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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옛날엔 아무나 책을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업으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선비와 양반자제들에게만 책은 허용되었었고, 왕만 읽을 수 있는 책이 따로 있었으며 여자들에게는 소학, 열녀문정도를 넘어선 높은 소양을 필요로하는 학문적인 책의 독서를 금해왔다고 한다. 그건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영주들이나 귀족 등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급이 따로 있었고, 여자들이나 하층민들은 책을 함부로 읽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책을 감춰서 몰래몰래 봐야하는 시대가 있었지만 요즘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무조건 지식이 많은 똑똑한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한달에 혹은 일년에 몇권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그사람의 교양의 척도, 지식의 척도가 암묵적으로 정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활자 잔혹극]이라는 책은 문맹의 무서움과 그것이 사회에 주는 병적인 문제를 말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에만 빠져사는 사람 또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라고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면을 보여주는 책이다. 까막눈을 가진 유니스 파치먼과 밥상에서도 책에 집착하고 어디에서든 책을 읽는 조지 커버데일가.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들과의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보다는 독서를 하는 혼자만의 시간에만 빠져사는 자일즈 몬트를 보여주면서 그 두가지 모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문맹'과 '독서광' 그들은 문자해독에 대해서는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같은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는 점에서 그리 다른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뚜렷한 동기도 치밀한 사전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전적 이득도 안전 보장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여파로 그녀의 무능력은 한 가족과 몇 안 되는 마을 주민에게는 물론 온 나라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스로 재앙을 불러왔을 뿐이다. "

                                                                                                             -chapter 1 p.5

 

 

유니스 파치먼은 글을 모른다.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기 때문에 눈치를 봐가며 어느정도 맟추며 생활을 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글을 읽고 쓰는건 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배울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혼자가 되고 나서는 나이가 많은데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들여 글을 배울 용기가 없어 그냥 살아왔었다. 주변에 그녀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소수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정부로 커버데일가로 왔는데 커버데일가의 사람들은 집안 온곳이 모두 책으로 둘러쌓여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면에서 그들은 서로 전혀 맞지않는 옷을 입고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비극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조지의 아내 재클린이 원한 그들의 가정부는 책을 어느정도 읽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니스 파치먼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멀리하고 누군가 그녀를 무시하는 의미로 얘기하지 않아도 앞서서 그렇게 생각하며 적대적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것 같다. 그녀가 글을 모르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을 몰라도 사람들과 잘지내며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글 속의 유니스 파치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떡해서든 글에서는 멀어지려고 했으며, 사람들에게서도 격리되어 그녀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좀 더 깊게 관여하고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을 누구라도 원치 않았다. 커버데일 가족들이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녀가 글을 모른다고해서 무시하지는 않았는데, 그녀를 해고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괜한 열등감에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그녀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누설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모두 떠벌리고 다닐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글을 모르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무시를 받아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위축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온 나라에 알리게 되며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가 되는 것. 그녀가 조금이라도 글을 배울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왜 그렇게 자신만의 동굴로 더 깊이 숨어들어가게 되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 조지는 커버데일 통조림 회사로, 자일즈는 마그누스 와이든 재단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조지는 자일즈에게 게속해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바람이 심하다는 얘기를 건네 보았지만, 자동차에 타고 있는 그들 위로 침묵이 내려앉을 뿐이었다. 자일즈는 "음" 소리만 내고는 언제나 그렇듯 책을 펼쳐 들었다. "

                                                                                                            -chapter 2 p.11

 

 

나도 가끔 생각이 많아지고, 뭔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하루종일 침대위에서 주구창창 책만 읽는다. 노래를 틀어놓고 책을 읽고 있으면 책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어느순간 고민들은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 가끔 책을 도피처로 사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일즈에게도 책은 그런 용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의 개가로 새아버지와 형제들이 생긴 자일즈에게 가족은 자신이 비집고 들어 갈 수 없는 그들끼리 끈끈한 가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인 재클린은 조지와 마냥 좋기 때문에 아들의 그런 모습을 그냥 책을 좋아하는 모습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너무 광적으로 읽기만하는 자일즈를 봤을 때, 인지를 했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책에 빠져들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그것 또한 큰 문제이다.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을 자신의 기준에서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유니스 파치먼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책으로 부터 멀어지고 많은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넘치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결코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듣는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일까 생각하보면 아마도 이런 경우 또한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건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넘치면 자일즈같은 모두를 한심한 사람으로 보고 함께 어울릴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아예 글을 몰라 책을 읽을 수가 없다면 그것 또한 사람들과 벽이 생기기 때문에 좋을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도 정도, 중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이든 읽으면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글이라는 건 어떤 걸 읽어도 느낀바가 생기고 생각해보게 하는 문제를 주기 때문에 책의 종류에는 저급함과 고급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양에는 나쁨과 좋음이 있는 것 같다.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인 우월감도 책을 못읽기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끼지 않으려면 항상 나도 정도를 지키는 책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 빠져사는 삶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사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야겠다는 생각 또한 덧붙이고 싶다.

 

 

"유니스는 숨 쉬는 돌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chapter20 p.206

 

 

숨 쉬는 돌. 이말이 나는 너무 무섭고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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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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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는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보니 책을 받자마자 내용에 대한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었고, 내 믿음에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훈작가의 책은 거기서 거기로 변화없이 비슷하고, 흑산 또한 언젠가 읽은적이 있는 책이라며 비평을 한 글을 읽기도 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변화가 어떤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에게는 응당 그만의 문체와 글을 엮어가는 패턴이 있기 마련이니 기본적으로 글을 대하게 될때 우리의 느낌이 비슷하지 않을까. 음악가들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표절은 인정해주는데 왜 김훈작가는 문체의 변화가 없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멈춰있는 작가라는 비평을 들어야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훈은 김훈만의 분위기가 있기에 좋은 것이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마구마구 머리속에 그려지는 소설의 내용이 나를 만족하게 만들었다. 일본소설이 빨리 읽혀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그냥 글을 읽어내려가면 되지 머리속으로 상상을 할만한 내용들이 없다. 다만 일본소설 특유의 반전에만 주의를 기울여서 읽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흑산]은 읽으면서 여기저기에서 배경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글을 읽었다. 작은 게의 움직임 하나도 머리속에 완벽하게 그려넣을 수 있게 하는 김훈작가의 문장력이 너무 부럽다. 그렇게 글을 쓸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김훈작가의 배경묘사, 인물묘사 능력은 멋지다는 생각만을 하게 만든다. 한문장 한문장을 쉬이 읽을 수 없고, 그냥 버릴 수 없는 그런 글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흑산]은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종교의 자유가 없던 그시대, 성리학의 기본교리에 반대하고 백성들에게 해괴한 사상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천주교신자들은 그렇게 삶을 다했다고 한다. 사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천주교박해사건에 대한 책이라고 크게 인지를 하지 못하다가 내가 사는 충북 제천에 배론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하는 황사영의 말을 읽고 나서야 천주교 박해사건을 다룬 책이구나. 내가 그 배론성지에 예전부터 소풍으로도 자주 갔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세례명으로 서로를 부르고, 조금 덜 가부장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잘못된 것을 요물적인 것을 백성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고 다만 그 시대의 기득권층들의 권력 보호, 그들이 더 뭉칠 수 있게 하는 끈끈함을 강화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고, 그것이 그 당신의 천주교 신자들과 실학에 눈뜬 학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때든지 자신들의 세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그들이 더 강력하게 권력을 갖게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신자들은 기득권층의 세력강화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주인공 한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주인공과 그 사람 주변의 이야기로만 채워진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또 한가지 좋았던 점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사람은 정약전이지만 그 것이 다가 아니고,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대궐안의 여인을 대표하는 대비의 이야기도 담고, 중앙의 높은 벼슬아치의 이야기, 시골 말직의 삶, 공노비, 사노비, 평민 할 것없이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누구 한사람으로 시대를 대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시대를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가 했을 사전조사를 어마어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에 작가가 직접 인용을 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며 더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만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구나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도 되었다.

 

역사의 초점은 거의 정약용에게 맞춰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물론 정약전에 대해서만 서술을 한 소설을 아니지만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색달랐다. 고등학교 때, [상도]를 무척 재미있게 읽고 나서, 다른 대하소설을 찾다가 [목민심서]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정약용의 삶에 대한 그 책이 지금은 완벽하게 내용이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고,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추천을 하고 다녔었다. 그렇게 정약용에 대한 책을 접햇었지만 그래도 정약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때문에 모두의 초점이 맞춰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갔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인이 오랜 유배생활을 하며 남긴 것이 많을 법도 한데, 그래도 정약전에 대해서는 특별한 스포트라이트가 없었다. [흑산] 또한 완벽히 정약전의 책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끌어 갔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소설은 상상을 많이 하게 할수록, 생각을 많이 하게 할수록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면 소설이 일반 인문서나 교양책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난 [흑산]이 재미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리고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읽은 내용들이 하나하나 머리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흑산도의 모습이, 흑산도 앞 바다의 모습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또렷이 그려낼 수 있다. 몇권의 달하는 대하소설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대하소설의 값을 하는 소설. 이 작은 한권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소개되는 책. 그래서 나는 많은 권수의 대하소설이 가지는 서사성을 느끼고 싶을 때, 맛보기라도 할 수 있는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 상록수림으로 덮인 섬은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산이 검다고 이름이 흑산이었다. 섬들을 옮겨 다니는 새들은 홍도 쪽으로 날아가다가 흑산에 내려앉았다. 바다는 물가에서부터 수심이 깊었다. 햇빛이 깊이 닿지 못해서 물색이 어두웠고, 먼바다 쪽은 더 검었다. 바다가 무서운 외지인들은, 산이 아니라 바다가 검어서 흑산인가보다고 말했다."

                                                                                                       -p.110 하얀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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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측 증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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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나에게 일본소설은 유난히 잘읽히는 책이다. 너무 쉽게 잃혀서 사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곤 해서 일본소설엔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즐겨 읽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번달 선정도서로 다시 일본소설이 와서 저번달에 이어 한권의 일본소설을 더 읽게 된 것이다. 때문에 [변호 측 증인]이라는 이 책이 그렇게 인가가 많은 소설인지도 몰랐고, 추천페이퍼에 나는 다른 책을 추천했기 때문에 전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접하게 되었으니 추리소설을 접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에서 책을 접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지 나는 책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어그러지 상태에서 잘못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의 서장(序章)을 읽으면서 난 교도소에서 사형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남편 스기히코라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는 그녀의 아내 미미로이가 유력한 증인을 찾아내어 사형을 앞두고 있는 남편을 구해내는 책인가보다 하며 책읽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랬기에 증인이 나타나고 마지막 법정의 모습이 그려진 장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뭐야 이거.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본건가. 아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본건가. 작가가 의도한거야. 아님 내가 집중해서 책을 보지 않은거야. 생각이 많아지는 깜짝 놀란 부분이었다.

 

미미로이. 그녀는 생각보다 참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어쩔수없는 상황에 떠밀려 클럽 '레노'의 스트립 댄서로 일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그런 곳에서 병든 여인처럼 보이지는 않게 그려진다. 가족들에게서 외면당하더라도 돈이 많은 집으로 시집가 돈만 펑펑쓰면서 살기를 바라지 않고, 어떻게든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부잣집으로 시집간 마나님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집에서 풀을 뽑으면서 정원을 관리하고 앞으로는 무엇으든 해서 먹고 살겠다고 생활력을 불태우기도 하는 배울만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출신이 스트립 댄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는 것을 이해하고, 출신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도, 망나니 도련님을 한 가정의 번듯한 가장으로 바꾸려고 성의를 다하는 모습도 모두 나에게 호감을 주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그녀의 진심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씌어버린 그녀의 남편을 포함한 모든 시댁식구들의 비안간적인 태도가 참 화가 나고 서글프다.

 

미미로이의 모든 점이 다 칭찬받을만한 행동이 아니었던 건 인정한다. 그녀는 사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었다. 그때 마침 부잣집 도련님인 스기히코가 그녀가 좋다고 구애를 했고, 아이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왕이면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아버지이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미미로이는 구애에 넘어간 척하며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그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스키히코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미미로이는 사실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위해서 그들을 우롱한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결혼한 후의 그런 노력도 사실은 그녀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지 전혀 가족을 위했던 것이 아닌 이기적인 행동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찌 그것을 비난할 수 있었을까. 모성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인데.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우리 둘 이외의 사람을 덮친 죽음이었다. 그런 게 우리를 갈라놓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을 터였다. 적어도 목사의 물음에 순종적인 기계처럼 대답했던 그때, 우리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 서장 P.19 미미로이의 독백 중

 

 

그래도 난 스기히코와 결혼하여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미미로이의 마음만은 진실했을거라 굳게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살인을 덮기 위해 자신이 그 흔적을 없애려고 노력했고, 남편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나는 미미로이가 설사 자기 자신과 아이를 위해서 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스기히코와 죽기 전까지 한평생을 행복하게 함께하고자했던 마음만은 믿음이 간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처음부터 본 그대로 얘기하고 자신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남편을 지키기위해서 그렇지 않았으며, 자신이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사형집행까지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남편의 진실을 알고난 후,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돌아선 미미로이의 모습은 결연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자신의 자리였던 클럽 '레노'로 돌아간 미미로이. 그녀가 마지막까지 행복했는지는 알수 없겠지만 그녀의 삶, 그것만큼은 지킨 것이 되었다. 삶이 있어야 행복도 있는것이고, 불행도 있는 것이라면 그나마 그녀는 삶을 지키면서 행복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만들어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미로이는 그래도 나름의 행복을 찾았을 것 같다.

 

깜빡 속아서 시작한 소설은 다 읽고나니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읽으면서는 크게 재미를 느낀다든지, 뭔가 흥미를 확 끌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 순간 이 소설이 왜 인기를 끌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추리소설의 재미라면 함께 사건을 탐구해보는 것인데 난 함께 살펴보려하지않고 보이는 것만 그대로 보며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미미로이는 결혼하면서 야시마 나미코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지만 그녀에게 난 그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미미로이로 되돌아갔고, 그녀는 미미로이로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는 그녀, 미미로이의 삶이 행복하기를 함께 응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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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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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작가의 책은 작년 [동화처럼]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동화를 무지 좋아하는 나는 [동화처럼]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단번에 책을 사서 읽었지만, 뭐 그닥 동화같은 이야기의 소설책이 아니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 조금 실망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의 삶, 멋지게 꾸며놓은 삶이 아닌 부자들의 삶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삶. 내 옆에서 있음직한 그렇지만 내가 들여다 볼 수는 없는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알리딘 추천 페이퍼에 넣었는데 이달의 신작도서로 선정되어 받았다.

소설집으로 만난 김경욱 작가는 장편소설로 만났을 때보다 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로 느껴진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라서 그런지, 아님 단편소설에는 장편소설만큼 극적인 장치가 필요가 없어서인지 소재를 찾아내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다시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여기저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풀어놓은 이야기라 흥미롭게 한편한편을 읽어갈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라 재미있는 신작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번쯤 추천해봄직한 책이라 생각이 든다.


" 단것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쓸 만한 아이디어 하나 건지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샜을 때, 광고기획안 프레젠테이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때, 참을 수 없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내 머리속 난쟁이는 악다구니를 써댄다. 단것을 달라고. 그럴 땐 초콜릿이 효과만점이다. " 
                                                                                                              - p.62 99%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99%의 시작부분이다. 열등감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떤 상태로 내몰게 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트라우마는 환상을 만들기도,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나쁘게만 보는 편견이 심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도 초콜릿이 땡기게 되는 것이다. 단것이 먹고 싶어 질때 초콜릿을 입에 넣고 깨물어 먹는 것.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몬드가 잔뜩 들어간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것. 머시멜로우를 탄 아주아주 단 코코아가 땡기는 것. 특히나 밤에 그럼 다이어트에는 젬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손이간다. 밤에 어려운 과제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어쩌면 조금은 걱정되고 긴장되고 초조할 때, 그럴때 단것이 먹고 싶어 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1%를 위해 희생하는 99%가 나이며, 그래서 더 불안한 상황에서도 더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면 카카오 함량 99%의 석탄과 같은 씁쓸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그런 느낌.

열등감 그거 아무것도 아니면 좋을텐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느끼지 못했던 열등감이라는 것이 내것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정말 견디기 힘든 존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는 내가 다 해놓은 것이고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하는 찬사인데 상대가 가로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도 그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분명 나보다 못했던 것 같은데 내가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지금 나보다 더 잘하는 것만 같은 그런 상태에 놓이곤 하기 때문인지 참 공감이 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뭔가 모자란 부분을 찾아서 위안을 삼으려는 아주 지극히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까지도 이해가 되면서 말이다.


" 사내는 주사위를 높이 던졌다. 주사위는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멈췄다, 주사위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개는 눈이 여섯이었지만 다른 하나의 눈이 닳아서 지워졌다. 사내는 눈이 지워진 주사위를 집어 살펴보았다. 다른 면의 눈은 모두 건재했다. 사내는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마귀의 유혹에 귀가 솔깃했던 어린 양을 용서하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 p.22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도가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그런걸까?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더 편하게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전보다 더 낫게 혹은 이전처럼 살아가게 되고, 피해자는 사람들의 편견과 솜방망이 처벌에 지나지 않는 법때문에 더 깊은 수렁속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게 된다. 소설 속 할아버지의 손녀 또한 성희롱을 당했지만 그들이 아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해자들에게는 어떤 처벌을 내릴수가 없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성범죄자에게 아무런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게 가연 옳은 것일까. 그럼 그들이 생각했을 때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심한 잘못을 저지르면 소년원이라는 곳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되는데 성범죄자는 그렇지 않다. 성범죄라는게 피해자를 자살이나 우울증처럼 일상생활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할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우리사회는 관대할까. 이렇게 관대하니 성범죄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단순히 여자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니 그런 일을 당하고 다닌다는 그런 것만으로 가해자들에게 피할 구멍을 만들어줘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행하는 복수는 당위성을 가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아파트에서 호위호식하며 살면 모범을 보이며 살아야 할텐데 약한 사람에게 몹쓸 짓이나 하도록 키운 부모들도 잘못이 무엇인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처벌도 안되는데 돈이나 받고 덮어버리지는, 그렇지 않으면 뭘할수 있겠냐는 듯한 행동으로 일관하고, 진심을 담지도 않은 종교적 신념에 기대보려고 하는 인간같지도 않은 행동에 할아버지가 병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나 또한 함께 그들에게 병을 던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할아버지의 행위는 처벌을 가할 수 없는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나는 지지한다.


" 한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흔히 말하지, 세상은 링과 같다고. 말은 언제나 쉽소. 세상이 링이라면 언제나 링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세상이 일종의 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오.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 
                                                                              - p.114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



읽는 내내 노인의 삶에 대해서 나도 빨리 듣고 싶어서 궁금해하면서 한장한장을 넘긴 소설이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는 일을 하는 화자가 만난 왕년의 유명 복서. 그렇지만 체중을 잴 때 알수없이 늘어난 체중때문에 실격패를 한 그의 인생. 그리고 그렇게 실격패를 안긴 라이벌의 유골함이 사라졌고, 그와 함께 사라진 허리케인 조. 그는 어째서 유골함을 훔칠 수 밖에 없었을까. 자신을 삶을 대신해 산 사람이라고 그 무쇠주먹을 표현한 것을 보면 이제 그가 죽었으니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고 그것을 훔쳐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현대사회의 인간관게는 참으로 복잡다단해서 언제 어디서 다시 부딪칠지 모른다. 거절은 하되 적을 만들지는 말라. 거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명심하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 
                                                                                                  - p.257 아버지의 부엌 -


거절에 대한 부담은 나도 항상 걱정하는 부분이다. 보기에는 냉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잘라낼 것 같이 생겼다고 하지만 나를 잘아는 사람들이 항상 걱정하는 것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퍼주는거 좋아하고, 사람들의 부탁에 싫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혼자 부탁들어주느라 고생하고, 그래놓고는 또 다시 어려운 부탁을 덜컥 받아와버리는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절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 나도 배울 수 있으면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속 화자가 공감이 되었다. 친구의 부탁에 거절을 못하는, 똑같은 CD를 두장이나 사고 있는 그 모습이.


" 우히부카, 야 빠쓰 류블류, 떼 끼에로, 싸가뽀, 아이시떼이루, 익 하우 반 야우, 이히 리베 디히, 즈 뗌므, 아이 러브 유...... 영신은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기억해냈다. 죽음을 예감한 사람들이 남긴 말 중 가장 빈번한 게 뭔지 알아? 영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p.252 혁명기념일 -


진부하지만 들을 때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가슴에 새기게 되는 말들이 있다. 죽음에 가까워져야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만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내삶이 소중하게 느끼지는 것. 아주아주 진부하고 평소에는 별 생각없이 지나가게 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또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화자인 영신은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한다는 고백을 처음 하게 되는 혁명기념일. 그렇게 독자에게는 평소 전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빨리 늦게 전에 전하라고 메세지를 던져주는 이야기 같다. 우리 가족들이야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자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가족들이라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해줄껄 하는 후회는 안하겠지만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빨리 사랑한다고 얘기해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그거 해보면 별거 아닌 말이고, 자꾸하다보면 그냥 밥먹었어라고 물어보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 된다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처음해보는 말로 만들지 말라고 꼭 전해주고 싶다.

wanna be로 삼고 싶은 멋진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은 단 한편도 실려 있지 않은 소설집이었다. 그런대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보고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잊지 않았으면 하고 보내준 메세지들을 하나하나 담으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 서민들의 삶을 하나하나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지면서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부잣집 딸과 만나면서 자격지심을 느끼는 화자 또한 그랬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대로를 하지 못하는 많은 화자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눈 돌아갈만큼 멋지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아니라도 이렇게 마음을 끌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소소한, 그렇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 본 것만 같아서. 지금 여기, 이 곳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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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악센트님. 정성스럽게 쓴 글 잘 읽었습니다 :)

소설 읽을 때 피부에 확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특히 거절 못하는 성격의 곤란함... 저도 그래요. 아니, 라고 말하면 제가 잘못한 것 같아서 덜컥 그래, 라고 대답하게 되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주변에 있을 법한, 그런데 면밀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인물들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악센트 2011-11-30 20:3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거절 못하는 성격 진짜 곤란하죠ㅋㅋ 말없는수다쟁이님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절하는법 하루빨리 자연스럽게 습득하시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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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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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다. 알라딘에서 신간평가단으로 선정되고 처음으로 받은 책이라서 그런지 참 열심히 읽었다. 일본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데 오랜만에 정독을 한 책이다. 지난번 추천페이퍼에 내가 올려서 냈던 책이기도 하고. 무튼 할일이 많은 요즘이라 밤에는 무조건 책만 읽겠다는 생각으로 자기전에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끝내용이 궁금해져서 잠드는 시간까지 늦춰가면 읽었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나오고 너무 집안에 무심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만 같은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불륜이라는 소재가 주요 소재가 아니기에 어느정도 눈감고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와타나베와 아키하는 회사 동료이다. 와타나베가 다니는 회사에 아키하가 인턴사원으로 입사를 하면서 둘의 인연이 맺어졌으며, 야구연습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둘은 불륜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는 동안 아키하의 집에서 15년 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와타나베가 알게 되고, 그 살인사건의 유일한 범인이 자신의 불륜녀 아키하이다. 그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범인이 밝혀지고,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인생,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고. 일시적인 욕망에 휩쓸려 한눈을 팔다가 일껏 이룩해 놓은 가정을 파괴하다니,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대사를 나 자신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여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 " 
                                                                                                 -p.7~8 와타나베의 독백-



남자주인공 와타나베는 불륜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던 불륜에 누구보다 깊게 빠졌으며 그래서 가정을 포기하고 아키하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도 한다. 자신의 상황은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하면서. 이래서 남이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을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불륜이 이렇게나 형편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와타나베는 왜 이키하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된 것일까. 남자들은 여자가 조금만 틈을 주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서 아내를 배신하게 되는 것인지. 아키하와 함께 하면서 자신도 아직 열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아내하고의 관계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없던 관계였다고 말하는 와타나베는 나쁜 남자다. 그렇지만 이미 아키하와의 관계에 깊게 빠져있는 그는 나쁜 관계인것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바로 이어지는 와타나베의 독백에서 그의 상황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p.88 와타나베의 독백-


"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분명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편리하다. 생각해 보면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할 때가 많다. 그것은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가 그 말에 그토록 예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P.53 와타나베의 독백-



아키하의 말처럼 죄송합니다는 편리한 말이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대개 상대편도 기분이 풀려 어느 정도의 실수는 용서해 주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하면 글쎄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쩌면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미안이라는 말에 우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어 있고, 진심인지 아닌지에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의례 내뱉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지 진심으로 그 말을 할 때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아키하의 말에 많은 공감이 갔다.


"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다면, 나, 이렇게 괴롭지도 않을 거야. " 
                                                                                                         -p.36 아키하의 말-



사실 내가 아키하를 봤을 때는 특별히 큰 매력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어떤 점이 가정을 저버릴 정도로 와타나베에게 큰 존재로 다가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와타나베는 아내보다 딸보다 아키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아키하가 그정도의 매력을 가진 여자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냥 아내와 딸은 그자리에 있고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키하는 그렇지 않고 조마조마하며 챙겨줘야 하고, 당장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빠져든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무엇보다 아키하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아키하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포기해야 하는지 그녀가 살인범이라면 자신을 어째야 하는지를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은 완벽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았을 때, 마지막에 아키하가 먼저 자신을 포기해주고 곁을 떠나면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때, 와타나베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키하와의 미래를 꿈꾸기는 했지만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게 끝까지 쉽지 않았겠지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쩌면 누구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와타나베일 것이라 생각한다.


" 자신의 장점을 상대방에게 최대한 드러내는 것이 연애라면, 결점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혼이다. 더는 상대를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연애할 때처럼 상대의 눈길을 끌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혼을 동경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편안해지고 싶어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편안함을 얻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 p.192 와타나베의 독백-


아직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참 슬픈 말처럼 다가오는 구절이었다. 물론 공감을 하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결혼하면서 많은 것을 잃게 된다고만 생각하는 와타나베가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하는지. 얻은 것이 편안함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나쁜 사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포스트 잇을 붙이고 넘어갔다. 아내 유미코는 정말 열심히 내조를 하고 딸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소설이 와나타베의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유미코의 속마을을 드려다 볼수는 없었지만 난 유미코가 어느정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지만 가정을 지키고 딸에게 화목한 가정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고 싶어서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와타나베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으며, 그런 전과는 달라진 수상한 남편의 행동을 알아채지 못하는 둔한 아내는 분명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대목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았다. 뭔가 대단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봤는데 혼조의 죽음은 자살이었고,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이들은 아버지와 묘코 이모. 이들이 원래 불륜의 관계였고, 이 관계를 감추기 위해 혼조씨를 끌여들여 그녀가 자살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사실 자살일 것 같다는 생각을 앞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짐작하긴 했었다. 아버지와 묘코 이모가 불륜의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생각보다 극적인 전개라든지, 어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들이 있지는 않은 책이었다. 불륜이라는 소재도 그걸 받아드릴 정도의 어떤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았고, 혼조씨의 자살 또한 어느정도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였으며, 다만 아버지와 묘코 이모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만이 새로운 사건이었다. 그들이 각자의 길을 가겠다는 것도 어느정도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불륜이라는 것이 원래 잠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것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뒷내용을 궁금해하며 읽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새벽 거리의 야구연습장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아키하의 집 새벽 거리에거 그렇게 끝을 맺으며 인연이 다했다. 아키하는 그녀의 집으로, 와타나베는 아내와 딸이 있는 그의 가정으로 각자의 길을 떠나면서 말이다. 절대 서로를 잡지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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