에 홀로 죽어갈 죽음들이 눈에 밟힌다.

클로버처럼 그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죽어가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클로버 자신 곁에는 반려동물 외엔 아무도 없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집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남긴 물건들 사이에 자기 물건을 놓고 살아가는 외로운 클로버.

그에게 죽은 이들을 위한 게 아닌 너의 삶을 살라는 이웃 리오의 말이 클로버가 들은 가장 친근한 사람의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죽음과 가까운 클로버에게 생명에 가까운 일들이 생기게 될까?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언제나 흥분과 함께 왠지 모를 불안을 가지고 있다.

뜻밖의 일들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이렇게 복잡할 때 <클로버의 후회 수집>을 읽게 되었다.

 

서배스천처럼 죽음 앞에서도 그 죽음을 금기시하는 가족들 틈에서 혼자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

언제 훅 꺼질지 모를 성냥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클로버가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에 지침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

 

차가운 마음에 온기가 스며드는 이야기였다.

 

후회, 조언, 고백.

내가 남긴 말은 이 중에 어떤 목록에 담기게 될까?

후회하는 말을 남기지 않도록 후회를 만들지 않으며 살고 싶어졌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생 최고의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요." 클로디아가 마지막으로 윙크를 했다. "조심스럽게 무모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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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단야 쿠카프카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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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기만 한 인간은 없다. 착하기만 한 인간도 없다. 우리는 그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모두 평등하게 산다.

 

 

제목에 쓰인 '기록'이라는 말처럼 이 이야기는 화자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것 같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처럼 사형수인 연쇄살인범의 과거의 행적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까지 그와 연결되었던 여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독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인물에게 집중하며 이 상황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안셀 패커는 여자 교도관을 꼬셔서 탈출을 계획한다.

사형 당일 그는 자신의 탈출을 꿈꾸며 사형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탈출은 성공할까?

 

 

그녀를 차로 끌고 가는 동안 당신은 누군가 볼까 봐 몸을 떨었다. 순전한 운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은 단 한 명의 여자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부인이었던 제니. 그는 제니를 알게 된 순간부터 살인을 멈춘다. 제니는 그를 품었다. 엄마처럼.

 

어릴 때부터 숲속에서 동물을 죽였던 아이는 십 대 때 이미 3명의 소녀를 죽인다.

그래서 소녀 살인마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잘 숨었다. 아무도 그의 행적을 알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비극에는 감촉이 있다. 당장이라도 풀어야 할 것 같은 매듭이 느껴진다.

헤이즐, 라벤더, 사피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안셀의 이야기는 피해자이자 혈육이자 그를 감지한 최초의 형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선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고통스럽고 숨쉬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견뎌내고 살아가기를 택하는 건 '선택'이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가해자의 변명과 과거는 그가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안셀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도 그 자신의 선택이다.

그가 자신의 이론으로 내어놓은 다중우주의 삶은 그저 그의 변명일 뿐이다.

다른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삶을 선택했어야 했으니까.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의 제목이 '사형수에 과한 기록'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작가는 연쇄살인범에 열광하는 미디어와 사람들에게 조용히 얘기한다.

 

 

이 여자애들만으로는 이야기랄 게 없다. 어떤 집회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안셀과 이 세상이 안셀과 같은 남자에게 보이는 열광 때문이다.

 

 

안셀의 사형이 집행되는 시간 그가 죽인 소녀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그들이 사라진지 29년 만에, 그들의 백골 사체를 발견한지 20년 만에...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안셀에게 집중할 뿐..

 

단야 쿠카프카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무심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집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속에서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에 대해.

내가 응원했던 모든 주인공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내가 쉽게 납득했던 가해자의 과거들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은 그것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2023년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사람들의 그릇된 관심이 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성공하기 힘든 이들에게 그릇된 방향의 관삼은 얼마나 쉬운가...

 

모든 것은 선택이다.

자기 자신의 선택.

불타버릴 걸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선택.

 

안셀도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꿀 수 없었다.

잠재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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