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스테르담으로 출근합니다 - 네덜란드로 간 한국인 승무원, 살아 있는 더치 문화를 만나다!
신수정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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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풍차의 나라라는 것과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친근감을 찾아보자면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다녀온 동생이 사다 준 냉장고 자석과 '진주 귀걸이 소녀' 엽서 정도.

신수정 작가님에게 선물 받은 책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출근합니다>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 이후 한국으로 여행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류의 열풍도 있지만 이미 한국은 첨단의 도시로 알려져서 미래 도시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분명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내면과 우리의 관습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들은 관심이 없으면 아예 말하지 않으며, 만약 말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진심 어린 의견이라고 말한다.

바다 보다 낮은 땅을 억척스레 일구며 살아낸 그들은 척박한 환경과 맞서 싸우느라 절박한 상황을 자주 겪는 동안 그들만의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격식 따위 던져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내비치는 문화가 예의범절 따지는 우리에게는 무척 무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거침없는 속내 표현은 예의범절 따지느라 뭔 말인지 알쏭달쏭 한 우리네와는 결이 다르다.

직선적이지만 상대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다.

입 다물고 있다가 나중에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더치페이가 정 없게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으로 바뀐지 오래다.

그들은 질문을 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문화다.

충분한 토론을 거치기에 다소 느린 듯 보여도 결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합한 결정이기에 나중에 시끄러운 일도 없고, 문제가 생겨도 모두가 의견을 내어 해결하기에 독단이 없다.

"틀려도 괜찮아."

모든 것에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저 말이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

틀려도 괜찮아, 그러나 그로 인한 문제는 너가 책임져.라는 뉘앙스가 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모두가 저 말을 달고 산다고 한다. 당연히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틀렸어도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나이와 직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틀려도 괜찮으니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는 사회다.


유연한 근로 시간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경력단절 없이 일하고 있다.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승진은 물론 휴가도 똑같이 쓸 수 있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몸만 건강하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 솔깃하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네덜란드에서 결혼은 이제 한물간 제도 같다.

'파트너 등록제'로 동거인을 파트너로 부르며 법적으로 부부관계로 본다.

결혼과 동거는 헤어질 때 절차가 다른데 동거는 시청에 신고만 하면 되지만 결혼은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신랑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가 턱시도를 입고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참 신박했다.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하니 격식을 따지지 않는 곳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같다.

네덜란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1976년 대마를 세계 최초로 허용해 강한 마약의 확산을 막았고, 성매매는 1988년 공식적으로 직업으로 인정하여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냈다. 2001년, 동성 결혼을 최초로 인정하고 2002년에는 말기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했다.


동물복지도 세계 최고다.

투표권이 없는 동물을 위한 정당과 응급 동물을 위한 구급차와 동물 학대 범죄를 담당하는 경찰도 있단다.

대다수의 상정이나 카페, 레스토랑은 물론 대중교통도 동물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네덜란드가 미래의 인간 사회의 롤 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걸 이미 실천하며 사는 사회가 네덜란드다.

저자 역시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네덜란드 항공사에 취직했다.

우리나라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 네덜란드.

여러 가지 절차가 있지만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복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냉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알고 나니 그들이 수많은 질문과 의견을 내어 고쳐간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설화법도,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피드백도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물어보고 질문할 자유를 가진 그들의 삶이 많이 부러워졌다.

개방적이고 열린 문화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우리가 참 많이 갇혀 있는 답답한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네덜란드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국립미술관에 있는 진주 귀걸이 소녀를 직접 보고 싶다.

이제 맥주는 하이네켄만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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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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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인생의 페이지를 내일로 넘겨."




기욤 뮈소의 10여 년 전 작품이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아직 읽지 못했던 <내일>을 읽으며 바로 이 맛이지! 이게 기욤 뮈소지! 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로맨스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스릴러로 전환된다.

바로 기욤 뮈소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뮈소만의 장르였다.

달콤하다가 쌉싸름하면서 떨떠름했다가 마지막 달콤함을 안겨주는 맛.

잊고 있었던 맛이었다.

처음에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읽었을 때의 그 충만함이 되살아났다.

최근작들에 약간 실망했던 터라 더 반가운 작품이었다.

2011년을 사는 남자와

2010년을 사는 여자가 중고 노트북으로 연결된다.

서로 만나기로 했지만 시간대가 영 다른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망한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을 이어주는 건 중고 컴퓨터라는 사실.

매튜는 엠마를 이용해 1년 전에 죽은 아내 케이트를 살려보려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아주 파렴치하다.

하버드 철학과 교수가 할 짓은 못되지...

안 그래?




엠마는 와인 감별사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고, 쉽게 상처받는 성격이다.

자신이 판 적도 없는 노트북을 샀다는 남자에게 메일을 받고 답장을 하다 보니 궁금해졌다.

하버드 철학과 교수라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 멋진 남자였다.

게다가 부인도 없고...

그러나 그 남자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맞은 줄 알았는데 서로의 시간대가 달랐을 뿐이었다.

그걸 알고 나자 이 남자가 자기 아내를 구해달라고 한다.

구해줘 말아?


로맨스로 달달했던 마음이 스릴러로 쪼여진다.

사람이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랑'을 위해 어떻게 변질되는지 그 맛을 본 기분이다.

케이트도 매튜도 자신들의 사랑 앞에서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엠마의 정신은 불안정했지만 케이트의 뒤를 쫓으면서 약했던 멘탈이 강해진다.

프랑스 소설이라 그런가?

뭔가 아련미는 없는 거 같다.

달달함 속에 냉철함이 있다.

미래가 바뀐 사람의 기억 속엔 없는 과거의 이야기.

혼자만 바뀐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기다림.

다시 시작되는 그들의 시작점에서 과연 이 커플을 응원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예전 같았으면 다시 시작되는 이 로맨스가 아름다웠을 텐데..

지금은 매튜의 만행(?)을 보았기에 그게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다.

차라리 각자의 길을 갔어도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장르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은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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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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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을 그리로 보내요."

"왜?"

"거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아요."

"원 애도..."



6.25 전쟁이 휩쓸고 간 고택의 한 귀퉁이는 허물어져있다.

경아는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산다.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가족이나 애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경아는 전쟁의 참상을 잊은 것처럼 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분주해진 일터에 옥희도라는 사람이 들어오고 경아는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철없어 보이는 경아의 일탈은 불안한 시대를 반영한 거 같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 지 못하는 그들의 심정은 불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 같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을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본심은 아니었을게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남편과 아들에게 기대어 사는 삶.

그들의 존재는 삶과 생명이었다.

남편이 죽었어도 엄마는 버틸 수 있었다.

두 아들들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었으니까.

아들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엄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의지처가 사라졌으니까..

정신을 놓아버린 것처럼 보였던 엄마는 여자이기를 포기하면서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

그에겐 경아가 있었으므로 엄마의 회복엔 경아의 활기가 있었다.

이 전쟁통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일선에 나가서 당당하게 돈을 벌어오는 딸 경아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 어떤 관습이라는 게 그녀의 마음을 다 놓아주지 못했을 뿐...



그저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소녀에서 죄책감을 지닌 어른이 되어야 했던 경아는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놓을 수 없었다.

옥희도 씨로부터 아버지와 오빠들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면 그의 아내를 통해 엄마에게 받지 못하는 이해를 얻고자 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그 마음은 불안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봐 응? 용감히 혼자가 되는 거야. 용감한 고아가 돼봐."


경아는 용감했다.

자신은 몰랐지만.

그저 굳건한 기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태수는 너무 어렸다. 그녀의 그 고뇌를 담아줄 그릇이 아니었다.

꽉 차 있어 넉넉한 마음은 늘 무언가를 품고 있지...

경아도 그 넉넉함에 담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맘때는 늘 어른의 고독 속에 존재하고 싶은 법이니까..

옥희도의 헐벗은 나무가 세월이 흘러 "나목"으로 보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은 모든 걸 바꿔놨고, 모든 걸 새로이 정립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들 틈에 경아가 있었다.

혼란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홀로 방황했던 젊음은 엄마의 죽음으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자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삶.

경아가 독립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는 이 마무리가 평안했을 거 같다.

지금은 마지막 챕터 없이 끝났으면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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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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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서둘러 병사가 됐어... 생각하고 말고 할 새가 없었거든. 자신의 감정을 고민해 볼 시간이 없었지...."



이 책을 사 놓고 읽다 말다를 여러 번 했다.

독파챌린지도 2번 참여했지만 첫 번째는 성공하지 못했고, 두 번째도 날짜 개념이 없어서 마지막 날 완독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겐 항상 미완으로 기억될 책이다.

2차 세계대전.

밀려오는 독일군에 대항한 러시아.

그 안에서 남자들만의 전쟁에 발 벗고 나선 여자들의 인터뷰가 담긴 책이다.

열여섯, 일곱, 여덟, 아홉의 꽃다운 소녀들이 전쟁에 참가했다.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외출 금지를 시켰던 엄마는 딸이 전쟁에 참가한다고 하자 말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무슨 마음이 밤길에 딸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을 바꾸었을까?

밤길 보다 더한 전쟁 속으로 딸들을 보내는 그 마음은 어떤 걸까?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가 사람을 죽이고 죽어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몸에 맞는 군복이 없어서 남자 치수의 커다란 군복과 군화를 신어야 했던 소녀들.

남자들만 있는 배에서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해 바다에 일부러 빠진 소녀.

독일군도 믿지 못했던 저격병 사샤 실랴호바.

임신한 와중에도 지뢰를 옆구리에 끼워 날랐던 소녀.

전쟁터에 가져갈 물건으로 사탕을 챙긴 소녀.

스무 살에 공병소대 소대장이 된 여성.

짝사랑하던 죽은 소위를 묻어주며 생에 첫 키스를 한 여인...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다.

그들 자신이 벌인 전쟁이다.

아니지. 어떤 정신 나간 리더의 잘 못된 판단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이 책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소녀들이 이제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전쟁에서 어떤 마음일까?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들은 전쟁을 원하고, 전쟁을 일으킬 아주 자그마한 어떤 것도 평화롭게 넘기지 못한다.

그런 전쟁의 여파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건 여자들이다..

온몸으로 전쟁을 견뎌낸 여자들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자들까지도 품어야 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여자들은 그 누구도 품지 않았다...

여자들은 전쟁에서 남자들 못지않게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사라지고, 잊히고, 없어져야 했다..

아무도 전쟁 이후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여자를 원했으니까...


남자들의 훈장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지만

여자들의 훈장은 감춰야 하는 것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여자들은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지만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을 얘기였다.

아무도 이처럼 어린 소녀들이 전쟁에서 싸웠다는 걸 말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전쟁이 사라진 지구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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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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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펠리시아나와 조에의 만남은 팔로마의 죽음으로부터였다.

팔로마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사촌인 펠리시아나를 찾아온 조에.

펠리시아나와 조에의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는 <마녀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와 삶을 살지만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팔로마의 죽음은 젠더에 대한 폭력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과 폭력과 강간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역사를 대변한다.

한 여자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치유자인 펠리시아나의 이야기와 기자인 조에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다가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여성들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과 그들 주변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과 폭력과 상처들을..

그것들을 이겨내려 싸우는 사람들에게, 펠리시아나와 같이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해 주는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마녀"라는 오물 덩어리 단어이자 언어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삶은 이다지도 같은지...


나는 샤먼입니다. 지혜로운 남자들 집안 출신이지만 나는 여자이고 내 이름은 펠리시아나입니다. 신께서 나를 아시므로, 온 하늘이 나를 압니다. 나는 여자이고 치유자입니다. 언어가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야. 나는 언어이고 언어의 단어들은 현재이며 책이 내게 주어졌으니, 나는 책-여자이자 언어란다.



펠리시아나가 말하는 "언어"에 대해 처음 가졌던 생각이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달라진다.

펠리시아나가 처음부터 계속 말해왔던 "언어" 이 언어가 있기에 그녀가 치유자라는 그 사실이 뜨겁게 가슴에 남겨진다.

팰리시아나가 조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한 말이다.

우리의,

여성들의,

잃어버린 '언어'를 찾으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될 것이다.

"마녀" 프레임에 사라져간 수많은 기록들을 우리가 조에가 되어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펠리시아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겐 '언어'가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들으며 그들의 역사를 보는 눈이 있는 펠리시아나는 조에에게 글을 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여성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 모두가 지난 세대의 여성들이 남긴 사라진 기록들을 찾아내고, 이야기로 남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성들을 대하는 시대의 방식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니까.

<마녀들>을 읽으며 내 안에 차오르는 힘을 느낀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은(여성 포함) 여성들의 연대를 두려워했다.

여성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펠리시아나는 이제는 우리 모두가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말을 하는 우리.

이제 우리는 "언어"를 가졌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낼지 알고 있다.

삭제된 기록들을 다시 적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마녀들>은 여성과 여성이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른다.

분노하다가 길을 발견한 기분이다.

펠리시아나는 여성들에게 나아갈 바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은 언어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는 마녀의 기질이 있으니까.

그 기질을 발휘해서 마녀들이 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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