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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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을 그리로 보내요."

"왜?"

"거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아요."

"원 애도..."



6.25 전쟁이 휩쓸고 간 고택의 한 귀퉁이는 허물어져있다.

경아는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산다.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가족이나 애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경아는 전쟁의 참상을 잊은 것처럼 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분주해진 일터에 옥희도라는 사람이 들어오고 경아는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철없어 보이는 경아의 일탈은 불안한 시대를 반영한 거 같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 지 못하는 그들의 심정은 불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 같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을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본심은 아니었을게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남편과 아들에게 기대어 사는 삶.

그들의 존재는 삶과 생명이었다.

남편이 죽었어도 엄마는 버틸 수 있었다.

두 아들들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었으니까.

아들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엄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의지처가 사라졌으니까..

정신을 놓아버린 것처럼 보였던 엄마는 여자이기를 포기하면서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

그에겐 경아가 있었으므로 엄마의 회복엔 경아의 활기가 있었다.

이 전쟁통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일선에 나가서 당당하게 돈을 벌어오는 딸 경아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 어떤 관습이라는 게 그녀의 마음을 다 놓아주지 못했을 뿐...



그저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소녀에서 죄책감을 지닌 어른이 되어야 했던 경아는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놓을 수 없었다.

옥희도 씨로부터 아버지와 오빠들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면 그의 아내를 통해 엄마에게 받지 못하는 이해를 얻고자 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그 마음은 불안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봐 응? 용감히 혼자가 되는 거야. 용감한 고아가 돼봐."


경아는 용감했다.

자신은 몰랐지만.

그저 굳건한 기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태수는 너무 어렸다. 그녀의 그 고뇌를 담아줄 그릇이 아니었다.

꽉 차 있어 넉넉한 마음은 늘 무언가를 품고 있지...

경아도 그 넉넉함에 담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맘때는 늘 어른의 고독 속에 존재하고 싶은 법이니까..

옥희도의 헐벗은 나무가 세월이 흘러 "나목"으로 보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은 모든 걸 바꿔놨고, 모든 걸 새로이 정립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들 틈에 경아가 있었다.

혼란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홀로 방황했던 젊음은 엄마의 죽음으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자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삶.

경아가 독립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는 이 마무리가 평안했을 거 같다.

지금은 마지막 챕터 없이 끝났으면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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