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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다들 서둘러 병사가 됐어... 생각하고 말고 할 새가 없었거든. 자신의 감정을 고민해 볼 시간이 없었지...."
이 책을 사 놓고 읽다 말다를 여러 번 했다.
독파챌린지도 2번 참여했지만 첫 번째는 성공하지 못했고, 두 번째도 날짜 개념이 없어서 마지막 날 완독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겐 항상 미완으로 기억될 책이다.
2차 세계대전.
밀려오는 독일군에 대항한 러시아.
그 안에서 남자들만의 전쟁에 발 벗고 나선 여자들의 인터뷰가 담긴 책이다.
열여섯, 일곱, 여덟, 아홉의 꽃다운 소녀들이 전쟁에 참가했다.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외출 금지를 시켰던 엄마는 딸이 전쟁에 참가한다고 하자 말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무슨 마음이 밤길에 딸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을 바꾸었을까?
밤길 보다 더한 전쟁 속으로 딸들을 보내는 그 마음은 어떤 걸까?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가 사람을 죽이고 죽어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몸에 맞는 군복이 없어서 남자 치수의 커다란 군복과 군화를 신어야 했던 소녀들.
남자들만 있는 배에서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해 바다에 일부러 빠진 소녀.
독일군도 믿지 못했던 저격병 사샤 실랴호바.
임신한 와중에도 지뢰를 옆구리에 끼워 날랐던 소녀.
전쟁터에 가져갈 물건으로 사탕을 챙긴 소녀.
스무 살에 공병소대 소대장이 된 여성.
짝사랑하던 죽은 소위를 묻어주며 생에 첫 키스를 한 여인...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다.
그들 자신이 벌인 전쟁이다.
아니지. 어떤 정신 나간 리더의 잘 못된 판단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이 책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소녀들이 이제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전쟁에서 어떤 마음일까?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들은 전쟁을 원하고, 전쟁을 일으킬 아주 자그마한 어떤 것도 평화롭게 넘기지 못한다.
그런 전쟁의 여파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건 여자들이다..
온몸으로 전쟁을 견뎌낸 여자들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자들까지도 품어야 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여자들은 그 누구도 품지 않았다...
여자들은 전쟁에서 남자들 못지않게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사라지고, 잊히고, 없어져야 했다..
아무도 전쟁 이후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여자를 원했으니까...
남자들의 훈장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지만
여자들의 훈장은 감춰야 하는 것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여자들은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지만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을 얘기였다.
아무도 이처럼 어린 소녀들이 전쟁에서 싸웠다는 걸 말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