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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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비아누는 소몰이꾼이었고, 아무도 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다. 그는 짐승처럼 나타나 짐승처럼 둥지를 틀고 뿌리를 내렸다. 그곳에 안착한 것이다. 파비아누는 주변의 키라, 만다카루, 시키시키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모든 것보다 더 강했다. 그는 카칭가 관목과 바라우나 옻나무만큼 강했다. 파비아누와 비토리아 어멈, 두 아이, 그리고 강아지 발레이아는 그 땅에 붙어살고 있었다.

몸속의 물이 다 말라 버린 것 같은 버석버석한 느낌으로 시작한 <메마른 삶>

가뭄을 피해 정처 없이 길을 떠났던 파비아누 가족은 아사 직전 강아지 발레이아가 잡아 온 기니피그로 연명한다.

그리고 사람도 가축도 떠난 농장에 자리를 잡는다.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가족들의 기쁨도 잠시 가뭄을 해갈시켜 줄 폭풍우가 몰아치고 농장 주인이 돌아왔다.

그들 가족에겐 또다시 주인이 생겼다.





그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조급해질 때마다 말을 더듬었고, 어린아이처럼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며 팔꿈치를 긁곤 했다.

배운 거 없는 파비아누는 도시에서 노란 군복을 입은 군인의 꼬임에 빠져 노름에서 가진 돈을 탕진한다.

비토리아 어멈에게 그 상황을 설명할 거짓말을 지어내다가 그를 쫓아 나온 군인과 시비가 붙고 감옥에 갇힌다.

도시는 그에게 어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마스 날엔 옷을 갖춰 입고 도시로 향한다.

1년에 한 번 그가 가족들과 미사에 참여하는 시간이다.

낯선 농장에서의 삶이 익숙해질 무렵 또 한차례 조짐이 보인다.

그들이 도망쳐 왔던 가뭄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그들의 터전을 향해 다가온다.

파비아누는 가족을 데리고 주인 몰래 도망친다.

또다시 죽음의 문턱 앞에 서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자라고, 자기와는 다르게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것이다.

그와 비토리아 어멈은 편안히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의 가족은 더 이상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지닌 채 그들은 가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뭄을 피해 남쪽을 향하는 그들의 앞길에 어떤 일들이 남아 있을까?

이젠 그들을 위해 기니피그를 잡아 올 강아지 발레리아도 없는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런 대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 땅 한 뙈기도 없지만 그저 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맘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정녕 없는 걸까?

무지하다고 속여 먹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뿐인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의 맘.

그저 편하게 자고 싶지만 불편한 침대 하나가 고작인 삶.

예전 주인 집 침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비토리아 어멈의 욕망.

바에서 술 한 잔의 낙을 앗아간 노름과 감옥.

도시에서든

농장에서든

파비아누에겐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발레리아와의 추억만 있을 뿐.

이젠 그 추억마저도 고통의 기억으로 덮어 씌워져서 슬픔으로 남았다.

브라질 작가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대표작 <메마른 삶>을 읽으며 인간의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이란 '희망'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일어나는 브라질의 기후.

기후 난민이라는 말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언제든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 '희망'이라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아이들을 앞 날이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으로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마음으로

그들은 길을 떠난다..

앞으로 이 지구에서 벌어질 일들일지도 모른다..

먹이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의 삶이 곧 인간의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먼 인류의 조상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했듯이

우리에게도 가뭄과 식량난은 앞으로 곧 닥칠 재앙이다.

그래서 이 파비아누 가족의 이동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이 뿌리내릴 땅에 도착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희망' 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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