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가 과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진 파나마 운하... 아마도 우리나라의 롤모델로 자주 거론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자주 거론되겠죠.

그렇지만, 자연을 거슬러서 좋은 결과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마냥 기대되지많는 않네요.

부동산 값은 춤추겠지만, 그 많은 비용 대비 효과가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그리고 환경파괴에 대한 댓가로 과연 어떤 결과가 있을지도 걱정이구요.

출처: http://bbs3.worldn.media.daum.net/griffin/do/country/bbs/read?bbsId=C005&articleId=11781&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파나마는 앞으로 한참 논쟁이 될 한반도 대운하에서 자주 거론될 것입니다.

정부에서 잠시 보류라고 했지만 아직 공식 포기나 파기사안은 아니니 언제든지 수면으로 올라 올 가능성이 있겠지요.

복잡한 상관관계를 떠나 일단 파나마운하 배가 통과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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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하는 배를 맞을 준비에 분주합니다.

이 건물은 양쪽 수로를 굽어볼수 있는 중앙통제실처럼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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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나마는 운하통과비도 쏠쏠히 받고 이런 관광부수입도 올리고 있죠.

산업시찰이나 관광등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던 이나라에 들어오면 파나마를 대변하는 운하를 누군들 먼저 찾는 것 같습니다.

참 저는 한반도 운하를 누가 거론하면 철도를 십분 활용하자는 주의입니다.

워낙 많은 전문가들이 외국(특히 수에즈와 파나마)운하를 귀가 닿도록 예로 들었고 지리시간에도 친숙해진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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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중이던 대형선박이 1차갑문을 통과후 중앙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저 검은색 선박은 동양회사 선박이겠지요.

전면쪽 초록색도 선원들 구성을 보니 동양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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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아마 2차갑문일 것입니다.

물이 차서 배가 수월케 움직일 여건이 되면 이리 갑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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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하게 열리는 갑문.

하루에 저 과정을 얼마나 되풀이하는지 모르지만 역시 모두 동력이 작용해야만 하지요.

당연히 물을 채우고 빼는 과정도 엄청난 과정과 수치들이 필요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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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에 있는 차량은 예인차량으로 죄다 일본제란 말이 있네요.

기차니 아니니 하는 말도 있지만 기차로 보기에는 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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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론 예인하는 차량인지 배에 의존하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장면도 연출합니다.

적당히 물이 차오르면 예인선이 별반 필요없지만 임무를 마칠 때 까지 예인선은 좌우 양쪽에서 견인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기관실과 통신사만 바쁠까 나머지는 이리 한가로이 과정을 구경하고 때론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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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장면.

혹 넘어지지 않을까 보는 제가 더 위태롭네요.

저 로프들은 고래심줄처럼 튼튼할거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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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물이 차오르고 갑문이 열리면 안쪽으로 진입을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저 배에서는 뭘 하는 것일까요?

육안으로 확인해도 해수면 차가 져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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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해오던 일이라서 저 갑문위를 수시로 나다니는 기사들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실제 물이 채워지기전의 갑문과 수면을 보면 약간의 현기증이 있을 수도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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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물을 채우고 빼는 과정은 빠른 것 같습니다.

어느 기계실에서 부지런히 사람을 대신해 기계가 일을 하고 있는 결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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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은 이런 운하를 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조물주의 설계방식을 바꿀때는 댓가가 항상 비쌌습니다.

꼭 필요한 곳만 손대고 개발하여도 부작용들이 많은데 무조건 파헤치고 새로 뜯어 고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요.

갑자기 저 바닥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정정도의 수위가 항상 유지될 것이니 그건 어림없는 생각이지요.

미라플로레스 갑문통과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주로 개방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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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개로 분리된 갑문이 합쳐지는 것도 그렇지만 그 위를 걸어다니며 업무를 보는 모습도 신기합니다.

물이 완전히 빠진 쪽은 차오르기전까지 가급적 바로 근처에서는 그쪽을 안보는 것이 좋을 듯.

선박 바닥이 땅에 닿으면 당연히 암초에 걸린 것 처럼 배가 못움직이니 얼른 뺀 만큼 물을 채워야겠죠.

처음에는 착각하고 저리 조금 부어지는 물-사실은 위쪽 갑문에서 누수된 물처럼 보임-이 안을 채우는 줄 알았죠.

어느 세월에.

보이지않는 손에 의해 물은 갑문 가득 채워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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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녀석은 참 외형적으로 봐도 튼실하게 생겼네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게 믿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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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채워지고 수면이 같아지면-물론 앞배가 과정을 다 마치고 지나가야만-저리 다른 배가 진입합니다.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몇시간 아니 며칠을 기다리고 엄청난 통과비를 준다고 해도 삐잉 돌아가는 것보다 100배 나으니-지도로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그것이 더 경제적이라 대기하면서 순서를 기다리지요.

다만 여기 운하 규격에 맞는 배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구요.

경제성의 논리, 환경의 논리 다 필요없이 운하문제는 상식적인 잣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알다시피 운하가 정말 필요없는 나라입니다.

나중 통일되면 한반도마저 티벳처럼 먹어들려는 중국에게 영토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북한과 중국사이에 운하가 필요하다면 또 모를까.

근데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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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의 물채우기,빼기를 반복하면 중앙을 통과한 선박은 목적지를 향해 유유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대서양배는 태평양으로, 태평양 배는 대서양으로...

전진 방향에는 굳이 대기하는 배가 있을 필요가 없어서인지 한결 뒷쪽보다 여유로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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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채워지는 동안 현장 기사들은 부지런히 다니면서 또 다른 선박통과를 위해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1913년이란 숫자가 확연히 들어옵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잠시 언급하자면

수에즈 운하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사람이 파나마 운하도 예상대로 자신있게 추진할 거라 여기고 뛰어들었는데 결과는 5년내 도산이 되어 미국자본으로 넘어갔다지요.

과거의 실적과 경험은 소중하지만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 것을 무시하고 뛰어든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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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는 파나마이기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일 수 밖에 없구요.

운하 통과비 많이 받고 덤으로 관광수입까지 얻는 파나마 본받자고 주장하는 찬성절대지지자분들은 파나마가 절대교과서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파나마는 파나마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인데.

 

영어방송에서는 여기를 통과하는 선박들 언급하다 한국이름이 중국과 일본언급후 쏙 빠졌는데 그나마 에스빠뇰 방송때 '꼬레아'라는 나라를 언급해주네요.

 

http://cafe.daum.net/7080folk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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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오리지널과 짝퉁

왼쪽이 오리지널 "박가분", 오른쪽이 짝퉁의 전설(?) "촌가분"

신문 광고에까지 등장한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朴家粉)'과 짝퉁의 원조 '촌가분(村家粉)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짝퉁사례가 아닐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지만,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다.

요즘 같으면 저작권 침해로 당장 걸릴만한 카피..

이외에도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전화기, TV 등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어렵게 촬영한 것~


얼마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 6-32 와우공원 입구에 들어선 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1916년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에서 만든 '박가분'은 당시 엄청난 히트상품으로 '촌가분'과 같은 짝퉁의 원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짝퉁의 원조를 만들어내는 도화선이 된 '박가분'과 '촌가분' 모두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곳에 가면 근현대 골동품들을 볼 수 있는데, 골동품이라고 해서 아주 먼 옛날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자라면서 봐왔고 가지고 놀던 제품들이 있어 정겹다.

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이 함께 가서 보면 좋을 듯...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만할 때 봤음직한 물건들, 그리고 7~80년대 한창 젊은 시절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손때묻은 물건들이 많아 정겹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입구


박물관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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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로서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있는 저로서는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흔히 혼자 벌어서는 먹고는 살아도 저축하기는 어렵다고는 하는데 참 현실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 거기에 평생을 희생하시고, 나머지 여생까지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거기다 이젠 손주까지~

과연 저희는 아이의 자녀들을 돌봐주게 될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80417130309402&cp=ohmynews&RIGHT_TOPIC=R4

 

[[오마이뉴스 정현순 기자]"어, 뭐야? 둘째는 안 봐준다더니 얘는 왜 데리고 나왔어?"
"왜는 내가 요즘 얘 보느라고 한동안 못나왔잖아. 이젠 날도 따뜻하니까 나왔지." 15일 친구 K가 몇 달 만에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도 둘째 외손자를 데리고. 다른 모임에는 안 가도 이 모임에는 그래도 편하기 때문에 나왔노라고 K는 말했다.

친구의 딸은 맞벌이 부부다. 사위는 지방에 근무하고 딸은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의 딸 부부는 일주일에 혹은 이 주일에 한번 만나는 주말부부인 셈. 친구들도 K가 둘째 손자를 데리고 나오자 "진짜 봐주는 거냐"면서 모두들 의아해한다.

친구 K가 첫손자를 봐주면서 둘째는 절대 못 봐준다고 했을 때 난 '그럼 그렇지 손자 봐주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하면서 동지애를 느꼈었다. 하지만 K가 둘째를 봐준다고 하니 배신감(?)같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일말의 자책감 같은 것이리라.

"내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직장 여성들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친정이나 시댁에 신세를 지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직장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아무튼 교사인 K의 딸은 둘째를 낳고 2년간 휴직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복직을 해서 친구가 둘째손자를 봐주게 된 것이다. 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째는 절대 안 봐준다고 하더니 어쩐 일로 봐주네."
"어쩐 일은….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가기 어렵다는 교대에 들어가서 힘들게 선생이 되었는데 말이 그렇지 어떻게 안 봐준다고 그래.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그는 첫손자를 22개월 동안 키웠다. 그는 첫손자를 봐주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못 봐준다는 말을 반복했다.

"둘째는 나도 몰라. 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그리곤 딸이 둘째를 낳고 휴직을 하자 그는 잠시 편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딸이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가 끝나자마자 K는 딸아이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손자들을 다시 봐주기 시작했다.

딸이 직장 휴직을 했지만 K의 손자 보기는 계속됐다. 아들 둘만 키우기는 딸이 너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큰손자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씩 재우기도 하고, 그가 딸집에 가서 며칠씩 자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딸이 복직을 하게 된 것이다. 딸아이가 복직을 하게 되면서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던 집도 불편했는지, 지난 2월에는 딸이 친정집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까지 했다. 친구K의 본격적인 둘째 손자 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둘째는 21개월. 기저귀 신세 면할 때까지만이라도 봐주기로 했단다.

"손자들 아플 때 제일 힘들어"

친구K를 만난 날 난 외손자 봐주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외손자들인데 친할머니가 안 봐주고 자기가 2명이나 봐 주는 것이 약 오르지 않니? 어떤 외할머니는 그런 생각하면 괜히 성질난다고 하던데." "글쎄 시어머니가 아주 멀리 살아서 그런지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시집이 가까이 살면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몰라도." "자기 손자들 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야?" "아무래도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지." 사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손자들을 돌봐주다가 손자들이 아프면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게. 손자들이 제 엄마 아빠한테 있어도 아플 때 되면 아픈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미안한지. 그는 평소 깔끔한 성격이라 육아방법에 대해서는 딸과 큰 갈등은 없는 듯 했다. "자기 수고비 받아서 돈 많이 모았겠다. 한 달에 수고비는 얼마나 받아?"
"용돈 수준보다는 좀 더 많이 받지.(정확한 액수를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50만원 이상은 받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더라. 힘들다가도 그거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모르겠어."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면서 통장이 두둑하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웬만한 어려움은 참을 수 있다는 듯.

요즘 친구K의 5살 된 큰손자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의 딸이 어린이집에 들러 큰손자를 데리고 친정으로 온단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작은손자만 데리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큰 손자는 할머니 집에서 재운다고 했다.

전에는 두 손자와 딸 모두 같이 친정에서 잤지만, 남자아이 둘이라서 모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고. 두 손자가 만나면 집안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통에 결국 딸과 친정엄마가 각자의 집에서 한명씩 나누어 자고 있다고 했다. 딸이 둘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가면 아침에 둘을 데리고 오기도 힘들고 해서. 결국 친구K는 두 손자를 번갈아가면서 봐주고 있는 셈이다.

난 나쁜 할머니일까





손자 보기를 외면한 나는 나쁜 엄마일까? 친구를 보면서 딸과 손자들 생각이 많이 났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21개월된 친구K의 둘째 손자는 보채거나 마구 돌아다니지 않았다. 낯가림도 큰손자만큼 심하지도 않았다.

"둘째 얘는 굉장히 순하다. 낯도 잘 안 가리고."
"응 얘는 지 형하고 떼어놓으면 봐줄만 해. 하지만 둘이 붙여놓으면 개구장이도 그런 개구장이가 없어. 이젠 형한테 대들기도 하고 갑자기 밀치기도 하고 해." 점심을 먹는 동안 그가 손자에게 생선가시를 발라주고 뜨거운 것을 식혀 먹이고, 매운음식을 가리면서 살갑게 보살펴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을 손자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우리는 점심을 잘 먹고 공원으로 놀러 갔다. 그의 손자가 아주 재미있게 잘 뛰어 놀았다. 같이 있는 동안 울음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공원에서 잘 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가 손자를 등에 업는다. 손자는 신이나 했다. 할머니 등에 업히더니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손으로는 좋아서 그런지 할머니 등을 치면서 해맑게 웃었다. 손자를 업은 친구가 그렇게 멀어져갔다.

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그의 딸과, 지금쯤 어린이 집에 있을 두 손자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내 딸이 떠올랐다. 내 딸은 안심하고 일하고 있을까?

내가 큰손자를 못 봐준다고 했을 때 딸아이는 외국인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난 그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자를 못 봐준다고 했다. 딸아이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딸아이는 10개월이 지나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곤 둘째를 낳았고, 그 아이가 5개월 되었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손자를 봐줄 때 수고비란 것도 받았지만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무척 힘들었다. 내가 손자 봐주기를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친구K를 보면서 손자들과 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날 난 집에 돌아가 어린이집에 있는 손자들을 내가 찾았다. 그리곤 4살 된 작은 손자를 아주 오랜만에 업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녀석의 어리광이 한껏 늘어졌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함무니, 나 컹(형) 아니야, 나 아기야" 하면서 등에 쫙 엎드린다. 녀석의 그런 어리광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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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에는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영구피자에서~

3년전 이맘때 한국에 놀러온 에들린과 캐더린을 데리고 아들녀석과 함께 용인민속촌 구경을 시켜줬었는데, 3년이 지나 연락이 닿은 것이다.

어느 정도 컸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훌쩍 자라 둘다 숙녀가 되어있었다.

3년 전에는 작고 귀여운 소녀들이었는데, 이번에 만나니 에들린은 그새 키가 얼마나 컸는지 170cm는 족히 넘어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의바르고 착한 것은 여전했고, 오랜만의 만남이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피자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아들녀석과 장난도 치고, 화장실도 데려다 주고, 어쩜 그리 이쁠 수가~

홍콩에 살면서 한국에서 사업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가끔 한국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키가 너무 클까봐 14살 어린 딸에게 일부러 무거운 걸 들게 해서 키가 더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엄마의 농담이 아니더라도 정말 많이 큰걸 알 수 있었다.

3모녀가 정말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키우는 재미는 딸이 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의 인연으로 연락이 닿아 오랫만의 만남을 가졌기에 무척이나 즐거운 하루였다.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홍콩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독일어, 영어, 광둥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어쩌면 이 아이들야말로 코스모폴리탄의 전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어쩌면 에들린과 캐더린처럼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아닐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살이에 미쳐 적응도 하기 전에 또 저만큼 멀찍이 앞서나가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을 갖게 한다.

어쩌면 앞으로 3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모습일지, 무슨 생각이 들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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