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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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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작가의 책은 작년 [동화처럼]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동화를 무지 좋아하는 나는 [동화처럼]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단번에 책을 사서 읽었지만, 뭐 그닥 동화같은 이야기의 소설책이 아니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 조금 실망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의 삶, 멋지게 꾸며놓은 삶이 아닌 부자들의 삶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삶. 내 옆에서 있음직한 그렇지만 내가 들여다 볼 수는 없는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알리딘 추천 페이퍼에 넣었는데 이달의 신작도서로 선정되어 받았다.

소설집으로 만난 김경욱 작가는 장편소설로 만났을 때보다 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로 느껴진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라서 그런지, 아님 단편소설에는 장편소설만큼 극적인 장치가 필요가 없어서인지 소재를 찾아내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다시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여기저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풀어놓은 이야기라 흥미롭게 한편한편을 읽어갈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라 재미있는 신작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번쯤 추천해봄직한 책이라 생각이 든다.


" 단것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쓸 만한 아이디어 하나 건지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샜을 때, 광고기획안 프레젠테이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때, 참을 수 없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내 머리속 난쟁이는 악다구니를 써댄다. 단것을 달라고. 그럴 땐 초콜릿이 효과만점이다. " 
                                                                                                              - p.62 99%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99%의 시작부분이다. 열등감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떤 상태로 내몰게 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트라우마는 환상을 만들기도,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나쁘게만 보는 편견이 심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도 초콜릿이 땡기게 되는 것이다. 단것이 먹고 싶어 질때 초콜릿을 입에 넣고 깨물어 먹는 것.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몬드가 잔뜩 들어간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것. 머시멜로우를 탄 아주아주 단 코코아가 땡기는 것. 특히나 밤에 그럼 다이어트에는 젬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손이간다. 밤에 어려운 과제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어쩌면 조금은 걱정되고 긴장되고 초조할 때, 그럴때 단것이 먹고 싶어 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1%를 위해 희생하는 99%가 나이며, 그래서 더 불안한 상황에서도 더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면 카카오 함량 99%의 석탄과 같은 씁쓸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그런 느낌.

열등감 그거 아무것도 아니면 좋을텐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느끼지 못했던 열등감이라는 것이 내것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정말 견디기 힘든 존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는 내가 다 해놓은 것이고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하는 찬사인데 상대가 가로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도 그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분명 나보다 못했던 것 같은데 내가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지금 나보다 더 잘하는 것만 같은 그런 상태에 놓이곤 하기 때문인지 참 공감이 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뭔가 모자란 부분을 찾아서 위안을 삼으려는 아주 지극히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까지도 이해가 되면서 말이다.


" 사내는 주사위를 높이 던졌다. 주사위는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멈췄다, 주사위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개는 눈이 여섯이었지만 다른 하나의 눈이 닳아서 지워졌다. 사내는 눈이 지워진 주사위를 집어 살펴보았다. 다른 면의 눈은 모두 건재했다. 사내는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마귀의 유혹에 귀가 솔깃했던 어린 양을 용서하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 p.22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도가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그런걸까?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더 편하게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전보다 더 낫게 혹은 이전처럼 살아가게 되고, 피해자는 사람들의 편견과 솜방망이 처벌에 지나지 않는 법때문에 더 깊은 수렁속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게 된다. 소설 속 할아버지의 손녀 또한 성희롱을 당했지만 그들이 아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해자들에게는 어떤 처벌을 내릴수가 없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성범죄자에게 아무런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게 가연 옳은 것일까. 그럼 그들이 생각했을 때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심한 잘못을 저지르면 소년원이라는 곳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되는데 성범죄자는 그렇지 않다. 성범죄라는게 피해자를 자살이나 우울증처럼 일상생활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할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우리사회는 관대할까. 이렇게 관대하니 성범죄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단순히 여자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니 그런 일을 당하고 다닌다는 그런 것만으로 가해자들에게 피할 구멍을 만들어줘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행하는 복수는 당위성을 가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아파트에서 호위호식하며 살면 모범을 보이며 살아야 할텐데 약한 사람에게 몹쓸 짓이나 하도록 키운 부모들도 잘못이 무엇인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처벌도 안되는데 돈이나 받고 덮어버리지는, 그렇지 않으면 뭘할수 있겠냐는 듯한 행동으로 일관하고, 진심을 담지도 않은 종교적 신념에 기대보려고 하는 인간같지도 않은 행동에 할아버지가 병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나 또한 함께 그들에게 병을 던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할아버지의 행위는 처벌을 가할 수 없는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나는 지지한다.


" 한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흔히 말하지, 세상은 링과 같다고. 말은 언제나 쉽소. 세상이 링이라면 언제나 링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세상이 일종의 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오.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 
                                                                              - p.114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



읽는 내내 노인의 삶에 대해서 나도 빨리 듣고 싶어서 궁금해하면서 한장한장을 넘긴 소설이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는 일을 하는 화자가 만난 왕년의 유명 복서. 그렇지만 체중을 잴 때 알수없이 늘어난 체중때문에 실격패를 한 그의 인생. 그리고 그렇게 실격패를 안긴 라이벌의 유골함이 사라졌고, 그와 함께 사라진 허리케인 조. 그는 어째서 유골함을 훔칠 수 밖에 없었을까. 자신을 삶을 대신해 산 사람이라고 그 무쇠주먹을 표현한 것을 보면 이제 그가 죽었으니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고 그것을 훔쳐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현대사회의 인간관게는 참으로 복잡다단해서 언제 어디서 다시 부딪칠지 모른다. 거절은 하되 적을 만들지는 말라. 거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명심하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 
                                                                                                  - p.257 아버지의 부엌 -


거절에 대한 부담은 나도 항상 걱정하는 부분이다. 보기에는 냉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잘라낼 것 같이 생겼다고 하지만 나를 잘아는 사람들이 항상 걱정하는 것이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퍼주는거 좋아하고, 사람들의 부탁에 싫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혼자 부탁들어주느라 고생하고, 그래놓고는 또 다시 어려운 부탁을 덜컥 받아와버리는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절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 나도 배울 수 있으면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속 화자가 공감이 되었다. 친구의 부탁에 거절을 못하는, 똑같은 CD를 두장이나 사고 있는 그 모습이.


" 우히부카, 야 빠쓰 류블류, 떼 끼에로, 싸가뽀, 아이시떼이루, 익 하우 반 야우, 이히 리베 디히, 즈 뗌므, 아이 러브 유...... 영신은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기억해냈다. 죽음을 예감한 사람들이 남긴 말 중 가장 빈번한 게 뭔지 알아? 영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p.252 혁명기념일 -


진부하지만 들을 때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가슴에 새기게 되는 말들이 있다. 죽음에 가까워져야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만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내삶이 소중하게 느끼지는 것. 아주아주 진부하고 평소에는 별 생각없이 지나가게 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또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화자인 영신은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한다는 고백을 처음 하게 되는 혁명기념일. 그렇게 독자에게는 평소 전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빨리 늦게 전에 전하라고 메세지를 던져주는 이야기 같다. 우리 가족들이야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자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가족들이라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해줄껄 하는 후회는 안하겠지만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빨리 사랑한다고 얘기해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그거 해보면 별거 아닌 말이고, 자꾸하다보면 그냥 밥먹었어라고 물어보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 된다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처음해보는 말로 만들지 말라고 꼭 전해주고 싶다.

wanna be로 삼고 싶은 멋진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은 단 한편도 실려 있지 않은 소설집이었다. 그런대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보고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잊지 않았으면 하고 보내준 메세지들을 하나하나 담으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 서민들의 삶을 하나하나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지면서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부잣집 딸과 만나면서 자격지심을 느끼는 화자 또한 그랬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대로를 하지 못하는 많은 화자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눈 돌아갈만큼 멋지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아니라도 이렇게 마음을 끌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소소한, 그렇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 본 것만 같아서. 지금 여기, 이 곳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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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악센트님. 정성스럽게 쓴 글 잘 읽었습니다 :)

소설 읽을 때 피부에 확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특히 거절 못하는 성격의 곤란함... 저도 그래요. 아니, 라고 말하면 제가 잘못한 것 같아서 덜컥 그래, 라고 대답하게 되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주변에 있을 법한, 그런데 면밀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인물들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악센트 2011-11-30 20:3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거절 못하는 성격 진짜 곤란하죠ㅋㅋ 말없는수다쟁이님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절하는법 하루빨리 자연스럽게 습득하시길~~ㅎㅎ